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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150화 (1,150/1,559)

제 1150화

“데이비. 여기 있었구나?”

도망쳐버린 유리아와 륀느를 추적하려던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일리나였다.

“언니가 입덧을 심하게 해. 네가 좀 가봐야 할 거 같은데.”

“뭐?”

“언니가 입덧을 심하게 한다구.”

일리나의 진중한 표정에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잡아당긴 뒤 가볍게 입을 맞췄다.

“어…… 으…….”

당황한 일리나가 빨갛게 얼굴을 물들인 채 시선을 데구르르 굴렸다.

“어디서 구라야. 혼나고 싶어?”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안아 들자 일리나가 허둥지둥거렸다.

“아. 아니 거짓말 아니야! 진짜…….”

다시 한번 입을 맞춘다.

그러자 전과 다르게 시뻘게진 얼굴로 그녀가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잘못했어, 안 했어.”

“미안…….”

순식간에 격침당하는 그녀는 나름대로 억울함을 담아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안 거야?”

“페르가 입덧을 하기엔 시기가 안 맞잖아. 그걸 떠나서 페르의 몸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

일리나가 들으면 시샘할 말이지만 가장 먼저 마음에 품고 받아들인 페르세르크에 대해선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문제가 생겼으면 너보다 내가 먼저 알아챘겠지.”

“칫…….”

짧게 혀를 차는 그녀가 귀여워 괴롭혀주자 그녀의 얼굴이 빨개진다.

“그래서.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물어볼까?”

내 물음에 그녀가 대답했다.

“너 말이야. 요즘 에이리아나 나와 같이 데이트를 한 적이 있어?”

그 한마디에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몸을 숙였다.

“죄송합니다. 마님.”

“흐응~”

어지간해선 이런 불평을 하지 않는 그녀가 이런 말을 했다면 그건 그동안 꽤 심했다는 뜻이었다.

그럴 땐 입 다물고 사과하는 게 맞을 터.

그녀는 아주 건수가 잡혔다는 듯 혀로 입술을 축이며 야시시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데이비가 바로 쫓아오지 않는다.

실상은 일리나의 화를 풀어주느라 잠시 지체된 것이지만 그 한두 시간의 짧은 텀이라도 륀느와 유리아에겐 정말 큰 역할을 해주었다.

륀느와 유리아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데이비가 추적을 시작했다.

지금 그는 성격대로 뒤끝이 탄창에 꽉꽉 채워서 장전되어있다.

“지금 은공에게 잡히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아요. 못해도 며칠. 그 정도의 시간을 벌지 않으면…….”

“수긍. 매우 현명한 분석.”

“하지만 어디로 도망치죠? 당장 추적이 어렵도록 당신이 재밍을 한다지만…….”

오래 못가서 잡히는 건 물론이요. 데이비가 정말로 꼭지가 돌아버리면 강제로 세계의 법칙까지 간섭해 그녀들을 찾아내 버릴 것이다.

과거엔 적들을 추적할 때 단서를 찾았지 지금의 데이비는 꼭지가 돌아버리면 세계의 법칙에 간섭해 그대로 륀느를 특정해서 위치를 찍어버릴 것이다.

륀느는 데이비와 계약하여 그의 신력을 받아 힘을 끌어내고 있으니까.

불합리의 극치.

그게 현재 데이비 올 라운이었다.

륀느는 처음 데이비를 봤을 때의 데이터를 떠올렸다.

9서클 마법은커녕 7서클 이상의 마법인 하이 리버스 그래비티 한번에 내상까지 입었던 그가 이제는 세상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신격이 되었다.

륀느의 입장에선 그때의 데이비와 지금의 데이비는 확실히 달랐다.

그땐 틈이라도 있었지.

지금은 저게 정말 살아 숨 쉬는 인간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가 아닌가.

“륀느의 빅데이터로 추론한 결과. 국가에 숨는 것은 전혀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판단.”

“그렇다면요?”

“눈이 없는 곳으로 이동할 것을 륀느가 높게 평가.”

지구에 대해선 유리아보다는 륀느가 잘 알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유리아는 륀느의 결정에 전적으로 무게를 실어주었다.

“좋아요. 저는 당신만 믿을게요.”

“현재로서 이동 가능한 선택은 총 세 가지.”

