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19화
에반젤린의 레어는 한산하며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녀가 이곳에 들르는 경우는 보통 그녀의 기준에 정말로 마음에 드는 보물들을 레어에 보관하거나 홀로 바다를 구경하고 싶을 때 찾는 정도였지만 최근 들어 에반젤린이 자주 들르게 된 이유가 생겼다.
“검둥아! 나왔어!”
어깨 위에 레인보우 슬라임을 얹은 채 레어의 아래쪽에 위치한 빛나는 연못을 찾아온 그녀가 기분 좋은 듯 무언가를 부르자 어둠 속에서 검은 눈동자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통! 통!!
그리고는 에반젤린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헤헤. 잘 놀고 있었어?”
그 말에 녀석은 빠르게 몸을 끄덕거렸고 이내 에반젤린이 손에 든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네가 좋아하는 찹쌀떡이야.”
에반젤린이 블랙 슬라임을 발견한 건 사실 우연이었다. 에반젤린의 방에 가져다 놓은 찹쌀떡을 녀석이 날름날름 훔쳐 먹고 있는 모습을 그녀에게 들키면서 둘의 연이 깊어진 것이다.
고작 며칠이지만 그런 건 에반젤린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에반젤린이 건넨 찹쌀떡을 날름날름 먹어 치우던 녀석은 결국 한 통을 모조리 먹어 치우고 난 후에야 추욱 늘어지며 입을 쩍 벌렸다.
꺼억!
만족스러운 듯 녀석의 눈이 가늘어진다.
“맛있어?”
맹렬하게 몸을 끄덕이던 녀석이 에반젤린을 올려다보다 입을 벌렸다.
스르르륵…….
동시에 에반젤린의 몸 안에서 검은 기류가 빨려 나와 녀석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와……어깨가 결리던 게 사라졌네. 일부러 해 준 거야? 고마워!”
블랙 슬라임을 꼭 끌어안은 그녀가 헤실거리며 웃자 녀석은 만족스러운 듯 에반젤린의 품에 안겨 그녀의 손길을 만끽했다.
“그런데 낮에 어딜 갔던 거야? 갑자기 사라지더니.”
블랙 슬라임이 다시 차원 통로를 타고 나차 제국에 갔었던 사실을 아직 모르는 그녀였다.
몸을 기우뚱하는 블랙 슬라임을 바라보던 에반젤린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때. 잘 놀다 왔으면 됐지. 요즘 말이야. 지구에 소란이 많은 모양이야. 엄마가 당분간은 지구보단 여기 있으라는 거 있지.”
갑작스런 외부의 침입. 게이트의 몬스터와는 다른 존재들은 말은 할 수 있으나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모양이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그들은 정확히 유럽 전반부를 노리고 공격을 시작했고, 갑작스런 공격인 만큼 인적, 물적 피해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군대의 피해라면 말이 덜하겠지만 이들은 민간인조차 공격하는 잔혹성을 보였다.
“근데 이상하단 말이지, 절제 아저씨를 공격한 그 사람들과 같이 마나를 흩트리는 장비를 사용하는데. 그들의 힘은 군대의 화력이면 쉽게 밀리면 안 된단 말이야?”
블랙 슬라임을 꼭 끌어안은 채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어째서 군대가 밀리는 걸까.”
물론, 절대 나서지 말라는 일리나의 엄포가 있었던 만큼 에반젤린은 안타까워하면서도 굳이 나서지 않았다.
그때였다.
꿀럭…….
“응?”
꿀럭꿀럭꿀럭!
갑자기 몸을 경련하며 발작하는 블랙 슬라임의 모습에 에반젤린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검둥아! 왜 그래!”
자신이 준 찹쌀떡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깜짝 놀란 그녀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했지만, 녀석은 바닥에 내려선 채 전신을 경련하며 꿀럭꿀럭 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고양이가 토를 할 때와 같은 그 모습에 당황하길 잠시.
한참 동안 꿀럭거리던 블랙 슬라임이 검은 연기 같은 것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꺅?!”
깜짝 놀란 에반젤린이 주춤거려도 녀석은 그것을 토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엄청나게 괴로운 듯 그것을 토해내는 것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반대로 느껴지는 이상할 정도로 익숙한 기류에 에반젤린의 얼굴에 당혹성이 어렸다.
“이건…… 아빠의 힘인데? 너무 검어…….”
마치 독을 먹은 것처럼 계속해서 검은 것을 토해내는 족족 검은 기류들은 증발하듯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그런 블랙 슬라임을 에반젤린은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블랙 슬라임도 블랙 슬라임이지만 데이비에 대해 걱정이 서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 * *
평화롭던 소왕국을 순식간에 지옥 같은 차별이 존재하는 디스토피아로 만들어버린 존재.
