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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093화 (1,136/1,559)

제1093화

촉수의 근원이 무엇이고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륀느에게 저 촉수 다발은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혐오스러운 무언가였다.

물론, 감정이 상당히 옅은 그녀인 만큼 그것을 얼굴에 드러내진 않지만 그렇다고 녀석의 감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빨리!”

좀 전까지는 접근도 못 하던 촉수들이 이제는 벽을 완전히 박살 내며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백 가닥의 촉수들이 동시에 쏟아짐에도 벨가는 양손에 어떤 힘을 끌어올려 모조리 생명력을 빨아들이고 대상을 풍화시켜버렸다.

근원을 처리하지 않는 한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는 촉수는 륀느에겐 상당히 강세를 보였지만 놀랍게도 벨가의 힘에는 맥을 추지 못했다.

마법이 녀석에게 잘 먹히지 않는 것처럼 그들이 촉수의 끝으로 쏘아내는 광선은 벨가에게 닿기도 전에 흩어져 버렸고, 벨가의 힘은 촉수들을 보이지 않는 뿌리까지 풍화시켜버렸다.

물론, 벨가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힘을 휘두르진 않았다.

“욱…….”

구토증세를 보이며 비틀거린 벨가의 입에서 혼령 같은 것이 하나 빠져나와 사라진다.

“또 하나 사라졌구나.”

벨가는 다른 정신체와는 조금 다른 케이스였다.

“언제 되는데!”

“출력 충전 중. 대상의 견고함을 분석. 단번에 절삭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

담담하게 대답하며 륀느가 천칭을 녹여낸 창을 한차례 불태웠다.

일리나나 데이비가 있다면 일이 편해질 테지만 이곳에선 데이비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결국, 륀느의 힘으로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우웅…… 웅!!

본래의 힘이라면 문제가 없었을 천칭의 창도 지금은 힘을 다 소모한 탓에 제대로 힘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힘을 소모시키는 세피로스 화를 풀기위해 그 힘을 강제로 흩어버리면서 충전해둔 힘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평소에 조금 더 꼼꼼하게 힘을 충전해두었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일이기에 륀느가 누구에게 불평할 순 없었다.

최근 미식에 빠져 공작가 저택에서 탱자탱자 놀아댄 건 다름 아닌 그녀였으니까.

“출력률 78퍼센트. 가용 가능한 화력 범위조절. 대상 목표 고정.”

짧게 읊은 륀느의 손에 그녀보다 거대한 창이 마치 실타래 같은 화염을 일렁거렸다.

동시에 륀느의 눈동자가 푸르게 일렁거리는 안광을 흘렸다.

“물러날 것을 강력하게 추천!”

지잉!!

쾅!! 쾅!

무언가 느낀 듯 촉수들이 더더욱 벽을 부수며 벨가를 무시하고 륀느를 향해 파고든다.

다급히 손을 뻗어 그것을 막아보려 하지만 벨가의 힘으로도 그 많은 것들을 모두 처리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렇게 촉수 중 일부가 끝까지 살아남아 륀느에게 접근해 그녀를 휘감으려던 그 순간.

창을 당긴 채 자세를 잡고 있던 륀느의 입에서 기계적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처단 허가.]

[genesis(기원)]

화아아악!! 등허리에 돋아난 작은 그녀의 날개가 빛을 내뿜으며 한순간 6익으로 변했고, 그와 동시에 륀느의 머리카락이 한차례 크게 흩날렸다.

쩌엉!!!

동시에 그녀의 창날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입자들이 모여들었고, 빛으로 된 칼날이 되어 단단한 중아 시험관을 베어버렸다.

서걱!!

스산한 소리와 함께 세상이 비스듬히 잘려 흘러내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벨가는 이내 어떤 공격으로도 흠집 하나 나지 않던 시험관이 비스듬히 잘려 내려가는 것을 보고 황급히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시험관 속에서 빠져나오는 용액들을 무시한 채 그 안에 담긴 영혼석을 낚아챘다.

쿠웅!!!

그와 동시에 대지가 크게 흔들리며 상당한 지진이 일었다.

빛을 내뿜던 튜나의 영혼석에 기이한 검은 빛들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벨가는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영혼석을 바라보았다.

곤히 잠이라도 자듯 서서히 빛이 옅어지는 영혼석이 옅게 공명하며 흐릿하게 누군가의 형체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튜나였다.

[여긴…….]

막 잠에서 깨어난 것 같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이내 모든 기억이 떠올랐는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아악! 대체 내가 무슨 짓을?!]

그녀는 기억이 없던 게 아니었다. 칼에 찔린 직후부터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윽고 튜나의 시선이 벨가에게 향한다. 그리고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흠칫 놀랐다.

