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39화
타다닥!! 타다다닥! 타다다다다닥!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두 개의 원이 경쾌할 정도로 타자에 맞아가며 그녀의 좋은 기분을 대변하듯 빠르게 팡팡 터져나갔다.
[어우야, 눈이 어지럽다 진짜…….]
[진짜 보는 거로 만족해야지 이런 건…….]
[아니 첨엔 뭐 이런 거 하나 했는데 하는 거 보다 보니까 벌써 30분이 훌쩍 넘었네.]
평소에 하지 않던 콘텐츠인 덕에 사람이 조금 떨어져 나간 게 보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추가 유입된 사람이 없는건 아니었다.
“헤헤…….”
그랬다. 현재 에반젤린은 굉장히 기분이 좋아져 있는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묘하게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절제에게 속 시원하게 복수를 했으니 말이다.
물론, 그 과정이 어째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지는 사실 그녀로썬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몇몇 사례가 이렇게 하면 뭐가 됐건 먹힌다는 걸 그녀에게 알려준 것이다.
덕분에 스트리머 절제의 입장에선 기가 막힌 상황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아니 공주님 우리 말 좀 해요 진짜! 나 이러다가 쇠고랑 찬다고! 일단 채팅으로 이야기하기 힘드니까 여기 주소 받아요!]
비명과도 같은 절제의 말에 마지막 비트를 두드린 에린이 짧게 숨을 내뱉었다.
“후우…… 정말 재밌게 즐겼네요.”
[아니. 근데 이건 어떻게 이렇게 잘하는 거임?]
[다른 게임 전에 할 땐 개 못하더만.]
[리얼, 중간에 손 캠 안 켰으면 무슨 대리인 줄 알았겠네.]
아무리 잘해도 같은 것을 계속하면 질린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개념조차 애매하던 에린이지만 상황이 그녀를 이리저리 몰았다.
“우선 절제 님하고 잠깐만 이야기해볼게요.”
[???뭐임 진짜 커넥션 깊게 있었음??]
[안돼. 우리 꼬맹이가 검게 물든다!!]
[쳐내! 절제 쉑 쳐내!]
[야. 니들 아이디 기억해놨다. 특히 알감자 너 인마!!]
기다렸다는 듯 절제의 채팅이 올라오자 순식간에 물음표가 올라온다.
[???방송하는 놈이 여긴 왜 있음?]
[어? 사, 사람 잘못 보셨네요!]
당황하는 절제의 몇몇 골수 시청자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에반젤린이 키득키득 웃어 보였다.
[아 웃는 거 진짜 치유된다.]
[보통 괴롭히는 게 재밌는데 듣기만 해도 아빠 미소 실화냐.]
대체 이 사람들은 왜 이러는 걸까.
에반젤린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뭘 해명할까요?”
[아니, 그 카톡, 구라라고 말 좀 해줘요. 지금 일치단결해서 로리콘이라고 그러잖아.]
“으음…… 그런데 절제 아저씨가 그린 그림 보면 어린애도 있던데…….”
[악!!!]
비명이 전해져왔다. 물론 수위가 나쁜 그림들은 아니었다. 하나같이 예쁘고 귀엽거나 웃긴 그림이었으니까 하지만 놀릴 생각만 가득한 에반젤린이나 시청자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즐겁다. 아빠에게 가서 막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어느새 자신은 방송에 꽤 진심이 되어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그냥…… 캠 켤까?’
어차피 들키지 않았던가. 문득 속에서 그런 충동도 일었다.
캠을 쓰는 것도 좋고 쓰지 않는 것도 자유라지만 어째서인지 자신이 일정 선을 그어놓는 느낌이 들어 마냥 달갑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아니 선생님. 켤 수 있으면 당장 켜주셔야죠.]
[가즈아!!]
“뭐……뭐에요?!”
[아니. 캠 켤까 고민하지 않음?]
이 귀신같은 인간들! 비명을 지르며 그녀가 흠칫 놀랐다.
“아니 그걸 여러분이 어떻게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그녀의 외침에 ㅋㅋ 단어가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 댕청하넼ㅋㅋ]
[자기가 한 말도 기억 못 하죠?]
그들의 웃음에 에반젤린이 흠칫 놀랐다. 동시에 누군가의 영상 도네가 이어졌다.
띠링!!
-금우궁 님께서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아, 그냥 캠 켤까.]
영상에는 에반젤린 그녀의 방송장면이 담겨있었다. 속으로 생각한다고 중얼거린 것이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나간 듯 보였다.
“아…… 아니에요! 그냥 잠깐! 잠깐 생각해본 거에요!”
