제1126화
“재밌군.”
미국의 대통령은 비서실장이 가져다준 정보를 보며 껄껄 웃어 보였다.
“이보게. 장관.”
“예 각하.”
“이걸 어떻게 보나?”
그는 한국의 몇몇 기사들이 담긴 태블릿을 보여주었다.
아무리 국제정세를 보기 위해서라지만 강국의 대통령이 타국의 일개 뉴스까지 신경 쓰는 일은 잘 없다.
하지만 이번엔 일개 뉴스가 일개 뉴스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뻔합니다. 한국 자체의 의도는 아니겠죠. 그들도 바보가 아니고서야 한번 이 잡듯이 뒤집어져 놓고 또다시 그럴 리가 없으니까요.”
특히 현 한국정부는 티오니스 친화적인 정책을 많이 펼치고 있다.
실제로 몬스터 사태 이후 한국을 포함한 세계각지의 수많은 나라들이 다시 일어선 이유는 티오니스와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국가가 그러지 않는다고 국민이 다르겠습니까. 당장 저희 미합중국 내에서도 티오니스에 대해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그를 불호하는 이는 많으니까요.”
세상 사람 전부가 같은 생각을 품는 건 불가능하다.
이번 일도 단순히 개개인이 품은 생각이 큰 집에 불을 질러버린 꼴일 것이다.
“그래서. 한국정부는 어찌하고 있나.”
“일단 관련 기사들을 빠르게 삭제하고 조사에 들어가고 있습니다만. 개인방송을 통해 그 당시 심상찮은 분위기가 생중계 된 것도 있고, 해당 개인이 시신으로 발견된 게 크게 민심을 흔든 듯 보입니다.”
“그녀가 그를 죽인 게 확실한가?”
“개인방송에선 두 사람이 접촉한 이후로 끊어졌으니 용의자가 될 수밖에요.”
선동이라는 건 참 무서운 법이다.
누가 뭔가를 했다 카더라.
그 한마디가 퍼져나가면 없던 일이 사실이 되어버리는 것도 한순간이다.
“신성 그룹에서도 아주 제대로 분노했군. 하긴, 티오니스 성자와 신성 그룹의 사이가 좀 좋을까.”
“각하. 어찌할까요.”
“뭘 어찌해. 개처럼 물어뜯어야지.”
아무리 동맹국이라지만 기회를 놓칠 순 없다.
“이 기회에 신성 그룹의 본적을 미국으로 돌리고 덩달아 티오니스 성자가 주로 활동하는 장소도 우리 미국으로 바꿔버리자고.”
남의 불행은 자신에겐 기회가 된다.
“아마 다른 국가에서도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을 거야. 한국은 참 미련하지. 매번 우호적으로 나서도 손해보다 이득이 훨씬 클 텐데. 쯧쯧.”
“뭐. 한국 정부 쪽에서도 이번 일은 참 당황스러울 겁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쪽은 기회일 수밖에.
[따라서 정부는 이번 일에 대해 철저히 조사할 것이며,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함부로 사람을 몰아가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을 거듭 강조…….]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방송되는 영상을 보는 대통령을 향해 비서가 조용히 보고를 올렸다.
“각하.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뭔가.”
“최근 마나 파장이 증가하는 시기라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지.”
“사일런스 게이트라고 들어보셨습니까.”
* * *
[아무리 막 나간다지만 방송 중에 찾아와서 사람을 죽이고 가냐? 진짜 이게 법치국가다.]
[뭐래. 애초에 이 나라 사람도 아닌데 이 나라 법을 논하네.]
[아니.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넌 미XX아 미국 대통령이 한국 와서 사람 죽이고 아무 말 없으면 가만히 있을 거냐.]
뜨겁게 달궈지고 있는 인터넷의 여론은 반반으로 나뉘고 있었다.
에반젤린이 그를 죽였다는 사실에 어이없어하는 이들, 그리고 반대로 그녀를 두둔하려는 이들도 존재했다.
[BJ 나룻배. 인성 쓰레기로 유명했음 속이 시원하다. 난 티오니스 성자 딸 응원함. 근데 어떻게 20대 정도 나이에 저만한 딸이 있지?]
