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51화
륀느가 만들어낸 두 가지 균열.
비록 데이비처럼 차원을 찢을 순 없지만, 특수한 조건을 만족하고 공간 전이와 흡사한 두 균열을 만들어내는 데엔 성공했다.
유리아는 들려올 리 없는 굉음이 귓가에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후우. 륀느 양이 준비해둔 퇴로가 되도록 안전했으면 좋을 텐데요.”
륀느의 희생으로 도망치는 건 성공했다.
“그나저나 신기한 곳이네요.”
유리아는 조그마한 섬에 독특할 정도로 사람의 손이 닿아있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다.
륀느는 어떻게 이런 장소를 찾은 것일까.
본래 그림자 수장과 륀느, 그리고 유리아 헬리샤나가 모여 도망치기로 한 퇴로는 아마존 밀림 지역이었다.
그곳은 막대한 에너지가 모여있는 지역인 만큼 재밍에 도움이 되는 요소가 많으니까.
하지만, 그건 배신자를 속이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진짜 탈출구는 여기란 말이죠. 그런데 륀느 양이 지구에 이런 곳을 만들어놓았을 줄 몰랐네요.”
전문적인 기술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며, 나름대로 계산에 따라 만들어진 집, 그리고 여러 시설이 보인다.
한두 명이 손을 쓴 게 아닌데…….
생각해보면 륀느는 하나의 종족이며 그 종족의 수장인 만큼 노동력을 소환해내서 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즉. 이곳은 륀느가 지구에 만들어놓은 그녀만의 아지트라는 소리였다.
이쯤 되니 양심이 쿡쿡 찔릴 수밖에.
그리 오래 살아온 흔적 같은 것은 없다. 아마 가끔씩 와서 관리를 했던 것이리라.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그녀는 황급히 움직였다.
이 작은 섬의 위치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지구라는 건 분명하다.
즉, 데이비가 언제든 찾아낼 수 있는 곳.
그런 만큼 륀느가 이곳에 미리 만들어놓은 추적 방해요소들을 모두 가동시켜야 했다.
그렇게 나무집과 주변 간단한 시설들을 둘러보았을까.
그녀는 곧 집 근처에 4개 단위로 세워진 작은 기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본래라면 누군가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방범 장치일 터.
그걸 개조해두었다고 했으니 절대, 들키지 않으리라.
“정령의 힘으로 되는 건가?”
불이 꺼진 기둥의 면을 쓸어내리며 그녀가 눈을 감았다.
동시에 그녀의 입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고, 그에 맞춰 그녀의 머리카락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바람의 정령 실프.
하위정령들이지만 효과는 충분했다.
“오랜만이에요 실프.”
그녀의 말에 주변을 빙빙 회전하던 실프가 혀를 쏙 내밀었다.
“쿡쿡. 너무 부르지 않았다고 화가 나신 건가요? 미안해요. 다음엔 더 자주 부를게요.”
그녀의 미소에 작은 소년 형태를 한 실프는 인상을 팍 찡그린 채 유리아를 흘겨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녀의 의지에 따라 가동 중이지 않은 기둥을 다시 작동시켰다.
우우우웅…….
옅은 마나음과 함께 주변이 진동하며 네 개의 기둥이 공명하기 시작한다.
하나만 켜지자 모두가 켜진다.
이윽고 기둥은 서로 공명하기 시작했고 거대한 면을 만들어 주변을 감싼다.
동시에 주변의 마나 흐름을 강제로 동결시키는 게 느껴졌다.
“정말 대단해요. 륀느.”
역시 소중한 친구가 맞구나.
키득거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이제 이곳에서 며칠만 버티면 된다.
필요한 것은 전부 있다. 그녀가 좋아하는 숲도 있고, 자연의 정령 에너지도 충만한 장소.
그녀는 륀느가 만들어놓은 작은 나무집 안으로 들어가 특이하게 생긴 냉장고를 열었다.
“설사 여기가 들켜도 상관은 없지요.”
토끼는 도망갈 굴을 여러 개 파놓는다 하였던가.
사실 유리아는 륀느의 도움이 없어도 도망칠 방법을 하나 모색해 둔 뒤였다.
그녀는 뛰어난 정령술사.
데이비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데이비가 오기 전에 도망치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역시 륀느 양 저와 취향이 잘 맞아요.”
