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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384화 (1,384/1,559)

제 1384화

-치익…… 저하. 회담은 무사히 끝났어요. 다만 끝까지 숨기진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없고?”

-네. 그리고. 마리아 공주님은 부친을 만나 뵙도록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예정보다 며칠 정도 복귀가 늦어질 것 같아요. 그 외에 회담에서 있었던 일을 따로 보고 드리겠습니다만…… 하인스에서 기술 유출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로 인해 콘타스 쪽에서 피해를 봤다고…….

“준비되는 대로 메가로드리아를 보낼게.”

-앗……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얼른 돌아와서 쉬어야지 그래야 일을 하지.”

-흐윽…….

추욱 처지는 에이미를 보며 피식 웃어 보인 나는 눈을 천천히 눈앞에 묶여있는 작은 영혼의 빛무리들을 바라보았다.

고란 왕국은 지도에서 지워졌다. 그 과정에서 샐 수 없을 만큼 피가 흘렀고 많은 공간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내가 말했지.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마치 두려움에 떨 듯 옅게 경련하는 영혼의 무리들을 노려보고 있자 내 근처의 공간이 열리며 저승이가 나타났다.

“영혼의 인도가 끝났습니다만…… 그들은 어쩌시겠습니까.”

“비화가 만든 지옥 구덩이. 아직 있지?”

“예? 아…… 네. 있긴 합니다만.”

“처박아버려.”

이렇게 보면 비화도 참 가차 없는 구석이 있다.

“그걸로 충분하시겠습니까?”

“거기, 들어가 봤어?”

“미쳤습니까? 끔찍한 소리 하지 마십시오.”

“그럼 잔말 말고 보내.”

내가 영혼들을 인도하자 영혼들은 미친 듯이 저승이에게 가지 않으려 발악하듯 흔들렸다.

하지만 저승이는 가차 없이 그들을 작은 아티펙트 같은 곳에 담아 보관한 뒤 사라졌다.

“자, 그럼 남은 건 이제…….”

바사스 알 린디스.

그와 좋은 기억은 없다지만 레디미아 황비의 혼을 언제까지고 방치할 순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조져버린 나를 향해 무엇이라 할까.

극대노를 할까. 허탈해할까. 아니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초연해 할까.

그것도 아니면. 아예 관심조차 주지 않을까.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었다.

그가 이번 일과 관련이 없다면 레디미아 황비와 데오르트 황제 삼자를 서로 만나게 해줄 뿐이고. 그게 아니라면, 장모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아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놈 대체 어딜 간 거야.”

“그는 벨류아드와 별개로 그를 따르던 심복이 죽은 것을 알고 독자적으로 조사를 하러 떠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적을 놓칠 정도로 그가 기민한 건가?”

“아뇨. 그건 아닌데…… 갑자기 사라져버렸어요.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하…… 골치 아프네…….”

현재 레디미아 황비의 혼은 에이리아가 잘 보호하고 있지만 그게 언제까지 가능할까.

애초에 에이리아가 사용한 그 힘은 이렇게 혼을 보관하는 게 아니라 정화시키고 승천시키는 계통의 힘. 그런 만큼 길어질수록 에이리아에게 모종의 부담이 가해질 수 있었다.

“우선은 더 찾아봐. 아마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번 일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예. 그런데……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뭔데.”

“그를 만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녀의 물음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막상 그를 찾는다고 해도 다짜고짜 찾아가서 네 어머니의 혼이 아직 떠나기 전이니 만나서 이야기라도 해볼 셈이냐. 라고 한들. 뭐가 달라질까.

“에이리아 대공비 마마께서는 그분과 화해하고 싶어 하시던데요.”

화해는 참 어렵다. 그것도 십 년 가까이 이어진 증오라면 더더욱. 자칫 상황이 더 꼬이는 것도 예측해봐야 할 일이었다.

“에이리아가 그리 바란다면 도와줘야겠지. 그만 가서 쉬어. 나도 생각을 좀 해봐야겠으니.”

본인이 의도해서 사라진 게 아니라면 가능성은 하나뿐이지.