나차의 황제 아브조르바는 좋든 싫든 여러 영향을 미쳤다.
악마에게 씌인 그는 나차제국을 다시없을 강대국으로 만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사태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일종의 급진적인 선민사상을 이용했다.
나차 제국민이 대부분 속한 인종이 이 세계의 중심이며 가장 순혈의 고귀한 핏줄이다.
그 외의 인종을 철저히 짓밟아 지배하에 두는 것으로 국가의 결속을 끌어올렸다.
그 때문일까.
그가 제국을 대놓고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나차 제국 내에선 여러 가지 진영이 대립하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일부에선 그런 의견이 나왔다.
대체 황제가 바란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폐하의 육신을 장악한 그 악마 놈이 바라는 게 대체 뭘까요.”
집행관 샤드란은 말석의 위치에 있기에 가장 자유로운 집행관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는 황제가 이상해졌을 때부터 틈틈이 조사를 해왔고, 그 모든 가설이 들어맞았음을 확인했을 때 뮤린 황녀에게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정보를 털어놓았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따스한 모습을 사랑했던 그녀에게 황제의 육신을 빼앗은 존재는 그야말로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 탓에 그녀는 나차 제국이 내부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음에도 토벌을 강행했다.
“샤드란은 아바마마의 육신을 훔친 그 망할 악마의 본체가 있는 곳이 이곳이라고 해요.”
그녀는 오래된 지도를 꺼내 들었다.
“여긴 어딥니까?”
“……이 대륙의 심장부. 이 대륙의 중심부죠. 본래 세계를 받치는 거목이 있는 곳이지만 전쟁이 시작되고부터 그곳에서 계속해서 끔찍한 오염이 시작되고 있다고 해요. 이 정도 오염을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이라면…… 그자밖에 없겠죠.”
그녀가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대륙의 심장부로 가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어요.”
그녀는 이 세계의 구조에 대해 내게 말했다.
자칫하면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각 대륙의 끝단에 위치한 세계석을 모조리 가동시키는 거죠. 그렇게 하면 중심부로 향하는 길이 열려요. 하지만 현재 세계석을 가동시킬 마나석과 인력이 거의 없어요. 그게 없으면 장막은 열리지 않아요.”
열쇠? 절단기가 있는데 자물쇠를 걱정하네.
“필요 없습니다. 부수고 들어가면 돼요.”
“아…… 안 돼요!”
깜짝 놀란 그녀가 허둥지둥하며 소리쳤다.
“그렇게 하면 이 대륙 전체가 부서질 거예요!”
못 부순다는 전제가 아니라 부서진 후의 문제를 거론하는 그녀였다.
“제가 도울 수 있어요. 나차제국에서 오랜 시간 비축해온 신수님의 광석. 그 광석들을 이용하면 대량의 마나석을 치환할 수 있어요. 또 필요한 인력은 저항군들의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그를 위해서 필요한 건 저항군들이 믿고 있는 슈네리아 영애의 협조를 받을 겁니다.”
“블랙 슬라임의 광석은 나차제국의 비밀병기 아닙니까?”
자신의 국가가 지닌 밑천을 털어놓겠다고 말하는 그 모습에 나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전쟁의 도구일 뿐이에요. 이 이상 저는 전쟁을 지속할 생각이 없어요. 모든 국가들을 해방하고, 그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사죄할 겁니다. 지금까지는 겁이 나서, 힘이 없어서 나서지 못했지만…….”
그녀가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바마마께서 자신을 막아주시길 바랐다면 저는 반드시 그 뜻을 이룰 겁니다.”
그녀의 생각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내가 그녀의 결정에 가타부타 말할 건 없었다.
“가실 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지간해선 적대하는 놈을 살려둘 생각이 없습니다. 혹시, 아버지의 육신에 미련이 남습니까?”
“아뇨. 아바마마께선 이미 돌아가셨어요. 집행관들은 성검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듯 보이지만 제가 보는 당신은 그런 성검 따위 필요 없어 보이시네요.”
“틀린 말은 아니죠.”
“……고마워요.”
그녀가 내게서 등을 돌렸다.
“마음 같아선 저도 따라가고 싶어요. 아바마마를 그런 전쟁에 미친 악귀로 만들어버린 그 괴물이 죽는 꼴을 반드시 보고 싶으니까요.”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시고자 하는 일은 쉽진 않을 겁니다. 까딱 잘못하면 황녀님이 단두대에 끌려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니까요.”
결과적으로 나차제국이 수많은 국가를 침탈한 건 사실이니 말이다.