그녀는 냉장고 안에 있는 식재료들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가 요리를 만들 때 주로 사용하는 식재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가장 그녀의 관심을 끄는 건 다름 아닌 륀느와 유리아가 함께 만들어낸 차였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목이 상당히 탔기 때문이었다.
찰박…….
그때였다.
물통을 꺼낸 유리아는 그 아래에 붙어있던 어떤 쪽지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먼저 이곳에 와서 준비를 해둔 륀느가 남겨놓은 쪽지인 것일까.
유리아는 호기심에 그 쪽지를 펼쳐 보았다.
[미식연구회 회장 유리아에게.]
존대와 평대를 제 마음대로 오가는 륀느의 독특한 말투가 고스란히 담긴 쪽지였다.
하지만 그 쪽지에 담긴 내용은 유리아의 예상을 뒤엎어놓았다.
…….
쿵!!
유리아는 손에 쥐고 있던 페트병을 그대로 떨어뜨린 뒤 멍하니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평소 미소가 가득하며, 화가 나도 웃는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바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죠?”
편지에는 데이비에게 들켰을 경우 륀느가 그녀를 피신시켜 보내고 난 후 홀로 남겨질 유리아를 위해 여러 가지를 적어놓았다.
이곳에서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어떻게 있으면 되는지.
혹여 들켰을 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
그녀 자신은 애초에 멀쩡히 도망칠 거라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부터 륀느는 자신을 희생하는 한이 있어도 유리아 헬리샤나를 도망치게 할 생각이었다.
[맛있는 미식 데이터에 대한 은혜를 륀느가 높게 평가. 냉장고와 지하 창고에는 좋아하는 식재료를 가득 준비해두었다고 명시. 필요한 물자, 유리아가 필요로 할 물자들도 많다고 판단.]
파르르르…….
종이가 떨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식 연구회의 부회장으로서 륀느는 유리아에게 크나큰 감사를 느끼고 있다고 해명해. 이 편지를 읽을 때쯤에는 륀느가 없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분석. 이 장소는 데이비 님에게 들키지 않은 륀느의 아지트,]
바보같이 배신당한 줄도 모르고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준비를 해놓았다.
혹여라도 자신이 같이 오지 못했을 때를 대비해 유리아가 이곳에서 헤매지 않도록. 이런 쪽지를 남겨놓은 것이었다.
툭…… 투툭…….
종이 위에 정체 모를 물방울이 떨어졌다.
파르르 떨리는 종이를 잡은 유리아의 손은 피가 안 통하는 것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륀느의 소중한 친구에게…….]
륀느가 남겨놓은 편지를 본 유리아는 자신의 뺨을 타고 흐르는 액체가 눈물임을 깨달았다.
도망치기 전 그녀가 보였던 눈물과는 달랐다.
“아. 아아아,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유리아의 신형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바닥에 주저앉아버린 유리아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몸을 파르르 떨었다.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준 그 작은 소녀를 배신한 것이 아닌가.
“우웁!!”
자신에 대한 분노와 역함에 구역질이 나자 유리아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륀느, 정말 미안해요. 내가 정말 나쁜 년이에요.”
흐느낌을 억지로 삼킨다. 하지만 곧 그 울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눌리고 눌린 것들이 폭발하며 그녀를 그대로 오열하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는 정말 오랜만에 편지를 끌어안고 엉엉 울고 말았다.
단순히 취미를 위해 만든 모임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륀느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쌓아온 정이 그녀를 뒤흔들어놓았다.
“이대로 있을 순 없어요.”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주구는 내가 만들고자 했죠.”
륀느는 그저 도운 것뿐이었다.
모든 잘못은 직접 일을 진행한 유리아에게 있고, 미식연구회의 수장인 그녀에게 있었다.
“다시없을 친구를 팔아먹으면서까지 남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으니.”
단단히 결심한 그녀는 곧 그녀가 들어온 륀느가 만들어놓은 균열을 향해 달렸다.
아직 닫히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돌아간다면!
다행히도 그녀의 예상대로 균열을 작아져 있었지만,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파지지직!!!
순식간에 다시 균열을 너머 섬으로 돌아온 유리아는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파괴된 흔적들이 가득하다.
분명 도망치기 전 륀느가 세피로스화까지 진행하여 데이비를 막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유리아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모래사장 위에 기절한 륀느를 둘러업고 있는 데이비를 발견하고 뛰어나갔다.
“은공!”
갑작스런 유리아의 등장에 데이비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야. 도망간 줄 알았더니.”
