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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73화 (1,273/1,559)

제 1273화

세계의 법칙이 짓눌러 부숴버리려 하던 아벨로 추정되는 청년.

그가 세계의 법칙의 공격을 받은 것은 과거 레이나 때와 상황이 비슷하지만 조금 달랐다.

레이나는 존재 자체가 부정당했지만, 이놈의 경우 외부인이 그의 정체를 판가름함으로써 마치 제약이 사라진 듯 가차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이런 경우는 하나뿐이었다.

레이나 때와 같이 그를 부숴버리려 했으나 그가 가진 모종의 힘을 이유로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가 정확히 선을 넘는 순간 제제에 들어간 것이다.

세계의 법칙은 굉장히 융통성이 없는 기둥이나 다름없다.

당연히 일개 피조물이 그것에 거스른다는 건 당연지사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라면 가능할까.

가능은 하겠지만 힘의 정면충돌이 되었으면 되었지 이렇게 아슬아슬한 대치를 이어가진 못했으리라.

나로 인해 잘려나간 팔과 치명상을 치료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기본적으로 녀석의 몸은 상당히 허약해져 있었다.

정확히는 처음부터 약해져 있었다.

병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대체 무엇이 그의 몸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일까 의문을 품던 중 내 곁에 앉아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는 페르세르크가 보였다.

“대체 아벨인 건 어떻게 알았는데.”

가장 의문이었다. 그녀는 이놈을 보자마자 아벨이라고 말했다. 딱히 그와 면식이 있었던 건 아니기에 그야말로 초면에 그를 알아보았다는 뜻이었다.

“어미가 어찌 아들을 못 알아봐.”

그녀의 대답에도 나는 심드렁한 기미를 지우지 못했다.

“그게 말이 안 되는 건 알지?”

녀석의 몸 안에 있는 힘이나 영혼 고유의 색은 내가 아는 아벨과 많이 달랐다.

성장하면서 진화한 건지 변화한 건지, 아니면 지금 그의 상태와 관련되어 변질된 건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어떤 단서도 없이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알아보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로 많이 달랐다.

내 그런 의문에 페르세르크는 고개를 저었다.

“본녀도 몰라. 그저…… 처음 보았을 때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갔음이니…….”

저 분야에 관해선 나도 아는 게 없으니 뭐라 할 수단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궁금한 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놈이 아벨이 맞다면.

페르세르크와 내가 오랜 시간 노력해서 어렵게 얻어낸 첫 아이라면. 어째서 이놈이 페르세르크가 마족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은 것인가.

“일단 깨어나면 물어보자.”

놈이 깨어나야 뭘 퍼즐을 짜 맞추든 하지 놈이 이 세상에, 그리고 이 시간대에 존재할 수 없는 놈이라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다만 대체 무슨 일이 있어야 이런 꼴이 되는 건지. 무슨 이유에서 이런 행동을 했는지, 듣기 전까지는 쉽게 가늠할 수가 없었다.

“보고 드립니다. 헤탄 왕실에서 정식 요청이 왔습니다. 일의 자세한 정황의 정보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응하지 않을 시 국제연합에 강하게 항의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헤탄 왕국에서도 날벼락일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하인스 영지의 성자가 나타나서 번화가의 일부를 개 박살 내버렸으니 말이다.

자존심을 떠나서 생각이 있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사고임은 틀림없었다.

헤탄 왕국. 지금 내가 와 있는 소왕국이기도 하다. 과거 마족과의 전쟁에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입은 왕국 중 하나로 분류하기를, 마족과 절대 공생할 수 없는 왕국이라 기억하고 있다.

자잘한 전후 피해는 국제연합에서 지원을 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마족에 대한 적개심이 민심 전반적으로 상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별로 신경 쓰던 왕국은 아니었는데.

녀석이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수 시간 후였다.

* * *

녀석이 깨어나자마자 한 것은 온몸을 덮치는 격통 속에서 비명을 씹어 삼키는 것이었다.

“우욱…… 쿨럭…… 끄으윽…….”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비틀거린 그의 모습에 곁에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던 페르세르크가 벌떡 일어났다.

“아벨!”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소리치는 그 모습에 멍하니 눈을 뜬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흠칫 놀라며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럴 리가 없는 데라는 듯한 시선 속에서 페르세르크가 그를 끌어안아 주자 석상처럼 굳어버린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사……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저는 아벨이라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듯 조심스레 대답했다.

이에 페르세르크가 침묵하며 그녀를 바라본다.

“지……진짜입니다! 저는 카인 라운이라는 사람이에요. 자 보세요. 여기 제 이니셜.”

그가 피가 묻은 손수건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K.R]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하지만 처음 아벨을 알아보지 못했던 나도 알아챌 정도로 조잡한 거짓말이었다.

“페르세르크. 에반젤린이랑 버릇이 똑같은 거 같은데.”

“그래 보이는구나. 피가 이어지지 않았어도 잘 자라 주었다는 뜻인 게지.”

나와 페르세르크가 전혀 믿어주지 않는 시선을 보내자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만신창이였지만 표정이 제법 다양한 모습이었다.

