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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191화 (1,191/1,559)

제 1191화

7개의 정체 모를 알 같은 것이 품고 있는 힘은 이전 륀느가 가져온 차원진을 일으킨 것과는 별개로 오묘한 힘만 느껴질 뿐 큰 영향력은 없어 보였다.

에반젤린이 떠난 이후 데이비와 페르세르크는 은은하게 빛나는 동굴의 연못을 바라보았다.

“일단 위험한 건 아닌 거 같은데.”

“너무 과보호야 데이비.”

“이번 차원진은 내가 일으킨 거지만 여긴 격리 차원이야. 사소한 부작용은 있을 수 있다고 했으니 신경은 써야지.”

홍단이는 저 정체 모를 무언가가 연못 밖에 있을 때 꿈틀거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말 단순한 돌멩이 같은 것과는 다르다는 뜻이리라.

“우선 결계라도 좀 쳐볼까?”

“제일 좋은 건 그냥 단순히 생물의 알이면 좋을진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기왕이면 집 지키는 용도로 쓸만한 게 태어나면 좋겠네.”

저 안에서 뭐가 나오건, 저게 무슨 일을 벌이건 옮기는 것보단 차라리 처음 있던 장소에 격리시키는 게 가장 좋으리라.

이중 삼중으로 주변에 결계를 쳐 접근과 외부로 나오는 것을 모두 차단시킨 데이비는 작게 변한 페르세르크를 어깨에 앉히고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당장 이렇다 할 변화는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 * *

늦은 시각까지 소소한 파티가 이어졌다.

복잡하고 절차가 있는 기존의 파티와 다르게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먹고 노는, 단순히 정치적 이유나 다른 이유는 다 내버려 둔 채 현 상황만을 즐기는 파티였다.

늦게까지 홍단이 청단이와 쏘다니며 이리저리 고기를 뜯고 사진을 찍는 등 즐겁게 논 에반젤린은 이제 그녀의 것이 된 별장의 가장 좋은 방에서 곤히 잠들었다.

평소 그녀가 쓰던 방 이상으로 고급스럽고 예쁘면서 그녀의 취향에 꼭 맞게 설계된 방이다.

게다가 이곳은 그녀가 보물고이자 자신만의 안식처, 혹은 보금자리로 확신한 레어가 있는 장소였다.

그 누구보다 이 장소가 그녀에게 편할 거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 때문일까.

에반젤린은 과격하게 논 것으로 인한 피로와 안도감. 그리고 낮에 있었던 황당한 몰래카메라 사건으로 인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잠들었다.

내일도 놀면 되지.

초대되어 온 사람들은 매일 있을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녀를 포함해 다수의 인원들은 이곳에서 적어도 사흘은 보낼 생각인 만큼 그녀는 꿈나라 속에서도 다음날은 뭐 하고 놀까 라는 희망찬 꿈까지 꾸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장 탈출해야 하는 무인도라는 이미지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폼에 안은 아빠를 꼭 닮은 인형을 품에 안은 채 그렇게 잠든 그녀의 곁으로 무언가가 천천히 다가왔다.

침대 바닥을 꾸물꾸물 기어온 그것은 이내 어두운 에반젤린의 방안에서 서서히 몸집을 불렸고 말없이 자는 에반젤린을 내려다보았다.

어두컴컴한 방안, 괴생명체는 이내 몸을 꾸물거리더니 이내 몸 안에서 오색빛의 촉수 한 가닥을 스르륵 뽑아냈고 이내 에반젤린에게 뻗었다.

이후 말없이 에반젤린의 뺨을 쓸어내린 존재는 천천히 다시 몸을 수축시켰다.

다음날.

에반젤린은 포근한 느낌을 받으며 품에 안긴 것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으으…….”

꿈을 꾸는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는 푹신푹신한 감촉을 더욱 느끼려는 듯 품에 안고 있던 것을 더욱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불현듯 잠이 깬 것처럼 천천히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눈을 떴다.

그리고, 이내 그녀가 끌어안고 있던 이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빠?”

놀랍게도 그녀가 끌어안고 자고 있던 것은 커다란 곰 인형이 아니라 그녀의 아빠, 데이비 올 라운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에반젤린을 품에 꼭 안은 채 곤히 잠들어있었다.

멍하니 그의 자는 얼굴을 보던 에반젤린은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그녀가 끌어안고 있던 것은 인형이었다.

하지만 그 인형은 그녀의 머리맡으로 쫓겨나 있었다.

이건 꿈이구나.

멍하니 생각한 그녀는 이내 해맑게 웃으며 더욱 파고들었다.

아빠 특유의 포근한 감촉이 느껴진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지 술 냄새도 나지 않았다.