[나도 그 생각함 ㅋㅋㅋㅋ 역시 판타지.]
[ㄹㅇ 저거 진짜 가끔 말 개 함부로 할 때 진짜 역겨웠는데. 저x끼 예전에 연예인 자살 때도 악질 댓글 단 거로 유명했음.]
[윗댓 미친xx인가? 아무리 인성 쓰레기라도 사람을 저렇게 대놓고 죽여도 되냐?]
[애초에 죽인 장면 나왔음? 방송 중간에 끊어졌다매.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데 이걸 몰아간다고? 그리고, 애한테 할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둘이 만나고 곧바로 사망 소식 들어왔는데 대가리가 깨지셨나.]
[대가리 깨져야지. 티오니스 성자 덕에 지금 우리나라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확실치도 않은 일로 이렇게 몰아간다고? 내가 티오니스 성자였으면 이 나라 이미 개박살 냈다. 진짜.]
[화난다고 다 죽이나. 무슨 중세시대 폭군도 아니고.]
[애초에 사과하라고 화낸 게 전부 아니었음? 왜 죽였다고 확신하지? 만약에 사실 아니면 감당 가능함?]
[일단 나는 중립 기어 박는다. 너희처럼 물어뜯었다가 만약에 아니면 진짜 X 될거 같음 이번엔.]
[애초에 티오니스 성자, 저만한 위치에 힘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구에 어떤 압박도 안 가하는 거. 나름대로 배려해주고 있던 거 아니었나. 부담가지지 말라고 풀어놨더니 냅다 물어뜯는 꼬라지. 진짜 선비족속들 아니랄까 봐.]
그쯤 되니 BJ 나룻배가 했던 짓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기 시작했다.
그의 행적과 인성 관련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의 시청자 출신으로부터 들려온 정보에 의해 그가 왜 티오니스를 미워하는지. 에반젤린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도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물론, 상대 부모를 욕하는 행동이야 어디서든 보이지만 사람들이 황당해하는 건 그가 티오니스를 미워하는 이유가 너무 어이없었기 때문이었다.
태블릿을 보던 초단이는 에반젤린이 우울한 표정으로 바닥만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는 건지.
“조 비서님.”
조용히 태블릿을 보던 연희가 말한다.
“예…… 옙! 아가씨!”
이상할 정도로 조 비서는 신연희의 앞에선 굉장히 긴장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이 사람들. 전부 파악하세요.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 두되. 이 상황을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악의적인 일을 벌이는 사람들.”
그녀가 예쁘게 웃는다.
“전부 대가를 치르게 해줘요.”
“예! 깔끔하게 정리하겠습니다!”
조 비서가 황급히 나가자 연희가 고개를 돌렸다.
“후우…… 그리고 현아야. 태블릿 그만 부숴 먹어.”
이번 범인은 에반젤린이 아닌 건 확실했다. 명확한 물증을 제시할 순 없지만, 정황 증거는 그녀가 결백하다 주장하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나룻배가 죽은 이유는 어디까지나 사고에 의한 일이었다.
“사일런스 게이트…….”
어떤 흔적도 증거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에반젤린을 찾기 위해 현아가 코오나를 호출하면서 겨우 꼬리를 잡은 셈이었다.
“언니. 경찰 쪽은 뭐라고 해?”
“당장 기사를 올린 기자가 팩트 없이 휘갈겨 쓴 어그로라는 건 바로 입증했으니까. 곧바로 보호 조치 해제하고 정식으로 그룹 법무팀에서 고소를 할 거야.”
세상이 좀 평화로워지기 시작하니까 호의가 권리인 줄 아는 사람은 반드시 나온다.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네. 그래서 그 여자는?”
“일단 공정한 대처니 뭐니 핑계 대고 이쪽과 접촉은 못 하게 하고 있지만…….”
그래 봐야 도찐개찐.
아마 정부 측에서 그녀에게 어마어마한 압박을 가하고 있으리라.
“그쪽에 있으나 우리 쪽으로 오나 다를 건 없을걸?”
그럴 수밖에.
한국의 입장에서 갑자기 이런 어이없는 일로 데이비와 사이가 틀어지면 엄청나게 곤란해질 테니 말이다.