[넌…….]

“안녕.”

담담하게 인사하는 벨가를 두려운 눈으로 보던 튜나가 주먹을 꼭 말아쥐었다.

[네가 누군지 들었어.]

“…….”

[네가 평야를 엉망으로 만든 존재고, 내 적이라는 것을.]

영체 상태로 그녀는 지친 듯 말했다.

[그런데…… 왜 날 구한 거야?]

그녀의 물음에 벨가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하지만 곧 얼마 가지 않아 대답했다.

“나도 몰라.”

[뭐?]

“그냥. 네가 죽는 걸 바라지 않았을 뿐이야.”

콰아앙!!

대지가 박살 나며 시설 전체가 매몰되듯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에 급히 륀느가 날아올라 벨가의 뒷덜미를 낚아채고 탈출하려 했다. 륀느에게 내려진 명령은 벨가를 제압해오는 것. 그를 놓치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될 일이었다.

“감히!! 감히 내 작품을 부수고 어딜 도망가!!”

이윽고 완전히 대지가 박살 나며 그 안에서 섬뜩한 노성이 터져 나왔고, 엄청난 수의 촉수들이 일제히 벨가와 륀느를 낚아챘다.

콰아앙!!

대지를 부수고 나온 것은 수백 수천의 이빨이 달린 거대한 입이었다.

그리고. 그 입속에서 상반신만 인간의 형태를 지닌 작은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넌…….”

“이 빌어먹을 쥐새끼들이!!”

괴물은 격성을 터뜨리며 사지를 잡아 찢을 것처럼 화를 냈다.

“인간을 증오하는 괴물이 이제와서 인간을 돕는다니 웃기지도 않구나!”

괴물은 벨가에 대해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날 알아?”

“바르고 후작과 손을 잡은 내가 네놈을 모를 것 같았나? 목적을 위해서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 놈들! 그게 너희 정신체 아니었나?!”

그 말에 륀느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특히 네놈은 더 심했지.”

벨가를 향해 독설을 내뿜은 괴물은 촉수를 이용해 벨가를 자신의 앞까지 당긴 뒤 벨가가 쥐고 있던 영혼석을 노려보았다.

반대로 튜나는 괴물을 보자마자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호오. 날 기억하는구나.”

[어…… 어떻게 잊어. 당신이 나를 시험관 안에 가두고 끔찍한 짓을 했잖아!]

튜나는 죽은 직후에 영혼이 궤도에 올라가지 않고 이곳에 붙잡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곳에서 끔찍한 실험을 당했고, 그 결과 무언가를 조종하는 핵침 정신체가 되어있었다.

[도나…… 도나는 대체 왜…….]

“멍청하긴. 그년이 네 최대의 스파이라는 걸 몰랐구나.”

[…….]

칼에 찔렸을 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튜나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색이었다.

“뭘 믿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간단하게 말해주자면 도나 그년은 처음부터 바탄의 특수부대 소속이었을 뿐이야. 물론, 임무 때문에 네년의 곁에 있었지만.”

괴물의 말에 튜나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가만히 있던 벨가가 그녀의 영혼을 제 뒤로 숨겼다.

“그녀에게 해를 가하지 마.”

그의 말에 괴물이 인상을 찡그렸다.

“목표를 위해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온 네가 할 말인가?”

“적어도 누군가를 죽이진 않았어.”

“아니! 네가 한 짓으로 누군가는 죽는 것에 가까운 고통을 받았겠지.”

그 말은 쐐기가 되어 벨가의 심장을 사정없이 후벼팠다.

“아하하하! 너와 나는 똑같은 괴물이야! 그런 주제에 이제와서 아닌 척하는 건 웃기지도 않네!”

괴물이 눈을 번뜩였다.

“나와 다시 손을 잡자. 그런 인간 따위 버려. 네가, 아니지. 네 안에 있는 수많은 정신체들이 바라는 염원을 내가 도와주지.”

괴물은 그를 회유하듯 말했다. 반대로 륀느는 움직이지 못하게 더욱더 강하게 포박해 나갔다.

“영혼석을 넘겨! 그녀의 영혼은 완벽한 적합성을 지니고 있다! 그녀의 영혼만 완전히 먹어치우면 신에 필적하는 힘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 단언.”

그때였다.

가만히 있던 륀느가 찬물을 끼얹듯 말했다.

“뒤틀린 영혼은 오로지 처단대상.”

“닥쳐라!”

콰앙!!

륀느를 포박한 채 그녀를 한 차례 벽면에 처박아버린 괴물은 피식 웃어 보였다.