륀느가 작고 흰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검지와 중지 약지였다.

이후 그녀는 약지를 접었다.

“첫째. 지구에 있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인도로 숨어 들어가 대규모 은폐장을 가동.”

데이비에게 며칠의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들키는 순간 도망칠 방법이 사라지겠죠.”

망망대해 위로 륀느가 열심히 날갯짓해본들, 작정하고 쫓아오는 데이비에게 지형이 무슨 상관일까.

“다른 방법은요?”

“퇴로가 있는 곳을 찾는 것.”

륀느가 두 번째 손가락을 접었다.

검지였다.

“그…… 손가락이 참…….”

중지만 세워진 륀느의 손을 보며 유리아가 난색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퇴로가 있는 곳…… 지구에 그런 곳이 있나요?”

사실 섬이건 지상이건 어디든 들키는 순간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처음에 반려했으나 인간들 틈에 숨는 방법. 륀느가 나무를 숲에 숨기는 책략을 높게 평가.”

“그렇네요. 아무리 은공이라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날뛰진 않으실 테니…… 하지만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군요.”

자칫 웃으면서 쫓아오는 악귀를 진짜 일그러진 악귀로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그 경우 잡히는 걸 떠나서 돌이킬 수 없게 되겠죠.”

“…….”

륀느도 그 사실을 아는지 시선을 피해버린다.

“사실상 처음과 다를 게 없네요. 아니, 오히려 더 하책이군요.”

지금의 데이비는 뒤끝이 폭발한 상태일 뿐 화를 내는 게 아니었다.

그의 뒤끝이 작렬하면 굉장히 피곤하고 곤혹스럽겠지만. 화를 내는 것과 같을 순 없다.

비록 맨몸으로 차원을 박살 내버리는 심연의 공주들도 갈아 마셔버린 데이비라 할지라도, 그는 이런 상황에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세 번째 퇴로.”

이윽고 륀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가운뎃손가락은…….

“항복 후 현 사태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고 자비를 바랄 것. 륀느가 이 계책을 낮게 평가.”

접지 않았다.

“셋 모두 엄청난 리스크가 있네요. 방법은 그뿐인가요?”

그 물음에 륀느는 고개를 저었다.

“추가 방법. 땅을 파고 숨는 방법.”

“첫째와 다를 게 없네요.”

“천칭을 녹여낸 창은 대지를 녹일 수 있다고 분석. 개미굴처럼 여러 갈래의 퇴로를 만드는 것.”

“또 있나요?”

“륀느가 없다고 단언해.”

땅이 안되면 하늘로 도망쳐야 하는데. 그것도 마냥 좋은 방법은 아니다.

“하나 있다.”

그때였다.

언제 나타난 건지 그들의 뒤로 잭, 아니 아이나가 잭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녀의 등장에 둘은 반색하며 그녀를 맞이했다.

“세상에. 이렇게 반가울 수가.”

“위험할 땐 도와야겠지.”

아이나는 잭의 모습 그대로 묵묵히 걸어 나간 뒤 조용히 말했다.

“우선 자리를 옮겨야 한다. 현재로서 인간들이 많은 곳은 최대한 피해야 하는 장소지.”

그 말에 륀느와 유리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겠죠. 은공을 정말로 화나게 하면 주인과 손님이 역전될 판이니.”

그러니 데이비가 적당히 화가 났을 때 시간을 끌어 그가 냉정하게 화를 풀 수 있게 만드는 게 최상책이다.

“지구에는 베헤모스와 인어가 있다. 그들은 이 지구에 존재하는 인적이 닿지 않은 자연적인 무인도를 제집 드나들 듯 돌아다닐 수 있지.”

“그들의 도움을 받아 섬에 숨어들자는 것인가요? 하지만 이동하는데에도 상당히 힘들고 도망칠 구석도…….”

“시간이 없다 움직여야 해.”

아이나의 설명에 유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내가 아는 정보를 말해주지.”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고, 이내 륀느와 유리아는 서로를 바라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어두운 밤. 하늘에 뜬 별과 달빛 말고는 어떤 빛도 없는 고요한 무인도에서는 륀느가 입자를 구현하는 힘을 이용해 섬 전체에 어떤 재밍 장치를 빠르게 설치 중이었다.

“이걸로 가능할까요?”

