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95화
“비화가 한 거 봤어?”
일리나가 키득거리며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스마트폰에는 비화가 개인 인터뷰를 하면서 과거와 달리 안정적이고 새로운 공간을 제공해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인터뷰가 나와 있었다.
“얘, 조율의 권능 관리하려고 가상현실을 다시 만든 모양이야.”
“잘했네.”
“상관없는 거 맞아?”
“비화가 하는 일은 나도 잘 몰라. 애초에 나와는 계열부터가 다르고 비화는 진짜 여신이니까. 아마 겉으론 욕망이니 심심하니 해도 일일이 관리하다가 실수가 나올 수 있다는걸 알았겠지.”
비화는 인간 자체에 조금 회의적인 입장이었지만 이번에 맥거프 주방장의 일로 자신이 정을 준 존재에게 얼마나 물렁물렁해질 수 있는지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에반젤린이 심드렁하게 받아들였던 가상현실 시스템을 다시 강행하여 구현한 것일 테고.
“덕분에 주가가 엄청 올랐다고 하던데. 지구도 보면 참 신기한 세상이야.”
“그래서. 나온 건 어떻게 됐데?”
뭐라 해도 비화는 데이비의 자식이었다.
그런 사랑하는 딸이 세상에 내놓은 것이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는다면 옆집 뒷집 아랫집 윗집 동네방네 죄다 소문내며 자랑하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 아니던가.
“평이 굉장히 좋아. 누가 되었건 간단히 즐기는 게임으로 시작한 것도 있고, 아주 작정하고 노력한 게 보이더라고.”
어차피 운영은 운영진 측에서 할 뿐 비화가 내놓은 것은 하나의 시스템 체계일 뿐이었다.
“가자.”
“응? 어딜?”
일리나가 고개를 들어 묻는다.
“어디를 가긴. 자랑하러 가야지!”
“어휴…….”
“왜. 싫은 게야?”
뒤이어 책을 읽으며 아벨과 손장난을 쳐주던 페르세르크가 묻자 일리나의 표정이 변했다.
“싫다니요. 당연히 가야지.”
그 아빠에 그 엄마였다.
* * *
“너무 성급한 거 아니야 언니?”
“뭐가?”
한창 뒹굴뒹굴하며 다리안과 장난을 치고 있는 비화의 태평한 대답에 초단이가 쓰게 웃었다.
“보통 게임이라는 건 오랜 시간 공들여서 만드는 거잖아. 그런데 이렇게 급하게 내놓으면…… 여러 면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게임의 완성도나 그걸 운영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초단이가 정확하게 문제점을 짚어냈다.
아무리 과거 알프 온라인의 뒤에 출시할 게임의 데이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해도 너무 성급한 건 사실이었다.
이에 비화가 피식 웃으며 다리안을 목말을 태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긴 하지만 당장 출시되는 것들은 넬타리드가 만든 거야.”
“네…… 넬타리드가?”
“그게 무슨…….”
“우리 쪽에서도 그런 의견은 있었거든. 장비는 있는데 콘텐츠 제작에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걸려버리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그동안 즐길 커뮤니티. 자잘한 여가 게임이나 그런 것들을 먼저 내놓는 거지. 컴퓨터의 지뢰 찾기마냥. 애초에 나는 꼭 게임이 아니라도 상관없어. 접속만 하면 돼. 안에서 영화를 보건 낚시를 즐기건 우주여행을 하건 뭘 하건 영혼의식을 링크하기만 하면 된다 이 말이야.”
물론 제법 심심했던 만큼 게임에 다시 흥미를 느낀 것도 사실이긴 했다.
과거엔 그토록 바랬던 여행이나 같이 식사를 하는 건 이제 원 없이 즐기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럼 그걸 만든 넬타리드는…….”
“정확히는 전대의 넬타리드가 만들어놓은 걸 현재의 넬타리드가 기억을 되짚어서 끄집어낸 것뿐이야. 물론 그래도 꽤 지친 기색이긴 했다만.”
넬타리드가 단순히 각성자만을 위해서가 아닌 지구의 인간이 더 행복하게 즐겼으면 하는 의도로 만들어낸 완성형 세상.
단순히 게임을 넘어선 여러 종류의 새로운 은총.
가상현실이라곤 하지만 익히 알려진 것과 달리 이미 소멸한 신이 만들어내고 남긴 가상의 세상이었다.
* * *
늘 그렇듯 방송을 하는 에반젤린이지만 이번엔 조금 다른 콘텐츠를 준비한 찰나였다.
