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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190화 (1,190/1,559)

제 1190화

스트리머 절제 박승현은 살면서 여러 번 바다를 가본 경험이 있다.

어릴 땐 가족들과 갔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친구들과 모여 놀러 간 경험도 분명 존재했다.

해외여행도 단연 가본 경험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는 단언컨대 이렇게 예쁜 바다는 본 적이 없었다.

물욕이 없는 사람도 욕심이 생기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운 장소였다.

그가 아는 해변이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놀고 있는 광경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프라이빗 비치를 즐겨본 경험은 없었던 만큼 신기한 느낌이었다.

아름답고 넓은 바다.

속이 훤히 비치고 그 안엔 수많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해변가가 훤히 보이는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름다운 별장도 그러했다.

“크…….”

사실 그런 것들도 그런 것이지만 그의 시선을 가장 강하게 잡아끄는 것은 다름 아닌 레이나였다.

속된말로 레이나에게 한눈에 반해버린 그로썬 주홍빛의 수영복을 입은 채 헤엄을 치고 있는 레이나에게 시선이 완전해 빼앗겨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가슴이 두근거려본 적이 있던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견고했다.

절대 없다!

그는 지금 자신이 첫눈에 반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저씨.”

그때 그를 향해 누군가가 다가왔다.

하얀색의 수영복을 입은 에반젤린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귀여운 표정에 예쁜 외모. 눈이 확 돌아갈 만큼 아름다운 건 맞지만 느낌이 다르다고 느끼는 그였다.

“저기…… 아가씨.”

“네?”

“이제 괜찮아?”

“……네. 처음엔 화가 막 났는데. 파티도 즐겁고 해변에서 노는 것도 재밌네요. 이 이상 화내는 것도 우스운 것 같기도 하고.”

헤프게 웃는 그녀를 보며 절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티오니스 성자 정도 되니 이 정도 스케일로 노는 것이지 보통 이렇게까지 하는 경우는 잘 없으니 그도 당혹스럽긴 매한가지였다.

이유가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거야 그가 알 수 없는 요소일 뿐이다.

“그럼, 말이야.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

“네?”

“레이나 누님 말이야.”

레이나가 액면가와 다르게 절제 박승현보다 연상이라는 것을 안 뒤로 그가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그 질문에 에반젤린의 표정이 잠시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아저씨.”

“어…… 응?”

“레이나 언니는 남성 공포증을 앓고 있어요.”

이게 뭔 헛소리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에반젤린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 그럴 리가. 분명 대화도 잘했고, 겉보기엔 멀쩡…….”

“아저씨…… 거짓말 아니에요.”

거칠게 뛰던 승현의 가슴이 일순간 차갑게 식었다.

* * *

“쟤 너 보는 시선이 장난이 아닌데?”

썬배드에 누워 텀블러를 쪽쪽 빨고 있는 내게서 술 냄새를 맡았는지 레이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텀블러에 뭘 넣으신 거예요?”

“어? 열반주.”

“…….”

회랑의 영웅들이 취하기 위해 만든 독고준 최고의 술이 아니던가.

이 정도로 독한 술이 아니면 취기가 전혀 올라오지 않기에 내가 마실 수 있는 술은 이게 전부였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술 적당히 먹으세요. 안 그래도 에린이가 술 냄새난다고 싫어하던데.”

“괜찮아 냄새 지울 거니까.”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부분에 있었다.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고 에린의 은인인 절제 박승현이 레이나를 보는 시선이 심상찮다. 물론 그가 레이나에게 한눈에 반했다는걸 모를 정도도 아니었다.

“괜찮은 거 맞아? 네가 불편하면 내가 막아줄게.”

“아뇨. 괜찮아요.”

레이나가 약간 창백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누구도 몰랐을 사실이다.

프리아 여신의 힘을 이용해 내가 만들어낸 새로운 종족의 시초인 레이나가 남성 공포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말이다.

물론 중요한 상황에서 남성 공포증이 도져 사고를 칠순 없기에 그녀는 축복을 이용해 감정을 억누르곤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다.

“심각한 건 아니에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그것도 그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중에 정말로 위험해지면 그땐 특단의 조치를 들어갈 거야.”

“정말로 괜찮아요.”

레이나는 천족이라는 유일한 종족이다.

그리고 그녀는 인간을 벗어난 만큼 자신의 정신력 컨트롤에 필사적이었다.

본능적으로 선을 긋는 것이다.

남자로 인식하는 것과 남으로 인식하는 것.