사람 잘못 건드렸다는 걸 아직 그녀는 잘 모르는 듯했다.
“아직 젊다고 들었는데.”
“젊으니까 무서운걸 모르는 거지.”
어그로를 끌어서 이 사태를 만든 기자에겐 미안하지만, 확실하지도 않은 사실을 마치 사실인 양 꾸며서 기사를 내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쓴맛을 보여주리라.
그것에 어떤 도움도 줄 생각이 없는 그녀들이었다.
“초단이 시험공부 준비도 바쁜 와중에 이런 일이 터지다니…….”
“그나저나 사일런스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나온 게 확실하면. 이건 이것대로 문제 같은데.”
“절대 오빠가 알면 안 돼.”
현아가 몸서리를 쳤다.
“그러네…… 현수 성격에 이걸 알면 굉장히 시끄러워지겠지.”
당장 에반젤린과 초단이를 데리고 돌아가는 건 물론이오, 어떻게 되냐에 따라 대격변을 맞이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자칫하면 전 세계에 한국이 질타를 당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아니. 이미 그 징조는 보이고 있었다.
아주 기회를 잡은 것마냥 한국을 둘러싸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등 수많은 국가들이 확실하지도 않은 일로 이런 일을 벌이냐며 항의해왔다.
항의 명분은 간단했다.
데이비가 티오니스의 이름패를 달고 있지만, 지구가 도움을 받고 있는 건 정확히 티오니스가 아니라 데이비 올 라운 개인이었다.
그가 하기 싫다고 물러나면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는 게 현 실정이었다.
“특히 일본은 아주 이 악물었지. 전에 한번 당한 게 있으니까.”
“이번엔 이해가 가긴 가네.”
“일단 공적으로 에반젤린의 결백을 증명하려면 그 거지발싸개 같은 자식이 균열로 인한 사망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필요해.”
상처도 없고 사인을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누가 범인이다. 콕 짚을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당연히 현아야 나룻배의 사망 원인이 사일런스 게이트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사일런스 게이트를 증명할 수단이 없었다.
애초에 사일런스 게이트는 극비에 부쳐진 사안이었다.
치안을 굉장히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였으니까.
“부대표님!”
그때 조 비서가 황급히 뛰어들어온다.
“조 비서? 무슨 일이에요?”
“공식 성명 떴습니다!”
“그래요? 어떻게 한다고 하던가요?”
“사일런스 게이트에 대해 공표하겠다고 합니다.”
증거는 없지만, 정부에서 그런 게이트가 있으며 게이트의 변이로 인해 나룻배가 휘말려 사망했다고 회견에서 밝히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당연 이번 일로 엄청난 혼란이 있겠지만. 지금의 현아에겐 관심 밖의 문제였다.
“자. 그럼 정부 측은 해결됐고. 이제 인터넷에서 우리 에린이에게 막말하던 그놈들을…….”
“이미 지시해뒀어.”
“엉? 언니?”
예쁘게 웃는 연희를 보며 현아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벌써?”
“응. 일단 현수는 우리 신성 그룹 법무팀의 지원을 받고 있기도 하니까. 명분이야 충분해.”
“웃긴 놈들이네. 애초에 그 세발낙지가 치외법권 조약 맺지 않았어? 그런데도 이런 여론이 머리를 들이미는 게 웃기네.”
“원래 사람이 많아지면 다 다른 생각을 품기 마련이니까.”
애초에 에반젤린이 이 이상 흔들릴 이유는 없었다.
* * *
정부에서 발표한 사일런스 게이트에 관한 정보가 한번 크게 전국을 강타했다.
전조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의문의 균열. 그리고 그 균열이 사람을 해친 첫 번째 케이스.
헌터 관리 본부와 국제 헌터 지원기업인 신성 그룹. 그리고 해당 균열의 출현을 발표한 정부에서는 이번 균열에 대해 면밀한 조사를 할 것이며 이번 사태로 죄 없는 사람을 질타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대놓고 한 사람을 옹호하는 경우는 거의 보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그걸 이상하다 여기는 이는 없었다.
그냥 일반인이 아니었으니까.