“잘못된 걸 바로잡으러 왔어요.”
그녀의 말에 데이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잘못된 걸 바로잡는다?”
“네. 륀느 양을 풀어주세요. 이번 일은 전부…….”
잠시 말을 멈춘 그녀가 침을 삼켰다.
“전부, 제 독단으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그녀의 행동에 데이비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뭐?”
“저는 미식연구회의 회장이에요. 륀느 양은 그런 저를 도우려고 무리한 행동을 했을 뿐이에요.”
“그래서?”
“륀느 양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말이에요.”
“…….”
“그러니까 그녀를 풀어주세요. 벌을 받아야 할 건 그녀가 아니에요.”
“보통 잘못을 옆에서 보고 방관하는 것도 똑같은 잘못이라고 하지 않나?”
“은공!! 하아, 제가 전부 짊어지겠습니다.”
그녀의 각오에 데이비는 잠시 고민하듯 눈을 감았다.
“좋아. 네 덕에 흑마법사를 잡았으니까.”
“그런데 애초에 저희가 은공에게 쫓길 이유가 있나요?”
그녀가 천천히 물었다.
“애초에 저희가 불법을 저지른 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저희 덕분에 오히려 은공께서 흑마법사들을 잡아냈죠.”
“그렇지.”
데이비가 담담하게 수긍했다.
“하면 이렇게 저희들을 잡아낼 게 아니라…….”
“유리아.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난 화내는 게 아니야.”
“예?”
데이비가 미소 지었다.
“딱히 너희가 미식 연구회 모임을 하는 걸 방해할 생각도 없고.”
“그럼 어째서…….”
“만약에 흑마법사가 없었으면 어떻게 할래?”
그 물음에 유리아는 할 말을 잃었다.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주구를 만든 건 사실이다. 흑마법사 때문에 문제가 없었지만, 만약 그런 놈들이 없었다면, 데이비는 이 주구를 만든 이를 들쑤시고 다녔을 것이다.
데이비에겐 어떤 위협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의무가 있었다.
“은공이라면 조사해서 바로 가짜라는 걸 아시지 않았을까요?”
조심스레 퇴로를 찾아보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나도 몰랐어. 그래서 속았잖아. 그리고 유리아.”
데이비가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도망치고 난 후에 내가 범인 찾는다고 삽질하는 걸 보면서 참 즐거워하더라?”
“흡?!”
“아니 영주에게 개 삽질을 시켜놓고 정작 자기는 휴가랍시고 도망을 가? 그래놓고 그걸 보면서 웃어?”
“혀…… 협상을 요청합니다. 은공!”
“응, 그냥 폭거하자! 아, 다시 생각하니 화나네?”
어떻게든 형량을 줄여보려다가 혹을 달아버린 꼴이다.
애초에 데이비가 이 일로 스트레스를 상당히 받았을 것이다.
좀 쉬나 하면 사고가 터지고 좀 쉴까 하면 사고가 터지니 스트레스가 적을 수가 있을까.
억울한 건 사실이지만 주구 같은 걸 함부로 만든 것도 모자라 데이비에게 함구했으니 결국 덫을 밟은 꼴이었다.
“일단 확실히 하자고. 유리아, 네가 다 책임지겠다 이거지?”
그 말에 유리아는 륀느의 상태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제가 벌을 받을게요. 그러니 륀느 양에 대해선 불문으로 부쳐주세요.”
그 말에 데이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리고는 빛으로 만든 줄로 그녀를 꽁꽁 묶어버린 뒤 말했다.
“네 말대로 해줄게.”
그 한마디가 유리아에게는 어떤 의미로 속죄이며 구원이 되었다.
저항하지 않은 채 데이비가 게이트를 여는 것을 보며 유리아는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체념했던 유리아는 볼 수 있었다.
방금까지 의식을 놓은 것처럼 기절해있던 륀느가.
너무도 멀쩡한 모습으로 눈을 뜬 채 유리아를 보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어?”
유리아의 입에서 의아함이 서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륀느는 기절한 척하더니 품 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유리아의 희생정신. 륀느가 높게 평가.]
그 한마디에 유리아의 머릿속에 너무도 확실한 한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데이비의 뒤끝이야 누가 봐도 다 알고 있다.
그렇기에 륀느와 유리아가 잡히면 어떤 꼴을 당할지도 잘 알고 있다.
사실 도망치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 명이 모두 덮어쓴다면?