멀리 떠나가는 레이나를 보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적과 싸우면서 상대가 남자라는 이유로 큰 사고가 터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복잡한 심경이었다. 실제로 그녀가 용사로서 활동할 당시 과격하거나 그녀를 음심 가득한 눈으로 보는 남성과 싸울 때 그녀는 애써 두려움을 억누르지만, 온전히 억누르지 못해 제 실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했을 때도 있었다.

그만큼 그녀는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왔다.

대상이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걸어온 것이다.

이성으로 보는 남자가 아닌 타 종족, 혹은 종족과 무관한 동료.

그 선을 강하게 긋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왔으니 겉으론 멀쩡해 보일 뿐이지 속으론 상당히 곪아있을 게 틀림없었다.

그것도 악몽이 레이나의 곁에 꼭 붙어있으니 완화된 것이지 처음 그녀가 내게 울며 호소할 땐 그런 문제도 터지기 직전이었다.

즉 레이나가 절제 박승현에게 잘 대해주는 건 남성 공포증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를 본능적으로 절대 이성으로 두지 않는 마인드 컨트롤 때문이었다.

남성 공포증이 있는 여성이 개나 고양이에게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는 것처럼.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묻고 싶지만, 레이나는 인간이 아니었기에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본인은 괜찮다고 하는데…….”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 당장은 혼자 있게 둬야지.”

레이나의 수명은 인간과 가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다.

어느 쪽이든 확신할 순 없지만, 그녀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면 차라리 그냥 두는 게 좋을 수도 있었다.

어디서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레이나가 박승현을 이성으로 보는 날이 올 수는 없을 터다.

그러고 보니 과거에 알고 지냈던 사람과 닮았다고 했던가.

비슷한 감에 동생처럼 대하는 건 사실이지만 박승현에겐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 * *

“헤헤…… 헤헤헤…….”

얼마나 크게 준비한 이벤트인지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이들이 놀러 왔다.

나중에는 알하자드를 포함하여 지구에 있는 현아나 코오나 등등 다수의 사람도 초대되었고 그렇게 하나하나 모이다 보니 해변가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셈이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에반젤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이제 누구도 못 가져가.”

그녀는 작은 상자를 별장 아래 동굴 보물고에 조심스레 가져다 놓은 채 헤프게 웃어 보였다.

알 수 없는 충족감.

알 수 없는 이 기쁨.

뭔가 내면에서 그녀가 모르던 무언가가 깨어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직은 이렇다 할 만한 물건이 없는 동굴이지만 언젠가는 그녀가 좋아하는 보물들이 이곳에 가득해지리라.

언젠가 찾아올 미래를 그리며 그녀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에린아 에린아! 이것도 에리니 보물이야?”

그때 그녀를 따라온 홍단이가 손에 무언가를 쥐고 쪼르르 달려와 에반젤린에게 내밀었다.

“응? 그게 뭐야 언니?”

에반젤린은 처음 보는 예쁜 보석이 그녀의 동굴 안에 있다는 것에 놀랐다.

“요기! 요기 많이 이써!”

홍단이는 한 손에 구슬을 쥐고 나머지 한 손으로 에반젤린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자 청단이가 똑같은 구슬 여러 개를 물속에 두고 구경하고 있는게 보였다.

“언니. 그거 뭐야?”

“으…… 으응? 처…… 청단이가 물에 넣은 거 아니야! 처음부터 있었서!”

당황한 청단이가 손사래를 치며 황급히 소리쳤다.

그리고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마…… 맞아! 물속에 처음부터 있었서!”

구슬이 있는 곳은 에반젤린이 만들어놓은 동굴 정원이었다.

연한 푸른빛이 환하게 비춰진 아름다운 연못에는 어떤 물고기도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마치 물고기의 알처럼 다수의 구슬이 담겨있었다.

“어? 이거 움직여!”

그때 홍단이가 손에 쥐고 있던 구슬이 까득까득 소리를 내며 경련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홍단이가 황급히 구슬을 물속에 담가 넣었다.

“호…… 홍단이는 그냥 쥐고 있었는데에…….”

자신이 건드리는 바람에 괜히 문제가 생긴 건가 싶어 당황한 그녀였지만 이내 울먹거리며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괘…… 괜찮아 언니. 이거 내 꺼 아니야. 나도 처음 보는 거야.”

“저…… 정말?”

“응, 내 꺼 아니야 언니.”

에반젤린은 다시 침묵하는 구슬을 말없이 노려보고는 홍단이를 알아들었다.

꿈틀거린 구슬은 물속에 들어가자 다시금 조용히 침묵했다.

