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42화
감히 똑바로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의 성스러운 기운.
얼어붙는 하늘을 찢으며 나타난 존재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레이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 아빠랑 똑같네…….”
나차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던가.
뭐가 됐건 중요한 것은 비화가 강림에 성공했다는 뜻이리라.
레이나는 조용히 반투명한 날개를 펄럭이며 빠르게 날아올랐다.
* * *
누가 설명하지도 않았다.
설명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보았기에 알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신의 위압이었다.
중간계에 온전히 강림한 비화는 과거 방송에서 보여주던 푼수 같은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시……신이시여…….”
“넬타리드…… 넬타리드께서 강림하셨다…….”
물론, 비화의 정체를 모르는 이들은 신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게 넬타리드가 거진 전부였기에 비화를 넬타리드라고 착각했다.
“아아…… 넬타리드 신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강림하셨다…….”
“신이시여…….”
넬타리드가 남신이든 여신이든 그건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다.
신실한 신자들은 눈물까지 흘리며 기도를 올리고 있는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에서도 겨울은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완전한 일식이 이루어지며 세상의 공기가 일순간 멈춘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윽고 빛으로 된 날개를 펼치며 천천히 내려온 비화는 멍하니 무릎을 꿇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아가사에게 내려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아아…… 신이시여…….”
신을 직접 영접한 이가 보일 반응이야 뻔하디뻔했다.
눈물을 떨구며 그녀를 올려다보는 아가사에게 옅은 미소를 지어준 비화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일식처럼 완전히 뒤덮인 태양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불길하기 짝이 없던 붉은 테두리에 오색의 빛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푸른빛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이내 얼어붙기 시작한 하늘이 다시금 따스하게 녹아내린다.
치익!
-보고드립니다! 해일이…… 아니 이게 진짜…… 이게 무슨 일인지…….
그때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일이 갑자기 사라져버렸습니다! 이게 무슨…… 아니 설명이 어려운데 어쨌든 갑자기 억눌리더니 사라져버렸어요!
물리학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현상.
폭주하는 기상을 모조리 억제하고 잠들어버린 부분을 다시 깨워낸다.
비화의 조율은 지구를 포함한 모든 차원에 퍼져나갔다.
프리아 여신의 상위권능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이윽고 태양의 일식이 마치 지나가듯 서서히 지나가며 다시 태양이 세상에 빛을 내비치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이들은 신의 기적이라 외치며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사르르륵…….
하늘에서 새하얀 깃털이 떨어진다.
아가사는 멍하니 비화를 올려다보았고, 비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천천히 빛과 깃털로 흩어지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촬영한 카메라가 있었다.
* * *
-무슨 꿈꾼 거 같네.
-아니 하루아침에 진짜 세상 종말하는 줄 알았음.
-뉴스 봤음? 진짜 거짓말처럼 원상복구 됐던데.
-죽은 사람은 안 돌아옴. 신이라고 만능은 아니라는 거지.
-이만하고 그친 게 다행인 거지 미친놈아. 이걸 이딴 식으로 받아들이네.
-내가 틀린 말 함?
-너 같은 새끼들 보고 있으면 신이 잘도 지켜주고 싶겠다.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지.
-진짜 저래 뻔뻔한 거 보면 인간은 멸망하는 게 맞다.
-응, 지나갔어. 이제 멸망 안 해~
-이거 캡처 떴음. 신성 모독죄로 한 놈 들어가유~
-응, 그딴 거 절대 안 걸려~ 무쓸모 신 안 믿어~
-법 바뀐 지가 언젠데. 방구석여포짓하다가 걸리면 빨간 줄인 건 알지? 이거 캡처 떠서 교단에 보냄 ㅅㄱ.
-해보시던가.
-등신 ㅋㅋㅋ 이렇게 또 하나 갑니다. 주님. 아 참고로 신성모독은 미성년자라고 안 봐주는 거 알제? 멀리 안 나간다.
-특정성이 성립이 안 돼요. 이 모지리 새끼야.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고 잡아가면 세상에 남아있는 인간 몇이나 되겠냐.
-아직 얘가 상황판단을 못 하네. 여기 니가 글 싸지른 게 증거고 특정성 그딴 건 신성모독 관련해선 1도 소용없다. 이미 신고 보냈고, 곧바로 조사 들어간다고 답신도 왔음. 잘 가고.
물론 일부에서는 물에 빠진 놈 건져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욕하는 이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해운대에 강림한 여신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대다수를 이루었다.