사실은 좋아하면서, 사실은 그 누구보다 믿으면서.

그러면서도 매번 볼 때마다 부끄러움과 자의식이 강해 아빠 미워를 외쳐대던 그녀였지만 본심과는 조금 달랐다.

“헤헤 우리 아빠 잘생겼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데이비의 품 안에 더욱 파고든 그녀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덜컹!!!

그때였다.

갑작스런 큰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침실로 난입했다.

“허?”

익숙한 목소리.

짧은 탄성이었지만 잠결에 취해있던 에반젤린을 다시 정신 들게 하는 데엔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그녀에게 가장 익숙한 아빠의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어…… 음 이게 무슨 상황일까요? 서방님.”

뒤이어 에이리아의 목소리와…….

“꺄아! 꺄우!”

다리안의 옹알이도 들려왔다.

경악한 에반젤린이 눈을 부릅 뜬다.

동시에 정신이 멀쩡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소중하게 끌어안고 몸을 밀착시키고 있던 것은 당연히 아빠였다.

하지만 잘못을 들킨 것처럼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뒤쪽엔 엄마인 에이리아와 아빠인 데이비가 멍하니 자신을 보고 있는게 보였다.

자신이 아빠를 찾으며 어리광을 부리듯 품 안에 파고든 사실도 엄청나게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는데 그걸 다른 이들이 본 것도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가장 당혹스러운 건…….

“왜 아빠가 둘이야?”

그녀가 끌어안고 있는 것도 데이비. 그리고 뒤에 나타난 것도 데이비였다.

그녀는 물 흐르듯 자연스레 안고 있던 데이비의 품 안에서 몸을 스르륵 빼냈다.

그리고는 이불로 몸을 가리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빠가 둘이다.

그럴 리가.

그게 의도한 일이면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의 아빠가 이렇게 황당한 표정을 지을 리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꺅!”

비명을 지르며 뒤척이듯 잠든 데이비에게서 물러난 그녀가 혼란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런 요란스러움 때문일까.

에반젤린을 끌어안고 잠들어있던 데이비가 천천히 눈을 뜬다.

그 침묵 속에서 몸을 일으킨 데이비 올 라운은 눈앞에 있는 또 다른 자신과 에반젤린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에반젤린을 향해 해맑게 웃으며 다가와 끌어안으려 했다.

“으…… 으읏! 떨어져요! 아빠 미워!”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에반젤린이 그를 밀어내며 소리친다.

그러자 상처받은 강아지 같은 얼굴로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는 그였다.

괜히 미안해질 정도로 풀이 죽은 모습에 에반젤린이 어쩔 줄 몰라하던 찰나.

“에린아. 떨어져.”

화르르륵.

에이리아의 곁에 있던 데이비가 한 손에 검은 화염을 피워올렸다.

동시에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데이비의 형체가 꾸물거리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색이 갑자기 오색으로 흩어졌고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동글동글하고 탄력이 있는 무언가의 형태로 돌아온다.

그 모습을 본 에반젤린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스…… 슬라임?!”

반면 데이비와 에이리아는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프리아 님 맙소사.”

“레, 레인보우 슬라임?!”

놀란 두 사람의 반응을 보면 저게 뭔지 아는 듯한 모습이었다.

* * *

레인보우 슬라임.

기존의 슬라임과 다르게 극도로 친화력이 강한 슬라임으로 티오니스 대륙에서도 요정 취급받는 몬스터이기도 하다.

아니 정확히는 몬스터라고 구분되지 않는다.

“레인보우 슬라임은 여러 전설이 있어.”

일리나가 신기한 듯 레인보우 슬라임을 쭉쭉 늘어뜨렸다.

그러자 레인보우 슬라임은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꾸물럭 거리며 일리나의 손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아파하잖아요…….”

“하지만 손맛이 너무 좋은걸. 앗 차가라.”

갑작스러운 냉기에 놀란 일리나가 녀석을 놓자 녀석은 필사적으로 꾸물꾸물 기어가더니 이내 에반젤린의 무릎 위에 올라앉았다.

“그래서 전설이 뭔데요?”

“레인보우 슬라임을 만나면 1년 동안은 운이 좋다고 해. 그 외에도 혼기가 찬 여인이 레인보우 슬라임을 만나면 천생연분을 만난다든지. 사업을 시작했을 때 레인보우 슬라임을 만나면 사업이 번창한다던가. 하여튼 말은 많아. 귀족들 사이에서도 알음알음 퍼져 있는 전설이기도 하고.”

“아. 저도 수도원에 있을 때 들어본 적이 있어요. 레인보우 슬라임은 신의 사도라는 말도 있었죠.”

대신 그만큼 보기 힘든 희소종이라는 모양이었다.

