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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72화 (1,272/1,559)

제 1272화

요시아는 피에 관해선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혈향을 구분하거나 맡는 것에 한해선 데이비 이상의 감지능력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그런 그녀는 코오나에게서 나던 피 냄새에서 너무 기시감이 느껴졌다.

분명 그녀에게서 나던 혈향은 뱀파이어만이 느낄 수 있는 인간의 향과 동일했다.

즉, 그 피 냄새가 그녀의 피 냄새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다시 맡아보았을 땐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착각이라 여겼지만 묘하게 찜찜한 구석은 분명 존재했다.

그래서 코오나에게 그 손수건이 있던 장소를 알려달라고 하였다.

다만. 그곳에서 유용한 대답을 얻진 못했다. 아주 옅게 흔적이 남은 것 같지만 두 뱀파이어의 코에도 거의 감지가 안될 정도로 옅은 흔적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며 그곳을 떠나려던 찰나.

-우아아아앙!!

갑작스런 아기의 울음소리에 흠칫 놀란 그녀가 그대로 몸을 날려 창문에 올라섰다.

그곳에는 에이리아와 일리나가 손에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아벨을 진정시키며 치료하고 있었다.

“아벨!”

깜짝 놀란 요시아가 후다닥 들어섰다. 데이비의 집무실도 아니고 페르세르크의 방이다.

노크 없이 진입하는 게 예의는 아니지만 그걸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모르겠어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더니 손에서 피가…… 정령으로도 치료가 안 돼서…….”

그 말에 요시아는 황급히 아벨을 받아들고 환부를 확인했다.

마치 베인 것처럼 난 상처에는 울컥울컥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가 볼게요.”

물의 정령으로도 치료가 안 된다면 이건 그냥 일반적인 상처가 아니었다.

아벨의 울음 때문인지 다리안도 덩달아 엉엉 울고 있어서 굉장히 시끄러웠지만, 요시아는 진지한 얼굴로 아벨의 팔에 손을 올렸다.

동시에 그녀의 눈이 붉게 변하며 뱀파이어 로드로서의 힘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뱀파이어의 가장 큰 장기는 피를 다루는 힘. 비록 아벨이 태생부터 엄청난 힘을 품고 태어났다곤 해도 아직 자신의 힘조차 제어 못 하는 아이에 불과했다.

“으읍!”

그녀가 아벨의 피를 제어하여 출혈을 멈추려 하자 녀석의 몸 안에 있던 힘이 멋대로 날뛰며 요시아의 정신을 뒤흔들어놓았다.

“그만! 놓으세요! 그러다가 다쳐요!”

새하얀 신력과 검은 마기가 요시아를 휘젓기 시작하자 에이리아가 당황하며 그녀를 말렸다.

하지만 요시아는 마치 넋이 나간 것처럼 집중하며 아벨의 상처를 틀어막았다.

계속해서 울컥울컥 나오던 피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다시 아벨의 몸속으로 들어갔고, 이내 옅은 막 같은 것이 생겨나며 환부를 뒤덮었다.

이후 그녀는 익숙하게 약을 바른 뒤 붕대를 감았다.

“후우…… 하아…….”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아벨을 끌어안은 채 주저앉아버리는 요시아의 표정에 헛웃음이 어렸다.

“고마워요. 요시아.”

“어떻게 된 거예요?”

“그게……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다는 말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 말뜻을 이해하는 데엔 많은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잘 자고 있던 아이의 팔에서 갑자기 상처가 났다는 것이었다. 마치 칼에 베인 듯 날카롭게 난 상처에 아이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잠에서 깨어났고 이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그게 무슨…….”

다리안도 그런 경우지만 아벨 또한 데이비가 세심하게 방어마법을 걸어놓았다.

어지간한 일로는 상처가 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 아이가 상처가 났으니 혹시 데이비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나라는 의심이 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의문은 곧 풍겨오는 짙은 혈향에 멈춰졌다.

갑자기 표정을 굳히고 가만히 있는 요시아의 상태에 일리나와 에이리아 그리고 코오나까지 의아해하던 찰나.

“설마…….”

요시아가 눈을 부릅 뜨더니 근처에 있던 과도를 들었다.

“지금 뭐하시는…….”

