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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181화 (1,181/1,559)

제 1181화

하인스 아카데미의 부지 내엔 앨리스 대주교가 정말로 좋아하는 정원이 존재한다.

새하얀 백합으로 가득한 이 꽃밭은 그녀가 틈틈이 직접 찾아와 꽃들을 가꿀 정도로 아카데미 내에서도 유명한 장소였다.

그녀를 찾아간 곳에서는 이미 마법학 교수들까지 그녀의 호출을 받아 모여있었다.

“후…… 정리 끝났어요.”

샤쿤탈라에서 보내온 정식 제안서는 사실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세 개의 달이 만월이 뜨는 밤 각 아카데미 교수들 측 사이에서 결투를 벌인다는 일이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사실 이번 일은 샤쿤탈라에게 이득이 없었다.

오히려 손해만 가득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샤쿤탈라의 입장에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다.

“이상이 현재 샤쿤탈라의 상황입니다.”

앨리스가 한숨을 내쉬며 마법학 교수들을 째려보았다.

“이 양반들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무더기로 현자타임 느껴서 떠나가게 만드는 게 잘한 짓입니까?!”

아무리 프리아 여신과의 접선을 미끼로 그녀의 두통을 억눌렀다지만 이 일이 절대 가볍지 않다는 건 그녀가 가장 잘 알았다.

가장 독박을 쓴 건 샤쿤탈라요, 그다음이 하인스 아카데미였다.

사실상 하인스 아카데미는 얻은 게 있기에 이 정도지. 이미지 면에서 마냥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는 게 현 실정이었다.

그런데.

“어허, 거기 제대로 익지 않았소!”

“쓰읍. 피어올라라!”

양손을 모아 불을 쬐듯 손바닥을 편 채 바닥에서 불을 피워 고구마를 구워 먹고 있는 저 다수의 교수들을 보니 애써 억눌렀던 분노가 다시 치미는 기분이 드는 모양이었다.

“아…… 신이시여. 당신의 이름 아래 부정한 자들을 벌할 힘을 내려주소서.”

[5위계 세인트 브레이크]

묵직하게 압축된 신성력의 빛이 모여들어 그녀의 손에서 맹렬하게 회전하자 나는 손뼉을 가볍게 쳐서 그녀의 성마법을 디스펠 시켜버렸다.

“학장님!!”

“화내지 마세요. 배가 얼마나 고팠으면 저러겠습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요!!”

저들이 저 지경이 된 원흉이 나라는 걸 깨달은 그녀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왜 그럽니까. 다들 한 번씩은 겪는 일인데.”

“…….”

“앨리스 대주교도 신성력 컨트롤을 연습할 때 일대 날짐승들을 모조리 잡지 않았습니까.”

앨리스 대주교는 과거 성녀 후보 시절 최소한으로 지키던 것들을 덧없이 놓아버렸다.

그게, 프리아 여신이 그녀에게 바란 성녀의 시험이었으니 말이다.

극한의 이타심을 보여준 리나 성녀와 다르게 그녀는 초대 성녀 다프네와 닮은 점이 제법 많았다.

그래서 프리아 여신이 고작 성녀 후보였던 그녀를 그리 아꼈던 것이리라.

그렇다고 해도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할 그녀가 꿩의 모가지를 비틀며 비릿한 웃음을 흘렸던 장면은 아직 기억 속에 생생했다.

“그, 그 입 닥쳐요!”

그녀가 흑역사를 건드린 사람처럼 발작하며 소리를 질렀다.

“됐고! 이번 일로 샤쿤탈라의 일부 학급에선 강제 휴교가 내려진 상태에요. 이 일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모르진 않겠죠?”

“요지는 그들을 다시 복직시키면 해결되는 거 아닌가?”

“그게 가장 좋긴 하겠지만 절대 그래선 안 되죠. 당신은 하인스 아카데미의 학장이지 샤쿤탈라의 부하가 아니에요. 그 부분에 대해선 재고해주세요.”