“그래. 네가 있었지. 데이비 올 라운을 믿고 있나? 미안하지만 그는 절대로 이곳을 못 찾아. 널 도와줄 이는 하나도 없다.”

파괴된 벽 안에서 륀느가 침묵하자 괴물이 말했다.

“영혼석을 이리 넘겨 벨가. 비록 완전히 완성된 건 아니지만 그 영혼석을 내가 먹기만 하면 된다! 대륙에서 나를 함부로 할 수 있는 자는 단 하나도 없어지게 될 테지! 그러면 네가 바라는 걸 내가 이뤄줄 수 있다!”

그 외침에 조용히 고민하던 벨가는 불안하게 자신을 보는 튜나의 영혼을 한번 바라본 뒤 영혼석을 꽉 쥐었다.

그리고 말했다.

“넌 내 배고픔을 해소해주지 못해.”

애초에 배고프지 않았다면 자신들이 굳이 생명체를 적대할 이유가 없었다.

자아를 가진 정신체이기에 하나 된 정신으로 조종할 순 없다. 그렇기에 세상의 규칙은 그들에게 배고픔이라는 끔찍한 상태를 부여함으로써 움직이게 만들었다.

“네가 그녀를 계속해서 보호할 수 있을 거 같나? 네 포만감은 일시적일 뿐이야. 다시 널 끔찍한 괴로움에 몰아넣겠지! 그때 가서도 저년의 혼을 보호할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벨가가 놀란 듯 침묵했다. 확신할 수 없었기에 부정하지도 못했다.

“거봐. 넌 결국 괴물이야.”

그 한마디와 함께 촉수가 벨가의 사지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내 일을 방해한 널 용서할 수 없다. 이대로 찢어 죽여주지.”

[안돼!!]

튜나의 혼이 다급하게 소리 질렀지만 이미 괴물은 벨가의 사지를 잡아 찢기 시작했다.

[너…… 힘 있잖아! 왜 힘을 쓰지 않는 거야?!]

튜나의 혼은 벨가에게 소리치듯 물었다. 왜 살려고 하지 않느냐고.

이에 벨가는 멍하니 튜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튜나의 영혼석을 륀느가 처박힌 벽면으로 던져버렸다.

[무슨 짓을?!]

“널 헤칠지도 모른다잖아.”

[뭐?]

“이상하게…… 널 죽이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아.”

마치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듯한 벨가의 행동에 튜나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체 내가 뭔데?! 너랑 나랑 만난 건 고작 몇 분도 안 돼!]

그녀의 외침에 벨가는 튜나를 보다 피식 웃어 보였다.

“그냥.”

그 한마디에 튜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도나에게 칼을 맞기 전 자신도 저러지 않았던가. 시간 따위보다. 더 깊은 무언가를 느낀 것은.

할 말을 잃어버린 튜나의 혼은 영혼석과 함께 륀느의 곁으로 떨어졌고 말없이 벽에 박힌 채 눈을 감고 있는 륀느를 향해 소리쳤다.

[이봐! 저 멍청한 자식 좀 도와줘! 일어나보라고!]

그럼에도 륀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데이비의 호위라더니 고작 이 정도 공격에 정신을 잃나 라며 소리를 쳐보아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힘 빼지마. 그건 더는 움직이지 않을 테니.”

[말도 안 돼…….]

“방금 내 힘은 드래곤도 단번에 절명시킬 파괴력을 담았으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물론 기록상에 있는 드래곤이라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괴물의 말에 튜나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벨가의 다리 하나가 입자화되듯 흩어지자 그녀는 끝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때였다.

눈을 감고 있던 륀느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서서히 뜨여지는 눈꺼풀 속 푸른 눈동자에 기이한 문자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조용히 읊조렸다.

“교신 완료. 귀를 틀어막는 것을 륀느가 권고.”

[뭐?]

갑작스런 륀느의 목소리와 함께.

쩌엉!!

붉은색의 궤적이 암반을 뚫고 한차례 파괴된 지하를 한차례 훑었다.

“어?”

갑작스런 궤적에 놀란 괴물과 벨가, 그리고 튜나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그 해답은 얼마 가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서걱!! 콰아아앙!!!

섬뜩한 소리와 함께 수백 미터에 달하던 괴물의 몸이 수백 조각으로 잘려나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귀를 막고 있지 않던 이들은 반사적으로 그 굉음에 인상을 팍 찡그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였다.

“륀느. 제압 후 데려간다는 명령을 완수.”

조각나 부서지는 천장 속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낙하하듯 내려왔다.

그 붉은 눈동자를 본 모든 이는 그가 짓고 있는 느긋한 웃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금기도 아닌데 참 별 게 다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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