“피…… 피 좀 빌려줘요.”

뜬금없는 요구에 코오나가 당황했다.

“피요?”

“네. 중요한 문제에요. 한 방울이면 되니까.”

그렇게 말하며 과도를 건네주자 코오나는 의아해하면서도 칼을 받았다.

그리고는 손끝을 살짝 찔러 피를 한 방울 머금었다.

이에 요시아는 손을 뻗어 그 핏방울을 허공으로 띄웠다.

그리고 아벨이 흘린 피에도 손을 뻗어 허공에 들어 올린 뒤 눈을 감았다가 뜨며 중얼거렸다.

[베르마르트루즈]

고혹적인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끝에서 붉은 기류가 모여든다

동시에 그녀가 띄워둔 코오나와 아벨의 핏방울이 섞이더니 그 위로 요시아의 힘이 덧씌워졌다.

“…….”

요시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슨 일이에요. 대체 왜…….”

에이리아가 조심스레 묻자 요시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냄새. 분명해.”

그녀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말려야 해요! 그 사람 죽이면 안 돼!”

그녀가 황급히 소리 질렀다.

그것이 전말이었다.

* * *

자신이 착각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벨의 팔에서 흘러나온 피 냄새를 맡았을 때. 요시아는 본능적으로 어떤 가설을 떠올렸다.

“그 손수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벨과 코오나 씨의 피가 섞여 있어요.”

“아벨의 피?”

놀란 일리나의 물음에 요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처음엔 코오나 씨의 피가 아닌 줄 착각했어요. 비슷하긴 한데 미묘하게 달랐거든요.”

그녀는 자신이 알아낸 것들을 모두 알려주었다.

그 손수건에서 느껴지던 독특한 피의 향. 그것은 코오나의 짙은 피와 아벨의 피가 소량 섞여 있었다.

“단순히 섞인 정도면 저는 구분했을 거예요. 하지만. 여기 제 마법이 더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대체 언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뱀파이어 로드의 마법은 분명 그녀의 것이었다.

자신의 마법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마법?”

“보존이요. 피가 절대 사라지지 않는 마법.”

손수건이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었다고 했다. 비록 말랐다곤 하나 아마 그냥 두었으면 무슨 짓을 해도 피가 지워지지 않았으리라.

약간 변질된 피에 특수한 마법으로 코팅이 되어있으니 착각할만한 일이다.

만약 그녀가 완숙한 뱀파이어 로드였다면 바로 알아봤겠지만, 아직 그녀는 미숙한 로드였다.

“그럼 당신이 직접 했다는 건가요?”

코오나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했으면 기억 못 할 리가 없죠. 실제로 두 사람의 피도 조금 달라요. 마법을 제외하고도 그때 느낀 향은 지금의 피보다 조금 변해 있었어요. 간단히 말하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을 때 느껴지는 피의 변화 정도죠. 못 알아볼 건 아닌데. 마법이 섞이니까 다른 향이 느껴졌던 거에요.”

요시아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자세한 내막은 몰라요. 하지만 선생님이 죽이러 간 그자는 분명 아벨과 코오나 씨 두 사람과 관련이 있어요. 그리고 저도.”

“그걸 확신할 수는…….”

“제 예상인데요. 전에 선생님이 시간을 한 번 비튼 적이 있죠?”

“아…… 설마.”

“그 괴한. 아벨이 아니었을까요?”

만약 그가 아벨이 맞다면.

지금 데이비는 자신의 아들을 죽이러 간 것이었다.

“그건 말이 안 되는데. 그럼 아벨이 지금 페르 언니의 정체를 타국에 까발렸다는 건데 그게 무슨…….”

“정확한 사정을 알기 전에 속단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아벨이 맞다면 반드시 말려야 한다.

지금 데이비는 제 아들을 제 손으로 죽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설사 그 괴한이 아벨이 아니라 할지라도 손수건에 대해 알아봐야 할 게 많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연락할 수단이 없는데…… 일리나 언니…….”

“불가능해. 난 차원을 찢는 거지. 데이비처럼 정확한 경로를 계산할 수 없어.”

창백해진 얼굴로 일리나가 대답했다.

“서방님은 그를 죽여버리겠다고 했어요. 그럼…….”

