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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65화 (1,265/1,559)

제 1265화

“륀느, 만우절 아니다.”

나는 서늘하게 일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난이 심하지 않은가, 갓 태어난 막내의 몸에는 이상이 없었다. 성초를 이용해 녀석이 태생부터 지닌 마기의 제어 능력을 키워주었고, 태어나는 동안에도 혹여나 둘 모두에게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몰라 하나부터 끝까지 전부 체크했다.

그런데 갑자기 숨을 안 쉰다?

“데이비 님…….”

하지만 륀느는 그런 장난을 칠 여력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허겁지겁 내게 달려와 품에 안겨있던 막내를 보여주는 그녀의 행동에 나와 페르세르크의 얼굴이 동시에 창백해졌다.

그녀도 나도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아이 지금 숨을 쉬지 않고 있다.

“아…… 아아…….”

페르세르크의 얼굴엔 공포가 서렸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쥐어뜯을 듯 잡으며 미친 듯이 눈동자를 떨었다.

“데이비…… 데이비! 제발……!”

그녀가 당장 믿을 수 있는 건 나뿐이리라.

나 또한 이대로 그냥 흘러가게 둘 생각이 없었다.

갓난아기는 몸이 굉장히 약하기 때문에 자칫 조금만 힘이 가해져도 크게 다칠 수 있다.

이에 녀석의 상태를 점검하며 급한 대로 응급조치를 취하려던 찰나였다.

쓰읍! 파하!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던 막내가 갑자기 숨을 크게 들이쉰다.

잔뜩 묵직해진 분위기 속에서 긴장감이 팍 트이는 느낌이었다.

“아아…….”

숨을 쉰다는 것은 큰 고비가 지났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녀석이 스스로 회복했다는 것. 언 듯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반대로 보면 나는 이 일의 원인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막내의 몸은 건강했고, 영혼 쪽으로도 문제가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막내를 받아든 페르세르크의 얼굴은 한없이 창백했고 손은 파르르 떨렸다.

“데이비…… 어떻게 한 거야?”

일리나가 조심스레 묻는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그녀가 용기를 낸 것이다. 내게서 어떤 답을 들을지에 대해서.

“괜찮아.”

“응?”

“간혹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숨을 못 쉬는 경우가 있어. 이 녀석도 그런 케이스야. 걱정하지 마.”

내 말에 페르세르크는 걱정스레 막내를 바라보다 안도한 듯 눈을 감고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이 아이가 태어날 날만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이상 현상에 대해 그녀에게 말해줄 순 없었다.

애초에 지금 아이의 상태는 거짓말처럼 호전되어있으니, 괜한 말로 그녀의 심력을 더 쓰게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는데 조건이 까다로웠던 만큼 사실상 현재 가장 지치고 힘든 것은 페르세르크 본인이었을 테니.

지금은 확실하지 않아도 그녀가 더 이상 이 일에 신경을 쓰지 않게 하는 게 우선이리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가 제대로 진찰해볼게. 에오니샤. 그거 좀 빌리자.”

“아…… 여기요.”

커다란 밀차 위에 놓인 투명한 인큐베이터에 조심스레 아이를 눕혔다.

“임상실험은 충분히 거쳤어요. 아이의 몸에 부담이 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티아라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비. 아이에게 역시 문제가 있는 게야?”

그때 내 불안함을 눈치챈 것일까. 페르세르크가 어렵사리 물어왔다.

“아니야. 보통 아이가 태어나면 2주 정도는 병원에서 지켜보는 거랑 비슷해. 인큐베이터도 있으니 쓰는 것뿐이고.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보면 돼.”

내 말에 그제야 안심이 됐는지 페르세르크는 힘없이 웃은 뒤 기절하듯 잠들었다.

육신은 회복되었으나 정신은 그렇지 못했을 터. 곤히 잠든 그녀의 곁을 에이리아가 지키겠다고 말한 뒤 나는 자리를 비웠다.

* * *

육체적으로는 이상이 없다.

“거짓말했지?”

“음? 무슨 헛소리야.”

“데이비. 나 좀 볼래?”

나는 뒤따라온 일리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올곧은 시선으로 나를 똑바로 직시했다.

“거짓말했구나?”

반사적으로 내가 거짓말을 할 때 보이는 미세한 버릇을 그녀가 발견했는가 했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데 넌 거짓말하면 왠지 알겠더라.”

그렇게 말한 그녀는 인큐베이터에 잠든 막내를 보며 흐물흐물 녹아내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귀여워…… 엄마야. 막둥아…….”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잠들어있는 막내 녀석에게 말을 걸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뭐가 문젠데?”

“이유를 몰라. 지금은 괜찮은데. 조금 전에 숨을 안 쉰 원인이 안 보여.”

단순히 불치병의 수준이 아니었다. 이걸 의술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네가 모르는 것도 있어?”

“그러니 더 황당한 거 아니냐?”

오랜 시간 신의 히포크리아에게서 많은 의술을 배웠다. 단순히 있는 지식을 배우는 수준을 넘어 모르는 병을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해서도 오랜 알고리즘 자체를 습득했다.