“언니 들어왔어?”
신기한 느낌을 주는 공간 속에서 에반젤린이 허공에 손을 뻗어 메신저 창을 활성화한다.
마치 두리안톡처럼 간편한 시스템에 그녀가 말을 하자 작은 빛무리가 그녀의 주변으로 몰려들더니 이내 청단이 홍단이와 비화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링크는 잘된 모양이네.”
“뭔가 굉장히 신기하다. 직접 해본 건 처음이라 그런가? 예전에 아빠가 해준 이야기랑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네.”
“너무 현실적이진 않게 했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면 안 되니까.”
그 탓에 비화는 하늘에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특별한 문자가 띄워져 있었다. 이곳이 현실이 아닌 가상이라고 말하는듯한 하나의 안전장치 같은 느낌이었다.
“저 시스템은 예전에도 비슷하게 있었을 거야. 인간의 정신은 생각보다 약한 부분이 있으니까. 저런 안전장치는 필수지.”
비화가 어깨를 으쓱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보다 넌 왜 이렇게 주변이 삭막해.”
“이제 첫 접속인데 뭘 꾸밀 시간이 어딨어.”
“됐고 비켜봐. 살짝 손봐줄게.”
화악!!
비화가 손을 휘젓자 신기하게도 그녀의 의지에 따라 예쁘장한 방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형태는 에반젤린의 방과 흡사하지만 조금 더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일반적으론 존재할 수 없는 디자인 또한 존재했는데 가상현실의 장점이기도 했다.
“우……우와아아! 어…… 엄청 예뻐! 홍다니! 홍다니도 해볼래!”
그렇게 말한 홍단이가 신이 난 듯 허공에 손짓을 하지만 제대로 된 조작법을 모르니 움직일 턱이 없었다.
“으웅……. 비하, 비하, 이거 왜 안대애?”
“……후. ……잘 봐. 이렇게 하는 거야. 특정 커멘드가 있어. 마구잡이로 손을 흔들다가 이상하게 바뀌면 안 되잖아?”
홍단이를 품에 안아 들고 비화가 정확한 동작을 취해주자 홍단이의 앞에 빛무리가 생겨났다.
“와! 뭐가 생겼서!”
“자 거기 왼쪽 누르고 바꾸고 싶거나 만들고 싶은 걸 생각한 다음에 손을 휘저어봐.”
비화의 설명에 잠시 고민하던 홍단이는 뭔가 떠오른 듯 양손을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챠르르릉!!
그러자 신기하게도 빛무리들이 모여들며 수많은 인형들이 생겨났고 사람 두어 명은 푹 빠져들 법한 사이즈의 커다란 곰 인형이 바닥에 툭! 하고 놓였다.
“우와아아!”
그러자 홍단이와 청단이가 동시에 눈을 반짝이더니 후다닥 뛰어가 점프했고 거대한 곰의 품 안에 파고들었다.
꺄르륵 웃으며 좋아하는 두 아이의 모습에 에반젤린이 배시시 웃는다.
“신기하긴 하네. 하긴 의식공간이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건가?”
“다른 것도 해볼래? 아직은 이곳에서 네가 가진 스마트폰이나 방송을 연동하는 게 불안정하긴 하지만 금방 정리가 될 거야.”
“이것도 다 직접 만든 거야?”
“내가 만든 건 아니고.”
기본적인 베이스 자체를 넬타리드가 구현한 만큼 비화의 표정은 제법 편해 보였다.
“괜찮다. 이러면 이제 방송은 여기서 해도 되는 건가?”
“뭐 일일이 개편해나갈 일이겠지, 난 이제 핵심적인 의식 공명 기술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손 뗄 거야.”
직접적으로 더 이상 비화가 손을 대는 건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에반젤린은 자신의 방송이 이곳에서 가동되는지 확인했다.
“확실히 좋긴 한데. 레어에 있는 내방에서 하는 방송이 더 좋을 거 같아. 아, 여러분 반가워요.”
어느새 방송을 켜는 데 성공했는지 에반젤린이 그녀를 촬영하는 반투명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늘 콘텐츠는 보다시피 다시 돌아온 가상현실 체험이에요. 이미 즐기기 시작하신 분도 많겠지만. 오늘 제가 보여드릴 건 다름 아닌…….”
말을 하던 에반젤린이 비화를 흘끗 본다.
“언니, 뭐였지?”
“어휴 멍청아…….”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콘텐츠 이름도 모르는 서터리머가 이따?
