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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02화 (1,202/1,559)

제 1202화

산적, 아니 산적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산적치고는 장비가 너무 좋았고,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듯 행동 하나하나가 절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 지금의 상황에선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단순한 산적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나차 제국의 비밀병기이자 제국의 고급 장비인 마나 구조를 흩트려 놓는 특수한 장비를 소수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레이나에겐 크게 효과가 없지만 방해하는 용도로는 충분했고, 그녀를 제외하고 그녀가 구하고자 하는 마차의 인원들을 상대하기엔 충분하고도 넘치는 전력이었다.

신성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새하얀 기검을 만들어내던 레이나는 말 그대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하지만 새하얀 빛의 날개가 일렁이는 듯 보이는 아지랑이는 이제 빛이 바랬다.

검붉은 안개가 그녀의 주변에 자욱하게 깔렸고 그녀가 만들어냈던 새하얀 기검은 검은색의 베이스에 피처럼 붉은 빛깔의 검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스산한 투기와 살기가 넘실거린다.

“도망…… 가.”

이윽고 자신을 억제하기 힘들어진 레이나가 비틀거리며 중얼거렸다.

마치 필사적으로 충동을 억누르듯 그녀가 비틀거렸다.

“제발 도망가!!”

그녀의 절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산적들은 쉬이 도망가지 않았다.

그들은 사실 산적의 탈을 쓴 나차 제국의 비밀 정규군. 그리고 그들의 임무는 레이나가 지키고 있는 저 마차의 인원들을 암살하는 것이었다.

침략당한 차원의 왕족.

명분 때문에 처리하긴 어려우나 그냥 두기엔 참 거슬리는 존재.

그렇기에 그들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반드시 저들을 죽여야 했다.

하지만 눈앞의 여자는 너무도 불길했다.

너무 신성했기에 그 신성한 존재가 마치 타락한 것처럼 검게 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섬뜩함에 온몸이 저릿저릿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서…… 어서!”

푸욱!!

이윽고 그녀가 만들어낸 허공에 뜬 기검 중 일부가 이기어검처럼 날아들어 두어 명을 관통한다.

이전처럼 깔끔한 공격이 아니었다.

경로상의 모든 것을 흉포하게 찢어놓았고 운이 좋게 목숨을 부지한 자들은 차라리 죽지 못해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꺽…… 꺼흑! 제발, 제발 죽여줘…….”

몸이 찢겨 나갔음에도 검은 안개 같은 것 때문인지 죽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는 그들을 보며 레이나가 눈물을 떨구었다.

제어되지 않는 힘이다.

그녀는 인간이 아닌 천족. 그녀가 모시는 존재의 상태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소속된 존재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말이다.

‘이대로는 피아 구분조차 불가능해져.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하지만 자신이 벗어나는 순간 뒤에 보호받고 있는 이들은 모두 참변을 당할 것이다.

그렇다고 남아있다간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자신을 억제하기가 힘들다.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게 죽일 이유도 없지만, 그녀가 방출하는 힘은 그런 제어가 전혀 불가능했다.

그저 닥치는 대로 찢고 죽지도 못하게 붙잡아둘 뿐이었다.

“으윽…… 끅!”

겁을 집어먹은 산적들은 도망쳐야 하나 그녀를 제압해야 하나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제발…… 부탁이야. 이 이상 가면 정말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필사적인 부탁에도 불구하고 산적들은 산적의 탈을 쓴 정규군이었다.

당연히 물러날 수가 없었다.

이에 레이나는 어쩔 수 없이 생각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이봐요. 도망가요.”

그녀는 곧 자신이 보호하는 이들만 빼내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빨리!!!”

그녀의 외침에 조금 전부터 이상함을 눈치챘던 이들은 황급히 마차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친다!! 잡아라!!”

당연히 산적들이 그들을 놓아줄 리 만무했지만 상관없었다.

스릉…… 푸푸푸푹!!

순식간에 허공에 떠올라 검 끝을 산적에게 일제히 겨눈 레이나가 억제하던 힘을 살짝 풀어버리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고깃덩어리로 만들어버렸으니 말이다.

“괴…… 괴물…….”

“괴물이야.”

발밑으로 검붉은 안개를 뿜어내며 비틀거리던 레이나가 붉게 변한 눈동자에 그들을 담았다.

“당신들이 택한 결과야.”

일정 범위 바깥으로 그들이 표적들이 도망친 그 순간.