“납치 가능성도 염두에 둬봐야겠네.”

고란 왕국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긴 했지만 그들 중에 내가 봤던 그 노인은 없었다.

고란의 특작부대라 하였던가. 그놈들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

고란이 없어진 시점에서 그들이 어떤 대의를 품고 움직인다곤 생각지 않는다. 지원도 없으니 금방 꼬리가 잡힐 터.

그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다른 방법을 찾을지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였다.

* * *

데이비가 고란 왕국을 지도에서 지워버린다는 건 단순한 표현이 아니었다.

“소름이 끼치네요…… 대체 이게 인간이 낼 수 있는 흔적입니까?”

며칠 전만 해도 이곳은 하나의 국가이며, 수도였다.

단순히 떼로 몰려와 파괴하고 부순 흔적이 아니었다.

조사원들의 눈에 비치는 것은 도시였던 것. 즉. 거대한 크레이터와 근처의 산맥들조차 거대한 구멍이 뚫린 채 날아가 버린 현장이었다.

재앙 그 자체. 상부에서 절대 하인스와 척을 지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했던 것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힘이 있어도 대륙 전체가 이리 그의 눈치를 보는 게 맞는가.

그런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걸 보니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간다.

“조사를 더 해야 할까요?”

뭐라도 남아있어야 조사하지, 아무것도 없는 구덩이만 보면 답이 보이지 않는다.

“우선은 이 모습을 찍어 보고에 올리도록 하지. 괜히 각국에서 하인스를 상대로 힘 싸움을 해보려던 걸 전부 폐기한 게 아니었어…….”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혹여라도 하인스 영지 측에서 무리한 짓을 저지르거나 과한 요구를 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당연히 그들은 암암리에 하인스 영지와 적대하게 되었을 경우 가장 효과적인 대응수단을 연구하곤 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대공의 역린이자 무력적으로 가장 볼품없는 대공비의 신변을 노리는 것이었다.

고란 왕국이 이런 짓을 저지른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이런 결과라면. 그런 연구는 차라리 하지 않는 게 옳으리라.

“적어도 하인스의 대공이 일반적인 상식과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건 확실하니까.”

이날 이후로 대부분의 왕국에서 하인스 영지와의 대치상태 시 그의 사람을 이용하거나 노린다는 선택을 모두 폐기했다.

그리고, 그것은 비화를 통해 티오니스의 소식을 일부 전해 들은 지구도 마찬가지였다.

우스갯소리로 몇몇 국가 중엔 실존하는 신인 넬타리드 교단의 본산을 건드리는 한이 있어도 티오니스 쪽을 건드리는 건 미친 짓이라는 답까지 나왔다.

* * *

촤악!!

“이거 괜찮습니까?”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사내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묶여있다.

그런 그에게 냉수를 끼얹은 노인은 굳은 얼굴로 곁에 있는 여인에게 물었다.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어. 우리의 조국이 하루아침에 불바다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지 않았나?”

“…….”

이미 다른 조직원들이 은밀하게 그 참상의 현장을 지켜보았다.

“폐하는 물론, 다른 귀족분들도 모두 살해당했다. 여기서 이자를 살려 보냈다간 이자로 인해 우리의 위치까지 들킬 가능성이 높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이들이라곤 하지만 그 고란 왕국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이상 목숨을 바칠 대상이 사라진 셈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

“그렇다고 죽여서도 곤란해. 린디스 제국의 황실 일원 중엔 신변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막대한 파장을 일으키는 아티펙트를 몸 안에 소유하고 있다더군. 자칫 도망치기도 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 사실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어떤 변수라도 남겨선 곤란했다.

죽여도 안 되고 그냥 살려 보내도 안되는 이 모호한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해야 했다.

바사스는 자신의 힘을 맹신하고 홀로 자신의 심복을 죽인 이들을 추적했다. 그 과정에서 우연찮게 특작부대와 마주쳤고. 결국, 싸움이 벌어졌다.