“아비가 아들을 죽이려 하고 있다는 거잖아 지금.”

주변 분위기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무거워졌다.

“일단 내가 얼른 가볼게! 메가로드리아!!”

일리나가 창문을 열며 소리치기가 무섭게 저 멀리서 거대한 체격을 지닌 흑룡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에 일리나는 메가로드리아를 타고 빠르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남게 된 에이리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저앉아 기도할 뿐이었다.

“제발…… 제발.”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은 기적이었지만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제발 데이비가 그를 죽이지 않기를.

* * *

콰아앙!!!

순식간에 일어난 8서클 마법 프로메테우스가 나를 향해 날아든다.

8서클 화염 마법 프로메테우스. 독자적인 마법에 가까운 만큼 내가 알려주지 않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눈앞의 괴한은 내게서 도망치기 위해 8서클 화염 마법 프로메테우스까지 일으켰다.

비록 내가 사용하는 마법에 비해 상당히 부족한 점이 없잖아 있지만

이놈은 상당히 꺼림칙한 구석이 있었다.

여기서 살려두면 곤란하겠다.

조금 전까지는 적당히 손속에 사정을 두었지만, 뭐가 되었건 이놈을 그냥 살려두면 안 된다는 강렬한 충동이 일었다.

어째서인지는 나도 몰랐다.

콰아앙!!

마법을 이용해 주변을 파괴하고 내게서 빠르게 멀어지는 놈에게 접근한다.

반사적으로 견고한 방어마법을 펼치는 그였지만 내 손에는 이미 방어를 파괴하는 무기. 코로나 디스트로이어가 쥐어져 있었다.

쩌어엉!!!

“쿨럭?!”

정확한 결을 따라 후려치니 그가 마나가 역류된 듯 피를 울컥 토하며 비틀거렸다.

거기에 나는 자비를 두지 않고 두 번 세 번 마저 후려쳐 그의 방어를 파괴해버렸다.

자신의 방어마법이 박살 난 것에 당황한 그가 급히 검붉은 검을 빼 들어 나를 견제하기 위해 찔러 들어왔다.

스카앙!!

스산한 금속음이 울려 퍼지며 정확히 내가 움직이려던 장소에 파고들었다.

검 실력도 제법이다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나가 그를 맹렬하게 몰아붙일수록 그는 넝마가 사라질세라 필사적으로 버티며 공격들을 피하고 쳐냈다.

하지만 한 번 한 번이 피하기 어려운 공격이었던 만큼 그에게는 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본진 비었다.”

나는 비어버린 그의 복부에 정확히 신창 롱기누스의 끝을 겨누고 경고했다.

이곳은 타국인만큼 내가 날뛰면 외교적으로 문제가 생길 테지만 조금 전부터 느껴지는 극심한 충동은 그런 것을 생각지 못하게 했다.

위기에 놓인 그의 핏발이 선 눈이 부릅 뜨여진다.

[팔라디아식 행성분열창]

[외핵 적출]

일점에 모인 엄청난 찌르기가 그의 심장을 향해 빠르게 파고들었다.

까득!

카아아앙!!

그 순간 들려온 소리는 이가 부러질 듯 강하게 갈리는 소리와 금속음이었다.

“…….”

내게서 튕겨 나간 그가 수차례 바닥을 구르고 벽면에 처박혔다.

내게서 필사적으로 지키던 넝마는 찢겨진 후였다.

그동안 어떻게든 지켜왔으나 조금 전의 공격까지 넝마를 지켜내며 받아낼 수 없다고 판단한 듯 보였다.

그렇다고 해도 놀라울 정도의 수준이었다.

대체 그는 누구인가.

나는 곧 넝마가 찢어지면서 드러난 그의 얼굴을 시야에 담았다.

한쪽 눈은 안대를 하고 있었고 머리는 새하얀 빛을 띠고 있었다.

몸 곳곳이 갈라진 듯 흉터가 드러나 있었으나 전체적인 생김새는 굉장히 미형의 청년이었다.

젊은 놈이 이 정도의 마나를 가지고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기 그지없다.

“하아…… 쿨럭!! 쿨럭쿨럭!!”

치명상은 피했으나 그 과정에서 받은 충격이 상당했던 것일까.

