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49화
[????]
[뭐임? 뭐임?]
[뭔가,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
[설마 티오니스 성자 찐임?]
[미친ㅋㅋㅋㅋㅋ 아니겠지 설마 ㅋㅋㅋㅋ]
[이 와중에 본인 등판해버린다고?]
싸늘하다.
가슴속에 차가운 바람이 스치는 기분이 든다.
유리아는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느낌을 받았지만, 표정은 애써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지구 분들은 농담을 참 잘하시네요. 크흠, 어쨌든. 아가씨가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방송은 여기까지 하도록 할게요.”
[이렇게 간다고? ㅠㅠ]
[눈나. 눈나가 대신 방송해조…….]
[가지마…… ㅠ]
어허, 이러면 곤란하지.
유리아는 최대한 일이 커지기 전에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컴퓨터라곤 제대로 만져본 적도 없는 유리아에게 있어서 조작이 쉬울 리가 없었다.
“저, 그런데 이거 끄는 버튼이…….”
[개커엽 ㅋㅋㅋㅋㅋ]
[방송 끄는 법을 몰랔ㅋㅋㅋ]
[방송 종료 같은 거 없음. 한번 켜면 영구적으로 켜지는 거임 몰랐음?]
“거짓말하지 마세요. 저는 거짓말을 하는지 다 알 수 있답니다.”
애써 만든 미소에 금이 가려 한다.
시간이 없다는 건 그녀가 가장 잘 알았다.
그렇기에 더 사고가 터지기 전에 수습을 해야…….
[유리아 헬리샤나 님. 내가 당장 찾아가기 전에 해명해볼래요?]
띠링 소리와 함께 후원음이 울리며 단두대의 칼날이 크게 움찔거렸다.
조금만 어긋나면 거대한 칼날이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함에 유리아는 화면 아래로 숨긴 손을 파르르 떨다 꼭 쥐었다.
“어머나. 사생팬은 그리 달갑지 않은데에…… 주변 분들이 워낙에 아름다워서 그렇지 저도 인기가 없진 않나 봐요.”
호호 웃으면서도 그녀는 필사적으로 끄는 버튼을 찾았다.
그리고 아래쪽에 있는 버튼 하나를 찾은 뒤 눈을 반짝였다.
“아 찾았다.”
[야, 유리아 헬리샤나. 너 거기 딱 기다려라.]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 * *
스트리머 갤러리는 여러 가지 떡밥으로 하루하루 사건·사고가 터지는 곳이다.
당연히 수많은 스트리머들의 이야기가 오가는 만큼 어지간해선 사실 이야기가 하나로 통일되는 경우는 잘 없다.
하지만, 늦은 시각 스트리머 게시판에선 한 스트리머 방송에 대한 이야기로 장작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실시간 티오니스 성자 왈]
-아 딱 대. 너 잡으러 간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군가의 게시글과 함께 여러 장면이 캡처되고 클립이 녹화되어 업로드되었다.
열반 소스의 맛을 보다가 열매 향에 취해버린 탓에 헤픈 웃음을 흘리며 애교를 부리는 에반젤린부터 시작해서 엘프에 대한 인식을 외모를 제외하고 전부 한순간에 개박살 내버린 괴짜 엘프 유리아 헬리샤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갑작스레 난입한 티오니스 성자.
[ㅋㅋㅋㅋ이게 티오니스 식 상하 관계다ㅋㅋㅋㅋㅋ]
[X나 유쾌하네 저쪽 세계는 ㅋㅋㅋㅋ]
[일단 티오니스 대표라곤 하는데. 왕자 아님? 근데 무슨 옆집 이웃 보는 기분이냐 왜 ㅋㅋㅋ]
[사고 친 여동생 잡으러 오는 오빠같더만.]
[솔직히 뭔 상황인지는 모르겠는데. 호위단장 륀느하고, 그 엘프 아가씨가 티오니스에서 사고치고 지구로 몰래 튀었다가 그거 딱 걸린 거 아니냐.]
사람들이 흥미 있어 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었다.
티오니스 성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아는 한 대륙의 대표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가 해온 일들과 그의 위치를 생각하면 굉장히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이기도 했다.
과거 그가 방송을 했을 때도 그 점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두고두고 회자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어이없는 상황에. 누가 봐도 무게감이나 위압보다는 웃음부터 터져 나올 상황이었으니까.
개꿀잼 상황!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벌어진 시트콤 같은 이 사태에 시선을 모았다.
[일단 한 가지 확실한 건 티오니스 성자가 그 둘 잡으려고 지구 온다는 거임 ㅋㅋㅋㅋ 후일담 개 궁금하넼ㅋㅋ]
[근데 단디 빡친 거 같던데 잡히면 어떻게 됨?]
[보면 모름? 엘프잖아.]
[저 새끼는 앞뒤 안 재고 훅 들어오네.]