비록 바사스 알 린디스가 소드마스터라곤 하지만 눈앞의 특작부대를 이끄는 여인은 하나의 비밀병기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천마 독고준의 기준. 소드마스터에서 한 단계 상위에 이른 존재.

검선의 경지.

티오니스에서는 마인드 마스터라고 불리는 위치이기도 했다.

이기어검을 다룰 수 있는 존재이며, 사실상 소드마스터보다 상위의 힘을 지닌 존재라 할 수 있다.

현재 이 경지에 이른 대륙의 인간들은 린디스의 불여우 대공 카트린느 카라벨라와 빛의 용사라 불리며 기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레이나.

그리고 일부 몇몇 상위 소드마스터였다.

본래라면 그녀 같은 경지의 힘을 지닌 강자가 고란 왕국에서 나온 것도 놀라운 수준이긴 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고란 왕국에서도 비밀리에 활동하던 인물이기도 했다.

물론, 그녀가 올바른 방법으로 이 경지에 올랐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고란 왕국이 보유한 마폭탄이 넘어왔을 때 대규모의 에너지 결정체를 흡수하면서 천운이 따른 케이스였으니 말이다.

그녀의 정체에 대해 잘 몰랐던 바사스는 결국 그녀에게 제압당한 셈이었다.

“잘 들어, 바보같이 목숨을 버리겠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나는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생각 따윈 없어. 과거엔 내 목줄을 왕실에서 쥐고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내 목숨이 제일 중요해.”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숨어 있을 순 없습니다. 바사스 황자가 사라진 시간이 길어질수록 린디스의 수색망도 넓어질 겁니다.”

실제로 현재 린디스 제국 내에 바사스 황자를 필두로 한 귀족파가 알버스에 의해 엄청나게 압박을 받고 있는 만큼 귀족파도 필사적일 것이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눈조차 뜨지 못한 채 묶여있는 바사스 황자를 향해 여인이 다가갔다.

“이봐 황자.”

“…….”

“바깥의 소식의 궁금하지 않아? 네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 말에 바사스는 반응하지 않았다.

“하. 아들은 걱정도 되지 않는다 이건가? 그럼 이건 어때. 네 아들, 팔이 잘린 채로 평민으로 격하됐어. 죄목은 황족 시해 미수. 뭐, 에이리아 알 라운이 혼인을 했다곤 하지만 일단 황족이었던 건 변함이 없으니까. 게다가 하인스의 대공비잖아? 린디스 제국에서도 솜방망이 처벌을 할 여유는 없었겠지.”

그녀의 말에 바사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들이 팔 한쪽을 잃고 평민으로 강등당했다고 했음에도 바사스는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퉤.

이윽고 그가 침을 뱉어냈다.

빠악!!

이에 여인은 화가 난 얼굴로 그를 걷어차 버린 뒤 손수건을 꺼내 뺨을 닦고는 돌아섰다.

“이동한다. 흔적들 모두 지우고 저자를 데리고 와.”

“알겠습니다. 한데 어디로 가실 예정이십니까.”

“전에 고란 왕국에 전이되어온 마폭탄 기억하지?”

“네.”

“그쪽에서 넘어왔다면 우리라고 다른 세계로 넘어가지 말란 법은 없잖아? 바사스 황자는 우리가 넘어가기 전까지 데리고 간다.”

그렇게 말하며 방에서 나간 그녀와 부하를 둑 홀로 남게 된 바사스 황자는 쉬어서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고통스러운 기침을 내뱉었다.

저 여자는 너무 위험하다. 단순 무력만 놓고 봐도 그녀가 보여준 게 전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뒤틀린 무언가.

바사스가 이를 악물었다.

바보같이 잡혀 와있는 사이 그의 아들이 결국 그런 꼴을 당했다.

그녀 앞에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들이 잘못되었다는 소식에 아무렇지 않을 아버지는 세상에 거의 없으리라.

“아아…… 벨류…… 벨류아드…….”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의 눈에 분노가 치솟는다.

