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72화
현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이들은 멍하니 상황을 관망했다.
분명 죽어서 조각나버린 대통령은 데이비의 곁에 멀쩡히 있다.
이곳에 있을 리가 없을 데이비는 마치 처음부터 있었다는 양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찬드라를 가장 놀라게 만든 것은 균열 속에서 튀어나온 사내의 존재였다.
“젠장! 어떻게!”
황급히 벗어나기 위해 몸을 움직인 핀, 아니 레온의 판단은 정확했다.
하지만.
“어딜 도망치는 거냐.”
그가 도망치게 두지 않을 인간이 둘이나 있다는 게 문제였다.
정확히는 데이비는 움직이지 않았고, 담담한 얼굴로 레온을 노려보던 아스트레아만이 움직였다.
과거 데이비에게 창을 가르쳤던 영웅이자 팔라디아의 정복 황제.
위대한 제왕이라 불리던 군주, 아스트레아.
팔라디아 식 행성분열창의 극의까지 이른 그의 무력은 단순히 황제라서 그가 영웅이 된 게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쿠우웅!!
대지가 크게 진동하며 순식간에 레온의 앞을 막아선 그가 주먹을 말아쥐었다.
“네…… 네놈은 가짜다!!”
노성을 내지르며 그가 검은 광탄을 만들어낸 그에게 던졌다.
“방해하지 마라!”
피할 공간 하나 없이 촘촘하게 날아드는 탄막을 보면서도 그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쩌어엉!!!!
그러자 묵직한 일격이 허공을 때렸고, 그를 향해 날아들던 흑색의 광탄들이 찢어지며 그대로 가루가 되어 사라져나갔다.
허망할 정도의 화력에도 그는 멈추지 않고 찬드라와 똑같이 손뼉을 쳤다.
그러자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허공이 찢어지며 그 틈 사이로 수많은 파충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내 광탄과 비슷하지만 응집된 에너지부터가 다른 막대한 힘이 놈들의 입에 응축되었다.
드래곤 브레스와 흡사한 태양의 힘을 머금은 파괴광선.
그 공격을 보며 데이비가 물었다.
“도와줄까요.”
“됐다.”
짧게 일축한 그가 손을 뻗기가 무섭게 붉은색의 창이 그의 손에 빨려들었다.
그리고.
그의 이두에 핏줄이 도드라지게 돋아나며 그의 주변으로 파괴적인 마나가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무근본 파괴창술의 집합체 같은 인간이 펼치는 창은 가히 하나의 무기에서 재앙이 되어 펼쳐진다.
[팔라디아식 행성분열창]
[맨틀 깎기]
콰득!!!
마치 거대한 짐승이 하늘과 대지 전체를 할퀴듯 엄청난 상흔이 남는다.
레온이 만들어낸 저항은 그의 공격 앞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달려들어 놈의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버렸다.
순식간에 치명상을 입고 처박혀버린 그를 짓밟은 아스트레아는 그가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게 창끝으로 심장 부근을 강하게 찔러넣었다.
“큭!”
순식간에 제압은 끝나버린 것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이윽고 찬드라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려왔다.
그녀 또한 현 상황이 전혀 이해 가지 않는 듯 보였다.
“계약 내용 기억하나?”
“계약…….”
“그래. 네 기억을 볼 권리.”
데이비는 담담하게 설명한 뒤 그녀를 조용히 직시했다.
“나는 그때 일을 모르니까 네가 기억하고 있는게 진실일 수밖에 없지.”
“그런데…….”
“그런데 조금 묘한 일이 있어서 말이다. 그래서 동향 사람인 저 양반에게 물어봤는데. 조금 이야기가 다르더라고.”
레온을 구했고, 그와 사랑에 빠졌으나 그가 배신하여 그녀를 무력화. 레온의 왕국 병사와 기사들이 몰려와 권속들을 모두 죽였다.
그게 그녀가 기억하는 진실이었다.
하지만, 아스트레아가 한 이야기는 달랐다.
“”다르다…… 고요?“
“그래. 결론만 놓고 말해주마. 네 권속들을 죽인 건 말이다.”
잠시 말을 끊은 데이비가 피식 웃었다.
“너다.”
그 한마디에 주변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에요!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정작 삼자인 저 양반의 기억 속에서 네가 무너뜨린 왕국은 갑작스레 네가 미쳐버렸다고 도움을 요청한다 말했다. 그 뿐만 아니야. 묘목이 있는 숲에서 네 권속들도 네 상태가 이상하다고 도움을 요청했고.”
하지만 아스트레아는 그 당시 전쟁으로 인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표면적인 동맹인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 결과.
권속들이 모두 죽었고, 미쳐버린 그녀는 급기야 근처 인간의 왕국까지 공격했다.
