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82화
야방.
에반젤린이 정말로 몸이 찌뿌둥할 땐 간혹 즐기는 콘텐츠기도 했다.
주요 콘텐츠는 그녀의 레어에 있는 절경을 구경한다든지, 직접 날아올라서 지구의 절경을 구경하든지 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마당에 비화가 심심하다며 이어놓은 루트가 그녀의 눈을 반짝이게 했다.
에반젤린의 레어는 지구와 티오니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차원의 틈새에 존재하는 공간인 만큼 양쪽 차원 모두에게 어느 정도 옅은 벽을 지니고 있다.
과거라면 어림도 없을 행동이었지만 차원의 벽이 약해지고 데이비가 차원을 쉽게 여닫을 수 있게 되면서 생긴 일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지구와 레어 사이에 이어진 데이터 전송 루트를 티오니스까지 연장한다.
사실 일반적인 경우는 불가능했다. 게다가 데이비가 티오니스와 지구의 문화를 함부로 뒤섞지 말라고 했었기에 레어와 티오니스 사이에 데이터 루트를 남겨놓은 적은 없었다.
그걸 비화가 해낸 것이다.
[사람 사는 곳 말고 절경이나 찍고 다녀. 나 네 방송 자주 보니까.]
에반젤린을 나름대로 생각해준 언니의 배려였을까. 아니면, 최근 자주 괴롭히는 넬타리드의 후임과 무슨 이야기가 오간 것일까.
중요한 건 이번 컨텐츠를 수월하게 수급했다는 사실이다.
“아아, 에헴! 여러분 반가워요.”
-에하.
-개같이 멸망한 행동대장 토끼공주.
-에~하. 근데 여긴 뭐임?
-야방? 야방이야? 방장?
굉장히 아름다운 꽃밭이 펼쳐진 절경을 보며 시청자들은 의문을 표했다.
에반젤린이 야방을 하긴 한다지만 야방이라는 게 제법 호불호가 갈리는 콘텐츠기에 자주 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만 더 그 게임 이야기하면 다 밴 때릴 거에요.”
-ㅋㅋㅋㅋㅋ
-탄압이다!!
“아 조용히 해요! 이게 다 절제 아저씨랑 시우 오빠가 나를 똑바로 안 말려서 그런 거야! 두 사람이 나쁜 거라고!”
-이걸?
-절제 실시간 극대노 중 ㅋㅋㅋㅋㅋ
시작부터 에반젤린이 게임에 돈을 쏟아부었다가 걸려서 불티나게 맞았다는 사실을 들먹이며 놀리는 시청자들과 한바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컨텐츠를 진행하지 않을 순 없었다.
“그보다 여기 어때요? 예쁘죠? 원래 야방은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잘 안 하긴 하는데…….”
에반젤린이 뜸을 들이며 시청자들의 복장을 뒤집는다.
-아니 그래서 여기 어딘데!
-아니 개 이쁘네, 여기 어디임? 나중에 여행 가보게.
“오늘 이 야방만큼은 보는 사람들에게도 제법 색다른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강행했어요. 아참. 이거 아빠한텐 비밀이에요. 들키면 진짜 엄청 혼나니까.”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하며 에반젤린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녀를 찍는 카메라가 마치 전문적인 카메라맨이 찍는 것처럼 혼자 부유하며 3인칭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찍기 시작했다.
-와…… 근데 진짜 여기 절경이긴 하다.
-근데 저 꽃은 진짜 신기하게 생겼는데.
-그래서. 방장. 여기 어디임? 겉보기엔 적도 부근 같은데.
삐링!!
사수자리 님께서 1,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공습경보!! 공습경보!! 그곳이다!!
사자자리 님께서 1,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아아…… 조졌네.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오는 대량의 후원들.
“사수자리 님, 사자자리 님 두 분 다 100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어…… 음…… 리액션이라도 해드려야겠죠?”
떨떠름한 얼굴로 조심스레. 그리고 부끄러움을 억누른 애교를 피운 에반젤린의 행동에 채팅방의 민심이 극렬하게 날뛴다.
“후우…… 어쨌든. 중요한 이야기인데. 제가 여기 있는 건 절대비밀이에요. 여기가 어디냐면요.”
-방장…… 숨넘어가겠어…… 빨리 말해줘…….