그의 분노가 향하는 곳은 벨류아드를 직접 그렇게 만들어버린 에이리아나 데이비 올 라운 대공 이상으로 지금 그를 잡아두고 있으며 모든 계획을 꾸민 저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마나를 억제당하는 극독을 수차례 마신 그의 몸은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다고 느끼고 있다. 이미 쓸모없어진 몸뚱어리로는 돌아간다 할지라도 예전 같은 힘을 발휘하기 힘들 터.

그렇다면 이 몸뚱어리에 어떤 미련도 없다.

철그럭…….

묵직한 소리와 함께 사슬이 움직인다.

이미 자신을 데리러 오기 위해 저놈들이 오고 있다. 고작해야 익스퍼터급조차 대항하지 못할 정도로 약한 만큼 그들을 제압하는 건 불가능.

그렇다면.

으드득…….

그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팔을 내리쳐 뼈를 부러뜨렸다.

어지간한 정신력이 아니면 못할 미친 짓이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몸의 여기저기의 뼈를 탈골시켜나간다.

설마 이럴 힘까지 남아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한 건지.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를 것이라곤 생각지 못한 것인지.

어느 쪽이건 그는 망설임 없이 몸을 부서뜨렸다.

그리고,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용해 사슬을 풀어낸 뒤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철퍽!!

“끄윽!!”

끔찍한 고통이 온몸을 덮친다. 몸은 당장이라도 쉬라고, 그냥 편히 기다리자고 말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그가 뭐라도 하지 않으면 그는 영원히 찾을 수 없고 찾는다 해도 저들을 놓친 후일 것이며 그의 목숨도 잃은 후일 것이다.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오래전 어머니도 허무하게 잃었건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바스러질 자신이 너무 억울했다.

으드득…… 으득.

탈골된 뼈들을 강제로 맞출 때마다 눈에 불이 튀는듯한 끔찍한 격통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후 그는 주변을 둘러본 뒤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가 잡혀있는 이곳은 고란 왕국이 린디스의 내부를 정찰하기 위해 만든 공간. 그렇다면 밖으로만 나가면 어떻거든 소식을 전달할 수 있을 터였다.

끔찍한 고통을 주는 이 몸을 이끌며 그는 근처에 잇는 기름통을 걷어차 쓰러뜨렸다.

그리고는 본래 몸 안의 마나가 아닌 그의 생명력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자신이 이곳에서 죽더라도. 반드시 이 개자식들의 소식을 린디스에 알려 소탕해버리리라.

그는 억지로 끌어올린 마나를 빠르게 마찰시켜 기름과 충돌시켰다.

화르르르르륵!!!

동시에 막대한 크기의 화염이 순식간에 옮겨붙기 시작하며 검은 연기를 내뿜는다.

“부…… 불이다!! 빨리 움직여!!”

“바사스 황자! 바사스 황자를 구해라! 그가 죽으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바사스 황자가 마주한 이 고란의 특작부대의 인원수는 약 십여 명. 그중 절반이 갑작스레 난 화재에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후 거칠게 숨을 몰아쉰 바사스의 얼굴에 일순간 망설임이 서렸지만 얼마 가지 않은 듯 수갑을 헐렁하게 채웠다.

겉으로 보면 수갑을 찬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가 작정하는 순간 바로 풀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후 그는 점점 거칠게 숨을 쉬며 화염을 노려보았고 일순간 숨을 멈춤과 동시에…….

화르르륵!!

불길에 몸을 던졌다.

콰아앙!!

“젠장!! 그를 빨리 구해!!”

뒤늦게 화마 소식을 듣고 찾아온 이들이 급히 그의 몸에 붙은 불을 껐지만, 바사스 황자의 몸은 심각할 정도의 화상을 입고 있었다.

그의 윤기 나던 머리카락은 싹 타버렸고, 눈동자는 빛을 거의 잃었으며 그의 피부는 끔찍한 화상 자국으로 가득했다.

“젠장! 이대로면 그는 죽어! 빨리 옮겨!”

“하…… 하지만 오울 님! 저희 중엔 치료가 가능한 이가 없습니다!”