“굳이 귀찮게 나도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 그녀는 최대한 두 아카데미 사이에 문제를 원활하게 해결하면서 하인스 아카데미가 이번에 건진 이미지를 공고히 지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어허! 그건 내 꺼요!”

“불경하군! 연합의 조약 제 1조 1항에 구운 고구마는 먼저 집는 자가 임자라 하였소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상도덕이 없는 행동이 아니오!”

멱살을 잡고 옥신각신 싸우는 교수들이 젊었다면 차라리 덜했을 것이다.

수염 지긋한 노인들이 저러고 싸우고 있으니 앨리스 교수의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오는 듯 보였다.

“됐고, 주교. 만월이면 앞으로 약 5일 후네요. 맞습니까?”

내가 미소를 지운 채 진중하게 물었다.

“네. 맞아요. 5일 뒤. 각 아카데미에서는 총 3명의 마법사가 출전할 거예요. 생활 분야. 전투 분야. 그 외 분야. 참고로 조건을 걸어서 학장인 당신은 절대 출전하지 말라는 엄포도 놓았더군요.”

“나갈 생각도 없긴 했는데 굳이 그렇게 언급하면 나가고 싶어지네요.”

“한때 샤쿤탈라에서 임시 교수하셨죠? 그러니까 형평성 어긋난다는 겁니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복잡한지 모르죠? 샤쿤탈라의 입장에선 미치고 펄쩍 뛰겠지만 최대한 서로 합의점을 찾지 않으면 정말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에요.”

샤쿤탈라의 입장에선 이론에서 완전히 밀렸으니 실전에서라도 점수를 얻어야 했다.

그래야 휘청거리는 거대 마법 아카데미의 체면을 지킬 테니 말이다.

“그렇다는데. 교수님들. 자신 있습니까?”

내 물음에 고구마를 호호 불어 낄낄거리던 교수들의 시선이 닿았다.

“샤쿤탈라에서 작정하고 이를 악물었으니 최소 5서클 중에서 마스터 이상 6서클도 나올 겁니다. 자신 있냐고요.”

내 물음에 그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질문을 던졌다.

“학장. 내 노파심에 묻는 것인데. 자신 없다고 하면 어찌할 생각이오?”

“이미 이렇게 된 거, 우리는 무조건 이겨야겠습니다. 못하겠다고 한다면…….”

잠시 나는 침묵했다가 허공을 후려쳐 균열을 만든 뒤 그 안에서 자루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그들이 좋아하는 고구마였다.

본래라면 반색하며 좋아했을 교수들이었으나 이번엔 표정이 어두워졌다.

자신들의 미래를 직감한 것이다.

“아시잖습니까.”

“커흠!! 커흠!”

그들이 손에 쥐고 있던 고구마를 내려놓았다.

졌을 때 어떻게 될지를 떠올린 그들은 순식간에 의욕을 불태웠다.

“세 개의 달 모두 만월이 되는 건 5일 뒤입니다. 그때까지 무리하지 말고 준비해주세요. 뭐 아시다시피 샤쿤탈라 교수들을 그 꼴로 만든 건 교수님들이 한 일이니까요.”

그 미소에 교수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때였다.

“교수님!!”

저 멀리서 서류 더미를 품에 안은 요시아가 후다닥 뛰어오는데 보였다.

“요시아?”

“아. 선생님도 계셨네요.”

요시아가 배시시 웃으며 품 안에 든 서류를 내밀었다.

“아 참 이게 아니지. 연락이 왔어요. 샤쿤탈라로부터.”

“왜 또 뭘 해달라고 난리냐?”

“그게 말이죠, 대결 요청을 철회하겠다고 하네요.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한 건 아니니 물리는 거야 어렵진 않을 거라고.”

이건 또 뭔 헛소리야. 열 받아서 이판사판으로 판판 붙자고 할 땐 언제고.

그런 의문에 요시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율리스 장로님이 슬쩍 알려주신 건데요. 대현자님이 샤쿤탈라 학장님을 불러서 그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거라도 지키는데 아카데미를 위해 더 이득이 아닌가 하고.