“티오니스에요.”
그 한마디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사정없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눼?
-어디라굽쇼?
“티오니스요. 티오니스 동부대륙의 위쪽에 위치한 별의 정원이라는 곳이에요. 유명한 곳이지만 이곳으로 오는 길이 굉장히 위험해서 잘 들어오기 힘든 곳이기도 해요.”
-근데 바로 들어온 거임?
“에이. 위험하다고 해봐야 고작 사이클롭스나 오거, 와이번 같은 쩌리들이 대부분인데 뭐.”
-논란. 방장 사이클롭스보고 쩌리라고…….
“어쨌든! 여러분들 티오니스 솔직히 소문만 무성하지 직접 본건 처음이잖아요. 그쵸? 그러니까 비록 사람이 있는 곳까진 갈 수 없겠지만 이런 절경 같은 걸 보면서 수다 좀 떨고, 그림도 그리죠.”
-??사람은 왜 못 봄?
“두 세계의 문화가 잘못 뒤섞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근데 지구에는 티오니스 문물 많이 들어오지 않음?
-맞다. 맞다.
“그건 음…… 설명이 좀 애매하긴 한데…… 정확히는 티오니스 문물이 아니에요.”
담담하게 말한 에반젤린은 사람들이 처음 보는 식물이나 동물들을 하나하나 보여주거나 하며 주변을 구경했다.
야방의 단점인 카메라의 흔들림 같은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녀의 마법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앵글을 부드럽게 고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수다를 떨면서 방송을 진행하던 도중이었다.
-방장. 하늘이 왜 저럼? 티오니스는 태양이 여러 개임?
“하늘이요? 아뇨. 티오니스도 당연히 태양은 하나죠. 사람들 다 타죽을 일 있어요? 멍청이네!”
꺄르륵 웃으며 비웃자 시청자는 부들거렸다.
하지만 곧 그를 제외하고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늘었다.
-근데 태양이 개 많은데? 저거 뭐임?
“그럴 리가.”
시청자들의 제보에 하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든 에반젤린이 정확히 사람들이 보고 있던 하늘을 보고 굳어버렸다.
-방장?
-얼었나?
-뭐임뭐임?
-몬가…… 몬가가 일어나고 있다.
에반젤린의 표정이 시시각각 굳어가는 걸 보며 시청자들이 당혹스러워한다.
그때였다.
“메테오…….”
이윽고 심각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에반젤린이 등 뒤의 공간을 찢어내며 거대한 날개를 뽑아냈다.
-방장?
“잠깐만 속도 올릴게요. 말도 안 돼, 이게 무슨…….”
터엉!!!!
순식간에 고도가 높아지며 주변의 풍경이 보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물론 에반젤린도 경악했다.
마치 태양처럼 나타나 추락한 거대한 운석들은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저 멀리서 굉장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콰아앙!!! 쿠우우웅!!
-????
-진짜 무슨 일 벌어지고 있는 거임?
-티오니스에는 저런 재해가 원래 저렇게 벌어지는 거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단순 재해 따위가 아니다. 명백한 마법이었다.
당황한 에반젤린은 빠르게 화면을 전환시켰다. 그리고 이만한 말도 안 되는 마법을 일으킨 범인을 찾기 위해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빠르게 눈동자를 굴리며 이 일의 원흉을 찾던 에반젤린은 갑작스레 나타난 이가 그녀를 막아서자 멈췄다.
“언니?”
바로 비화였다.
“이 앞으로 가지 마. 에반젤린.”
“저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전쟁.”
“전쟁이라고?! 대체 누가! 국제연합 때문에 전쟁은 최소 억제…….”
“고란 왕국과 라운 왕국이 전쟁 중이야. 아빠가 나섰어.”
“아…… 빠?”
떨리는 눈동자로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동안 티오니스에서 복잡한 일이 터져있으니까 넘어오지 말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대체 왜.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말려야 한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건 대량학살이 아닌가.
당혹성을 숨기지 못한 채 그녀가 방송화면을 잠시 전환하고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이려던 찰나였다.
비화가 다시금 그녀를 잡아 세운다.
“가지 말라고. 방송 정지당하고 싶어?”
“무슨 말이야! 아빠가 왜 저기에…… 그리고 저거 메테오는 또 뭐고!!”