영양가가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 다수 존재하지만, 결론적으로 재미에 굶주린 인간들은 이 일에 대한 후일담에 대해 들을 수 없을지 빠르게 고민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지만 사실 실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난 왕정체제 인간이라 솔직히 좀 선민사상 있고 딱딱한 인간일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똑같은가 봄]
[다 연기겠지. 설마 진짜로 저런 성격이겠음?]
[솔직히 내가 저 정도 힘 있으면 저렇게 산다 ㅋㅋ 진짜 X나 인생 재밌게 사네ㅋㅋㅋ]
[예전에 알프 온라인 있을 때 티오니스 가봤던 사람임. 개 신기한 게 우리가 흔히 하는 왕정 체제 세계랑 비슷한데. 요상하게 인권이 굉장히 잘 보존되고 있음.]
[어허, 사상 멈춰.]
[아니, 사상이고 뭐고, 일장일단이지 왜 급발진임.]
[아니, 다 됐고, 난 에반젤린 소스에 혀 담갔다가 그대로 취한 거처럼 행동하는 거 보고 그대로 구독 박았음 ㅋㅋㅋㅋ]
[무슨 열매 향이 에반젤린한테 안 맞는다더라]
[진짜 애교 부리는 거 개 귀염 터지더만]
[어지간해선 애교부리면 주먹부터 나가는데. 찐텐으로 애교부리니까 내가 아는 애교랑 다르구나 싶었다 ㄹㅇ.]
[아, 에반젤린 나인투 댄스 시켰어야 했는데 ㅋㅋㄹㅃㅃ]
[뒤지고 싶으면 그때 시켰겠지 ㅋㅋㅋㅋㅋㅋ]
[진짜 티오니스 성자 찐텐으로 너 거기 딱 기다려라 하는데 그 엘프 시퍼렇게 질려서 방송 끄는 거 보고 진짜 개 웃었네 ㅋㅋ]
그들에겐 즐겁고 재미난 상황이지만…….
쾅!!
유리아 헬리샤나에겐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륀느 양!!”
다급한 유리아의 외침에 치즈 피자의 치즈를 주욱 늘리던 륀느가 무덤덤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리아의 경박함을 륀느가 낮게 평가.”
“경박함이고 뭐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랍니다!”
유리아가 륀느의 작은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고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륀느 양! 세피로스화 해서 차원문을 찢을 수 있나요?!”
“불가. 차원문을 열 수 있는 존재는 데이비 님과 일리나 님 단둘밖에 없다고 명시해.”
“이런…… 그렇다면 당장 기척을 완전히 차단하는 시스템은요?!”
그녀의 외침에 륀느는 손에 들고 있던 피자의 끝부분 사이에 둥글게 들어가 있는 치즈를 슈욱 빨아먹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상대에 따라 변동 가능성 존재 여부. 현 상황에 대한 자세한 해명을 요청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당장 움직여야 해요!”
그녀의 외침에 륀느의 눈이 순간 꿈틀거렸다.
“현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 따라서 더 자세한 설명을 요청. 또한, 경박한 행동을…….”
“은공이 알아차리셨다고요! 우리가 미니임프의 두개골을 만든걸!”
그녀의 외침에 륀느가 잠시 멈췄다.
그러더니 고개를 천천히 고장 난 문짝처럼 꺾고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뤼, 륀느 양!?”
어어어어 하는 기이한 소리와 함께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 륀느가 피자를 휙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기름기 묻은 손을 유리아의 옷에 스윽 닦아버리고는 그녀의 양 뺨을 콱! 하고 양 손바닥으로 잡았다.
“지…… 진정할 것을 요청. 빠른 도주 경로 확보 및 기도비닉을 이용한 은 엄폐. 데, 데, 데…… 데데데데…….”
말을 잇지 못하고 고장 나버린 것처럼 구는 륀느의 모습에 유리아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그녀의 몸을 꽉 잡으며 소리쳤다.
“진정하세요! 일단 숨 들이쉬세요!”
그러자 륀느가 작은 가슴을 살짝 부풀렸다가 다시 본래대로 되돌리며 심호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의 시선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
잠시간의 침묵이 무겁게 내리깔렸다.
그 끝에 유리아와 륀느가 동시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진짜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죠?!”
당황한 채 어쩔 줄 몰라서 허둥지둥하는 유리아와 륀느는 양손으로 머리를 붙잡은 채 고개를 숙이고 그 자리를 빙글빙글 빠르게 돌았다.
너무 당황스러운 사태가 벌어지자 더욱 패닉에 빠진 것이다.
평소에 어떤 일이 있어도 웃는 얼굴을 지우지 않고 개X 마이웨이를 달리는 유리아가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지른다.
또한, 평소에 표정변화가 절대 없다 라고 말할 정도로 무표정인 륀느의 눈꼬리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딩동…….
그때 그 둘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배달이요~”
이에 긴장하고 있던 두 사람은 곧 들려오는 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륀느의 빅데이터에 따르면 데이비 님이 출혈하기까지 약 27시간 정도 유예가 남았다고 판단.”
“그건…… 다행이군요.”
