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43화
갖은 노력으로 찾았지만 결국 넬타리드를 찾는 데엔 실패했다.
그는 마치 거짓말처럼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 있었고 처음엔 단순 분노에 차 있던 비화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폭주를 잠시 멈출 정도였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사라진 넬타리드가 돌아오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소식은 내게도 직접 전해져 왔다.
“케인에겐 비밀로 해야겠네…….”
잘은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분명해 보였다.
넬타리드가 사라진 사실을 발키리아나 중간계에 알렸다간 대혼란이 터질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떻게 지구의 주신이라는 작자가 자리 비움…….”
“서방님?”
잠에서 깬 것일까.
“무슨 고민 있으신가요.”
내 옆에서 들려오는 에이리아의 목소리에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의 뺨을 살짝 간질였다.
그녀의 귀가 파르르 떨리더니 얇은 이불을 꼭 쥐고 얼굴까지 가리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내가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자 눈만 보이게끔 이불을 끌어 내린 그녀는 동글동글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이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기지개를 쭈욱 펴며 예쁘게 웃었다.
“이제 잠은 잘 와?”
“네. 이제 괜찮아요.”
기상이 변하면서 가장 힘들어한 건 에이리아였다.
그녀는 날씨에 상당히 민감했던 만큼 태초의 겨울이 오면서 생긴 급작스러운 날씨 변동에 잠을 잘 못 이루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푹 잤다고 말하듯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조금 있다가 차를 가져다드릴게요.”
“무리하지 말고 조금 더 쉬어.”
“괜찮아요. 아픈 것도 아닌걸요.”
세 사람 중에 가장 몸이 약한 것이 에이리아가 아니었던가.
물론, 그런 그녀라고 해도 근본적으로 어딘가가 아파서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먼저 일어날 테니까 조금만 더 쉬고 있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는 부끄러움에 귀를 쫑긋거렸다.
“마님. 목욕물을 준비하겠습니다.”
“아…… 부탁해요.”
새하얀 몸을 드러내며 에이리아가 대답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가볍게 셔츠를 걸치고 집무실로 향했다.
기상이변으로 인해 가장 직격타를 입은 건 축산이고 농산이고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특히 날씨에 민감한 하인스 영지도 피해가 적은 편은 아니었다.
넬타리드가 사라져버린 것은 조금 의심이 가는 구석이 많았지만, 그에게만 정신이 팔려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데이비. 지구 쪽 인터넷 봤어? 비화의 얼굴을 본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던데.”
“그래?”
“괜찮은 거 맞아? 비화가 여신인 걸 들켜도.”
“완전히 들킨 건가?”
집무실에 들어서자 벌써 일어나있었는지 일리나가 서류들을 빠르게 해치우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니 긴가민가한 모양이야.”
“그럼 내버려 둬, 인간이라는 게 두루뭉술한 사실을 곧이곧대로 믿는 인간도 있지만, 아닌 인간도 있으니까. 딱히 반응하지 않으면 잠잠해지겠지.”
“그러다가 들키면?”
“들키면 들키는 거지. 비화가 뭐 죄지었나?”
어깨를 으쓱이자 일리나도 어느 정도 동조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도 그렇네. 여기 사인 좀 해줘.”
“그새 다 끝낸 건가?”
“미식연구회가 또 사고 친 거.”
일리나의 말에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서류를 받아들였다.
서류 내엔 미식연구회가 그새 또 뭔가 사고를 치고 그 사고로 인한 배상목록이 쓰여있었다.
“…….”
미식연구회의 블랙리스트 부장 유리아 헬리샤나. 그리고 부원인 륀느와 점순이.
이 셋의 기행은 간혹 놀라울 정도의 짓을 저지른다.
“아니. 다 이해하겠는데. 온천 간혈천에 또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온천의 간혈천이 몸에 좋다고 하잖아. 그래서 그 물을 이용하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사고를 쳤다는데…….”
자연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간혈천 하나를 무단점거하고 온천 지하수에 무언가 수작을 부리다가 대량의 설탕이 쏟아졌다는 모양이었다.
“이것들은 진짜 실적만 안 좋았으면 당장 해체시켰을 거다.”
영지개발부나 미식연구회나.
다른 부서는 문제가 없는데 이 두 부서는 실적이 압도적으로 좋은 대신 사고 치는 비율이 너무 높았다.
“하…….”
“직접 가서 봤는데. 물에서 단맛이 사라지질 않아. 대체 얼마나 투하해야 그 지경이 되는지 모르겠다.”
“돌아버리겠네. 그래서, 그것들은?”
“지구에 있는 륀느의 섬. 거기 숨어든 모양이야. 제 딴엔 안 들키게 숨었다고 숨은 거 같은데. 그래 봐야…….”
일리나는 팔랑거리는 예산 이동 명세서를 보여주었다.
“척하면 척이지.”
“일단 내버려 둬. 지금 중요한 건 그것들이 아니니까.”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중요한 게 또 있어?”