그런데 지금 막내의 몸에서 일어난 이변은 그런 모든 알고리즘과 인과관계가 모조리 박살이 나 있었다.

“심각한 거 아니야?”

“꼭 나쁜 일이라고 단정 짓는 건 안 될 이야기이긴 한데…… 일단은 내가 좀 더 알아볼게. 그러니까 걱정 말고 기다려.”

내 말에 일리나는 우울한 얼굴로 막내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널 안 믿으면 누굴 믿어.”

“고맙다.”

옅게 지어지는 웃음에 그녀는 만족한 듯 인큐베이터의 표면을 쓸어내렸다.

“우리 막내. 힘내. 엄마가 기도할게.”

비록 피는 이어지지 않았어도. 그녀에겐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은 듯 보였다.

일리나가 떠난 이후 말없이 나는 인큐베이터를 연 뒤 막내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카락에 은빛이 옅게 섞여 있다.

언 듯 보면 새치처럼 보이지만 그 색이 새치라고 하기엔 너무 밝았다.

살짝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으스러질 정도로 작고 약한 아이의 모습에 숨이 가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손이 잘게 떨린다.

다리안과 에반젤린의 때도 그랬지만 내 자식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사실은 부모의 입장에서 엄청나게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아이가 아프거나 문제가 있을 때 부모의 입장에서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 수 있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튼튼했고 장난기도 많은 다리안과 에반젤린에 비하면 막내는 뭔가 문제점을 안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빠가 치료해줄게.”

고작 손가락 두 개 정도면 감쌀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아이의 손을 꼭 잡으며 나는 약속하듯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넌 아무 걱정 말고 건강하게만 자라면 돼.”

* * *

의술적인 문제로 뭔가 일이 생긴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외적인 요소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 스승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리라.

“어? 데이비.”

신의 영역. 회랑의 영웅들이 세계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권능과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이 영역에 도달했을 때. 나는 내 의술의 스승 신의 히포크리아를 만날 수 있었다.

“누님.”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누님은 잘 지냈습니까?”

정중한 물음에 그녀가 손을 뻗어 내 머리에 알밤을 먹였다.

“이제 애 아빠 됐다고 무게 잡는 거니? 내 눈에 너는 아직도 위태로운 꼬마인데.”

전력의 수준과는 별개로, 또 의술의 실력과는 별개로 그녀의 시선에선 난 아직 어리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뭔가 고민이 있는 거 같은데?”

“네. 있어요.”

어차피 신의 히포크리아에게 현 상황에 대한 자문을 구할 생각이었던 만큼 나는 이번에 태어난 막내와 그 막내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많은 경우를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단순히 숨을 안 쉬는 건 신생아들이 자주 보이는 현상이긴 하지만.”

“네가 보기엔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닌 거 같단 거지?”

“네.”

내 대답에 히포크리아는 옅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품을 끌어안은 뒤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잘 될 거야.”

“혹시 짚이는 곳은 없나요?”

“많이 소중하니?”

“제 아이가 소중하지 않으면 누가 소중하겠습니까.”

한때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부모의 부성애. 모성애가 짙다곤 하지만 그게 실제로 가능한가에 대해서 회의적이긴 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세상은 다르더라.

“아직 내가 네가 미숙하다고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야. 아직 이런 일은 겪어보지 못했으니.”

정답을 내놓지 않은 채 그녀는 그저 나를 다독였다. 평소라면 지금 이럴 시간이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입을 열지는 못했다.

지금 행동 하나하나가 그녀에게 하나의 배려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미안해. 어떤 도움이 되지 못해서.”

“아니에요.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누님의 밑에서 의술을 배운 게 수백 년입니다. 감도 안 잡히는데 환자를 보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크게 무언가가 나올 거라곤 생각지 않았어요.”

“그렇겠지. 나는 의술을 공부한 의학도 나부랭이일 뿐이지 신이 아니니까.”

신의 권능은 가지고 있겠지만.

“다만 데이비. 네 아이에 대해 잘 생각해봐.”

“예?”

“네 아이는 인간이니?”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말았다.

애초에 페르세르크는 인간이 아닌 마족. 뿔이 없다 해도 그녀의 근본적인 틀은 마족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마족의 피가 섞여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이에 내가 고민하고 있자 그녀는 한 가지 더 힌트를 던졌다.

“네 부인이 마족이니?”

“그야 당연하…… 아.”

말을 하던 내가 입을 다물었다.

근본적으로 틀린 전제였다.

심연의 여왕.

타나토스의 일면.

페르세르크는 그냥 마족이 아니었다.

“아무리 가짜 육신을 벗어나 환골탈태를 하며 그녀의 온전한 육신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녀는 마족이되 마족이 아니야. 타나토스가 사라지면서 심연의 힘은 사라졌지만, 페르세르크의 안에는 아직 그 잔재가 남아있을 거야.”

그녀의 근간을 이루는 것 중 하나일 테니 말이다.

실제로 심연이 사라진 이후에도 이실디가 살아있는 것과 비슷한 케이스였다.

막내는 인간과 마족의 혼혈이며, 인간과 심연의 혼혈이기도 했다.