“그림자 수장의 설명대로라면 데이비 님은 현재 지구에서 세계의 법칙에 간섭하기 힘든 상황. 그 말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륀느의 재밍 장치를 가용할 경우…….”

“그럴 경우요?”

“최소 일주일의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라 계산.”

일주일. 그 정도면 충분하다. 물론 뒤끝이 센 데이비이니 나중에 화가 풀리더라도 한동안 우려 먹히겠지만 당장 눈앞의 벌을 피하는 게 우선인 만큼 륀느와 유리아는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어딜 간 거죠?”

“혹시나 하는 사태에 대비해 섬을 정찰 중.”

이들이 있는 곳은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무인도였다.

이곳까지 오는 건 륀느의 공이 컸다.

자유롭기 짝이 없는 인어, 소야의 도움을 받아 이곳까지 온 이들은 소야와 베헤모스에게 절대로 이 사실을 함구해달라는 약속을 받아낸 후에야 이곳에 정착했다.

“의도하지 않게 바다 지역의 엘프가 되게 생겼네요. 그런데 륀느 양.”

뒷짐을 지듯 뺀 양손을 깍지 낀 채 바닷바람을 음미하던 유리아가 물어왔다.

“돕는다는 말, 거짓말이겠죠?”

“배신의 가능성 매우 높다고 분석.”

그림자 수장, 잭의 배신.

유리아와 륀느는 미식회 멤버들에 대해 너무 잘 알았다.

애초에 이 둘 다 아이나의 말을 전혀 믿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마냥 믿지 않는 정황을 드러내서 이득을 볼 것이 전혀 없었기에 이들은 짐짓 믿는 척 배신자의 말을 믿었다.

“그녀가 배신을 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섬의 위치는 금방 드러날 거에요. 물론 도망칠 길이 없겠죠.”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데이비에게 걸리고 도망칠 수단 따윈 없다.

버티고 버텨봐야 10분 내외로 잡히는 결과는 그대로 나오리라.

그렇다면 남은 수단은 하나.

유리아와 륀느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이용…… 해야겠죠?”

“륀느가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검토. 하지만 현재 상황에 심증으로 행동하는 건 옳지 않다고 판단.”

그렇게 말한 륀느는 곧 섬 전역에 설치해둔 거대한 안테나 같은 장치를 동시에 작동시켰다.

구현부터 유지에 막대한 에너지가 들어가겠지만, 이곳은 지구.

바로 륀느의 창조주인 넬타리드의 영역이다. 아무리 일정 이상의 힘이 넬타리드에게 부담될지라도 태생이 넬타리드에게 만들어진 그녀인 만큼 제법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었다.

우우우우웅!!!

이윽고 막대한 빛과 함께 섬 전체에 투명한 결계가 처지자 마치 섬은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륀느가 데이비의 추적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밍을 한다고 하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시키듯 그 어떤 파장도 통과시키지 않는 장막이 완성되었다.

이후 륀느는 섬 전역에 환한 빛을 쏟아냈다.

이후 이들은…….

정확히 하루 동안 평화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극한의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일까.

평소에 굉장히 티격태격하는 성격인 유리아와 륀느였지만 그 하루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서로 상당히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두 사람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잭의 모습을 한 아이나는 한쪽 구석에서 눈을 붙이는 게 전부였지만 말이다.

“난 말이에요. 륀느. 당신과 이렇게 진지한 대화를 나눠본 건 처음인 것 같아요.”

마치 세계 종말을 앞두고 곁에 남은 유일한 생존자와 함께 종말을 기다리는 느낌이 이러할까.

유리아의 말에 륀느도 답지 않게 대답했다.

“륀느가 그 발언을 높게 평가. 이전 탕수육을 한입에 털어 넣은 것에 대한 사과.”

담담하게 말하는 륀느를 보며 예쁘게 웃어 보인 유리아가 그녀를 끌어와 다리 사이에 가두듯 품에 안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당신과 더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당신의 치즈피자 위에 핫소스를 부어버린 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요.”

“현명한 분석.”

그렇게 말하며 서로가 서로를 시선에 담았다.

고작 하루.

하지만 종말을 앞둔 이들의 상황에 놓인 륀느와 유리아는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밖에 없었고, 많은 대화를 나누며 더욱 끈끈한 결속력을 지니게 되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과 자매가 되고 싶네요.”