“말도 안 돼…… 거짓말…… 거짓말이에요!!”
절박한 그 외침에 아스트레아가 입을 열었다.
“나는 아직도 후회하고 있다. 내가 비록 정복전쟁을 벌임으로써 많은 인간이 죽었지만, 너는 달랐지. 내가 조금만 신경 썼으면 수만 수십만이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일이었으니까. 대신들이 이 일만큼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정복전쟁은 잘못된 것이라 말했다만.”
정작 아스트레아는 반대로였다.
정복전쟁에 이견은 없었고, 그녀를 도와주지 않음으로써 수만 수십만을 죽인 것을 후회했다.
“결국, 네가 품은 복수심은 인간의 환각에 당한 것뿐이야.”
마치 단두대에서 거대한 칼날이 떨어진 것처럼 선고가 떨어지자 그녀가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저놈도 미친놈이야.”
이놈이 상상 이상으로 또라이에 미친놈이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수확이 없던 건 아니야. 작정하고 숨어버린 놈을 찾기가 나도 쉽지 않았거든. 그런데 유일하게 저 미친놈이 제 목숨 가리지 않고 모습을 드러낼 순간이 딱 하나 있더라고.”
“그걸 당신이 어떻게…….”
“미친놈은 미친놈이 제일 잘 알아보는 게 정상 아닌가?”
과거에도 그랬듯.
그녀가 미쳐서 관계없는 이를 죽이던 현장.
“바로 지금처럼 말이야. 저놈이 정말 미친놈이 맞다면 반드시 이곳 어딘가에 진짜가 숨어있을 테니 나는 너를 방치했다가 놈을 끌어냈다. 그게 전부야.”
혼란스러워하는 그녀를 뒤로한 채 데이비는 레온을 바라보았다.
“더 궁금한 게 있나?”
애초에 이일은 아스트레아의 기억이 없었다면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을 터였다.
이 모든 게 아스트레아라는 존재가 아직 존재하면서 생긴 틈이었다.
“빌어먹을!! 오래전 뒈져버린 인간이 어째서 이곳에!!”
“궁금해?”
콰득!!
아스트레아가 더욱더 강하게 창을 찔러넣자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세상엔 네가 모르는 변수가 한가득이야. 절대 안 들킬 거라 생각한 모양인데.”
나는 네가 생각한 이상으로 미쳐본 적이 있는 놈이고.
생각한 이상으로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데이비의 이어지는 혼잣말에 주변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멍청하긴.”
“빌어먹을…… 빌어먹을! 아직 끝이 아니다!”
그가 격노하며 소리 질렀다.
동시에 찬드라와 그녀의 사이에 선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나를 죽이면 그녀도 죽는다! 그녀와 나는 영혼의 계약이 맺어져 있지!”
그래. 그 계약 때문에 그녀는 손도 못쓰고 놈의 환각 능력에 당한 것이다.
인간을 좋아했고 믿었다가 크게 데인 것이었다.
그의 힘은 그녀를 뿌리 끝까지 세뇌시켰고, 완전히 미쳐버리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레온이라는 미친놈 하나 때문에 미쳐버린 찬드라는 제 권속들을 손으로 찢어 죽이고 마치 인간에게 당한 것으로 착각하여 인간들까지 모두 죽였다.
도망칠 구석을 벌기 위해 레온은 필사적으로 소리 질렀다.
이에 데이비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내가 단순히 네 본체를 끌어내려고 이 사태를 방관한 줄 아는 모양인데.”
여긴 이미 감옥이야.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푸욱!!
창을 뽑아낸 아스트레아가 물러나기가 무섭게 데이비는 손을 가볍게 휘저어 틈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울먹거리면서 나타난 작은 소녀가 나타났다.
몽환 세계에서 나타난 악몽. 레온과 찬드라가 만들어진 악몽을 만든 주체이며, 두 사람에게 막대한 힘을 제공했던 존재.
악몽이었다.
“으으…… 으으으으!!”
울먹거리며 레온을 보자마자 분노를 토해낸 녀석이 손을 뻗었다.
“아…… 안돼!!”
그를 유일하게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수 있는 존재인 악몽에게 노출되었음을 깨달은 그가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악몽이 손에서 만들어낸 안개가 퍼져나가 그를 휘감기가 무섭게 그의 몸에서 영혼 같은 것이 끌려 나오기 시작했다.
“힘을 적당히 뽑아 썼어야지. 그렇게 무식하게 힘을 뽑아 쓰는데 악몽이 잘도 가만히 있겠네.”
레온이 한 짓으로 인해 그 부담을 모조리 악몽이 지게 되었고, 그 결과 악몽이 격분하게 되었다.