-아니 그 와중에 저 뒤에 홍단이 청단이 개귀엽네 ㅋㅋㅋㅋ
꺄르륵 웃으며 거대한 곰 인형의 배 위에서 통통 튕기고 있는 홍단이와 청단이가 상당한 이목을 끄는 듯 보였다.
“비켜봐 내가 설명할 테니까.”
에반젤린을 툭 밀어내며 화면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인 비화가 말했다.
“별건 아니고, 지금 출시된 것들도 꽤 인기가 있지만, 곧 출시될 것들에 대해서 맛보기로 보여주려는 거야.”
-새로운 거?
-그만! 배 터져! 지금 있는 것도 한창 난리인데 더 있다고?
-와씨 며칠 뒤에 새로운 제품 오는데 풀 접속 간다! 딱 대!
“이미 영상이 많이 올라갔지만, 오늘 보여주는 건 어디에서도 없었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동생 방송 많이 보러 와줘야 한다?”
그렇게 말하며 한발 물러난 비화가 양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녀의 앞으로 입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내 포탈 같은 것을 만들어냈다.
“우와! 예쁘다!”
한창 곰 인형과 놀던 홍단이와 청단이가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과자를 오물거리며 자박자박 다가왔다.
청단이가 비화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비하야…… 이거 모야?”
“음…… 재밌는 곳이야. 먼저들 들어가 볼래?”
그 말에 홍단이와 청단이는 서로를 보더니 해맑게 웃으며 폴짝폴짝 뛰어 포탈 너머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아아아아앙!!!”
대차게 울음을 터뜨리며 튀어나와 에반젤린에게 달라붙는다.
“비하 미어!!”
“미워!!”
들어간 지 몇 초도 되지 않아 엉엉 울면서 나온 모습에 에반젤린이 인상을 팍 찡그리며 물었다.
“언니. 대체 저거 뭐야?”
“아…… 잘못 열었다.”
히죽 웃으며 비화가 손짓을 하자 포탈이 변하기 시작했다.
묘하게 초단이에게 쌀쌀맞은 비화답게 홍단이 청단이도 그 마수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했던 모양이었다.
“공포 체험용 공간인데 원래는 보여줄 생각 없었는데 실수로 열어버렸네! 히히히. 실수야 실수. 나도 이런 방식으로 힘을 굴리는 건 처음이라.”
척 봐도 일부러 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만큼 에반젤린이 비화가 듣지 못하게 속삭였다.
“저거 아무리 봐도 일부러지? 솔직히 비화 언니랑 초단 언니가 사이가 마냥 좋진 않거든. 정확히는 비화 언니가 초단 언니를 많이 질투해.”
-하긴 우리 월드 스타 초단님을 보면 질투하지ㅋ
-어우 X덕…….
-유명한 거로 치면 비화도 마찬가지 아님? 거의 신세계판 컴퓨터 창시자 수준인데?
“쓸데없는 이야기 말고 얼른 들어와. 시청자들 기다리게 할 거야?”
그 말에 엉엉 우는 홍단이와 청단이를 애써서 달랜 뒤 에반젤린은 카메라를 대동한 채 두 아이의 손을 잡고 포탈로 걸음을 옮겼다.
“으웅…… 홍다니 가기시러…….”
“청다니도 시러…….”
좀 전 비화 때문에 무서운 걸 봐버린 탓인지 요지부동으로 버티는 두 아이였다.
귀신을 봐도 꺄르륵 웃을 수 있는 홍단이와 청단이에게 대체 뭘 보여준 건지 속이 바짝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든다.
“그럼 초단이 언니 좀 불러줄 수 있어? 다 끝나면 정말 예쁜 곳에 데려가서 맛있는 것도 같이 먹자.”
“야…… 약속이야!”
홍단이가 울먹거리며 조막만 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다짐을 받아낸 후에야 데이비가 준 목걸이가 반응하며 초단이로 변했다.
“비화…… 이따가 보자.”
“진정해 언니. 어서 들어가자.”
초단이는 뭔가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포탈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와……나 초단이 화난 거 처음 봄.
-무슨 짓을 해야 그 귀여운 애를 울리는 거야 비화 이녀나!
-아니 우리 여신님 음해함?
-비화는 나와 일심동체임을 선언한다. 따라서 비화를 욕하는 건 나를 욕하는…….
-개소리 말고, 방장! 얼렁 들어가 봐 궁금해 죽겟음.
-우리 미치는 꼴 보고 싶어?!