“멍청아! 얼굴을 봐라! 누가 이자를 바사스 황자라고 생각하겠어! 목숨줄만 붙이면 돼! 그 이상은 필요 없다. 어느 정도 생명줄을 이어붙이면 곧바로 그를 데리고 떠난다. 알겠나?”

오울이라 불린 노인은 황급히 바사스의 넝마가 되고 불탄 옷을 벗긴 뒤 평범한 이의 옷을 덮어씌웠다.

그리고 들것에 그를 실어 빠르게 이동했다.

여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사태가 벌어질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바사스 황자가 여기서 사망하기라도 한다면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터.

어차피 들킬 거라면 차라리 위험부담을 안더라도 그의 목숨을 이어붙이는 게 맞으리라.

신전은 안 된다. 그렇다면 용한 의원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을 터.

신음조차 하지 못한 채 죽어가는 바사스 황자를 데리고 돈만 주면 조용히 치료해주는 의원에게 그를 데리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천으로 덮어 그의 모습을 숨겼지만, 탄내까지 숨길 순 없었다.

그것이 그가 노린 바였다. 이후 그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강제로 채찍질해 무언가를 뱉어냈다.

툭…….

바닥에 작은 인장 같은 것이 그의 입안에서 흘러나와 떨어졌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진 못했다.

제발. 누구라도 이걸 발견하기를.

* * *

데이비는 에이리아와 함께 차를 마시며 바사스 황자에 대한 정보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허공이 일렁이더니 아이나 헬리샤나가 스르륵 모습을 드러낸다.

“돌아왔습니다.”

“정보는?”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린디스 내에서 조금 의아한 소식을 접해왔습니다.”

“의아한 소식?”

“네. 서부 영지인 콘라드에서 기이한 사고가 터졌다더군요. 평범한 민가인데.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새카맣게 탄 환자를 누군가가 급히 옮기고 있더랍니다. 천으로 숨기긴 했지만, 탄내는 확실히 났다고 하더군요.”

일반 민가에서 그런 일이 벌어져? 웃기는 소리.

“신전으로 향했나?”

“아뇨. 의원 쪽으로 향했습니다.”

“인상착의는?”

“특별할 것 없는 이들이었답니다.”

그래? 이거 냄새가 살살 나네.

“그리고 거기서 이걸 주웠다더군요.”

아이나는 종이에 작은 바둑알 정도 사이즈의 아티펙트를 그린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보기가 무섭게 에이리아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황실의 증표!!”

황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황족의 시신을 찾기 위해 황족들이 어릴 때 삼키는 아티펙트라 할 수 있다.

인체에 무해함은 물론 몸 안에 품고 있으면 잔병도 막아준다는 린디스의 독자적인 기술이기도 했다.

“황족의 문양이에요! 죽을 때 막대한 파장을 일으켜서 위치를 알리는!”

“……의도한 건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환자를 옮기는 그들의 행동이 꽤 다급해 보였다더군요.”

“제법 똑똑한 양반이네.”

그들이 당황했다면, 바사스가 납치당한 게 사실이라면 이자는 정말 자기 목적을 위해 미친 짓을 저지른 셈이다.

그가 보낼 수 있는 유일한 SOS 신호가 아닌가.

“가시나요?”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무섭게 에이리아가 물어왔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서방님…….”

그녀는 부탁은 제법 단호했고 결정이 굳게 서 있었다.

“오라버니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있을 순 없어요. 그리고, 뭐가 됐건 어머니의 혼이 이제 오래 버틸 수 없어요.”

그 말에 데이비는 잠시 침묵하다가 화재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췄다.

과보호와 방치의 밸런스는 맞추기 어려운 법.

“그래. 같이 가자.”

그리 말하며 데이비가 에이리아를 공주님 안기 하듯 안아 들었다.

“꺅!”

“조금 멀미 날 수도 있으니 꽉 잡아.”

“네에…….”

빨개진 얼굴로 에이리아가 고개를 데이비의 가슴에 묻는다.

바사스 황자가 자신의 육체를 망가뜨려 가면서까지 만든 기회는 분명 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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