태초의 포식자가 뒤섞인 포식의 권능으로 먹어도 상관은 없지만, 그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건 데이비뿐만이 아니었다.
악몽은 그에게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조력자였으니 말이다.
“안돼!! 안돼! 이렇게 끝낼 순 없어! 아직 시작일 뿐인데!”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며 빠져나가려 하지만 마치 급물살에 휘말린 사람처럼 허우적대던 그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 정신력이 얼마나 강한지 악몽에게 끌려들어 가면서도 주변을 시꺼멓게 물들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의 힘의 여파가 다른 이에게도 닿으려 할 즈음.
데이비가 허공에서 꺼낸 검 한 자루가 번뜩였다.
서걱!!!
영혼 같은 그의 형체가 한순간에 잘려나간 것이다.
저항을 잃어버린 놈을 악몽이 만든 안개가 휘감는다. 그 힘은 마치 레온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듯 레온과 찬드라 사이에 이어져 있던 끈마저 그대로 물어 뜯어버리듯 끊어버렸다]
그들은 온전한 환생이나 부활을 한 게 아닌 애초에 악몽이 만들어낸 것. 따라서 모든 권한은 사실상 악몽에게 있는 만큼 마주치는 순간 레온이 할 수 있는 저항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동시에 레온의 육신이 까마귀 가면과 검은 로브 또한 본래 없어야 할 물건이었다고 말하듯 파스스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다량의 힘을 되찾은 악몽은 그제야 어느 정도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바로 찬드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찬드라도 지워버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데이비는 악몽을 잡아 만류했다.
“잠깐만 기다려봐. 한마디 할 시간 정도는 줘도 되잖아.”
그의 말에 악몽은 온몸을 버둥거리며 저항했다.
하지만 그 행동은 데이비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히익!”
그가 꺼낸 새빨간 구슬, 섬광 구슬을 보자마자 기겁하며 물러난 악몽이 와들와들 떨었다.
무한정 터지는 섬광의 끔찍한 기억에 그녀는 끔찍한 기억이 떠오른 듯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본능적으로 새겨진 공포나 다름없었다.
“저기…… 데이비 왕자님.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끝난 겁니까?”
“예.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뭐…… 안타까운 일이라는 건 들었으니까요. 도울 수 있다면 돕는 게 좋겠죠.”
한국의 대통령이 데이비의 제안을 받아들여 베르단데의 힘으로 대리를 집무실에 세워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피곤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물러났다.
“…….”
찬드라는 넋이 나간 얼굴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아이들을 죽인 게…… 나였다고…….”
멍하니 중얼거리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앞에 선 아스트레아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미련이라고 할 것도 없고, 기왕이면 나도 마음을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다. 나비 여제.”
“아스트레아 황제…….”
“미안하다. 그때 너희 권속들의 부탁을 내가 무시하지 않았다면 그런 미래도 없었겠지. 미쳐버린 너를 내 손으로 죽일 일도 없었을 테고.”
사실 자기만족에 불과한 사과였다.
하지 않아도 상관없고, 해도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럼에도 아스트레아는 자신이 평생 품어온 어떤 찜찜한 기억을 털어내고 싶은 모습이었다.
“우연이지만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제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돌아섰다.
“그걸로 끝입니까?”
“더는 할말이 없다. 데이비. 생각지도 못했지만, 이걸로 마음은 조금 편해지는 느낌이구나.”
그렇게 말하며 아스트레아 또한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남은 것은 진실에 넋이 나간 찬드라와 그걸 지켜보는 데이비, 그리고 그녀 몰래 이 허수공간에 침투해 새로운 비현실을 만들어낸 베르단데와 악몽뿐이었다.
“정말 그게…… 진실인가요?”
“네 기억이 온전하지 않아서 내가 무리하게 세계의 법칙에 새겨진 기록까지 뒤져봤다. 이게 얼마나 골치 아픈지 넌 모를 거야.”
세계의 법칙 안에는 세상 모든 것이 기록되어있다. 본래라면 절대 본인을 제외하고 열람할 수 없는 게 정상이다.
“네 기억을 볼 권한을 받았으니 그곳에서도 나는 네 기억을 읽을 수 있어.”
그는 그녀의 이마를 쿡 밀었다.
“그러니까 함부로 기억 같은 거 권한 주지 말라고.”
결국, 그녀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하하…… 하하하하하!”
그리고는 결국 오열하기 시작했다.
분노와 증오로 인해 생긴 오열이 아닌 자괴감과 슬픔에 의한 오열이었다.
권속을 죽인 인간에 대한 분노만으로 버텨온 그녀에게 사실은 권속을 그녀가 모두 죽였다고 말하면 그녀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레온이 그녀를 잠식시켜 환각상태에 빠뜨렸다고 할지라도.