확실히 이미지에 지대한 타격을 입고 손해를 입은 샤쿤탈라 입장에선 하인스 아카데미를 이겨서 어떻게든 점수를 따야 했다.

하지만.

만약 진다면?

안 그래도 잃은 신뢰가 더욱 바닥 치게 될 터.

샤쿤탈라의 학장은 적당히 욕심 많고 적당히 선한 인간이지만 셈이 느리진 않았다.

게다가 그에게 조언을 해준 것이 마법사들이 모두 존경하는 대현자. 율리스의 스승인 헬리슨 발레스티아라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지리라.

“일단은 보류라는 것 같은데요.”

뜬금없이 꼬리를 내려버리는 샤쿤탈라의 행각에 앨리스 교수가 바라보며 말해왔다.

“허…… 나야 좋긴 한데…… 찝찝한데요? 정말로 이렇게 끝나는 거예요?”

“홧김에 싸움을 걸었는데 준비가 애매하니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거겠죠.”

“그럼 언제 다시 싸움을 걸어올지 모른다는 거네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예 짓밟아버리죠?”

이게 한때 성녀 후보였던 이가 할 말인가.

황당함이 서린 표정을 숨기지 않고 똑바로 직시하자 그녀는 냉정하게 분석했다.

“이 기회에 하인스 아카데미의 두루뭉술한 이미지를 확실히 잡자고요. 아주 하인스 영지 이름만 들어도 아 거기! 라는 말이 나오게끔.”

“앨리스 교수님. 하인스 아카데미는 사실 타 아카데미가 뭐 어떻게 나오건 상관없어요.”

여긴 학교입니다.

애들 가르치는 곳이지 누구랑 기 싸움을 하는 곳이 아니라고.

그 한마디에 그녀의 표정이 확 찡그려졌다.

“아는 인간이 이런 사태를 그냥 관망했나 봐요?”

괜히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데에 재주가 있는 그녀였다.

“당장은 안 움직이겠다는 거니 그냥 둡시다. 뭐, 우리가 샤쿤탈라와 어디 척을 지고 싸울 사이도 아니고.”

다시 고구마를 굽기 위해 불을 피우는 교수들을 보며 앨리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쁜 시기가 겹쳐서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시간이 벌렸다면 나쁜 결과만은 아니, 이 인간들이 지금 뭘 태우는 거야?! 당장 그거 안 내려놔요?!”

교수들의 손에는 고구마의 껍질을 백합 꽃잎으로 감싼 것들이 쥐어져 있었다.

그녀의 손으로 프리아 여신의 축복이나 다름없는 황금빛의 신성력이 짙게 모여들었다.

프리아 여신은 그녀를 참 많이도 총애한다.

* * *

하인스 아카데미와 샤쿤탈라 아카데미가 옥신각신 싸우고 있을 무렵. 지구에서 에반젤린은 오랜 시간 모아온 적금을 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요 며칠 그녀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의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도 그녀의 기분을 좋게 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눈치가 빠른 륀느와 유리아가 잽싸게 그녀의 복수 범위에서 벗어나 도망쳐버렸지만, 지금은 가히 관대하게 넘어가 줄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여러분! 드디어 출시되는 날이에요! 내가 이 캐릭터 뽑으려고 얼마나 용돈을 모아왔는지 모르죠? 진짜 야금야금 모았어요.”

그녀는 게임 화면에 비치는 크리스탈 30만 개를 자랑했다.

그녀가 켜놓은 게임은 뽑기형 RPG 게임이었다.

돈을 주고 크리스탈을 구매한 뒤 그 크리스탈로 캐릭터를 구매한다.

그리고 그렇게 구매한 캐릭터를 육성해서 게임을 즐기는 RPG 이런 방식의 게임은 단순히 즐기는 요소도 요소지만 캐릭터를 뽑는 가챠라는 요소가 생각보다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에반젤린은 현재 이 RPG형 게임에서 곧 출시될 캐릭터에 완전히 박혀 있었다.

그림을 그리던 그녀에게 이런저런 요청이 들어오는 편이지만 그녀도 개인의 취향이 확고한 편이었다.