“개인적인 문제인데. 일리나.”
내 부름에 그녀가 눈동자에 나를 담았다.
나를 향한 애정이 짙게 묻어난다.
“아이. 가지고 싶지 않아?”
“…….”
하지만 이어지는 내 말에 그녀는 침묵했다.
한참을 조용히 있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괜찮아.”
“그래?”
거짓말하기는.
“난 너만 있으면 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는 천천히 다가와 내 멱살을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거칠게 입을 맞춘 뒤 천천히 떨어졌다.
작은 분홍빛의 혀를 낼름거리며 입술을 적신 그녀가 해맑게 웃었다.
“역시 너만 있으면 돼.”
“……그래.”
그녀도 생각하는 바가 있겠지. 어차피 그녀나 나나 시간은 많을 테니까.
* * *
전 차원적으로 발생했던 거대한 종말의 흔적.
그 여파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시금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의 삶을 찾아 나가는 모습이었다.
세상이 멸망해도 당장 사과나무 한그루를 심는다 했던가.
회사원들에게는 세상이 내일 당장 멸망해도 출근한다. 라는 밈으로 퍼져나갈 정도로 회복 자체는 빨랐다.
에반젤린의 방송을 찾는 사람도 많았다.
물론 회복기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은 만큼 그 수치가 줄어들긴 했지만 그만큼 더 늘어나는 기현상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각국에서 유입된 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의외로 비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일단 진정 좀 해줄래요? 미안한데 여긴 여러분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채널이 아니에요. 그림방송이지.”
-팩트. 그러면서 방장은 현재 가챠를 하고 있다.
“아니 그래서 S급 언제 나오는 데에! 용돈 써서 지른 수정 다 날아가게 생겼네…….”
평소 그녀의 운을 도맡아주던 레인보우 슬라임이 없어서일까. 본래의 그녀처럼 신명 나게 폭사를 하고 있는 그녀였다.
“아씨. 대체 어딜 간 거야 검둥이는…… 제발…… 제발 이번엔 떠라!!”
띠리링!! 콰작!
-응, 그럴 리 없죠?ㅋㅋ
-개같이 멸망 ㅋㅋㅋㅋ
“안 해!!”
결국, 가지고 있던 재화를 모조리 소모하고도 얻지 못한 그녀는 책상을 쾅쾅 치며 부들부들 떨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비화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자 에반젤린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화가 이번 일로 각성을 하면서 내려올 수 있게 되었다곤 했는데.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내려올 수 있는지 궁금해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비화에 대한 이야기를 대놓고 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그녀 스스로가 밝히기 전까지는.
“비화 언니에 대한 이야기는 금지. 언니는 방송을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다만, 그렇지 않은 인간도 존재했다.
사자자리 님께서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재해 때문에 코인이 떡락했어. 한강 물 온도 따뜻하니?
반신이라는 별자리가 저딴 소리나 하고 있으니 세상이 이 지경이지…….
에반젤린은 한껏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한강 물 기분도 생각하고 뛰어내려 주세요.”
-와…… 방장 인성…….
-나
-락
-나
-락
“아니 코인 이야기를 왜 여기서 해요! 난 그런 거 관심 없어! 안 해! 화성을 가든 달을 가든 하는 분들 마음대로 하세요. 그런데 제 방송에서 코인 이야기하면 쳐낼 거에요.”
삐릭.
사자자리 님께서 벤 당하셨습니다.
사자자리 님께서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럼 나이아가라폭포는…….
“아니 됐다고! 그리고 벤한 지 몇 초도 안돼서 돌아오는 건 또 뭔데!”
이미 회사에서도 사자자리와 사수자리의 제제를 포기한 상황이다.
그 두 존재가 인간이 아닌 초월적인 무언가라는 게 확정된 이후로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게 초월체? 라는 의문을 표할 뿐 그들의 행동 자체를 웃으며 볼 따름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저기 사자자리 회장님이 비화 님 떴을 때 경배하라니 뭐니 막 호들갑 떨지 않았나?
-뭐야. 그럼 진짜 여신이었어?
-컨셉이 아니고?
“그건 본인한테 물어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저는 노코멘트할게요.”
물론, 비화가 당장 내려올 가능성은 한없이 낮을 테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파직…….
“어?”
파지지지직!!!
에반젤린의 뒤편 허공에서 스파크가 일기 시작하더니…….
콰창!!!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균열이 일어났고 그 균열 속에서 날개옷을 입은 검은 머리의 소녀가 철푸덕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
“…….”
모두가 침묵한다.
고개를 돌린 채 멍하니 쓰러진 비화를 보는 에반젤린도. 그것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도.
“저기…… 비화 언니?”
에반젤린이 식은땀을 흘리며 조심스레 불러보지만,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언니…… 왜 그래…….”
“못 일어나…… 쪽팔려서 못 일어나…….”
비화의 두 번째 등장은 첫 번째와 같이 쪽팔려서 바닥에서 못 일어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 * *
조율의 여신 비화.