“말했잖아. 아빠가 고란 왕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저 메테오는 아빠가 부른 거야.”
그 한마디에 모두의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대체…… 왜?”
이해가 안 되는 것들 투성이였다. 전쟁이 이렇게 단시간에 벌어진 것도 당혹스러운데. 손속에 사정이 하나도 없는 데이비의 행동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만 봐도 전황이 얼마나 압도적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전쟁은 많은 사람들이 죽어…… 이건 아니잖아…… 비화언니. 아빠를 말려야…….”
그리 말하던 에반젤린은 데이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류에 침을 꼴깍 삼켰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이 이상의 피는 막아야 했다.
그들의 목숨보다도 사람들이 아빠를 두려워할 것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에반젤린이었다.
“안돼…… 막아야 한다고!!”
“가지마.”
“언니! 지금 장난해?! 무슨 이유건 이런 건 이상하…….”
“저 개X끼들이 엄마를 죽이려고 했어.”
그 한마디에 힘을 주며 비화를 뿌리치려 하던 에반젤린이 우뚝 굳었다.
“어…… 엄마?”
“그래. 누군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에반젤린도 알고 있었다. 데이비의 부인을 노린다고 해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가장 가능성이 있는 건 단 한 명뿐이다.
에이리아 알 라운.
“대체 무슨 일이…….”
“아빠는 그동안 어지간한 일이라면 무조건 평화적으로 대처했어. 그게 문제였을까. 이것들이 아빠가 패권을 쥐고 있는걸 이용해서 린디스 제국과 이간질을 벌여 싸움을 붙이려고 했나 봐. 그 과정에서…….”
“…….”
“잊지 마. 아빠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족을 죽이려 했다면 눈이 돌아가는 사람이야.”
비화는 마치 경고하듯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걸 건드린 이상. 나도 변호할 생각은 없어.”
“그…… 그래도 저 병사들은…….”
“죄가 없어? 틀려. 아빠는 이 와중에도 도망칠 사람들이 피난할 시간을 줬어. 저기 남은 놈들은 출세욕. 자금욕. 그 외에 다른 저마다의 욕심, 그 외에 고란 왕실에 선동되어서 아빠와 적대하기로 한 자들이야. 겁도 없지.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그건…….”
“뻔한 거야. 소문으로 무성하지만 사람이라는 건 직접 보지 않으면 잘 믿지 않거든.”
지구였으면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저곳에는 데이비가 사정 봐줄 대상은 남아 있지 않았다. 아니 남아있다 할지라도 인내심이 터져버린 데이비에게 자비 따위는 없었다.
“라운의 선전포고 이후에 아빠는 상당한 유예를 남겼어. 눈치 빠른 국가의 통치권자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고란 왕국의 죄 없는 시민들을 안전지역으로 빼돌렸지. 그러니까 저기 요새에 남은 건 아빠와 적대하는 인간들이라는 소리야.”
고란 왕국의 멸망은 정해진 사안이다. 남은 것은 얼마나 피해를 줄이느냐.
그것이 관건이었다.
데이비는 고란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 말했지만, 민간인들이 모여있는 지역은 모두 제외했다.
저 요새는 라운과 정면 싸움을 위해 병력이 모여있던 곳이기도 했다.
“나도 아빠가 사람을 죽이는 건 반대지만…… 그게 엄마를 위험하게 만들었다면 어떤 변호도 할 생각 없어. 아니. 아빠가 안 했으면 내가 저 땅에 저주를 내렸을 거야.”
비화가 서늘하게 말했다.
에반젤린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공포에 가까운 운석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장 무슨 일인지 설명 좀…….
“여러분…… 죄송한데 일단 돌아가야 할 거 같아요…….”
야방을 하러 왔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들은 에반젤린이었다.
그리고, 에반젤린은 몰랐지만, 비화의 의도대로 이 이야기가 퍼져나가며 지구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같은 시각 많은 국가에서는 혹시나 하는 사태와 후일을 위해 데이비의 약점을 파악하던 항목에서 그의 사람을 이용한다는 항목을 모조리 삭제했다.
그리고, 엄한 생각을 품고 있던 이들의 행동을 멈추게 했다.
아무리 날고 기어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십 개의 운석을 감당할 자신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지간해선 함부로 손을 쓰지 않는 데이비가 손을 썼다는 선례를 확인함으로써 강력한 억제제가 되었다.
