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383화 (1,383/1,559)

제 1383화

고란 왕국은 군사국가라 할 수 있다.

재상이었던 자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국왕이 된 왕국.

민초를 수탈하여 국가 운영의 상당 부분을 군비증강에 몰아넣고 있는 만큼 작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인 군단. 전략병기라고 불리는 소드마스터의 수가 셋이나 보유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고란이었다.

또한, 지형은 어떠한가.

천혜의 요충지라 불리는 땅이 워낙에 많은 탓에 방어에 극도로 이점이 많은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티오니스 역사상 가장 유명했던 전쟁 중 하나로써 30만 명을 고작 1만여 명이 막아낸 전장의 배경.

군사 쿠데타 당시 왕실이 토벌대를 보냈다가 대패를 겪은 요새 등등.

그런 고란 왕국의 장점은 단 한 명에 의해 모조리 지워지고 있었다.

“현재 보고된 대로에 따르면 데이비 올 라운 대공은 이쪽. 이 벨칸 협곡부터 수도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모든 것을 날려버리고 있다더군요. 단순히 날리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그 지역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고 있다고 합니다.”

정확히 말해서 고란과 라운은 국경선이 이어져 있지 않다.

팔란의 황제 살리반은 짧게 신음했다.

“이제와서 되돌이키기엔 늦었겠지.”

“폐하.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사실 명확한 증거도 없이 전쟁을 벌였다니 말은 많지만, 데이비 대공은 몰라도 하인스에서는 이미 증거를 어느 정도 확보해놓았을 것이네.”

그가 아무리 눈이 돌아갔어도 관계도 없는 이들을 무너뜨릴 정도로 아둔한 자는 아니었다.

즉. 고란은 범인이 맞다고 보는 게 옳으리라.

“하면…….”

“어차피 고란은 국제연합에서 탈퇴한 곳. 굳이 우리가 이 이상 손댈 필요는 없겠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황실 귀족들에게도 내 말을 전부 전파하도록 하게.”

고란 왕국의 상태를 봤으면 알겠지만, 데이비가 가진 힘은 자신들의 상상을 아득히 넘어간다.

그러니. 다른 건 다 건드려도 하인스만큼은 건드리지 마라.

이거야 원 황제보다 권위가 더 높아진 느낌이지만 어쩌겠는가.

본래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것을.

지금이야 삼제국이 서로 견제하고 있기에 평화롭지만, 저쪽은 명백한 밸런스 파괴의 세력이다.

“다행히 그가 대륙을 쥐고 흔들 생각이 없다는 걸 다행이라 여겨야겠지.”

천천히 성장하고 있는 존재라면 압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완성되어버린 존재를 상대로는 어찌할 수단이 없다.

수출규제? 정치적 압박?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살리반은 잘 알고 있었다.

데이비가 만약 수가 틀려 티오니스 전체와 전쟁을 벌일지라도, 그 결과로 대륙의 인구가 대부분 사라질지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쯧. 본인도 마음이 편치는 않겠군.”

대공비를 노렸기에 눈이 돌아갔다곤 하지만 가능하면 살생을 피했던 데이비였던 만큼 그도 마음이 편치는 않으리라.

“다른 국가들은?”

“모두 같은 입장인듯하옵니다.”

“그렇겠지. 데이비 대공이 보여주려고 한 것이 그것일 테니…….”

* * *

고란의 왕성에 대마법 보호막이 있다곤 하지만 뚫지 못할 벽은 아니었다.

지금 하는 행동은 과격한 무력진압임과 동시에 상대에게 시간을 주는 미련한 행동이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츠츠츠츳…….

수백 미터에 달하는 뇌광의 검신이 사라지며 신창 롱기누스가 본래의 형태로 돌아온다.

생존자라곤 하나도 없는 죽음의 폐허가 되어버린 요새를 저벅저벅 걸어가며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마 이들 중엔 뭣 모르고 끌려온 이들도 존재할 것이다.

지독한 업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그런 너희들의 혼만큼은 제대로 인도해주마.”

폐허가 된 공간 너머로 수를 헤아리기 힘든 새하얀 무언가가 떠올라 흩어지듯 사라진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거니 싶지만 말이다.

이제 고란의 왕성까지 남은 길목에 존재하는 성이나 영지는 총 7곳.