“저게 대체 뭘까.”

“으응…… 알 같아!”

알.

에반젤린은 괜히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륀느와 유리아가 그녀를 이곳에 데려온 과정에서도 그놈의 알이 문제였다.

마물왕의 알을 훔쳐왔다더니 그 알이 폭발하면서 차원진이 일어났고 그 결과 이곳에 내던져졌으니 말이다.

‘괜히 건드리면 사고가 터질 수 있으니까 아빠한테 물어보자.’

생각을 정리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한테 물어보자. 언니.”

“그…… 그르까?”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끄덕이는 앙증맞은 모습에 에반젤린이 키득거렸다.

이렇게 보면 귀여운 동생 같은데. 가끔씩 어린 모습답지 않게 언니 같은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연못에 구슬 8개를 그냥 둔 채 별장으로 돌아온 에반젤린은 방에서 알하자드, 그리고 율리스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 데이비를 발견했다.

취할 생각은 없는지 평소보다 약한 술 냄새가 난다.

“윽…… 술 냄새.”

“헉! 에…… 에린아!”

놀란 데이비가 술병을 숨기지만 무슨 소용이랴.

“괜찮아요. 아빠 술 좋아하는 거 알아요.”

그 한마디에 데이비가 감격한 듯 에반젤린을 끌어안으려 하자 그녀가 한발 물러났다.

“아빠 술 냄새…….”

“윽…….”

“하하하. 완벽해 보이는 데이비도 육아는 쉽지 않은가 보네요.”

“내가 뭐 육아를 경험해볼 일이 있나.”

허탈하게 중얼거린 그가 에반젤린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다 놀았어?”

“아뇨. 그건 아닌데…… 보물고에 이상한 구슬 같은 게 있어서…….”

그녀의 말에 데이비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구슬? 무슨 구슬?”

“아빠도 몰라요? 이상하게 예쁜 구슬 8개 정도가 연못에 담겨있길래.”

“처음 듣는데. 어떻게 찾은 거야?”

“호…… 홍다니가 찾았어! 홍다니가!”

그때 뒤따라온 홍단이가 팔짝팔짝 뛰며 양팔을 뻗었다.

이에 데이비는 그녀를 안아 들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거기에 뭐 다른 게 들어갈 게 있나? 한번 볼까?”

“네.”

“그러자 그럼, 알하자드, 율리스. 잠깐만 갔다 오겠습니다.”

“천천히 다녀오세요.”

알하자드가 약주를 마시며 기분 좋게 웃어 보였고 율리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마시고 있겠습니다.”

“술 적당히 마시세요. 또 취하면 윈리한테 바가지 긁힌다.”

“하하하하…….”

애초에 데이비에게 물어보기 위해서 온 게 아니었던가.

에반젤린은 데이비를 데리고 그 알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오색의 빛을 가진 손보다 더 큰 달이 7개가 있었다.

“이거에요.”

“음? 이거 구슬이 아닌 거 같은데?”

“어?! 하나가 없서!”

그때였다.

청단이가 연못을 유심히 보더니 작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헤아리기 시작했다.

“호…… 홍다니가 들고 있던 구슬이 없어졌서!”

유일하게 색이 약간 변질되었던 구슬 하나가 사라졌음을 깨달음 청단이가 소리치자 홍단이가 당황해서 변명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야 홍다니가 가져간 거 아니야!”

“그치만 하나 없어졌어!”

울먹거리며 투닥거리는 두 쌍둥이를 보며 에반젤린도 이상함을 눈치챘다.

분명 구슬은 8개였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 7개뿐이었다.

“하나가 없어진 거 같은데요? 그보다 아빠. 이게 뭔지 알겠어요?”

“네가 가져온 건 아니라 이거지?”

“네. 처음 보는 거예요.”

그 말에 데이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상당한 에너지가 응축되어있는데. 이런 건 또 처음 보네. 알 같기도 하고.”

“또 차원진이 발생하는 건 아니겠죠?”

사라져버린 알에 대해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데이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힘은 없어. 아무리 벽이 약해져도 차원을 찢는 건 보통으론 불가능하지.”

괜히 차원전이가 가능한 게 일리나와 데이비만 있다고 하는 게 아니었다.

“일단은 여기 그냥 두자. 은은하게 에너지가 흘러나오는 걸 보면 마냥 나쁜 건 아닌 거 같다.”

사라진 알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건드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이에 에반젤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그들이 떠나고 연못 바깥에서 작은 무언가가 꾸물꾸물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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