“그건…… 제가 서서히 헤쳐 나가야 할 일이죠. 그 악귀를 토벌하는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게요. 필요한 게 있다면 집행관들을 통해 아낌없이 전달해주세요.”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말없이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본래 목적이었던 나차 제국과의 분란, 절제 박승현을 죽이려 들었던 자에 대한 징벌이 끝나면 남은 목적은 내 안에 생긴 이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이었다.
블랙 슬라임 덕에 큰불은 껐지만, 불씨 자체를 남겨놓는 건 위험한 행위였다.
그렇기에 더욱 세계의 중심부라는 곳에 관심이 갔다.
황제를 처리하는 것 이외에도, 대체 이 차원의 무엇이 나를 이렇게 자극하는지. 그곳에 가봐야 알 것 같았다.
직감에 가까운 것을 말이다.
“아…….”
그때였다.
갑작스레 그녀가 뭔가 떠오른 듯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저기 혹시…… 당신이 사는 세상은…… 일부다처제가 허용인가요?”
“뭐, 안 그런 사람도 많지만, 정치상 그렇게 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가 허겁지겁 자신의 말을 숨겼다.
“조심히 가세요.”
그녀는 내게서 등을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세계의 중심부라…… 제가 베헤모스 씨와 다녀올게요. 당신은…….”
“아니. 나도 간다.”
내 말에 레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괜찮으시겠어요?”
“안 괜찮으니까 오히려 가봐야 해. 아무래도 지금 내 꼴이 이런 게 이 차원과 관련이 있는 거 같으니까 한번 조사를 해봐야겠거든.”
[이봐 계약자. 그럼 저 멍청이는?]
나를 따라 걸어오던 베헤모스가 황궁 연못가에 앉아 꼬리를 담그고 있는 인어 소야를 가리켰다.
[저 멍청한 것은 싸울 줄 모른다. 가능하면 저 멍청이는 먼저 돌려보내라.]
“싫어요. 수호자님! 같이 갈 거예요!”
[저 빡대가리가!]
똑같은 것들끼리 잘하는 짓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여기 있어. 나중에 한꺼번에 돌려보내 줄 테니까.”
[헤헤 그래 주실래요? 그럼 저야 좋죠.]
소야의 말에 베헤모스가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더 이상 말하진 않았다.
“데이비 님.”
그때 저 멀리서 새하얀 성녀복을 입은 슈네리아 레켄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네가 여긴 왜?”
“황녀님에게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녀는 내 손을 꼭 잡은 뒤 신성력을 발현했다.
기적 말고는 딱히 힘을 발현하는걸 본 적이 없었던 그녀가 신성력을 쓴다는 건 제법 놀라운 일이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이런 것뿐이에요. 물론. 필요 없으시겠지만…….”
“아냐. 잘 쓸게.”
작은 신성력이라도 준다는데 넙죽 받아먹어야지.
나는 슈네리아를 바라보다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꾹꾹 눌러 쓰다듬었다.
“여긴 네 원수가 가득한 곳 아닌가?”
“바꿀 수 있어요. 증오는 언제까지고 증오를 낳는 법이니까요. 황녀님은 이 나라와 대륙을 바꾼다고 말했어요. 저는 그 말을 한번…… 믿어보려구요.”
성녀 후보라는 작자들은 기본적으로 이타적인 마음이 상당히 강한 편인 듯 보였다.
그 성격 까칠하고 자기밖에 모르던 전 성녀 후보 앨리스 대주교는 예외지만 리나 성녀 후보나 이오를 포함한 대부분 성녀들은 하나같이 이타심이 강했다.
“편한 대로 해.”
“준비 다 됐습니다.”
이윽고 저 멀리서 샤드란이 전투 사제의 성복을 입은 채 다가오는 게 보였다. 이에 슈네리아가 샤드란에게 조심스레 고개를 숙여 보이자 그가 그녀의 어깨를 잡아 세웠다.
그리고는 조용히 슈네리아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고개를 숙이지 마십시오, 황녀 저하께서 당신을 믿고 손을 잡았다면 응당 예를 취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개 집행관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현재 황녀 저하께서 국빈으로 지정하셨습니다. 여기 이분들과 같이요.”
처음 만났을 때 당장이라도 칼부림할 것 같은 모습이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달라진 대우에 슈네리아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샤드란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세계의 중심부로 향하는 길 안내는 제가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자고.”
“예. 비룡 기사단의 와이번들이 준비되어있으니…….”
“아. 그건 됐어.”
담담하게 말한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잘못한 놈이 벌을 받아야지.”
그 말과 함께 허공이 찢어지며 검은 흑룡이 모습을 드러낸다.
거대한 체격에 압도적인 위엄이 흘러넘치지만, 녀석은 내 눈치를 살피듯 슬금슬금 물러났다.
“최대한 빠르게 갈 거니까 머리 숙여.”
[계약자.]