설사 수많은 인간을 죽인 악마라 불릴지라도 여기까지 와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저들은 필사적으로 나를 막으려 들었지만, 사정을 봐주지 않게 된 시점에서 저항 따위는 의미 없었다.

다만 이놈들이 대체 무엇 때문에 시간을 끌고 있는지는 조금 의문점이 있었다.

고란 왕국이 군사국가로 유명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을 뒤집을만한 특별한 수를 가지고 있다곤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저들은 살기위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인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는 그들이 인권을 아무렇지도 않게 탄압하는 폭정을 일삼는 국가라는 사실이 뒷받침한다.

“일반농민들? 잡혀 온 이들인가?”

마치 항전을 하듯 평원을 지키고 있는 이들을 보았을 때 내 표정이 찡그려졌다.

[계약자. 적당히 부숴 먹어라. 하위 정령들의 앓는 소리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로군.]

따로 소환하지 않았음에도 흙인형 같은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대지의 정령왕 노아스의 투정에 나는 질문을 던졌다.

“노아스. 저것들은 지금 여기서 내가 발목이 묶이길 바라는 거겠지?”

[그렇겠지. 이미 첫 전투부터 시간을 벌기 위해 인간들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느낌은 받고 있지 않았나.]

“그래.”

내가 조용히 침묵한 채 그들을 시야에 담자 조잡한 병장기들을 쥐고 있던 그들이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저들도 다 죽일 건가?]

“본래대로라면 그래야겠지.”

그들을 향해 내디딘 한발이 땅에 닿기가 무섭게 내가 퍼뜨린 마나가 주변 공간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어쭙잖은 자비는 파고들 틈을 만들어주는 법이다.

국제적인 비난이고 뭐고 고란 왕국은 어떻게든 내게서 이득을 따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터. 조금 안일했던 것도 인정해야 했다.

“철저하게 짓밟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진격한 게 이렇게 될거라고 예상 못 한 건 아니지만…….”

[이 왕국의 인간들은 생명의 목숨을 너무 경시하는 경향이 있군.]

“노아스.”

내 부름에 노아스의 얼굴이 내 쪽을 향했다.

“다른 정령왕들과 함께 먼저 움직여. 슬슬 도망치는 놈들이 나올 거야. 단 한 놈도 놓치지 마.”

[계획을 바꾼 것인가?]

“그래.”

마치 기다렸다는 듯 스르륵 사라지는 노아스를 뒤로한 채 나는 양손을 주머니에 스윽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메가로드리아. 동쪽에 있는 벨티움 영지를 날려버려. 10분 후에 가마.”

쿠우웅!!!!

그말과 동시에 내 뒤편에 있던 창공이 찢어지며 거대한 흑룡이 엄청난 크기의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나를 지나치듯 빠르게 날아오른다.

병사들은 겁에 질린 채 흑룡 메가로드리아를 공격해야 하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내비쳤지만, 메가로드리아는 그들을 깔끔하게 무시한 채 창공 높이 사라져갔다.

일부는 겁에 질려 무기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들을 압박하는 기사들이 검을 빼 들어 몇몇을 본보기로 베어버리자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공세는 내게서 틈을 만들기 위한 것.

단번에 전멸해도 상관없다는 태도가 분명했다.

아마 인질을 이용해 내 반응을 보겠다는 의도였을 터.

“들어라!! 학살을 자행하는 악귀여!!”

그것을 잘 아는지 장군으로 보이는 자가 소리친다.

“네놈의 욕심으로 이미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우리 고란의 자랑스러운 국민들은 네놈의 압제에 굴하지 않을 것이다!”

“…….”

“자랑스러운 고란 왕국의 병사들이여! 저 살인에 미친 괴물에게 물러서지 마라! 이곳이 밀리면 그다음은 우리들의 가족이 저 괴물에게 유린당할 것이니!!!”

여기서 물러나면 앞에서 죽은 이들이 무엇이 될까.

자조 섞인 웃음이 나왔다.

“전군!! 공격!!!”

그의 외침에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윗놈들의 욕심으로 죽어 나가는 건 결국 아랫사람들. 저들 중 이번 일에 관련이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아니, 관련이 있는 이가 있기나 할까.