“죽여주세요. 이 이상 살아있을 순 없어.”
그녀가 악몽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나를 완전히 없애줄 수 있잖아요. 난…… 내 손에 피를 묻혔다는 걸 아직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그녀가 악몽에게 애원하듯 말하자 악몽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에 악몽이 다시 그녀를 지워버리려던 찰나.
데이비가 말했다.
“저승아. 손님 가신다.”
그 한마디에 데이비의 뒤편으로 균열이 열리며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도사 우치의 아래에서 혼을 관장하는 저승이였다.
그는 천천히 다가오더니 찬드라에게 손을 뻗었고, 조용히 말했다.
“자. 조금 따끔할 겁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뽑아냈다.
“꺄악?!”
비명과 함께 내팽개쳐진 찬드라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저승이의 손에는 작은 구슬이 쥐어져 있었다.
“찬드라의 영혼과 그녀의 혼을 보호하던 권속들의 혼 200여 명. 전원 회수했습니다. 마모가 심한 걸 보니 영혼의 강에서 회복 후에 윤회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건 알아서 해. 네가 고생이 많다.”
“고생이 많은 걸 알면 일손 좀 늘려주십시오. 죽겠습니다.”
“응 수고해.”
“진짜 사표 쓸 겁니다!”
그 저승이가 격하게 반항했지만 그래 봐야 의미 없는 저항이었다.
“약속했잖아. 네 스스로.”
“젠장!!”
멍하니 남은 찬드라. 아니 찬드라의 혼이 빠져나간 그녀는 좀 전과 다를 바 없는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멍한 얼굴을 했다.
“레온의 혼은 내가 옳게 환생시켜줄 생각이 없어서 악몽에게 먹여버렸는데. 찬드라는 아니지.”
애초에. 악몽이 만들어낸 가짜다.
그 가짜가 아무리 기억을 읽었다곤 해도 찬드라라는 존재가 가진 기억의 권한을 주고받을 순 없다.
애초에 가짜로 만들어진 찬드라는 그럴 권한이 없었으니까.
즉, 그 권한을 내어준 건 껍데기인 찬드라가 아니라 그 몸 안에 안착한 작은 영혼의 파편인 진짜 찬드라였다.
오래전 사라진 그녀가 어떻게 혼이 되어 그녀의 몸 안에 안착되어 있었는지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녀의 곁을 지키듯 에워싼 권속들이 그녀를 보호하며 계속해서 방황했기 때문이었다.
차원을 넘은 건 기적에 가깝지만, 그것도 차원의 벽이 약해지면서 흘러들어온 셈이었다.
본래라면 끝까지 방황하다 끝내 사라지거나 영혼의 계약이 이어진 채로 윤회했어야 할 그녀의 영혼은 우연찮게 악몽이 지구로 떨어뜨린 악몽 덩어리와 융화되었다.
혼만 남은 존재가 가짜 육신과 가짜 자아에 깃든 것이다.
권속들의 보호를 받을 정도로 망가져 있던 그녀의 혼은 불완전하게 찬드라의 육신이 되었고, 그녀와 함께 끈으로 이어져 있던 레온의 혼은 다른 방향에서 자신의 형체를 만들어냈다.
그 때문에 끈이 이어진 레온의 혼까지 남아버리긴 했지만 이제 놈의 혼은 악몽에게 먹혀버렸고, 나머지는 윤회의 고리에 들 뿐이었다.
자신이 찬드라의 혼과 융합된 무언가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허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찬드라의 혼이 빠져나간 이상 그녀를 더 이상 찬드라라고 부를 순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데이비가 얄미운 표정으로 종이를 들이밀었다.
“계약을 위반하셨으면 페널티를 받으셔야죠. 선생님.”
“뭐……뭣?! 말도 안 되는 소리! 당신의 말대로라면 결국 계약에 응한 건 내가 아니라 진짜 찬드라였다는 소리잖아요!!”
“그 찬드라가 페널티를 안 받고 튀어버렸으니 너라도 갚아야지.”
말도 안 되는 억지에 가까웠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서 와라. 노예야. 우선 이름부터 정해야겠지? 이제 찬드라의 혼이 빠져나갔으니 넌 찬드라의 힘을 흉내 내는 다른 존재일 뿐이니까.”
“…….”
“네 이름은 내가 지어주마. 이제는 찬드라가 아니니까. 내가 우리 마님이 키우는 엔젤캣의 이름도 지어준 인간이거든.”
들어봤나? 참다랑어라고.
“네 이름은 그래. 점순…….”
“싫어요!!”
그녀는 죽음을 바라던 것 이상으로 끔찍한 이름이 붙는 것에 격하게 반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