“륀느는 유리아와 같은 하이 엘프가 되고싶다고 분석해.”

“후훗…… 하이 엘프를 싫어하던 당신이요?”

“세상에 유리아와 같은 하이 엘프가 하나라도 있다면, 상관없을 것으로 분석.”

륀느가 유리아의 품에 파고들었다.

작은 체격 탓에 작은 아이가 언니의 품에 파고든 모양새였다.

“아…… 왜 좀 더 일찍 알아채지 못한 걸까요. 당신 같은 소중한 친구를…….”

“…….”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았을 텐데…….”

슬프게 중얼거리는 유리아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그때였다.

“도망쳐라.”

갑자기 륀느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그리고는 유리아의 품에서 떨어져 나오며 말했다.

“륀느가 시간을 벌 것. 유리아는 륀느가 뚫어놓은 다중 공간의 틈을 이용해 도망칠 것.”

“무슨 소리예요! 아직 시간이…….”

“륀느의 계산대로라면 데이비 님의 화가 풀리기엔 아직 시간이 턱없이 부족.”

“그…… 래서요?”

“륀느가 데이비 님의 시선을 끌고 데이비 님을 막겠다고 판단.”

놀란 유리아가 륀느의 손을 잡으려 들었다.

하지만 륀느는 이미 그녀에게서 멀어진 후였다.

펄럭!!

그리고 새하얀 등허리의 날개를 펄럭이며 말했다.

“데이비 님이 오시기 전에 어서 이동해야 한다고 명시.”

“안 돼요! 같이 가요!”

유리아가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륀느는 단호했다.

“둘 다 존재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추적 가능성. 륀느가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끌고 데이비 님께 혼선을 줄 수 있다고 분석해.”

“하지만…….”

사실 눈은 그녀만 있는게 아니었다.

배신자 잭.

그림자 수장은 어찌할 거냐.

그 눈빛에 륀느가 잠시 눈을 감았다.

“이 섬에 탈출구를 두 개를 만들어놨다고 보고해. 우측의 탈출로와 좌측 모두 같지만, 좌측의 탈출로는 그림자 수장이 알아채지 못했다고 판단. 데이비 님을 우측으로 가게 만들고 유리아는 좌측 탈출로를 통해 도망칠 것.”

륀느가 버티는 동안 만큼은 유리아는 안전할 테니까.

“아뇨. 못가요. 당신을 두고 절대 못가요!”

“유리아. 미식회의 회장으로서 당신은 반드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해.”

“웃기지 말아요! 뭐가 미식회야! 당신 하나 제대로 못 구하는 게 뭐가 미식회 회장인데요!?”

감정적으로 격하게 소리치는 그녀를 보며 륀느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다가가 소리치는 유리아의 양 뺨을 콱! 하고 양 손바닥으로 잡았다.

“잘 들을 것을 명시해 유리아. 미식회 부회장인 륀느. 현 시간부로 회장인 유리아의 도망갈 시간을 벌기로 결정. 대의에 따라 반드시 도망치는 건 회장의 의무.”

“하…… 하지만 당신은…….”

그 말에 륀느가 처음으로 옅게 웃었다.

확실히 감정이 많이 늘어난 모습이다.

“그거면 된다고 분석. 륀느가 소중한 친구인 유리아의 생존을 높게 평가.”

“아…… 아아…….”

결국, 유리아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후 마음을 정리했는지 그녀는 딸꾹질하듯 움찔거리며 붉어진 눈시울로 륀느를 담았다.

“릔느 양.”

그리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결연하게, 그리고 절도있게 경례를 취해 보였다.

마치 군인들이 거수경례를 하듯.

“부디 무운을 빕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륀느의 눈동자가 빛난다.

동시에 그녀의 원형 고리가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날개가 세 쌍으로 변했다.

온전한 세피로스화를 진행한 륀느가 천천히 다시 고개를 내려 유리아를 시선에 담았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을 꽉 잡고 억지로 울음을 참으려는 것처럼 이를 악물었다.

척!!

그리고는 유리아의 경례에 맞춰 자신 또한 경례를 해주었다.

“반드시 살아남기를.”