그 점은 이미 이곳에 오는 길에 싸웠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참 서글픈 현실이다.

아무리 지워버리겠다 하였지만 죄 없는 민초가 휩쓸리는 상황은 최대한 피했다.

그렇기에 오는 길에 있는 대부분의 영지들을 건드리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전장. 그리고 눈앞의 저들은 적이다.

“마음대로 원망해라. 그 업은 내가 짊어지고 가마.”

[9서클 초월 흑마법]

[울티마]

빛조차 빨아들이는 초대형의 검은 구체가 하늘 높이 떠오른다.

태양빛조차 삼키며 평원 전체를 새까만 빛으로 물든 구체는 막대한 사령 마나를 먹어치우기 시작했고 그대로 천천히 낙하하기 시작했다.

예전이었다면 사용하는 것도 힘들었고, 사용한다 해도 좋은 꼴은 못 봤을 테지만 멈추지 않는다.

“뭐…… 뭐야!”

“젠장!! 사…… 살려줘!!”

파랗던 하늘이 일순간에 검게 변하는 것을 본 이들이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혼란 속에 빠진다.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는 것보다 더 빠르게…….

종말을 일컫는 흑구가 지상에 낙하했다.

* * *

시체는 한 구도 남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깔끔하게 지워져 버린 평야를 보며 나는 눈을 살짝 감았다.

저들을 이끌던 이는 고란 왕국에서 보유하고 있던 소드마스터였지만 아무리 소드마스터라도 9서클 흑마법을 버텨낼 재간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인간사는 참 복잡하네요.”

막대한 영혼의 승천을 감지한 저승이가 화가 난 얼굴로 내게 뭐라 항의하려다가 흠칫 몸을 떨었다.

“…….”

“마음이 편치않아 보이십니다.”

“괜한 소리하지 마라.”

지워버려야 할 놈들을 치우는데 왜 관계없는 사람까지 피해를 봐야 하는가.

“그럼 그들을 살리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요.”

“그건 안돼. 이번 일로 어떤 소리를 듣더라도. 절대 양보 못 하는 범위가 있는 거다.”

어떤 자비도 남기지 말아야 했다. 아니, 남길 생각이 없다.

그래야 향후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어쭙잖은 경고는 더 많은 희생을 낳게 될거다.”

“그것이 죄 없는 이들의 목숨을 빼앗을 권한이 될까요…….”

“글세. 적어도 죽은 이들에겐 무슨 변명을 해도 나는 학살자겠지.”

그건 내가 죽여온 뱀파이어, 마족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한다.

“우선 영혼들은 전부 회수하겠습니다. 바로 가십니까?”

“그래. 시간을 주면 안 되겠다.”

나는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이 전쟁의 끝에 과연 사람들은 나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괴물이라 여길까.

아니면…….

* * *

고란의 왕성에선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끌기 위해 세 명의 소드마스터 중 한 명을 파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미친놈은 인질이고 뭐고 협상 따위는 없다는 듯 닥치는 대로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폐하…… 예측대로라면 앞으로 몇 시간 안에 그가 이곳에 당도하게 될 것입니다.”

“대책을 내놓으라 대책을!!”

“우선은 몸을 피하시옵소서. 신들이 그자를 막겠나이다.”

“몸을 피하라…… 대체 어디로 피한단 말인가.”

“그것은…….”

“후우…… 그 괴물을 막을 방법은 정녕 없는가.”

“저희 예상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론 버티는 것도 불가능하거니와…… 그가 당도하면 대처하기 어려워집니다. 항복 또한 받아들이지 않겠지요.”

“발견된 그 무기는 사용할 수 없겠는가.”

“가능성은 있지만…… 그게 그자를 침묵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옵니다…….”

“망할…….”

“우선 피신하시옵소서. 저희들이 모시겠나이다.”

그 말에 고란의 국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족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즉 남은 것은 그들의 욕심에 희생될 이들뿐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높으신 분들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고란 왕국의 국운이 하루아침에 이꼴이 난 것이 그들에겐 뼈아플 뿐이다.

그때였다.

“폐…… 폐하!!! 큰일 났사옵니다!”

급하게 들어온 기사 하나가 소리쳤다.

“차…… 창밖을 봐주시옵소서!!”