몬스터라 불리면서 어떻게 이렇게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칭찬 일색이었다.

전설의 내용 또한 한없이 개연성이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으레 전설이 그러하듯 사실과 관련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런 것치고는 처음 듣는 기색인데?”

현아가 레인보우 슬라임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축축하고 형태가 금방금방 무너지면 조금 거부감이라도 들 것이다.

하지만 레인보우 슬라임은 말랑말랑하면서도 탄탄하여 그 형태가 뭉개지지 않고 귀여워 보였다.

“그런데 왜 그 레인보우 슬라임이 여기 있는 거죠?”

“음…….”

말없이 레인보우 슬라임을 바라보던 데이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어제 본 그게 설마 레인보우 슬라임의 알이었나?”

애초에 레인보우 슬라임은 데이비도 실물로 본 적은 없었다.

녀석들이 따르는 인간은 어떤 조건을 지니고 있어야 하거니와 그냥 찾으려 해도 정말로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잘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렇다 할 마나 파장을 지닌 것도 아니고 존재감도 희미해 사실 거의 산삼을 찾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레인보우 슬라임이 스스로 에반젤린을 찾아온 것이다.

“아무래도 아가씨를 많이 좋아하는 거 같은데요?”

말없이 레인보우 슬라임을 바라보며 손에 든 핫바를 먹던 유리아가 눈을 반짝였다.

“아가씨. 저거 조금만 떼서 먹어보면 안 될까요?”

“륀느가 새콤한 맛이 날 것 같은 생김새를 높게 평가.”

또라이 같은 미식연구회는 이 와중에 저 레인보우 슬라임의 맛은 어떨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다.

“얘 간지러워, 조금 떨어져.”

에반젤린이 간질거리는 감촉에 쿡쿡 웃으며 슬라임을 떼어내려 하자 녀석이 필사적으로 에반젤린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빠. 어떻게 해요?”

“어쩌긴. 위험한 녀석은 아니야. 오히려 좋은 쪽이니 괜찮을 거야.”

“그래도.”

“운이 좋다는 전설도 마냥 틀린 건 아니고, 널 많이 따르는 것 같은데 한번 키워봐.”

알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신생아 같은 슬라임이다.

에반젤린을 친구로 보는지 부모로 보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녀석은 에반젤린에게 굉장히 우호적이라는 사실을.

“다들…… 여기서 뭐 하세요?”

그때 사각 수영복을 입은 채 튜브 하나를 어깨에 짊어지고 모습을 드러낸 절제, 박승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처음 이곳에 초대받은 이후 조금 부담스러워하다가도 어제 술을 진탕 마시고 난 뒤로 꽤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슈르르르륵!!

갑자기 레인보우 슬라임 녀석이 빠르게 기어가더니 절제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파앙!!

“으억?!”

그대로 절제의 복부에 몸통박치기를 가하고는 푸쉭! 푸쉭 소리를 내고 다시 돌아와 에반젤린에게 착 달라붙었다.

“풉…….”

레이나의 웃음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런데 이 녀석 왜 네 모습으로 변해있었던 거지?”

그때 일리나가 궁금한 듯 슬라임 녀석을 보며 물었다.

“그러네. 왜 저 세발낙지 모습으로 변해있던 건데?”

새로운 생명체가 신기한지 현아가 레인보우 슬라임을 콕콕 찌르며 질문을 했다.

이에 데이비는 시선을 피했고 페르세르크는 피식 웃어 보였다.

“레인보우 슬라임이 대상에게 호감을 가질 때. 그 대상이 가장 좋아하는 이로 변하곤 하지. 아비에게 듣기만 들었지 실제로 본건 처음이다만. 레인보우 슬라임을 보았으니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려는 징조라 여겨야 할는지.”

그녀가 예쁘게 웃으며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

그 한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에반젤린에게 향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조금 전 나온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에반젤린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토록 격렬한 부끄러움을 느껴 본 적은 없었다.

에반젤린은 급기야 눈물까지 보이며 분한 듯 슬라임을 노려보았다.

“그럼 저 녀석이 그 연못에 있던 알에서 태어난 거라면 나머지 녀석들은?”

그 질문에 서로의 시선이 오갔다.

“데이비 님. 륀느가 레인보우 슬라임의 희소 식재를 요구.”

“헛소리 하지 마! 임마. 넌 행운을 불러다 주는 슬라임을 먹고 싶냐?”

타박 아닌 타박에 륀느가 우울하게 시선을 피해버렸다.

“이거 팔면 돈 되겠지? 우린 더 부자가 되는 거야!”

“아빠!!”

윗물이 흐린데 아랫물이 맑을까.

그도 결국 똑같은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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