이후 유리아가 허겁지겁 무인도의 중앙에 펼쳐진 거대한 숲 왼쪽으로 사라졌다.

이후 륀느는 고개를 돌려 하늘로 날아올랐고, 그와 동시에 결계들이 박살 나며 주변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날개를 펼친 채 느긋하게 날아오는 데이비가 보인다.

웃는 얼굴이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잡히면 뒤진다.

이후 빠르게 낙하하던 데이비의 등 뒤에 빛으로 된 날개가 파스스 부서지며 사라지고 그의 발이 무인도 저편 바다의 표면에 닿기가 무섭게 일대가 무섭게 얼어붙었다.

마치 그를 물에 빠뜨리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발판처럼 단단하게 얼어붙는 바다를 보며 륀느가 천칭을 녹여낸 창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빠르게 회전시켰다가 하늘로 창끝이 향하게 만든 뒤 틀어잡았다.

[소환]

이후 그녀가 전력을 내듯 그녀를 중심으로 허공에 수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후 마치 빛이 쏟아지듯 새하얀 천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듯 강림하기 시작한다.

하나둘.

넷. 여덟.

오십. 백. 이백.

엄청난 속도로 나타나며 섬 주변을 에워싸듯 보호한 새하얀 천사들은 일제히 데이비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이후 륀느가 데이비가 듣지 못하게 말했다.

“전원. 약속을 지킬 것.”

그 말과 함께 일순간에 천사들이 빛을 끌어모으기 시작했고 륀느도 창을 빙그르르 돌려 창끝을 데이비에게 겨누었다.

“돌격.”

이후 륀느의 명령과 함께 박대한 폭풍이 일기 시작했고. 머리카락을 흩날리던 륀느를 중심으로 천사들이 일제히 데이비를 향해 덤벼들기 시작했다.

그런 륀느의 돌격에 데이비는 씨익 웃으며 한 손을 튕겼고, 그의 손위에 거대한 언월도가 쥐어졌다.

신창 롱기누스 세 번째 형태인 언월도.

그것을 보며 순간 겁에 질린 륀느였지만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자신들이 시간을 벌지 못하면 유리아까지 잡히게 될 테니까.

여기선 힘이 있는 자신이 유리아가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는 게 맞으리라.

[맨틀 깎기]

하지만.

콰드드득!!

데이비의 힘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미 아득한 수준에 있었다.

단 일격에 륀느를 중심으로 돌격하던 새하얀 천사부대 200여 명 중 절반이…….

그대로 사라졌다.

경악할 위력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도 동요하지도 않았다.

감정이 없는 세피로스 종족들은 마치 부나방처럼 그를 향해 덤벼들었다.

“반드시 막을 것! 륀느가 저항을 높게 평가!!”

격하게 소리치며 륀느가 외쳤다.

“천의 명분이 우리에게 있음이니!”

마치 결사 항전하는 장수가 이러할까…….

같은 시각.

륀느가 재밍을 하고, 아이나를 속이기 위해 만든 두 번째 탈출로로 향한 유리아는 눈물을 억지로 훔치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엘프의 날렵한 움직임을 보이며 숲을 제집처럼 빠르게 움직이던 그녀는 곧 륀느가 만들어놓은 차원균열 같은 것을 보며 숨을 짧게 들이켰다.

륀느가 좌표를 고정시켜 창으로 공간과 공간 사이에 구멍을 뚫어놓은 것이다.

이어지니 장소는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또 다른 장소.

그녀는 반드시 살아야 했다.

그게 약속이었고, 륀느를 희생시킨 그녀에 대한 무거운 의무였다.

“그래요. 난 잡히지 않아요. 륀느 양. 반드시 살아남아 주세요.”

눈물을 흘리던 유리아가 균열에 손을 뻗었다.

스르륵 빨려 들어가는 균열을 보며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진 그녀는 곧 자신이 있는 장소가 조금 전의 섬과는 완전히 다른 장소라는 것을 깨닫고 눈물을 닦았다.

마치 조금 전의 울먹임이 거짓말이었다고 말하듯 그녀의 얼굴은 말끔해졌다.

아니. 그 여유롭고 약한 광기가 묻어있는 평소의 미소가 드러난다.

“그래야 당신을 희생시킨 보람이 있잖아요.”

미식연구회의 수장 유리아 헬리샤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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