[그래. 우리는 얼굴도 보여줄 가치도 없는 엔조이일 뿐이었지…….]
“아니라니까요?!”
당황한 그녀가 조력자를 찾아 눈동자를 빠르게 굴린다.
“아! 절제 님! 절제 님!!”
비명을 지르며 그녀가 소리쳤다.
“도와줘요! 절제 님!”
[???]
채팅이 올라온다. 그래도 자신을 많이 도와주는 착한 아저씨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건만.
[내가 왜요?]
“아, 아니 그러지 말고! 도, 도와줘요. 아저씨!!”
[어? 아저씨? 오빠가 아니고?]
그 외침에 에반젤린의 머리가 띵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
그렇다면.
“오…… 오빠야. 제발.”
매번 현아가 데이비를 향해 하던 대화를 기억해낸 그녀가 어렵사리 말했다.
동시에 그녀의 한마디가 굉장한 파급력을 가져오기 시작한다.
[오우…… 한 번만 더.]
[절제쉑! 신났네 ㅋㅋㅋㅋ]
[미친 이걸 오빠야 소리를 듣는다고?]
[엎어! 밥상 엎어!!]
비명과도 같은 채팅 틈 사이에서 절제의 채팅이 깔끔하게 올라왔다. 에반젤린이 잘 몰랐던 점은 절제가 생긴 것과 다르게 굉장히 또라이 기질이 있다는 점이었다.
[자, 이제 누가 위지?]
기대는 배신당한다.
“아, 아저씨 미워요!!”
삐릭!
-절제 님이 강퇴당하셨습니다.
결국, 울분이 터져버린 에반젤린이 씩씩거리며 그를 강퇴해버렸다.
그리고는 그림판을 열고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격분한 캐릭터가 화를 억누르는 그림이 순식간에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림으로 화를 푸는 그런 행동이 퍽 귀여운지 채팅창이 빠르게 갱신되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진짜 그림 방송 맞긴 하네.]
[화나서 대충 휘갈기는데 퀄리티 진짜 실화냐.]
띠링!!
그때였다.
한 도네가 모든 시청자들의 어그로를 끌기 시작했다.
-인마궁 님이 1,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매번 방송하면 지겨울 수 있으니 콘텐츠 추가 ㄱㄱ 룰렛 걸고 어떤 방식 그림을 그릴지 정하고 그리는 게 어떰.
[전부터 느낀 건데 저 인간 대체 얼마나 큰손인겨.]
[뭐만 하면 심마니고 크면 백 단위네…….]
[아니 근데 제안은 좋은데?]
“아. 빠드득, 이, 인마궁 님 정말 감사드려요…… 으드득.”
[공주님 이 부러진다 ㅋㅋㅋ]
“공주라 하지 마세요! 공주 아니라고!”
[아, 왕족의 딸이면 리얼 공주자너!]
[아 그래 공녀님이라 불러줄까? 내가 볼 땐 똑같은데.]
공녀라는 단어야 늘 듣던 호칭이긴 하지만 묘하게 지구의 사람들에게 듣기엔 부끄러운 호칭이었다.
틈만 나면 놀리려 드는 이들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고는 있지만, 에반젤린의 입장에서도 마냥 나쁘진 않았다.
“그런데 제안 자체는 좋아 보여요. 어떤 그림, 누구 그림. 뭐 랜덤으로 넣고 조금 심심하니까. 다른 것도 걸게요. 그래도 무분별하게 랜덤 룰렛 돌리긴 애매하니까…… 제한은 걸어야 하는데…….”
[금액 제한 걸면 되지 뭘 걱정함.]
“아니. 이런 거로 돈을 받아요?!”
그녀의 외침에 시청자들은 빠르게 납득했다. 그녀는 처음 돈을 헤프게 쓴다는 이유로 시청자들의 후원까지 틀어막지 않았던가.
[그런데 방장. 시청자가 하도 많아서 돈 걸어도 엄청 쌓일 텐데.]
“음…….”
고민에 빠진 에반젤린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이건 폐기하는 거로…….”
띠링!
사자자리 님께서 1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룰렛은 다른 거로 채우고 그림은 투표로 ㄱㄱ 설마 한번 한다고 해놓고 빼진 않겠지.
아드득.
“사, 사자자리 님 감. 사. 합니다.”
빠드득.
[어디 이 부러지는 소리 안 나나?]
[룰렛 조쿠요.]
결국, 놀아날대로 놀아난 에반젤린은 처음 하려 했던 대로 룰렛을 만들어내는 데엔 성공했다.