“…….”

그녀의 힌트에 나는 한가지가 번뜩이는 느낌이 들었다.

“고마워요. 누님. 덕분에 길이 보이네요.”

막내를 마족과 인간의 혼혈이 아닌 인간과 마족, 그리고 페르세르크에게 옅게 남아있는 심연의 잔재와 모두 섞어 생각하면 답이 보일 것 같았다.

“그래. 그래야 내 제자답지. 그보다 여신님도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구나.”

그녀의 말에 내가 고개를 돌려 프리아 여신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 맨발을 사뿐사뿐 내디디며 내게 다가온 여신은 조용히 나를 올려다보다 손을 뻗어 가슴팍에 대었다.

동시에 내 복장이 변한다.

새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복장.

그 모습에 내가 멍하니 그녀를 보고 있자 그녀는 한 손으로 엄지를 치켜세운 뒤 태블릿을 보여주었다.

[좋아. 멋져.]

그리고는 이내 몸을 부르르 떤 뒤 한 손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여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내가 오랜 시간 정신학과도 공부했지만.”

히포크리아의 한마디는 내 생각과 정확히 일치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바쁜 여신을 보며 내가 물었다.

“우리 막내 이름 지어주신다면서요.”

그 말에 그녀가 잠시 멈칫하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뻐끔거렸다.

그 이름을 들은 나는 시선을 조용히 내리깐 채 그 이름을 조용히 뇌까렸다.

“아벨.”

그 후 그녀는 조용히 내 가슴팍을 밀며 말했다.

[그 이름에는 많은 무게가 서려 있어. 그 이름을 고를지 말지는 네 선택이니.]

걱정 말라는 듯한 그 태도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회랑을 벗어났다.

그리고 고요히 인큐베이터 안에 잠든 막내에게 다가간 뒤 말했다.

“막내야. 아벨이란 이름 좋니?”

당연히 그 질문에 막내가 대답할 리는 없었다.

신의 축복이 서린 이름이다. 막내에게 아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유래도 따지고 보면 괜찮으리라.

지구에서 흔히 알려져 있는 신화에서 나오는 최초의 인간 아벨. 그 이름의 유래라면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여러 면에서 고민해봐도 여신의 말대로 의미에 담긴 무게가 상당한 이점이 될 터.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건 지구가 아닌 티오니스 식 유래의 이름이었다.

난봉왕 아벨.

부인만 50명을 둔 희대의 호색 황제.

티오니스 역사서에서 오래전에 있었던 역사의 왕이다. 성군이냐 폭군이냐 놓고 본다면 성군 쪽에 가깝다.

그의 업적은 티오니스 인류 역사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 존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의 행보는 굉장히 기행적이기도 했다.

어느 쪽의 이름이든 여신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라면 이 아이의 미래에 어떤 필연적인 요소가 따라붙을지도 몰랐다.

“아무리 그래도 아빠는 네가 이 여자 저 여자 후리고 다니는 꼴은 못 볼 거 같다. 너는 몰라도 반려들은 너만을 기다리며 피눈물을 흘리겠지?”

정말 네가 자라서 그런 짓을 저지르면 나는 네 다리를 분질러버릴 거 같구나.

물론, 티오니스 역사서에 있는 난봉왕 아벨과 같은 이름을 쓴다고 하여 지금 우리 막내가 그와 같은 행보를 걷는다는 건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기분이 묘한 것도 사실이었다.

결정은 나중에 할 일이다. 이후 나는 세계수에게 연결된 아티펙트를 이용해 이실디를 호출했다.

조금 바보 같긴 하지만 지금 아이의 상태가 괜찮은지 아닌지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건 이실디가 제일 제격이리라.

그렇게 이실디를 호출했건만, 정작 이실디 뿐만이 아닌 베르단데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기는 전해 들었는데. 이 꼬맹이야?”

이실디가 천천히 다가와 인큐베이터 안에 잠든 막내를 바라보다 입을 헤 벌렸다.

“너무 귀여워…….”

그리고는 내 부탁은 개무시한 채 아이를 보며 흐물흐물 녹아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도 아기 가지고 싶네.”

한껏 풀어진 그 미소에 내가 짜증을 내며 물었다.

“그래서. 네가 보기엔 어떤 거 같냐.”

“어떻냐니. 별문제 없어 보이는데?”

“좀 자세하게 확인해봐라.”

내가 다시 그녀를 재촉하자 그녀는 조용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딱히 이상한 건 없는데?”

“뭐?”

“말 그대로야. 이건 심연의 힘 쪽 문제도 아니야. 저 아이가 가지고 있는 다른 가능성 쪽이겠지.”

확인하듯 베르단데에게 시선을 보내자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려하는 심연의 힘 같은 건 이제 없어. 다만, 신기하긴 하네. 마치 이 아이가 어딘가에 있는 뭔가와 공명하고 있는 느낌이라.”

지금이야 멀쩡해졌지만,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괜찮다는 거야 안 괜찮다는 거야.”

“결론만 놓고 보면 문제는 없어. 괜찮아 보이네.”

그거면 충분했다. 다급한 일은 아니라는 뜻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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