레이나는 몸을 비틀거리며 한 발 내디뎠다.

스릉!!

동시에 허공에 뜬 검들이 마치 춤을 추듯 유영하기 시작한다.

감으론 알고 있었으나 데이비에게 배우면서 더욱 완벽해진 이기어검.

그 검의 춤이 다시금 시작되었다.

끄아아악!!!

아아악!! 살려줘!!

그리고, 제어가 풀려버린 레이나의 일방적인 도륙이 시작되었다.

수십에 달하던 산적 중 두 발 딛고 일어선 자는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되는 데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것조차 그녀가 최대한 억제한 것이었으나 미련하게도 산적의 탈을 쓴 그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반면 레이나의 몸에는 어떤 핏방울도 상처도 없었다.

너무도 고고한 죽음의 천사가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살벌하면서도 우아했다.

“끄륵…… 끅…… 주, 죽여줘…….”

차라리 고통 없이 보내줘야 한다.

레이나는 중간부터 생각을 고쳐먹었고 그중 일부는 운이 없게도 살아남아 끔찍한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눈물까지 흘리며 죽여달라 애원하는 산적두목을 보며 레이나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도 악인조차 죽이지 말라는 그런 허황된 입장을 가진 것은 아니었으나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게 죽일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페르세르크와 데이비가 사라져버린 지금에 있어서 그녀는 극도의 불안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제, 발…….”

숨이 넘어갈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부탁하는 그를 보며 레이나는 검게 변질된 기검을 들어 비척비척 걸었다.

아직은 괜찮다. 순간적으로 이성이 날아갈 뻔했지만, 자신이 종속된 존재. 프리아 여신이 아직 어떻게 되지는 않았는지 많이 약해진 참이었다.

아니 처음에 비해 갑자기 약해졌다.

“미안해요.”

한탄하듯 중얼거린 그녀는 이내 대장의 목에 기검을 꽂아 그의 숨통을 온전히 끊어주었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며 근처의 나무에 기대듯 주저앉은 뒤 중얼거렸다.

“어디 있어요. 나 무서워…….”

홀로 남겨진 그녀는 끔찍한 두려움에 점점 지배되고 있었다.

악몽도 이곳엔 없고 평소 그녀와 찰싹 달라붙어 있던 레인보우 슬라임도 어째서인지 이곳만큼은 오지 않으려 했기에 홀로 왔다.

그래도 데이비와 페르세르크가 언제든 뒤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감이 생겨났던 것인데 이렇게 된 이상 그녀는 혼자가 되었다.

과거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스스로 안식을 찾기가 무섭게 의존증이 생기다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 * *

어떤 일로도 무표정을 고수하던 프리아 여신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울고 있었다.

아니 표정은 그대로였으나 나는 어째서인지 알 것 같았다. 그녀가 지금 나를 두고 통곡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애초에 말도 해주지 않았으면서.

그런 어리석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본 미래나 거대한 운명의 흐름은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이 변수가 되기 때문이며, 피조물에게 있어서 자신의 미래를 보여준다는 것만큼이나 잔인한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여신님…….”

생각지도 못하게 그녀에게 뺨을 맞은 터라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느낌이었다.

아프냐 묻는다면 아프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가녀린 손찌검이라 아프다기보다는 간지러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울면서 내 뺨을 친 프리아 여신의 슬퍼하는 모습은 마치 부모의 속을 썩인 아이가 부모가 우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죄책감 같은 것과 비슷한 것을 느끼게 만들었다.

크리아네스 올 라운 국왕.

현재 나의 부친이 과거 소리 없이 울음을 삼켰을 때도 느낀 적 없던 죄책감이건만.

“흑…… 흐흑…….”

그때였다.

고개를 돌리자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연출된다.

나를 공격하기 위해왔던 위병과 근위대. 그리고 근위 기사들과 근위대장까지도.

자신이 왜 우는지도 모르는 채 프리아 여신을 보며 구슬프게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왜 눈물이 나는 거지?!”

그들조차 자신들의 상태를 이해할 수 없는 듯 보였다.

만물의 어머니.

부모가 울고 있는데 슬퍼하지 않는 자식은 없다 하였나.

나는 말 없이 프리아 여신을 바라보았다.

뭔가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렀던 머리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내가 방금 무슨 짓을 했더라?

방해가 된다고 황제의 머리통을 날려버렸고.