애초에 돈에 목적이 없는 에반젤린이었기에 굳이 할 이유는 없는 콘텐츠였지만 시청자의 성화는 생각보다 강렬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룰렛을 보며 에반젤린이 울먹거렸다.
“진짜 나쁜 사람들…….”
그녀가 결국 완성해낸 룰렛의 한켠에는 아주 늦은 확률로 [0.003% 캠방송 시작하기]라는 항목이 결국 추가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룰렛을 개방하기가 무섭게 고작 10분 만에 천여 개의 룰렛 시도가 쌓이는 기염을 토해냈다.
[외쳐! 캠방! 가즈아! 캠방!]
강퇴당한 절제가 언제 다시 들어왔는지 시청자들과 한뜻으로 외치고 있는 꼴이 보였다.
단순 쳐낸 것뿐이고 벤이 아니었기에 재입장에 큰 제한 따윈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최소 시간제한은 있을 터인데.
“아저씨?! 언제 들어온 거예요?!”
[공주님. 몰랐나 본데 나 이 방송 개국공신이죠? ㅋㅋ]
“아니 방송 안 해요?!”
[응, 니가 불 질러놓아서 빡종했지롱.]
“아저씨, 내가 잘못했어요. 제발.”
[잘못했어?]
절제의 물음에 에반젤린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뭔가 불합리하다. 그래서 그에게 자비를 구걸했건만.
[웅 안돼.]
“아저씨!!”
[아, 이거 중독되네ㅋㅋ]
[아니, 타 스트리머 괴롭히지 말라고 싸이코야 ㅋㅋㅋㅋ]
기대는 처참하게 배신당할 뿐이었다.
[가즈아!!!]
[asmr가즈아!!]
[캠방 가즈아!]
“여기 도박장 아니에요!”
비명을 지며 그녀가 무심하게 돌아가는 룰렛을 노려보았다.
그래 확률이 0.00대 단위면 걸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래요, 뭐 저 확률이면 절대 안 걸리겠지.”
하지만. 그녀는 인지하지 못했다. 확률이 0이 아니라는 말인즉슨.
오늘의 첫 번째 룰렛! 띠링!
빰빠람!!
[캠 방송 시작하기]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풍악!!]
[풍악을 울려라!!]
[응, 한 번 만에 됐죠?]
[이건 신이 점지했다.]
[근데 신이 진짜 존재하잖아. 리얼 주작 아님?]
[킹능성있네.]
[오늘부터 넬타리드교 착실하게 믿겠습니다.]
[넬타리드 님께서 말씀하셨다. 캠이 있으라.]
“넬타리드!!!”
격분한 에반젤린의 외침에 채팅창이 키득거린다.
격노에 가득 찬 그녀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이미 시청자 대부분은 그녀의 정체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모른 척하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어? 지금 신성모독…….]
[어허 큰일 나요. 공주님.]
“신성모독 아니에요!!”
아빠한테 다 이를 거야!
속으로 그렇게 씹어뱉는 그녀는 아직 사태의 전말을 몰랐다.
그보다 눈에 띄는 건 [절제]였다.
방송을 끄고 쉴 생각은 안 하고 남의 방송에 와서 인간들을 선동하는 [절제]를 어떻게 걷어차 줘야 잘했다는 생각이 들까 그런 생각이 드는 에반젤린이었다.
생긴 건 멀쩡하게 잘생긴 놈이 왜 자기 같은 약소 스트리머를 괴롭히는 걸까.
물론, 그녀는 인지하지 못했다. 고작 며칠 된 스트리머가 시청자 수천 명을 가볍게 데리고 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이다.
그것은 그녀가 티오니스 성자의 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인기를 끌게 하기엔 충분했다.
각성자가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현재. 티오니스 성자가 가지는 존재감은 에반젤린의 상상 이상이었다.
물론, 그런 점도 존재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을 대상으로 호감을 끌어내고 있으며 그녀의 그림실력에 매료되어 들어온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곧 자신의 얼굴을 비출 캠을 노려보았다.
검은 렌즈에 뿔이 돋아나 있는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캠방 송을 시작하면 그때부턴 자신이 에반젤린 올 라운이 아니라고 말하는 게 아무런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어?! 실수!”
그 때문일까.
에반젤린은 반사적으로 캠을 후려쳐 날려 부숴버렸다.
“캐, 캠이 부서졌어요!”
씨알도 안 먹힐 수작을 부려보는 그녀였다.
[동작 그만, 지금 돈 받고 튀는 건가?]
[어어? 방장 선남네?]
“자…… 잠깐만요!”
당황한 그녀가 그림에 삑사리를 낸다.