-우선 우리 넬타리드 여신님 찬양하면 개추.
-난 넬타리드 교단이라길래 중후한 할아버지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여신님이었던 거지~
물론, 대부분의 이들은 비화의 강림 영상을 보고 그녀가 신이니 넬타리드가 아닐까 하는 의혹을 품었다.
하지만.
-그런데 이런 말 하긴 뭣한데 진짜 넬타리드 신 맞음? 넬타리드 신 석상 보면 전부 남성형이잖아.
-애초에 신상은 신의 모습을 대충 상상해서 만드는 거지 본인 얼굴이 아님.
-신상 바꿔야제~
-혹시 프리아 여신 아닐까.
그때 한 게시판 이용자가 어떤 가설을 올렸다.
-님들도 알다시피 티오니스 성자가 모시는 신이 주신 프리아 여신이잖아.
-그래서 타 차원 신이 지구까지 왔다고? 억까도 적당히 해야지.
-맞음. 그쪽 세계 신이 우리를 왜 구해줌.
프리아 여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아는 이들은 그녀가 프리아 여신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품었다.
하지만 크게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다만.
-내 눈이 이상한 건가, 저거…… 비화 아님?
-비화가 누군데.
-아니 비화 모름? 당장 에반젤린 방송 최근 꺼 정주행하고 오셈.
-난 인방 안 봐 이 새끼야. 빨리 설명해라.
-핑프새끼. 직접 검색하세요. 비화 치면 나무에도 바로 나옴.
-비화 맞는 거 같은데…… 아무리 봐도. 그때 나도 저 현장에 있었는데. 솔직히 빛 때문에 제대로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어서 고개 숙이고는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비화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이렇게 보니까 맞네.
사진 두 장을 올려놓고 비교하는 이도 있었다.
한 장은 인터넷 방송에서 뚱한 얼굴로 시청자들의 질문에 답해주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의 사진이었고 또 한 장은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무릎이 꿇어질 정도로 신성한 신의 모습 그 자체였다.
-날개니 뭐니 조금 다르긴 해도 비화 맞는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비화 컨셉이 조율의 여신이라고 하지 않음?
-미친 소설도 적당히 써라 ㅋㅋㅋㅋㅋ 그럼 컨셉 여신님이 진짜 여신님이었다고?ㅋㅋㅋㅋ
-전에 누가 비화보고 진짜 여신님 아니냐고 한 거 있지 않나? 지금 돌이켜보면 신빙성 디지는데?
-에이…… 그 푼수 같은 애가 여신님이면 난 뭐 태초신이냐 ㅋㅋ
물론, 쉬이 믿는 이는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사람이란 존재에게 신이라는 존재는 그만큼 멀리 있고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비화는 티오니스 성자 딸이라면서. 근데 어떻게 여신임 미친놈들아. 아빠보다 딸이 더 높은 존재일 수가 있나.
-그게 아니면 여신이 강림하는 성녀 같은 거 아님? 가능성 있다.
-뭐가 됐건 여신님 오늘부터 모신다.
이런 여론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영상이 퍼져나간 각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강림한 검은 머리카락의 여신에 대한 여론은 뜨거워졌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다만.
정작 그 대화의 대상인 비화는 하늘거리는 날개옷이 구겨지거나 말거나 열이 뻗친 얼굴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엔 일단 상황이 급하니 태초의 겨울을 다시 잠재웠다.
아무리 상위권능이라도 태초의 시스템을 그녀가 완전히 소멸시키는 건 불가능하니 그저 문제없으니 다시 자라고 재울 뿐이다.
그렇게 큰 문제가 해결된 직후 비화에게 남은 큰 목표가 아직 있었다.
“넬타리드…… 이 빌어먹을 자식이 어디로 숨어버린 거야.”
자신을 가둬버린 빌어먹을 신을 직접 찢어버리기 위해 한창 분노를 쌓아 올리고 있건만. 정작 그 대상이 되는 넬타리드는 그녀의 강림 이후 완전히 종적을 감춰버렸다.
“이거 튄 거 아니야?!”
“진정해.”
“아빠는 진정하게 생겼어요?! 그 새끼가…… 그 새끼가아!!”
피가 이어져 있지 않은데도 똑 닮은 딸아이의 행동에 데이비는 눈을 감고 잠시 침묵했다.
넬타리드의 계획대로 비화는 완전히 각성하는 데에 성공했고, 태초의 겨울을 막아냈다.