그렇게 말하며 현관으로 나가 배달 음식을 받아들고 들어온 그녀가 아쉬운 듯 개봉도 안 된 치킨을 바라보았다.
“아아, 내 꿀콤보 치킨이…….”
“시간이 있을 때 미리 도망, 그 후 모든 흔적을 지우고 데이비 님이 추적을 포기할 때까지 잠적 탈 것을 권유해.”
그렇게 말하며 륀느가 빠르게 계획을 세우려는 그 순간이었다.
“내가 포기한다고? 사람을 너무 쉽게 보네?”
창밖에서 들려온 소리에 유리아와 륀느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는 고장 난 문이 열리는 것처럼, 그리고 고장 난 톱니바퀴가 어렵게 돌아가는 것처럼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창문에는 데이비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꺄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벌떡 일어난 두 사람이 양팔을 들어 올린 채 미친 듯이 방안으로 도망쳤다.
쿵쿵쿵쿵!!
하지만 문을 닫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배달왔습니다~”
배달이 왔다는 신호. 하지만 구석에 처박힌 채 서로를 끌어안고 와들와들 떨던 유리아와 륀느는 절대로 반응하지 않았다.
“왜 배달 안 받아요. 내가 들어가요?”
방금전까지 창밖에 있던 인간이 언제 들어온 것인지.
데이비의 목소리가 지근거리에서 울려퍼지자 유리아가 핼쑥한 표정으로 천천히 문을 향해 다가갔다.
좀 전까지 미친 듯이 두드리던 소리가 멈춰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문을 부수고 들어오진 않겠지. 혹시나 하는 상황에 소리라도 듣고자 문에 귀를 천천히 가져다 대려던 그 순간이었다.
콰직!!!
갑작스런 파열음과 함께 새하얀 주먹이 문짝을 그대로 관통하며 유리아의 바로 눈앞을 지나갔다.
완전히 굳어버린 그녀를 모른 채 내질러진 손이 천천히 빠져나간다.
유리아가 뒷걸음질 치듯 슬금슬금 물러나지만, 곧 벌어지는 사태가 그녀들을 공포에 빠뜨렸다.
“여기 있었네?”
좀 전 팔 한쪽으로 박살 내버린 문의 구멍 너머로 데이비의 얼굴이 스르륵 드러났다.
번들거리는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던 데이비가 씨익 웃으며 구석에 몰린 채 와들와들 떨고 있던 두 사람에게 닿았다.
이후 데이비의 얼굴이 문 구멍 사이에서 사라지더니 천천히 그의 팔이 다시 들어와 잠긴 문을 천천히 열어젖혔다.
유일한 저항분기선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며 륀느와 유리아의 등골이 오싹해지기 시작했다.
“뤼…… 륀느 양!!”
천천히 문이 열리기 시작하자 유리아가 황급히 소리쳤고, 륀느의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웅얼거려짐과 동시에 허공에서 금빛의 창이 문에 꽂혔고, 마치 주변을 동결시키듯 잠시 멈춰버렸다.
그그극…… 콰창!!!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그대로 침입자의 팔이 파르르 떨리고 근육이 움직이는 듯싶더니 금빛의 창이 박살 나 버렸다.
치이잉!!!
이에 륀느가 황급히 유리아의 뒷덜미를 낚아챘고, 창문을 빠르게 열어젖힌 후 몸을 던졌다.
퍼어엉!!!
엄청난 속도로 도망치는 그녀를 뒤로한 채 문이 끼이이익,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하고 데이비 올 라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망? 선 넘네?”
창밖을 바라보며 데이비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창문을 바라보며 마치 총을 잡는 듯한 자세를 잡았다.
츠츳…… 츠츠츠츳!!!
동시에 시꺼먼 빛으로 된 석궁 같은 것이 생겨났다.
“도망 갈 수 있으면 가봐라.”
음산한 미소를 지어 보이던 데이비가 창문을 나서려 하자 그의 곁에서 어두운 피부를 지닌 아이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그만하시면 안 됩니까? 여긴 지구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행동하시다가 누군가 보기라도 하면…….”
“아이나.”
“예?”
“너도 같이 매달리고 싶지?”
“…….”
아이나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미식 연구회. 티아라와 너도 가입되어있잖아.”
대체 어떻게 그것을?
분명 두 사람이 미식연구회 소속인걸 아는 건 골다 장로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알고 있다는 것은 골다 장로가 이실직고해버렸다는 것일까.
아니, 그 영감이 그럴 리는 없을 거라 생각은 한다.
애초에 이번 추격은 엄연히 데이비의 뒤끝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유리아가 잡힌다면 최소 절벽에 반나절은 묶여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한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복잡한 심경을 애써 숨기는 아이나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지만, 손에 아주 약간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협조할래. 아니면…….”
데이비가 잠시 말을 끊자 아이나는 사랑하는 동생과 데이비를 저울에 놓았다.
“협조하지요.”
아무리 동생이 소중해도 아이나는 일단 목숨이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