마치 핵미사일을 쏘는 것이 상호확증파괴가 된다는 것을 모두가 아는 것처럼 말이다.
비화는 그 사실을 은연중에 지구에 공표했다.
데이비가 힘이 없거나 사람이 바보같이 순진해 빠져서 크게 뒤엎는 게 아니라는 것을.
* * *
이미 앞서 존재하는 세 개의 요새가 고작 2시간 만에 완전히 지도에서 사라졌다.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필사적으로 보고를 올려온 전령들로 인해 요새 내에는 죽음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으…… 으아아…….”
요새를 지키던 병사들의 일부는 과거 하인스의 성자가 전쟁을 벌이면서 해왔던 행동들을 기반으로 움직인 이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전쟁이 벌어져도 최소한 피해를 억제하고 사망자를 줄이려 한 데이비의 행동을 보고 전쟁에 참여해 적당히 항복하고 목숨줄을 이어붙이면서 돈을 벌 생각을 하던 이들도 많았다.
티오니스 성자라면 사람을 마구잡이로 학살하진 않을 테니 적당히 용병으로 뛰는 척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맹목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빌어먹을! 네가 여기 오자고 했잖아! 안 죽을 수 있다면서!!”
한 사내가 병사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X발 산맥 너머로 떨어지는 저거 보여?! 두 시간 만에 모조리 전멸이야! 우린 다 죽을 거라고!!”
“망할 나도 몰랐다고! 하인스 성자가 이렇게까지 가차 없이 다 죽여버릴 거라곤…….”
“망할…… 좀 더 고민했어야 했는데…… 그놈의 돈 때문에…….”
워낙에 많은 돈을 걸었던 만큼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물론 그 대금의 대부분이 사실상 공수표나 다름없었지만 돈을 보고 모여든 용병들이나 병사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젠장! 이봐! 이대로 있다간 우리도 죄다 몰살이야! 후퇴해야 한다고!!”
급기야 공포를 이기지 못한 한 인물이 백부장을 향해 소리치자 그가 엄한 얼굴로 소리친다.
“위대하신 고란의 폐하께서 자리의 사수를 명하셨다. 물러나는 놈들은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
“웃기지 마! 난 도망칠 거야!”
촤악!!!!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검을 휘두른 백부장의 손에 한 용병이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미…… 미친놈이!!”
“너희 용병들의 목숨은 우리 고란 왕국에서 사들였다. 위대하신 고란의 폐하께서 말씀하신다. 자리를 지켜라. 감히 그분의 말을 듣지 않겠다면…….”
뼛속까지 세뇌된 병사들이 검을 용병들에게 겨누자 용병들의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으…… 으아아아아!! 온다!! 그 괴물이 온다고!!!”
그때 망루에 있던 병사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소리 지르기 시작했고. 동시라고 할 정도의 순간에 다수의 인영들이 우르르 달려가 성벽에 매달리듯 저편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저게 인간이란 말인가.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깔끔한 모습.
검은 코트를 입은 젊은 청년은 천천히 요새 밖의 평야로 걸어오고 있었다.
웃음 따위는 없었다.
미칠 듯이 뛰는 심장 소리가 마치 사신의 발걸음 소리처럼 격하게 들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모두가 긴장한다. 도저히 요새 두 개를 지워버리고 온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이들뿐이었다.
“겁먹지 마라. 상대는 혼자다. 혼자선 아무리 해도 한계가 존재하는 법. 우리는 이미 신무기를 준비 중이다. 전원!! 화살을 장전하라!!”
그 말에 겁을 먹은 용병들과 병사들이 덜덜 떨면서도 활시위에 화살을 메겼다.
데이비 올 라운은 어떤 협상도 응하지 않았다.
처음 경고했던 대로 모조리 지워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요새를 지키던 이들은 침을 삼켰다. 이곳에 화살을 장전하고 있는 이만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제대로 발사만 한다면 날아가는 화살은 하늘을 검게 물들일 수준이 되리라.
거기에 화살 중 상당수가 마나를 머금었으니 아무리 뛰어난 존재라도 정면으로 들어오진 못할 터.
그가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트는 순간이 함정의 발동 시기였다.
모두가 긴장한 순간. 요새를 지키던 사령관의 외침이 들려왔다.