그의 외침에 국왕이 흠칫 놀라 창문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눈을 부릅 떴다.

“저…… 저게 무슨?!”

그의 눈에 비친 것은 고란의 수도를 동서남북으로 감싸고 서 있는 존재 때문이었다.

“저…… 저것은?!”

“저…… 정령왕…….”

정령사로 보이는 사내 하나가 덜덜 떨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왕성의 성벽 바깥에 모습을 드러낸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흙의 거인이 천천히 손을 드는 게 보였다.

“마…… 막아!!”

저놈이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냥두면 큰일 난다는 사실이었다.

[계약자는 모두 뒤집어 쓰려고 하지만 나는 그리 달갑지 않군. 나는 그의 계약 정령으로써 그가 업을 함께 짊어질 것이다.]

그말과 함께 그의 주먹이 성벽에 내리꽂힌다.

쿠우우우우웅!!!!!

동시에 대지가 뒤흔들리기 시작했고 이내 수도 전제의 대지가 마치 진흙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이…… 이게 무슨!!”

동시에 놀랍게도 땅이 녹아내리며 살아있는 것처럼 모든 이들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이…… 이것을 풀어라! 당장!! 짐을 구하란 말이다!!”

격하게 소리치지만 녹아내린 대리석바닥은 국왕은 물론 귀족들의 육신을 빠르게 묶어나갔다.

마법사들이 마법을 펼쳐 그것을 풀어내려 하지만 한계가 사라진 정령왕의 힘은 감히 일개 소국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퇴로가 순식간에 막히기 시작하자 귀족들은 급기야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처절한 비명 속에서도 녹아내린 땅은 그들을 포박한 채 딱딱하게 굳어버렸고 그들의 몸 대부분은 마치 석화라도 된 것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젠장! 으아아악!! 이대로 죽을 순 없단 말이다! 이걸 빨리 풀어라 이 쓸모없는 것들!!”

격분하며 마법사와 기사들을 향해 귀족들이 격하게 소리친다.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인간들의 본성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그렇게 죽음의 공포에 극한까지 몰린 이들은 일의 원흉인 귀족이나 국왕뿐만이 아니었다.

“젠장! 빌어먹을!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당신들 때문이다!! 당신들이 그를 이용하려 들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리는 없었단 말이다!!!”

격분하며 소리 지르는 이를 시작으로 상당수의 인원들이 일의 원흉인 국왕과 귀족들을 비난하며 살기를 드러냈다.

격렬한 비난과 원망이 터져 나오자 인간의 정신은 광기의 끝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콰득!!

그중 일부는 어떻게 한 것인지 노아스의 속박에서 빠져나왔고 검을 집어 들었다.

덜덜 떨면서 귀족들에게 다가간 한 기사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소리 질렀다.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를 건드렸냐는 말이다!!”

“지…… 진정해라! 다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웃기지 마!!! 대부분의 영지를 그가 건드리지 않았지만, 그는 이 수도로 오는 길에 있는 모든 방어 요충지들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고 있다! 그런데 수도가 멀쩡해?! 웃기는 소리! 당신네들의 허황된 욕심 때문에 우리는 다 죽게 생겼다고!!”

“이…… 이 무엄한 놈이!!”

“무엄은 얼어죽을! 내가 죽으면 그딴 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촤악!!!

패닉에 빠진 기사가 한 후작의 목을 베어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일부 기사들의 속박이 느슨해진다.

귀족들은 그렇게 빠져나온 기사들이 저 미친놈을 제압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피해자나 다름없던 대부분의 기사들은…….

“죽어!!!”

고란 왕실에 반기를 들었다.

참혹한 살육의 현장이 펼쳐진다.

지독한 살육과 광란의 현장이 펼쳐진다.

귀족들은 살려달라 빌다가 반란을 일으킨 기사들의 손에 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죽음이 예정되었다는 공포는 그들을 극한의 패닉으로 몰아넣었다.

[살고 싶은가.]

그때 녹아내린 대리석바닥에서 인간 정도의 크기를 지닌 흙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내며 말을 걸었다.

“으아아아악!!!”

[묻겠다. 살고 싶은가.]

“사…… 살고 싶어! 난 아무 잘못도 없다고! 그냥 평소처럼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전쟁이라니!! 죽음이 예정되었다니!!”