그를 위협한답시고 늘 하듯 하늘에 화이트 노바를 띄워놓고 하나를 떨어뜨린…….

“…….”

가만, 내가 이전에는 이렇게까지 했었나?

이질적인 무언가를 눈치챈 내가 비틀거렸다.

“운좋은인 줄 알아.”

싸늘하게 일갈한 나는 프리아 여신의 팔을 잡아끌었다.

“돌아가죠.”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곳을 벗어나 공간을 찢었다.

어디든 좋았다.

이곳만 아니면.

* * *

내 손에 끌려오다시피 한 프리아 여신은 만물을 창조한 창조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그녀는 그런 거창한 위명으로 불리기엔 너무도 미약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눈앞의 그녀는 진짜 프리아 여신이되 그저 만들어진 여신의 아바타 중 하나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자아를 가졌다곤 해도 감정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존재.

하지만 그런 그녀가 지금 울고 있다.

그녀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본 적이 있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고요한 계곡물을 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레이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잊어버린 채로 말이다.

“대체 내가 뭐가 변했다는 겁니까.”

내 질문에 그녀는 계곡의 위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자 옅은 빛가루들이 흩어지며 주변의 계곡물이 옅은 빛을 뿜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성수, 아니 신수로구나.

멍하니 그 모습을 보던 나는 그녀가 천천히 근처의 바위에 몸을 앉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그녀의 손짓이 움직이자 물줄기들이 솟아오르더니 허공에 글귀를 만들어냈다.

[스스로 생각해보렴.]

“솔직히 그냥 말해주면 좋겠는데요.”

[그렇게 되면 더는 방법이 없어.]

스스로 알아내는 수밖에.

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아니 사라지기 전 한마디를 더 남겼다.

[타나토스가 왜 악신이 되었는지. 한번 생각해보렴. 그리고…… 레이나 그 아이를 찾아. 네게 생긴 변화에 가장 민감한 건 그 아이니까.]

아리송한 말만 남기고 사라진 그녀이지만 그녀가 내게 이렇게까지 말해주는 게 얼마나 큰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녀는 아리송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힌트는 얼마든지 존재했다.

나차 제국의 황제에게서 도망친 블랙 슬라임이 같은 이유로 내게서도 도망쳤다.

내가 황제를 죽이고 근위대까지 죽이려 했을 때. 그녀는 끝내 눈물을 보이며 내 뺨을 쳤다.

마지막으로.

나는 신격을 얻은 존재였다.

…….

생각을 하던 나는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타나토스.”

지금 내 행보가.

방식과 정도가 다를 뿐 타나토스와 다를 게 없구나.

다른 점이라면 타나토스와 다르게 지금의 나는 제어할 수단이 프리아 여신에게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이런 행보를 보인 처음은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처음부터 경고했었던 건가?”

과도한 힘의 섭취는 사람을 바뀌게 한다.

정확히 어떤 기준인지는 몰라도 나는 나도 모르게 바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흐름을 주관한다.

그녀는 내 미래를 보았고,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기적을 일으켜 나를 밀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이것이라면 그녀가 슬퍼할 만도 했다.

“하…… 씨 그래서 지금 나보고 어쩌라고…….”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감성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이해할 수 없는 머리를 식혀야 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레이나를 찾자.”

어째서인지 프리아 여신은 레이나가 내게 크게 영향을 받을 거라고 말했다.

“설마. 이 여신이 천족의 종속권을 내게 넘겼던 건 아니겠지.”

그랬다면, 아니 그런 큰일을 벌였다면 내가 눈치챘어야 했다.

그게 가능하려면 그녀가 레이나를 천족으로 재각성시킬 때부터 그 종속권을 내게 주었어야 말이 맞았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프리아 여신의 신성력을 잘만 받아 쓰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 당시의 나는 신격조차 없던 상황이었으니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레이나와 이어진 끈을 이어붙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가 감지되지 않는다.

그녀가 죽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텐데.

고민하던 나는 이내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살아있다. 하지만 뭔가 문제가 생긴 건 분명해 보였다.

그녀는 일리나와 달리 홀로 차원을 넘을 힘이 없는 만큼 내가 반드시 찾아야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그때 누군가가 내 주변을 포위하듯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산적.

흔히 볼 수 있는 산적이다.

죽일까?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문득 내 스스로 뭔가 이질적인 것을 눈치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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