따로 수정하지 않으면 누가 봐도 망했다고 볼 수 있는 그림이지만 에반젤린은 마치 무아지경에 빠진 것처럼 그림을 수정하지 않고 살짝 구도를 바꾸는 것으로 오히려 더 엄청난 그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미친. 그걸 수정안하고 구도 바꿔서 완성시킨다고?]
[아빠는 무력으로 세계 제일이고, 딸은 그림으로 그 자리 노리네.]
채팅창을 보며 잠시 고민하던 찰나. 에반젤린은 한숨을 황급히 소리쳤다.
“작전 타임!”
[인정한다.]
깔끔한 답변에 숨을 고른 에반젤린이 울상을 지었다.
마냥 내키진 않았다. 아니 조금 겁이 났다. 지금 그녀에게 호의를 품어주는 이들이 진짜 정체를 완전히 드러냈을 때도 똑같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주변에서 괜찮다 하는 것과 본인이 느끼는 건 달랐다.
하물며 그게 수천 명이라면 더더욱.
‘아빠는 이런 중압감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긴 거구나…….’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에반젤린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빠에게 매번 밉다 소리치고 술 냄새난다고 싫어하고.
매번 자신을 보면 귀여워해 주며 자신이 표정을 찌푸리면 울상을 짓던 아빠의 등이 왜 이렇게 커 보이는 것일까.
어리광에 불과했다. 정작 데이비가 그녀를 위해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래. 언제까지고 숨을 수는 없어.’
그렇게 말한 그녀는 심호흡한 뒤 말했다.
“정리됐어요.”
[그럼 어서 캠 부순 거 해명해.]
[해명해.]
“두번째 작전타임!!!”
채팅을 보자마자 에반젤린의 눈이 핑핑 돌기 시작했다.
[인정한다.]
아니, 그렇게 인정하지 말라고.
에반젤린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 * *
“그러니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에반젤린은 혼혈이기 때문에 육신과 힘에 괴리가 있다는 거야.”
나는 일리나에게 깔려 대자로 뻗은 채 어렵사리 말했다.
움직여 보려고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페르세르크의 표정이 스산하게 변하니 일단은 가만히 있는 게 다행이리라.
단순히 힘이라면 비교 대상이 아니지만 무슨 일이 생겨도 이 세 사람에게만큼은 거친 수단을 쓸 생각이 없었다.
방법이 마냥 옳진 않지만 나로서도 이게 최선이라 생각했기에 내린 결단이었다.
다 들켰으면 어쩔 수 없다.
초단이가 설마 내게 바로 오지 않고 그녀들에게 다 고자질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성격이라면 분명 내게 바로 달려와야 정상인데.
초단이의 고자질에 에이리아마저 내게 이번만큼은 너무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꽂힌다.
스산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계획하고 있던 것을 털어놓았다.
“사일런스 게이트의 암흑신관은 정신체 에너지거든. 에반젤린과 굉장히 동화율이 높아. 다만 본래 사일런스 게이트의 암흑신관은 몬스터가 아닌 이로운 하나의 시스템이니까.”
본래라면 에반젤린의 성장 교두보로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 이게 웬일? 놈이 갑자기 미쳐서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 넬타리드로부터 이 변수성이 가득한 몬스터를 처리할 명분도 생겼겠다 이 기회에 그놈을 이용하여 에반젤린의 힘을 좀 더 안정적으로 성장시킨다.
문제는 지금 암흑신관의 힘이 강해 봐야 2차 성장까지 마친 에반젤린에게 비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고작 5살도 안 된 아이가 품고 있는 힘이 성체급 드래곤 이상이라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지만 그녀의 태생을 생각하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놈과 충돌하면 반드시 에반젤린은 자기 힘을 써야 해. 거기서 스스로 제어하게 만들어야지.”
“자칫하면 그 아이가 다칠 수도 있어”
일리나가 내 가슴팍을 찰싹 두드렸다.
“나 못 믿어?”
“응, 이제 못 믿어.”
“그럼 다음부터는 믿어.”
“굳이 지금 해야 해? 아직 어린애를…….”
“나도 방송 보고 있어. 그냥 둘 상황이 아니야. 그리고 넬타리드 신과 이미 접촉해서 준비해놨으니 걱정하지 마.”
표정을 굳힌다. 그리고는 미리 파악해둔 사실을 폭탄처럼 터뜨렸다.
“지금은 단순히 호감을 사면 더 호감을 증폭시키는 정도야. 문제 될 건 없는데 말이야.”
정신계 고대룡인 에반젤린이 자신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폭주시켜버리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남의 정신까지 간섭해서 생판 남이 에반젤린에게 극도의 호감을 품게 될 수도 있게 되면. 그땐 어떻게 할래.”