격렬하게 외치는 기사를 향해 노아스는 말했다.

[그렇다면 도망쳐라. 이 수도는 지도에서 지워지겠지만. 죄 없는 이들을 최대한 데리고 도망쳐라.]

노아스가 그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의 계약자는 나도 말릴 수 없다. 또한, 말릴 생각도 없다. 고란은 이 지도에서 지워진다. 하지만, 죄없이 휘말린 이들을 살릴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쳐라.]

노아스의 말에 검을 미친 듯이 휘두르던 이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고 이내 미친 듯이 왕성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귀족들이 참살당하고 남은 이들은 극소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남은 공간 속에서 노아스는 고란의 국왕을 보며 말했다.

[네놈 때문에 내 계약자가 묻히지 않아도 될 피를 손에 묻혔다.]

노아스가 쿵! 쿵! 소리를 내며 국왕을 향해 다가가자 그가 겁에 질려 덜덜 떨었다.

[네놈을 찢어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드는군.]

그가 천천히 고란의 국왕의 머리를 잡아챈다.

그때였다.

“내려놔라. 노아스.”

[계약자…….]

“그놈은 남겨놔. 다른 놈들은 몰라도, 그놈만큼은.”

언제 온 것일까.

데이비가 접견실로 들어서며 말하자 노아스는 국왕을 내려놓고 천천히 물러났다.

“데…… 데이비 올 라운 대공. 내…… 내가 잘못했네! 제발……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시게!”

아직 최종 수단은 준비되지 않았다.

본래의 진격속도를 생각하면 상당한 시간이 있을진대. 왜 갑자기 이렇게 빨리 도착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국왕은 최대한 시간을 벌기 위해 소리쳤다.

“부탁이네! 제발!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나! 배상하겠네. 사과하라면 사과하겠네! 우리 고란은 무조건 항복을 하겠네! 그러니 제발!”

“늦었어. 그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했었어야지.”

“이곳의 인간들을 전부 죽이겠다는 것인가!!! 그렇게 수많은 인간의 피를 묻힌 학살자가 될 것이냐 말이다!!”

“…….”

데이비는 담담하게 그를 내려다보았다.

쓰러진 국왕은 피를 울컥 토하며 다시금 소리 질렀다.

“지금이라도 멈춰라! 이 이상의 피해는…….”

“그 업은 너와 내가 짊어진다.”

데이비가 천천히 그의 머리에 손을 뻗었다. 동시에 국왕의 앞에 내팽개쳐진 한 아티펙트가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고란의 국왕의 행동이 돌변했다.

“하…… 죽자…… 그래 모두 같이 죽자꾸나!!!”

동시에 그가 박살 나버린 몸을 날려 아티펙트를 머리로 찍어 가동시킨다.

우우우우우웅!!!!!

동시에 막대한 에너지 파동이 왕성 아래쪽에서 요동치기 시작한다.

“크흐흐흐…… 오래된 유적에서 발견된 지옥의 무기다. 이 수도는 물론 근처 평야까지 모조리 지워버릴 힘을 지닌 파괴 병기지! 홀로 죽지 않을 것이다. 네놈도 길동무로 삼아주마!!!”

그의 발악 섞인 외침에 노아스가 천천히 움직이려 했다.

“내버려 둬. 노아스.”

동시에 엄청난 진동이 일기 시작했다. 곧 폭발이 이 왕성은 물론 수도 전체. 아니 수도를 너머 일대 전체를 집어삼키리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고온의 폭발.

단 한 개 발견되었고 그 원리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절대적인 병기가 가동한다.

하지만 폭발을 기다리던 국왕은 어째서인지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일이 없음을 깨달았다.

“무…… 무슨…… 대체 왜…….”

혼란스러워하던 찰나, 부서진 벽면 바깥으로 거대한 흑룡이 사람의 몸만 한 사이즈의 금속 구체를 입에 물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저…… 저것은!!!!”

[간식은 잘 먹겠다.]

메가로드리아. 창공의 폭풍 용왕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는 바로 극도로 농축된 방사능이었다.

그리고 고대유적에서 발견되었다던 무기의 정체는 다름 아닌 거대한 핵분열을 마나로 일으키는 하나의 핵무기였다.