아무리 데이비라도 손댈 수 없는 영역이지만 비화는 그 영역에 손을 댈 수 있는 여신. 그렇기에 그 해당사항이 달랐다.
“비화야. 어디 몸이 안 좋거나 그러진 않지?”
“응? 아니. 엄청 좋아. 지금 막 날아갈 거 같거든? 넬타리드 그 새끼 찾으면 당장이라도 찢어버릴 수 있을 거 같아.”
한창 기분 좋게 말하는 비화였지만 역시 서운하면 감정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빠…… 왜 나 찾으러 안 왔어?”
“갔어. 구하지 못한 것뿐이야.”
“…….”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그래도 서운한 감정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나중에 소원 하나 들어주면 용서해줄게요.”
“그래.”
“그래서. 나는 언제 내려갈 수 있는데요? 지금 보면 더 내려가기 힘들어진 거 같은데.”
“그렇지 않아도 망할 넬타리드를 찾아야 나도 판단이 될거 같다.”
설마 넬타리드가 또 뒤통수를 후려갈긴 것일까.
이전의 비화가 중간계에 강림하면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아예 위계가 높아져서 내려갔다간 어마어마한 재앙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럼 너 어떻게 강림한 거야.”
“글쎄요? 내가 어떻게 내려간 거지?”
그렇게 말하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분명 비화는 강림을 했고, 모든 차원의 문제를 해결한 뒤 돌아갔다.
누군가에게 강신한 것도 아닌 자의로 내려온 것이다.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던 비화와 데이비는 고민에 빠졌다.
내려갈 방법이 생겼다.
일반적인 경우가 아닌 특수한 경우를 거친다면 내려갈 수 있다는 증거가 있지 않은가.
“우선 내려 가는 건 둘째 치고 넬타리드부터 찾을 거예요. 아빠는 바쁘잖아. 어서 내려가요.”
비화는 데이비의 등을 떠밀었다.
“나머지는 내가 더 생각해볼 테니까. 그때.”
“그래. 무리하지 말고. 그리고 잘했다. 네가 자랑스럽다.”
데이비가 비화를 품에 꼭 안아주자 툴툴거리던 비화가 잠시 입을 꼬물거리더니 보이지 않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게 끝이에요?”
“사랑한다.”
“나도요.”
데이비가 떠나간 모습을 지켜본 비화는 뭔가 아쉬운 듯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녀의 곁으로 각양각색의 고양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넬타리드 찾아.”
야옹~
고양이들은 제각각 그녀의 말에 대답하듯 낮게 울었고 이내 빠르게 흩어졌다.
바로 그녀의 사도가 된 제노엔들이었다.
이후 비화는 고민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넬타리드의 성역으로 향했다.
분명 그는 그곳에 있어야 했지만, 이 일 이후 그는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어떻게 신이 자리 비움 상태야. 미친 거 아니야?”
넬타리드도 많은 일을 담당하고 있을진대. 어째서 이런 사태가 된 것일까.
넬타리드의 흔적을 바라보던 비화가 중얼거린다.
“이 작자 설마 나한테 죽을까 봐 튄 거 아니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든 비화는 황급히 신의 성역으로 향했다.
비화의 성역과는 다른 태초신의 성역이며 영웅들과 프리아 여신이 있는 곳이었다.
“어? 우리 조카 왔어?”
서글서글한 말투로 그녀를 맞이해주는 우치를 향해 그녀가 물었다.
“여신님은요?”
“여신님은 몰라. 어디 가셨는지. 그런데 여긴 왜?”
“넬타리드…… 그 새끼 찾으러 왔어요. 어딨어요?”
이를 부득부득 가는 그녀를 보며 우치가 낄낄 웃어댔다.
“도망간 거 아니야? 너한테 잡히면 죽을까 봐.”
“…….”
“진짜 사라진 거야?”
“네.”
그 말에 우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 x벌놈이 결국 일을 쳤네…….”
“무슨…… 말이에요?”
“넬타리드…….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우치가 급하게 어딘가로 향하자 비화는 인상을 더욱 찡그렸다.
“잠깐만요! 우치 삼촌!”
“어억! 이거 놔라!”
비화가 순식간에 달려들어 그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당장 설명해요!”
“아……아니 비화야. 일단 너 내려갈 수 있는 거 아니야?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게 쉽게 안 되니까 그러지! 그리고 넬타리드가 지금 더 중요해!”
“나도 모른다니까?!”
비명을 지르는 우치와 드잡이질을 하며 비화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넬타리드의 흔적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게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