방송이야 흥하겠지. 에반젤린도 자기가 좋아하는 방송 마음껏 많은 사람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가짜 감정이고 호감이라는걸 알게 된다면.
그 물음에 일리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니 일이 커지기 전에 그 힘을 빨리 제어하게 만들어야 한다.
마족과의 화합은 밑밥을 깔아놓으면 알아서 성장하겠지만 이 일만큼은 직접 나서야 했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았다.
피는 안 섞였어도, 키운 정은 혈육의 정 이상으로 소중한 무언가였다.
* * *
“자. 그럼 그림 방송은 여기까지. 좀 쉬면서 다른 거 했다가 다시 할까요?”
[그래서 캠은?]
“아니! 며칠만 기다려달라니까요? 며칠 못 기다려줘요? 아까 다 이야기했잖아!”
[응 못 기다려. 원하면 캠 하나 보내줄게.]
“절제 님! 아웃!!”
절제 님이 5분간 채팅 금지당하셨습니다.
“아니 저 아저씨는 나 괴롭히는데 재미 들린 게 분명해!”
씩씩거리는 그녀의 외침에 채팅창에 ㅋ 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20대 절제 오열 ㅋㅋㅋㅋ]
[20대에 아저씨 행 ㅋㅋㅋ]
[절제 쉑 진짜.]
[아니 근데 절제가 처음 이 방송 개국공신인 거 생각하면 찐 팬 아님?]
[그러네. 여기 시청자 일부가 전부 절제 방송 시청자였자너.]
절제와 에반젤린의 방송시간이 상이한 경우가 많기에 시청자들은 두 방송을 번갈아 보는 거로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다.
“우선 며칠만 기다려봐요. 진짜 마음의 준비하고 켤 테니까…….”
-룰렛이 돌아갑니다~
띠링! 애교 당첨!
으득.
에반젤린의 이에서 좋지 않은 소리가 났다.
[이 갈리죠?]
[아드득 빠드득.]
“하, 하하…… 그래요. 뭐, 뭘 원하는데요?”
[치즈버거 ㄱㄱ]
[오우 쉑]
치즈버거? 의아함이 서린 그녀가 치즈버거 애교를 검색했다. 그리곤는 파랗게 질렸다.
“이, 이걸 하라고?”
당황한 그녀가 중얼거렸다.
[어? 안 해?]
[ㅋㅋㅋㅋ 오늘 룰렛 하나 잘못했다가 피박 제대로 썼죠?]
시청자들은 그런 그녀를 놀리는 데에 맛을 들린 듯 아주 신이 난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우우웅-
에반젤린의 스마트폰이 맹렬하게 울렸다. 연락을 걸어온 건 크리스마텐이었다.
-공주님. 미안한데 빨리 합류해 줄 수 있나? 대형사고가 터졌다. 어쩌다 보니 코오나도 고립됐어. 네 도움이 필요하다. 그걸 볼 수 있는 건 현재 공주님밖에 없어.
그 연락을 본 에반젤린의 표정이 굳었다.
[?방장 무함?]
[애교 안 해? 이래도 안 해? 어? 나 후원 더 넣는 수가 있어?]
후원 넣는 거로 스트리머를 혼내는 방송은 잘 보기 힘들지만 지금 이곳이 그러했다.
사정을 모르는 시청자들은 그녀를 다그칠 수밖에 없었다.
이제와서 숨겨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에반젤린은 숨을 짧게 들이켰다.
그리고는 말했다.
“미안해요. 방송 여기서 종료할게요. 나중에 다 할게요.”
[?????]
[갑자기 이걸 먹고 튄다고?]
[세상에 이걸?]
놀리는 그들의 채팅을 보면서도 그녀는 빠르게 겉옷을 걸치고 일어났다.
“사람이 고립됐어요. 내가 가야 해…… 나만 볼 수 있어 그거.”
[???]
“내가, 내가 구할 수 있어.”
그 한마디와 함께 방송이 빠르게 꺼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비난할 수 없었다.
애초에 정체를 완전히 드러내도 괜찮은지 걱정하는 에반젤린의 생각과 다르게 그녀의 정체를 모르는 이는 이 방송에 없었으니 말이다.
방송이 꺼지기까지 자동 10초 시스템이 가동하고 침묵으로 가득 찬 채팅창에 누군가의 글이 올라왔다.
[사람 구한다고 저렇게 다급하게 뛰어나가는 거 때문에 내가 에린 찐팬인 거임. 그리고, 내가 티오니스 성자 지지하는 이유고.]
[인정한다.]
그놈의 인정한다는 어디에서도 빠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