티오니스에는 사실상 존재해선 안 되고 존재할 리도 없는 무기였던 것이다.

차원의 뒤틀림이 생겼을 때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시간을 번 이유가 저것 때문이었나? 고작 저것 때문에 전장에 죄 없는 일반 농민들까지 동원했냐고.”

데이비가 조용히 물었다.

“대체 무슨…….”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긴 해도 이렇게 폭발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 리는 없었다.

한데. 왜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일까.

혼란스러워하는 고란의 국왕의 턱을 데이비가 강하게 틀어쥐었다.

“커헉! 끄륵…….”

[계약자. 조금만 시간을 주어라.]

“뭐?”

[지금까지 계약자가 쓸어버린 요새는 대부분 군인과 용병들이었다. 하지만 이 수도의 인간들 중 대부분은 민간인이다.]

“이 개새끼가 그 민간인들을 강제로 동원했다. 이미 내 손에 죽은 죄 없는 이가 수백 수천이야.”

[이 이상의 피해는 의미가 없다. 충분히 경고는 되었을 테니까.]

“…….”

노아스의 설득에 데이비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계약자, 네가 의도하는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어떤 협상의 여지도 남기지 않으려는 것이겠지. 원한다면 그리해라. 이 수도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는 것도 네 선택이다. 하나. 아직 이 수도엔 도망치지 못한 이들이 많다. 힘이 없어서 도망치지 못한 자들, 버려진 자들. 아무런 죄 없는 약자들, 그들까지 죽일 필요는 없으며 그대도 바라지 않는 결과일 것이다.]

그 말에 데이비의 전신에서 마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하늘의 구름이 흐려지며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듯한 다수의 운석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계약자!!]

“두시간. 노아스 네 힘이라면 그들을 이 수도 밖으로 빼낼 수 있을 거다.”

한숨을 내쉰 데이비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하며 돌아섰다.

결국, 끝까지 잔혹함을 유지하지 못했지만, 노아스는 그를 비웃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데이비가 많은 것을 양보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고란이 그동안 숨겨온 여러 수단은 많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소드마스터든 일반 농민이든 가리지않고 균등하게 찾아온 죽음의 물결은 고란의 수도에서 종지부를 찍었다.

노아스는 자신의 분신을 무수히 만들어 수도를 벗어나는 이들을 이곳에서 내보냈다.

그리고, 어떤 분위기도 느껴지지 않는 고요함만이 가득한 수도와 왕성의 중심에서 데이비는 손가락을 튕겼다.

왕성에 남은 생존자였던 고란의 국왕과 일부 귀족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재앙을 시야에 담은 채 멍한 얼굴을 했다.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리 최고의 계략이라 할지라도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다.

지독한 후회 속에서 그들의 머리 위로 죽음의 운석이 낙하하는 것을 시야에 담았다.

운석의 범위에 노출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는 전혀 몸을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저 정도 운석으론 그를 어찌할 수 없다고 말하듯 그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고란의 국왕.”

“…….”

“죽어서 끝일 거라 생각하지 마라.”

쿠우우우웅!!!

마치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고요함 속에서 운석이 충돌하는 거대한 굉음만이 수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모든 것이 지워져 버린 폐허 속에서 데이비는 잔해를 깔고 앉은 채 물었다.

“여신님. 내가 과했던 것일까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을 걸어오는 데이비를 향해 여인은 천천히 다가갔다.

“제가 죽인 이들 중 상당수는 죄 없는 이들이었겠지요.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 자들은 대부분이었을 것이고. 결국, 국왕을 포함한 진짜 원흉만 지워버렸다면…… 이런 피해까지 일으킬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계속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데이비의 목소리에 씁쓸함이 짙게 묻어나온다.

말없이 데이비를 뒤에서 끌어 안아준 프리아 여신은 침묵을 지켰다.

“근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선을 넘은 것에 대한 대처까지 느슨하게 했다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다칠지 모르니까…….”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그를 보며 프리아 여신은 천천히 다가와 잔해에 앉아있는 데이비를 그저 말없이 바라보았다.

[네 사람을 너무 믿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녀의 물음에 데이비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강해져도. 아무리 커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제가 지켜야 할 이들이니까요. 그리고 그들을 위협할 요소가 남아있다면, 저는 그보다 더한 악귀도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이고, 남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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