피를 울컥울컥 토해내며 고통스럽게 기침을 하는 그가 무너져 내린다.

내가 손대기 전부터 이미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환자를 몰아붙이는 건 내 선서에 어긋나는데.

머릿속에서 악마가 속삭인다.

-네 부인인 페르세르크를 위험하게 만들뻔한 놈이다. 당장 찢어 죽여.

마치 나를 유혹하는듯한 목소리에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이번엔 반대편에서 천사가 속삭인다.

-그걸로 안돼. 아주 찢어발겨 버려.

결정은 신중하고 행동은 신속하게.

나는 몸을 추스르지 못한 채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향해 언월도 형태의 신창 롱기누스를 겨누었다.

그리고 말했다.

“남길 말.”

길게 말하진 않았지만, 유언을 남기라는 말이라는걸 모를 리 없었다.

내 경고에 그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거의 다됐는데…….”

그놈도 유언 참 간결하네.

나는 자세를 다잡으며 몸을 살짝 숙였다. 이에 그가 긴장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해방!!”

동시에 그의 검에서 막대한 힘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며 그의 육신에 부하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재고 따질 상황이 아님을 깨달았는지 그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허억…… 허억…….”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나를 노려보는 그의 검 끝이 흔들린다.

“조금 전부터 이상하게 살기가 없는데.”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반드시 그를 죽여야 한다는 충동에 다시 휩싸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몸이 먼저 움직였다.

터엉!!

그의 검과 내 신창이 충돌한다.

그는 놀라울 정도의 임기응변을 보여주며 내 공격을 받아냈다.

그리고 완전히 받아내지 못하는 것은 최소한의 피해로 받아내며 내 공격을 쳐내고 거리를 벌리려 들었다.

계속해서 도망을 가려 하는 그 행동에 점점 손속이 거칠어진 탓일까.

사방에 그와의 싸움으로 엄청난 피해가 일어나고 있었다.

당연히 다수의 시선에 내가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머…… 멈춰…….”

카가가각!!

그가 필사적으로 내 공격을 받아내며 목소리를 쥐어짜지만 나는 더욱 그를 몰아붙였다.

“하나만 묻지. 페르세르크에 대한 소문을 퍼뜨린 건 네가 맞겠지?”

“…….”

“그래. 물어서 뭣하나. 현장에서 상황을 잡아냈는데.”

애초에 그놈이 페르세르크에 대한 정보를 길드에 뿌리는 걸 들었던 만큼 이미 그를 죽인다는 결정에 번복은 없었다.

왜 그랬는지 묻지는 않았다.

해방이라는 언령과 동시에 그의 힘이 전보다 훨씬 강해지긴 했지만 크게 위협적이진 않았다.

인간에겐 재앙에 가까운 힘일지라도 내게는 그리 치명적인 힘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이윽고 공격을 힘겹게 피해내던 그의 검이 내 페이크에 말려 튕겨 나간다.

서걱!! 촤아아악!!!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그의 팔 한쪽이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동시에 찢겨진 그의 옷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피가 묻은 손수건.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 속에서 손수건의 끝에 얼룩덜룩한 피가 묻은 K.R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코오나가 돌려주었던 손수건이었다.

그는 팔이 잘려나간 상황에서도 손수건을 보고 미련하게 다시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내 공격을 받아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날려 손수건을 잡아채려 했다.

촤아악!!

당연히 그런 무리수는 그에게 큰 치명상을 남겼다.

롱기누스의 창날에 그의 몸이 크게 베이며 지독한 혈향이 퍼져나갔다.

“끄아아아아악!! 쿨럭. 끄윽!!”

고통 어린 비명을 억누르며 바닥을 구른 그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쓰러진 채 일어서지도 못하고 버둥거리는 그를 향해 점프한 나는 그대로 그를 내리찍듯 제압한 뒤 목에 롱기누스를 겨누었다.

빨리 목을 찔러.

그런 충동에 따라 내가 창을 내 찌르려던 그 순간이었다.

터억…….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벨?”

당황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내 머릿속을 휘젓던 충동이 일순간 흩어졌다.

“끄으윽…… 쿨럭…….”

고통스레 기침을 토해내는 그를 제압한 채 내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이나와 페르세르크가 서있는게 보였다.