“쏴라!!!”
슈슈슈슈슉!!!
순식간에 엄청난 수의 화살이 그를 향해 날아든다.
그럼에도 데이비는 천천히 걸어올 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대체 뭐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휩싸이지만 홀린 것도 아니고 인간이 이만한 화살을 무시할 수는 없을 터다.
뒤이어 마법사들의 포격마법까지 지원되니 그야말로 놀라울 수준이었다.
이 요새는 천혜의 요새로써 마법사들이 수성을 할 때 굉장히 메리트가 많은 자연지형이기도 했다.
아무리 빨라도 쳐내는 데엔 한계가 있고 아무리 단단해도 마나 화살까지 모두 무시하진 못할 터.
그랬어야 했다.
스윽…….
묵묵히 걸어오던 데이비가 잠시 멈춘다.
그리고 왼발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가.
“뭐…… 뭣?!”
쿠우우웅!!!
가볍게 구르기가 무섭게 그의 주변을 시작으로 허공이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보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동시에 믿을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를 향해 날아들던 화살들이 허공에서 깨지는 균열에 휩쓸리며 같이 부서지고 가루처럼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모조리 부서지는 균열은 그를 시작으로 전방위 수백 미터는 우습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 사태를 일으킨 데이비는 차가운 비웃음을 던지며 무언가를 말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의 목소리가 요새 전체 인간들의 귓가에 들려왔다.
“뭣 때문에 이렇게 시간을 버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롱잔치 정도는 봐주마. 대신 나도 큰 걸 보여줄 테니.”
그말과 함께 데이비의 손에 묵빛의 거창이 쥐어지는 게 보였다.
창 한 자루. 하지만 유명한 무기이기도 하다.
청단이 홍단이를 제외하고 데이비가 주로 쓰는 무기이며 한때 빛의 용사 레이나가 빌려서 사용하기도 했던 무기였으니까.
신창 롱기누스는 제법 유명한 무구였다.
하지만, 곧 창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하자 모두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거대한 창을 높이 들어올리기가 무섭게 창끝부터 창의 중간 허리 부분까지 양쪽으로 갈라지며 넓게 펼쳐진 것이다.
양쪽으로 동일한 형태로 펼쳐진 창은 더 이상 무기라고 하기엔 기묘한 [ㅜ] 자의 형태를 했다.
대체 무엇을 하려고.
요새를 지키는 이들은 데이비가 변해버린 창의 아래쪽을 양손으로 마치 대검을 잡듯 틀어잡는 것을 보고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의문 자체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 이런 미친!! 막아! 막으라고!!! 방패병!!”
“개소리하지 마!! 저걸 방패로 어떻게 막아!!”
“으…… 으아아!! 도망쳐!!”
파직…… 파지지지직!!!
금빛의 뇌전이 거대한 창에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갈라진 부분 위쪽으로 거대한 뇌광의 검신이 만들어진다.
[신창 롱기누스]
[오버드라이브]
[썬더 브레이커]
창의 양쪽이 갈라지고 위쪽으로 드러난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뇌광의 검신으로 인해 형태는 하나의 검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도망치는 이들 너머로 데이비가 한발을 강하게 굴러 대지를 뒤집어엎으며 거대한 검을 휘두른다.
쩌억!!!
마치 거대한 거인이 상을 잘라버리듯.
황금빛의 뇌광은 일대 협곡과 요새를 가리지 않고 일거에 베어버리기가 무섭게 후폭풍이 찾아오듯 구 형태의 거대한 뇌광의 폭발이 요새를 포함한 일대 전체를 휘감았다.
막대한 지진과 대기가 깨지고 부서지며 흔들린다.
“미친…….”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팔란 제국의 정보국 1번대 대장은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여진 채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강한 줄은 알았지만 이건 대체…….”
현 상황에 대해 보고하라는 명령만 아니었으면 뒤도 보지 않고 도망쳤으리라.
덜덜 떨리는 손으로 통신 아티펙트를 작동하자 문제라도 생긴 듯 한참 동안 먹통이던 수정구가 겨우 연결된다.
-1번대 정보국 대장 반이 보고드립니다. 알리슘 요새……. 아니…… 알리슘 산맥의 일부가…… 증발해버렸습니다.
지도에서 지운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