그러던 찰나에 곧 출시되는 게임 캐릭터에 완전히 빠져든 것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잘 하지도 않는 게임까지 깔아서 열심히 플레이할 정도로 열의를 내비쳤다.

[오우야, 크리스탈 30만 개 실화냐 ㅋㅋㅋ]

[대체 얼마나 뽑아 재낄라고 ㅋㅋㅋ]

“3퍼센트면 낮은 확률이잖아요. 크리스탈 30만 개면 300번 뽑으면 끝나는 수치이기도 하고…….”

불안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그녀는 손뼉을 가볍게 쳤다.

화면에는 차분한 인상의 여인이 커다란 창을 쥐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주변으로 보랏빛의 번개 같은 일렁임이 감도는 것을 보며 더욱 만족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내가 꼭 뽑고 말 거예요. 절제 아저씨가 맨날 예전 캐릭터 나는 없다고 얼마나 놀렸는데.”

[ㅋㅋㅋㅋㅋㅋ 절제쉑 인성 알아줘야댐 ㅋㅋ]

“절제 아저씨도 이 캐릭터 뽑는다고 엄청 벼르고 있던데.”

낄낄거리는 시청자들을 보며 그녀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저거 다 쓰고 진짜 하나도 안 나오는 거 아님?]

“흐흐, 두고 봐요. 아무리 3퍼센트라도 300번이나 뽑으면 무조건 나오니까.”

그래. 아무리 운이 없어도 그 정도로 뽑는데 안 나올 리가 있을까.

그녀는 반드시 뽑을 자신이 있었다.

“자…… 그럼 우선 화끈하게 10연차부터 달려볼까요?

10번 뽑기.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눈을 반짝이며 클릭했다.

구슝!!!

그러자 휘황찬란한 소리와 함께 이펙트가 화면에 터져나갔고 채팅창은 곧 웃음바다가 되었다.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보라색ㅋㅋㅋ 꽝이쥬?]

띠링!

사수자리 님께서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ㅋ 뽑힐 리가 없지.

띠링!

사수자리 님께서 밴 당하셨습니다.

가차 없이 밴을 때려버린 그녀가 코웃음을 쳤다.

“흥. 이제 시작일 뿐이에요. 290번 남았다 이 말이에요.”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뽑기.

하지만 이번에도 보라색 기둥만 나오고 그녀가 바라는 황금색 이펙트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이 아주 한순간 흔들렸다.

“버…… 벌써 3만 원치가…….”

그녀가 손을 파르르 떨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직 280번 남았어요!”

보라색 이펙트.

보라색 이펙트.

보라색 이펙트

처음엔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뽑기가 진행될수록 그녀의 표정은 점차 굳어만 갔다.

“아…… 안돼…… 장비도 뽑아줘야 하는데…….”

[ㅋㅋㅋ 공주님 처음엔 캐릭터 금방 뽑고 장비 뽑을 상상했겠지? 하지만 어림도 없다 ㅋㅋ]

“공주님이라 부르지 말아요!”

빽 소리를 지른 그녀가 떨리는 동공으로 미친 듯이 마우스를 연타했다.

하지만 결과는 끔찍했다.

보라색 보라색 보라색 보라색, 또 보라색.

그녀가 바라는 황금색 이펙트는 뜨지 않았다.

“이건 말도 안 돼! 벌써 40번밖에 안 남았잖아요!”

그녀가 상당히 초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게임 운이 이렇게까지 나빴던 적이 있었던가.

“안 돼요! 분명 어제 꿈에서 캐릭터도 뽑고 무기도 뽑았다구요.”

그녀가 울먹거리며 추가로 마우스를 클릭했다.

보라색, 보라색.

그리고.

황금색이 처음으로 떴다.

“떴다!!”

비명을 지르며 그녀가 진심으로 기뻐했다.

[ㅋㅋㅋㅋ 방장 찐텐으로 기뻐하는 거 보소 개 귀엽넼ㅋㅋ]

반응이 어떻건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팔짝팔짝 뛰는 모습에 사람들의 반응이 제법 좋았다.