“그것만 해주면 이번 일은 불문에 부칠게.”
[조…… 좋다!]
메가로드리아가 고개를 숙이자 베헤모스가 피식 웃었다.
[멍청한 놈. 어디 한번 그 잘나신 흑룡 놈을 타고 가보자고.]
[네놈에게만큼은 절대 멍청하다는 소리를 들을 생각이 없다!]
환수왕 중 가장 빡대가리라 불리는 베헤모스에게 놀림을 당한 것이 분했는지 메가로드리아가 순식간에 꼬리를 이용해 베헤모스의 목을 휘감았고 그대로 연못에 던져버렸다.
풍덩 소리와 함께 그대로 물에 빠져버린 녀석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를 드러낸다.
흉포하기 그지없고 수틀리면 제 주인에게도 이를 드러낼 정도로 본능만 가득하던 베헤모스와 지금의 베헤모스는 확실히 조금 달랐다.
본래 환수왕의 계약자였던 셰인 스크리프트가 아무리 가르쳐도 말을 들어 처먹질 않는 놈이라고 하던 것과 달리 지금의 베헤모스는 인어 소야와 함께 다닌 이후 놀라울 정도로 지능이 향상하고 있었다.
[죽고 싶나 보군.]
[그래. 어디 이번 기회에 환수왕 서열정리 한번 제대로 해보자꾸나.]
순식간에 싸움으로 번지려는 그때였다.
“둘 다 뒤질래?”
싸움은 참 싱겁게 끝났다.
“아 참.”
이윽고 메가로드리아에 올라타던 중 나는 샤드란에게 말했다.
“뭐 하실 말씀이라도?”
“너희 황녀, 진찰 제대로 해봐라. 부정맥 의심된다.”
“예?”
* * *
“이놈이 중심부로 향하는 모양입니다.”
영혼을 관리하는 영웅, 우치가 퀭한 얼굴로 프리아 여신을 찾았다.
“내가 웬만해선 별말 하기 싫은데. 대체 이런 신을 시험하는 차원은 왜 있는 겁니까.”
그 물음에 연못에 발을 담그고 발장난을 치던 프리아 여신이 아름다운 얼굴을 돌려 그를 응시했다.
아무리 비연으로 통수를 세게 후려쳤어도 우치에게 데이비는 제자이며 소중한 동생이었다.
그런 데이비가 이 꼴이 된 이유가 차원 자체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심기가 좋을 수가 없었다.
그의 그런 질문에 프리아 여신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그리고는 화면이 깨진 태블릿을 쾅쾅 내리치더니 멀쩡해진 화면을 들이밀었다.
[너무 단시간에 격이 상승했으니까.]
“만약 데이비가 실패하면요? 실패할까 걱정되어 당신이 그렇게 무리하게 뺨까지 때린 거 아닙니까?”
그의 물음에 프리아 여신은 담담하게 시선을 다시 연못으로 돌렸다.
[그 아이가 실패하면…….]
이윽고 태블릿PC가 파지직 소리를 내고는 이내 꺼져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입술이 달싹인다.
동시에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우치가 본능적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의 무릎은 언제부터였는지 바닥에 꿇려 있었다.
* * *
세계의 중심부.
대륙의 중심에 있는 거대한 대수림은 그야말로 세계의 심장부라 불러도 좋은 장소였다.
“여기가 세계의 중심부인가 보네요. 영 느낌이 좋지 않아요.”
그야말로 경이적인 속도로 대수림에 도착한 나는 이곳 전체에 깔린 경이적일 정도로 두꺼운 결계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단순히 반신의 영역 같은 수준이 아니었다.
이걸 만든 건…….
“프리아 여신.”
그녀를 제외한 그 누구도 이걸 부술 수 없으리라.
자신만만하게 부수고 들어간다 했지만, 금기나 포식의 힘으로도 이게 가능할지는 조금 미지수였다.
말없이 그것을 지켜보던 나를 향해 집행관 샤드란이 마공학 건틀릿을 장착하며 다가왔다.
“황녀 저하께서 각 지역의 인선들과 접촉하실 겁니다. 세계석을 가동시켜서 균열을 여는데 이틀 정도 걸릴 테니 지루하더라도 조금 기다려주세요.”
그 말에 나는 말없이 결계에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나를 찾아와라.]
생각지도 못한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뭐야.”
내가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결계 안에서 역겨운 황제의 기류도 옅게 느껴지지만 지금 목소리의 주인공이 내뱉는 울림은 그것과는 조금 별개의 영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를 찾아와라.]
다시 한번 들리는 목소리.
다른 이들에겐 들리지 않겠지만 내겐 명확하게 들렸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나는 알고 있다.
그 순간 흠칫 놀란 나를 레이나가 걱정스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