이번 일로 현 한국의 대통령은 머리가 몇 가닥이나 빠졌다는 우스갯소리도 나돌 정도였다.
극비에 부쳐진 사실이라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일을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해 그런 극비를 털어놓았으니 그 사후문제가 절대 가벼울 리가 없었다.
현아와 연희 자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기회가 생겼다는 양 에반젤린을 물어뜯던 이들을 하나하나 골라내 아작내버릴 계획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사일런스 게이트에 대해 단순 음모론이라는 말이 많았지만 유일하게 사일런스 게이트를 감지할 수 있는 코오나가 직접 그녀의 결백을 주장하는 입장을 SNS를 통해 내비쳤다.
그리고, 뒤이어 신성 그룹을 도와주고 있는 현 지구에 존재하는 신의 사도.
넬타리드의 사도인 발키리아 케인과 프레이아가 교단을 통해 에반젤린을 결백을 증명하면서 에반젤린이 범인이라는 여론은 마치 게눈 감추듯 쏙쏙 들어가 사라져버렸다.
물론, 숨는다고 숨어지겠느냐마는…….
[ㅋㅋㅋ 앞뒤 없이 범인이라고 몰아붙이던 새끼들 다 버로우 탔죠?]
[진짜 중립 기어 박길 잘했다. 티오니스 성자가 나서진 않았는데 진짜 이번 일로 신성 쪽에서 이 악문 것 같던데.]
[근데 신성이 이렇게까지 쥐잡듯이 잡을 이유가 있나? 왜 정부는 그걸 묵인함?]
[묵인해야지. 여기서 멈출 기회가 생겼는데. 티오니스 성자 나섰으면 일 더 커짐. 내가 볼 땐 x라 현명한 대처였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원색 비난 치던 놈들 옹호하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그래 암만 생각해도 이상하다니까. 그렇게 화를 내면서도 사과하라고만 하던 애가 사람을 죽인다는 게 말이 되나.]
에반젤린을 비난하던 일부의 이들이 쥐잡듯이 털리고 있던 시점.
그 본인인 에반젤린은 말없이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컴퓨터라는 건 보기만 해도 화가 나요.”
에반젤린의 말에 석유왕 자라 불리던 알하자드가 껄껄 웃어 보였다.
“그래. 그런 일을 겪었다면 슬픈 법이지. 에린이는 사람이 밉니?”
“…….”
그녀는 인간을 좋아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간이 미워질 것만 같았다.
이제와서 인터넷에서 그녀를 욕하는 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그동안 당한 상처가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모르겠어요.”
에반젤린의 대답에 알하자드가 부드럽게 웃었다.
친구의 딸이 안 좋은 일을 겪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온 것이 바로 그였다.
그의 경험상 이대로 에반젤린을 그냥 두면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엔 마냥 나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란다.”
“알아요. 아는데…….”
“그럼 아저씨랑 한번 새로운 걸 해보지 않겠니?”
“새로운 것이요?”
“그래. 마침 그림을 잘 그린다고 들었는데.”
“그냥…….”
“그림방송을 해보는 거야.”
갑자기?
의문 어린 표정을 짓는 에반젤린을 향해 알하자드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 방송. 아저씨가 매니저를 해주마.”
세상에 세계급 부자가 매니저를 해준다는 웃긴 제안에 에반젤린이 피식 웃어버렸다.
“왜요? 인터넷은 보기만 해도 화가 나는데.”
“널 욕한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았지만 반대로 나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라는 것도 직접 봤으면 하거든.”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번 겪어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당장은 시기상조일지라도. 언젠가 직접 세상을 편협한 시선이 아닌 올바른 시선으로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알하자드가 부드럽게 웃었다.
“한번 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때 그만두는 건 어떠니.”
그의 말에 에반젤린은 곰곰이 생각해보는 듯했다.
실제로 그녀가 그린 그림이 업로드된 사이트에선 이런 댓글이 달려있었다.
[와! 정말 잘 그리시네요! 그림 그리는 방식도 굉장히 특색있고.]
그 한마디 댓글에 담겨 전해지는 마음은 에반젤린의 닫히려는 마음의 문을 살며시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