그녀가 가진 입지 때문이었다.

그녀는 단순히 놓고 봐도 금수저 중에서도 플래티넘 수저나 다름없다.

그런 그녀가 고작 이런 뽑기 하나에 기뻐하는 모습에 가식이 전혀 없으니 뭔가 생소하게 다가온 것이었다.

뛸 듯이 기뻐하며 팔짝팔짝 뛰던 그녀는 이미 예측했다는 것처럼 말했다.

“아. 장비를 뽑을 여유는 없지만 그래도 나왔네요. 그럼 남은 10회는 장비를 뽑아서 한꺼번에 다 뽑으면…….”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마우스를 딸깍인 순간.

번쩍이며 황금빛 이펙트 속에서 한 캐릭터가 나왔다.

그리고 에반젤린의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네가 여기서 왜 나와?”

황금빛 이펙트 속에서 나온 캐릭터는 그녀가 정말 싫어하는 디자인의 캐릭터였기 때문이었다.

[아 ㅋㅋㅋ 황금색이펙트지만 신캐릭 준다곤 안 했다?ㅋㅋㅋㅋ]

그녀의 표정에서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후 그녀는 마치 홀린 것처럼 천천히 손을 뻗어 나머지 횟수를 모두 태웠다.

하지만. 끝내 확률은 그녀를 배신했고 보라색만이 그녀를 맞이했다.

“하…… 하하…….”

허탈하게 웃어 보인 그녀가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진짜 열심히 모았는데…….”

허탈하게 중얼거린 그녀의 어깨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서러움에 눈물이 북받쳐 오른 것이다.

“흑…… 흐흑…… 아빠엄마 몰래 진짜 열심히 모았는데…….”

[아……방장…….]

삼촌부대 님께서 3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울지마 방장. 이거 받고 기운 내…….]

“흑. 약속했잖아요. 후원금은 전부 기부금으로 쓴다고…….”

[아니. 본인이 기부를 받아야겠는데?]

“이건 제 재미를 위한 것일 뿐이잖아요. 방송에 필요한 돈을 충당하는 건 한 달에 5만 원으로 정해놨다구요.”

[와. 이건 진짜 티오니스 성자가 자식 경제 관념을 제대로 박아놓은 건지. 아니면 핵 자린고비로 키운건지…….]

어쩔 줄 몰라 하는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그때였다.

띠링띵~ 띠링띵~

음성채팅이 울려 퍼진 것이다. 고개를 든 그녀가 훌쩍거리며 연락을 한 이를 확인했다. 사실 절제 말곤 그녀에게 음성채팅을 걸어올 이도 없는데 현실이었지만 말이다.

“왜 그래요. 아저씨.”

코를 훌쩍이며 그녀가 묻자 건너편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나왔다.

[공주님 나 단차에 이거 나왔는데 좋은 거임?]

그리고 곧 이어지는 화면공유에 그녀가 그토록 뽑고 싶어서 300번을 내리질렀던 가챠 캐릭터가 휘황찬란하게 뜬게 보였다.

[이거 좋은거임?]

그 한마디에 에반젤린의 이성이 날아갔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절제쉑 인성ㅋㅋㅋㅋㅋ]

[진짜 절제쉑ㅋㅋㅋ]

[와 인성이 흉측하기 그지없네요. 오늘부터 에린 팬 합니다.]

[최근엔 에린 방송만 보면서 헛소리하는 놈들이 보이는데?]

“에나벨.”

그녀가 짧게 중얼거렸다.

동시에 저 한쪽 구석에 흔들의자에 누워 잠들어있던 에나벨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음산하게 그녀의 뒤로 다가왔다.

“절제 아저씨 찾아.”

에반젤린의 목소리엔 독기가 서려 있었다.

이후 에나벨이 조용히 스르륵 하고 사라져버렸다.

그림자에 스며들 듯 흩어진 것이다.

이후 그녀는 스마트폰을 조작하더니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꼭 써야 할 때만 쓰라고 했는데…… 지금이 꼭 써야 할 때가 아닐까…….”

그녀는 추가 과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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