유리아는 문득 이상하리만치 상황이 잘 맞아떨어지는 이 현실에 의문을 느꼈다.
왜 륀느는 갑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녀를 피신시키려 한 것일까.
왜 륀느의 아지트에 그런 쪽지들을 남겨놓은 것일까.
간단히 생각해서 유리아를 좋아하는 륀느가 그녀만큼은 살리기 위해 희생했다는 아름다운 스토리가 만들어지긴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유리아가 륀느의 편지를 읽고…… 자신의 죄책감을 느끼고 평소답지 않게 자신이 모든 일을 덮어써 버렸을 때 무엇이 변하는가.
단 한 가지.
륀느만 홀라당 빠져나갈 수 있다.
‘프리 아님 맙소사…….’
식은땀이 흐른다.
손이 파르르 떨리고 눈동자의 초점이 흐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뤼, 륀느. 아니죠?”
그렇게 물어보지만, 륀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절한 척 침묵했다.
“음…… 상태가 많이 안 좋네.”
이에 데이비는 륀느를 조심히 안아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둘 다 똑같은 결말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머지 멤버들은 그저 따라올 뿐 직접 한 일은 아니었다.
즉, 륀느와 유리아가 공범이라는 건 확실한 전제가 깔린다.
하지만. 이 한 번의 사태로 인해 모든 것이 역전되었다.
유리아는 스스로 올가미를 몸에 매어버렸고.
그 틈을 타 륀느는 잽싸게 탈출했다.
“륀느으으!!!!”
유리아의 표정이 깨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미식 연구회 부회장. 륀느.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는 미식연구회의 도주극은 결국 륀느의 승리였다.
* * *
멍한 얼굴로 절벽에 매달린 채 늘어져 있던 유리아가 말했다.
“배신자가 주는 건 마시지 않아요.”
“륀느가 유리아의 고집을 낮게 평가.”
유리아를 끌고 티오니스로 돌아온 데이비는 그녀가 평소 원하던 식재료를 구해다 주었다.
흑마법사를 잡는 데 공헌을 한 상이랍시고 준 것이다.
물론 평소라면 뛸 듯이 기뻐했겠지만……. 아직 정산해야 할 문제가 더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배신을 할 수가 있어요?!”
유리아가 상처받았다는 얼굴로 소리치자 륀느가 작고 흰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벼팠다.
“륀느의 청각 회로에 이상이 발견. 배신을 먼저 때린 것은 유리아.”
“아니죠. 당신이 먼저죠!”
이를 부득부득 갈며 유리아가 노려보지만, 륀느는 개가 짖냐는 표정이었다.
“륀느, 승리자. 이것을 매우 높게 평가.”
양손을 와이자 형태로 펼쳐 들며 그녀가 당당하게 말했다.
“미식연구회의 수장 자리를 계승!”
“꿈도 꾸지 말아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절대 안 돼.”
그녀의 말에 륀느가 손에 흙을 한 줌 쥐었다.
“어허, 그거 내려놔요.”
아득바득 분노해본들, 무슨 소용일까.
끝내 승리자가 된 것은 륀느이거늘.
묵네 그 사실이 불편한 유리아였다.
“언제 그러다가 크게 한번 당할 거에요.”
“륀느, 철저한 계산에 따라 절대 그럴 일은 없…….”
“륀느!!!!!!”
어디선가 들려오는 데이비의 격분한 목소리.
이에 륀느가 흠칫 놀랐다.
“어머나. 또 사고를 치셨나 보네요?”
“뤼…… 륀느는 이곳에 없다고 보고!”
그녀가 황급히 도망치려 하자 유리아가 빽빽 소리 질렀다.
“은공!! 륀느 양이 여기 있어요!!”
유리아와 륀느는 악우 그 자체였다.
* * *
에반젤린의 하루는 늘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 됨?]
“뭘 어떻게 돼요. 유리아 언니가 먼저 잡히고, 그 뒤에 륀느도 결국 사고 처서 매달렸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매달렸대ㅋㅋㅋ]
[매달린다는 게 설마 그 매달리는 건 아니지?]
“사진도 있는데 보여줘요? 둘 다 절벽에 꽁꽁 묶인 채로 서로 아득바득 싸우면서 매달려있는데.”
심드렁하게 말하며 사진 한 장을 띄운 에반젤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 참…… 애도 아니고, 왜 저렇게 싸우는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