프리아 여신의 상위권능을 각성한 그녀는 이제는 온전한 하나의 여신이 되었고, 그녀의 힘은 가히 전 차원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렬하다.
“까불면 이번엔 내가 빙하기 불러올 거야. 알았어? 처신 잘하라고.”
-예이. 여신님.
-굽신굽신.
팔짱을 낀 채 한껏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비화를 보며 시청자들이 아부를 떨어댄다.
에반젤린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여러분. 잠깐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어……어어? 야 뭐하는!”
비화의 팔을 잡아끌고 방송 룸을 빠져나온 에반젤린이 물었다.
“언니. 괜찮은 거 맞아?”
“응?”
“괜찮은 거 맞냐고. 이렇게 내려와도.”
“실험 삼아 해봤는데. 괜찮은 거 같아. 아직은 길어야 한 시간 정도지만. 점점 늘어나겠지.”
그 말에 안도감이 들었다.
비화가 더 이상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으니까.
반면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힘이 강해졌는데 어떻게 내려올 수 있는 거야?”
본래대로라면 오히려 내려오기 힘들어야 정상이건만. 그녀는 반대의 케이스였다.
그런 의문에 비화는 잠깐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겨울이 지나간 이후로 남은 일은 자잘한 문제들이야. 내가 직접 나서야 할 정도로 심각한 건 없거든. 그래서 사도들에게 떠넘겼지.”
불쌍한 사도들에게 애도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언니는 내려오는 것만으로 차원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거 아니야?”
“사실 그게 중요하긴 한데…… 사실 잘 모르겠어.”
“뭐?!”
“넬타리드가 사라진 것과 영향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너도 알 거야. 전에 내가 누군가에게 빙의한 게 아닌 온전히 강신한 것을.”
그때엔 상황이 급해서 생각지 못했지만 분명 비화는 세상에 부담을 주지 않고 강신했었다.
“그 방식을 이용한 건데. 본래라면 이게 안 돼야 하거든?”
그런데 된다.
“그래서 이래저래 실험해보다가…….”
에반젤린의 차원에 내려왔다는 뜻이었다.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아빠가 조사는 하고 있다지만…… 너무 따분한 걸 어떻게 참아. 일단 이유는 모르겠지만 부담을 주지 않고 강신해있을 수 있는 시간은 내가 자주 내려올수록 늘어나는 거 같으니 주기적으로 내려올 거야.”
좋은 소식이긴 하지만 정말로 괜찮은지의 의문이 든다.
그렇게 말하며 에반젤린의 어깨를 두드린 비화가 방송실로 들어간다.
“나 먼저 들어가 있을게. 아. 올 때 콜라.”
“…….”
저게 어딜 봐서 자애롭고 성스러운 여신이란 말인가.
놀기좋아하는 푼수지.
에반젤린의 신에 대한 신앙심이 대폭 삭감되었다.
* * *
비화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천부적으로 끄는 법을 알고 있었다.
“엣헴. 그러니까. 내가 여신님이다 이 말이야. 이해했어?”
-응. 그런 컨셉…… 이제 이해했어…….
-진짜 여신님이라고 믿기에는 너무 푼수 같았다…….
다만 그녀가 입을 열수록, 시청자들의 여론은 그녀가 그때 본 영상 속의 여신님이 아니라고 결정을 내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안 그런 이도 있겠지만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푼수 같은 것도 있지만 비화가 일부러 증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확정을 짓기엔 애매하게끔 선을 귀신같이 지킨 결과였다.
-이 집 컨셉 확고하네.
“그런데 이건 뭐야. 가챠? 얘 또 도박해?”
-어허, 도박이라니! 가챠인 것을!
“그게 그거잖아 멍청이들아.”
-어우야. 매도…….
-더 해주세요…….
“뭐……뭐야 그만해! 징그러워!”
심드렁하게 툭툭 내뱉은 말투가 거친데 이상하리만치 적의가 들지 않는다.
그녀가 가진 여신이라는 위계가 그것을 만들고 있었지만 정작 그 누구도 그 이상을 눈치채지 못했다.
현재 비화가 내려올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한 시간.
그 한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고작 한 시간 만에 비화는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금 시청자들에게 때려 박았다.
-우리 집이 무너졌어요…… 복구해줄 수 없나요…….
한 도네이션의 말에 비화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건 내 분야가 아닌데. 난 세상을 조율하고 유지하는 거지, 부서진걸 고치는 건 넬타리드에게나 따지지그래. 아니지. 신에게 바라는 게 너무 속물적인 거 아니야? 무슨 심부름센터도 아니고.”
비화의 심드렁한 말에 시청자들이 경악했다.
-넬타리드 맙소사…….
-비화 님. 아무리 컨셉이라지만 그러다가 진짜 훅 가요…….
-요즘 신성 모독죄 얼마나 빡센데…….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넬타리드…….”
뿌득.
그녀가 이를 갈았다.
그 모습을 보던 에반젤린은 비화가 방송사고를 칠까 급히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