페르세르크는 눈을 크게 뜬 채 마치 홀린 것처럼 중얼거렸다.

“아벨…… 인 게야?”

뭔 소리야. 이놈이 왜 아벨이야.

내가 황당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벨은 아직 눈조차 뜨지 못하는 갓난아기. 그렇기에 그녀의 말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페르세르크는 휘청거리며 천천히 다가와 내 아래에 깔린 그의 얼굴을 똑바로 직시했다.

확실히 생김새는 나와 닮았지만, 아벨처럼 검은 머리카락도 아니었다.

바닥에 주저앉아버린 페르세르크가 다시 물었다.

“아벨…….”

헛소리 그만하고 물러나라. 이놈은 위험하다. 그렇게 말하려던 그 순간.

놈의 입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흐읍…… 끄흑…… 흐으윽!”

끔찍한 설움이 서린 울음소리였다.

이에 놀란 내가 다시 놈에게 시선을 돌리자 놈은 만신창이가 된 몸에 한쪽만 남은 팔로 자신의 한쪽 눈을 가린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억지로 울음을 참으려는 그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진짜…… 아벨이냐?”

내 물음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 것 같았다. 내가 제압한 이놈이 페르세르크와 나 사이에서 어렵게 태어난 유일한 아들, 아벨 올 라운이 맞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였다.

막대한 에너지가 그를 휘감기 시작한다.

“끄윽…… 끄아아아아악!!!”

마치 불순물인 그를 제거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그의 육신에 부하를 일으키는 이 힘은 분명 세계의 법칙이었다.

프리아 여신의 일면.

규칙 그 자체며 융통성이라곤 1도 없는 존재.

세계의 법칙이 그의 존재를 비틀어 으깨려 들자 페르세르크가 소리쳤다.

“데이비!!”

“물러나.”

이에 나는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태초의 포식자의 힘을 일으켰다.

세계의 법칙에 일면 간섭할 수 있는 힘이었다.

놈을 감싸고 으깨듯 짓누르는 그 힘을 잡아챈 나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뜯어 부수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내 육신이 변하며 중성 형태의 신체로 변했지만 상관없었다.

이 녀석이 아벨이 맞다면. 이대로 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막대한 반발력이 나를 저지했지만 나는 더욱더 힘을 끌어내 그를 붕괴시키는 힘을 뜯어냈다.

“망할!”

콰지직!!

이윽고 욕지기를 토해내며 힘을 완전히 뜯어내 버린 나는 기절하듯 눈을 감고 있는데 녀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페르세르크. 아벨이라니 무슨 말이야.”

“……몰라. 모르는 게야…….”

페르세르크는 눈물이 고인 얼굴로 나를 향해 말했다.

“한데 어찌해. 보자마자 아벨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을…….”

아무리 모성애가 짙다고 해도 다 큰 아들을 한눈에 알아볼 정도였는가.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치직…… 치직…….

그제야 연결이 되었는지 아티펙트에서 제멋대로 요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그를 죽이면 안 돼요! 절대로!! 정체가 뭔진 모르겠지만 아벨과 코오나 씨와 관련된 게 틀림없어요! 제 힘도!]

문득 나는 내가 베어버린 녀석의 한쪽 팔이 나뒹구는 모습을 볼수있었다.

팔을 베어버렸다.

페르세르크의 말과 그녀의 언급과 동시에 세계의 법칙이 지우려 한 청년.

만약 이 현상이 내가 생각하는 시간 도약의 흔적이라면.

나는 지금 사랑하는 아들의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그를 죽이려 했으며…….

그의 팔을 잘라버린 것이다.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나를 부축하듯 아이나가 말했다.

“우선 떨어진 팔을 붙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녀의 말에 흠칫 놀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놈을 죽여야 한다는 충동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떨어진 팔을 향해 손을 뻗었고 그것을 내 쪽으로 끌어온 뒤 아벨을 끌어안고 있는 페르세르크를 밀어냈다.

“이…… 일단 붙이고 침 바르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

페르세르크의 시선에 마음이 아파왔다.

아니 알아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내 변명 아닌 변명이 흘러나왔지만, 아벨의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린 죄책감이 온몸을 기분 나쁘게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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