“아벨. 왜 거짓말을 해.”

“아니 그게…….”

“이미 대강 알고 있으니 걱정 마라. 당장은 세계의 법칙이 널 제재하진 않을 거다.”

내 설명에 그가 흠칫 놀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저는 엄연히 법칙을 위배하고…….”

격하게 소리치던 그는 자신이 어떤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달았고 입을 다물었다.

“잠깐 유예 시켰다. 그래. 아벨 맞지?”

재차 묻자 그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아버지.”

딱딱한 호칭에 나는 기분이 상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해서 괜히 아빠라 불러보라 말하지는 못했다.

“시간을 넘어온 거지? 단순히 네 이름을 불렀다는 이유로 법칙이 제제에 들어간다는 건 그런 경우밖에 생각이 안 나거든.”

융통성 없는 법칙이지만 정말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직접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 방법밖에 없었다.

내 설명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 생에 단 한 번 시간을 역행할 수 있는 권능을 사용했습니다.”

그의 설명에 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간을 역행하는 권능. 그건 과거 프리아 여신이 나를 과거로 보낼 때 사용한 권능이었다.

“여신이 권능을 넘겼다고?”

“제 이름에는 시간의 권능이 담겨있습니다. 제 재능으로는 단 한 번 사용하는 것은 물론 그 이상 정교하게 간섭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요.”

상체만 일으킨 채 그는 화상 자국과 상처, 흉터로 가득한 몸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내게 당한 상처나 잘려나간 팔이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 팔이…….”

“단면이 깔끔해서 다시 붙이는 데에 수고를 덜었…….”

덜컹!!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익숙한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데이비! 여기 있어?!”

황급히 들어온 그녀가 아벨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어…… 엄마…….”

뒤이어 아벨이 멍하니 중얼거렸다가 흠칫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나와 페르세르크는 이미 놈의 발언을 들은 후였다.

“페르세르크. 이 불 속성 효자 놈이 부모를 차별한다.”

“조금 서운하구나.”

페르세르크의 말에 그가 당황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페르세르크의 그런 웅얼거림을 들은 아벨이 당황한 듯 변명하는 꼴은 퍽 우습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무겁기 그지없던 몰골이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 * *

아벨 올 라운.

페르세르크와 내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아들.

내가 여신의 권능을 빌려 과거로 가서 개변을 시켰듯 미래에서도 그런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한번 격변을 시킨 만큼 세계의 법칙은 시간을 뛰어넘어 이 같은 행동에 제재를 가하게 된다.

아마 아벨이 권능을 지니고 이곳으로 넘어오는 데에 많은 것을 희생했으리라.

지금 그의 몰골이나, 아벨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제재가 들어온 점.

그 외에도 어쩌면 미래에서 많은 것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의도하지 않게 타국. 헤탄 왕국까지 와서 인적이 드문 작은 여관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였지만 그 점에 대해서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좋아. 아들. 지금부터 네가 어떤 변명을 늘어놓는지에 따라서 내가 널 어떻게 혼내야 할지 모르겠으니 선택을 잘하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싸늘하게 녀석을 향해 쏘아붙였다.

“왜 과거까지 와서 페르세르크를 위험하게 만드는 거지?”

아벨이 이곳에서 한 짓은 장난으로 넘기기엔 너무 컸다.

페르세르크가 마족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내가 어떤 변명을 내세우건 그녀에겐 마족이라는 족쇄가 채워질 것이니 말이다.

적어도 내가 조금씩 진행 중인 마족과 인간의 화해 계획이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반드시 숨겨야 할 사실이었다.

“저는 제약이 많이 걸려있어요. 아버지와 여신께선 제가 떠날 때 함부로 감정에 치우쳐서 돌아오지도 못하고 붕괴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붕괴라…….”

“……예. 저는 이 시간대에 크게 간섭할 수 없어요. 어머니께서 제 이름을 부르셨을 때…….”

페르세르크가 놀랍게도 아벨을 알아차리면서 세계의 법칙에 포함된 힘이 그를 짓눌러 붕괴시키려 했다.

지금도 내가 유예를 두었을 뿐. 당장이라도 그를 짓눌러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금기를 어긴 꼴이었다.

이 이야기가 끝나면 나는 곧바로 세계의 법칙의 핵이 있는 곳으로 가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외에도 여신에게 들어야 할 일도 있고.

운명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얼어 죽을.

“인간 한둘은 몰라도 헤탄 왕국의 왕실 전체를 전복시키기 위해선 아버지와 헤탄 왕국 사이에 사이를 극심하게 비틀어야 했어요.”

그의 설명에 내가 눈을 꿈틀했다.

“뭐?”

지금 아들이 나라 하나를 멸망시킨다는 소리를 한 것이다.

“헤탄 왕국은 어머니가 마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버지께서 대륙 전체를 기만했다 판단할 겁니다. 헤탄의 국왕은 과거 마족들의 침공으로 생긴 공포로 인해 거의 정신병자가 되었으니까요. 그 결과 정면으로 충돌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겠죠.”

그렇게 되면 벌어질 결과는 너무 뻔했다.

헤탄 왕국이 어떻게 짓건 가능하면 소란을 크게 키울 생각이 없다.

하지만 놈들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순간 나는 180도 태도를 돌변하여 방해가 되는 쪽을 찍어눌러 버리라.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데? 네가 온 시간 선에서 헤탄 왕국이 무슨 짓이라도 저질렀나?”

그 물음에 아벨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분노와 슬픔을 억누르듯 파르르 떨고는 조용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녀석이 꺼낸 것은 이전에도 본 적이 있던 피가 묻은 손수건이었다.

“그건 전에 하인스 영지에서 떨어뜨렸던 손수건이냐?”

“네. 언약을 맺은 제 반쪽이 남긴 흔적입니다. 정확히는 혼약을 맺고 일주일 만에 사고에 휘말렸습니다.”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헤탄 왕국에서 벌어진 정체 모를 폭발에 휘말려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아버지께서 걸어주신 방어가 덕분에 목숨은 건졌습니다만.”

그의 눈에 분노가 번뜩였다.

혼약을 맺은 상대가 죽은 것과 진배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을 본 아벨은 이성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온전한 8서클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던 그의 분노는 곧바로 이 일의 원흉인 헤탄 왕국으로 향했고, 닥치는 대로 박살 내버리려 들었다.

그런 그를 말린 것은 그 시간대의 나와 페르세르크였다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몸에 생기는 부하를 무시한 채 날뛰던 그를 억지로 제압한 나는 그에게 시간을 그녀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게. 시간을 넘는 거냐.”

“아버지는 그 사고가 지금 시간대부터 아무도 모르게 준비되어온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시작 단계에서 붕괴시켜버릴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자세한 정황을 알 수 없다 하여도 상관없다. 시간이 부족한 아벨이 그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수 있는 쉽고 간단한 방법.

나와 헤탄 왕국을 충돌시켜 헤탄 왕국 전체를 뒤집어버리게 하면 해결되는 일이다.

그리고. 외부인이었던 아벨이 나와 헤탄 왕국을 이간질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나의 역린, 페르세르크를 건드리는 것.

누구 아들인지 아주 때려죽이고 싶을만큼 잔머리만 굳은 모습이다.

대규모 재해. 미래의 내가 그곳을 어떻게 만들었을지는 생각해볼 것도 없었다.

그가 내민 손수건에 적힌 K.R이라는 이니셜을 보는 나를 두고 일리나가 조용히 물었다.

“아벨, 그 손수건. 코오나의 것이지?”

“코오나 라운. 그녀의 이니셜이에요.”

“코오나 이년을 진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이 차가 몇인데……

내가 황당해서 입을 쩍 벌리자 그가 내게 말했다.

“아버지는 아버지시네요. 처음 제가 그녀에게 반했다 말했을 때 그때와 아주 똑같은 표정이세요.”

“네가 꼬셨냐?”

“그럼요. 10년을 매달렸습니다. 아버지 아들, 생각보다 끈기는 있어요. 재능은 없지만.”

갈라지는 목소리로 어색하게 웃는 그를 보며 나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원래 아버지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보셔서 아시다시피 여신께서 경고하기를 제가 이 시간대에서 아벨이라는 사실을 아버지께 들키면 세계의 법칙이 저를 그 자리에서 지워버릴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상은 했다만 권능이 있다면 가능은 할 텐데.”

“그게…… 제가 이성을 놓고 날뛸 때 어머니를 상처입힌 것 때문에 죄송…….”

콱!!

내가 녀석의 머리를 한 손으로 틀어쥐었다.

“끄윽?! 으악!!”

“아들. 다시 한번 말해봐라.”

“데이비. 일단 이야기 다 끝나고 해.”

동시에 페르세르크가 나를 제지한다.

“그래도. 그녀가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을 한번 보고 싶어서 찾아간 거였습니다만…….”

그가 헛웃음을 흘렸다.

“오랜 시간 시간의 틈에서 몸이 망가지면서 감이 죽었는지 들켜버렸습니다. 그녀는 곧바로 검을 뽑아 들더군요.”

아직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원인에 대한 증오와 살기가 풀풀 풍겨 나갔으니 코오나의 입장에선 당연히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공격을 가한 것이리라.

잘 생각해보면 아벨은 방어는 하되 적극적으로 공격을 한 적은 없었다.

세상에 다시 없을 시간 역변의 기회를 사용했다곤 하지만 그의 얼굴에 후회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칼. 헬릭시윰으로 만든 건가?”

“네. 에반젤린 누님의 검을 보고 저도 만들어달라 졸라서 겨우 받아냈지요.”

“이상하네. 내가 그냥 줄 위인은 아닌데.”

“아버지께 체스로 한 방 먹였습니다.”

놀라운 답변이 나왔다.

“이겼다고?”

“네.”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오히려 의심이 가는 답변이었다.

“데이비, 네가 질 일도 있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느낌이지만 아마 선물을 한답시고 일부러 져준 것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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