사실 에반젤린도 궁금했던 참이기에 후다닥 뛰어 포탈 속으로 모습을 던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변하는 풍경을 보자마자 탄성을 흘렸다.
“와…….”
실제 같은 거대한 지하 시설의 풍경이다. 먼지의 답답한 느낌과 주변이 꽉 막힌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어? 이건 뭐야?”
“뭐긴 뭐야. 네 목숨 지켜줄 키 아이템이지.”
비화가 익숙하게 라이플의 노리쇠를 전진시키며 탄을 약실에 장전했다.
“총 다룰 줄 알아?”
“몰라. 써봤어야 알지. 게임에선 그냥 자동으로 장전되던데.”
“그게 가상현실과 PC의 차이점이지.”
“그런데 여기서 뭘 하는 거야?”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궁금해하던 초단이가 커다란 샷건을 철커덕 소리 나게 장전해보며 물었다.
“아직 나온 건 아닌데. 크리처에게서 도망쳐서 탈출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해.”
그 말과 동시에 저 멀리서 커다란 굉음과 함께 거대한 4족 보행형 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와. 저거 웃기게 생겼네.”
그렇게 말하며 에반젤린은 손에 들고 있던 라이플을 휙 던져버리고는 한 손을 허공에 뻗었다.
그녀의 애검, 용신검 트와일라잇을 소환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어? 이게 왜 안 나와?”
“야. 여기서 트와일라잇 들고 설치면 그게 무슨 재미야.”
콰앙!!!!
동시에 4족 보행형 괴물이 빠르게 에반젤린을 향해 달려들었고 에반젤린은 혀를 차며 괴물을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무기가 없어도 주먹과 마법으로 싸워 이기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게 괜히 게임이 아니다.
특히. 현실보정 따윈 하나도 없게 비화가 설정해버린 현 상황에서는 말이다.
“으…… 으악!! 얘 힘이 왜 이렇게 쌔!”
비명을 지른 에반젤린의 머리를 괴물이 거대한 입을 쩍 벌리며 그대로 물어버리자 에반젤린이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다.
고통은 없지만, 이질감에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이에 비화는 탄을 장전해둔 라이플의 총구를 그대로 괴물의 머리에 겨냥했고 망설임 없이 당겨버렸다.
타아앙!!!!
묵직한 소리와 함께 괴물의 몸에서 무지갯빛 액체가 터져 나오며 추욱 늘어진다.
“으…… 으아아……. 뭐야 이거…… 대체 뭐냐고!”
“말했잖아. 게임이라고. 여기서 너는 그냥 그냥 일반인과 다를 바 없어. 현실보정은 아직 적용을 안 했고, 설사 적용한다 해도 너처럼 무식한 스펙을 쥐여주면 그게 무슨 생존게임이야.”
“…….”
울먹거리며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팔을 보는 그녀에게 비화는 익숙하게 옷에 달린 포켓에서 붕대를 꺼내 엉성하게 감았다.
파창!!
그러자 빛이 터져 나오며 에반젤린의 팔이 빠르게 회복된다.
“이런 거 하나하나 세밀하게 조정해서 진짜 하드코어 한 곳에선 붕대 감는 거로 치료가 안 되는 것도 있다고 하더라. 지금은 그냥 즐기는 모드니까. 난이도도 그렇게 높진 않다고 들었는데.”
콰앙!!
-크아아아아!
퍼어엉!!!
묵직한 소리와 함께 슬러그탄이 들어간 샷건이 불을 뿜었다.
초단이가 신기하다는 듯 파르르 떨리는 손과 괴물의 시체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와. 이거 신기해.”
“거봐. 할만하지? 자 그럼 시작해보자. 목적은 여기서 지하 4층까지 가는 거야. 다만 중간중간에 함정도 있으니까 조심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초단이는 곁에 있던 소화전의 비상벨 버튼을 눌러버렸다.
띠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
동시에 위쪽의 스프링클러가 맹렬하게 물을 뿜어대기 시작했고 비화와 에반젤린이 멍한 얼굴로 초단이를 바라보았다.
실제라면 총소리고 벨소리고 엄청나게 시끄러웠겠지만, 이곳은 가상의 공간.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다.
“이히히…… 실수했다.”
“이…… 이 미X년이…… 야! 뛰어!!”
“으아아아!!”
본래와 다르게 힘이 일반인정도로 떨어진 박탈감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던 에반젤린은 본능적으로 비화를 따라 빠르게 달렸다.
콰아앙!!!
동시에 기괴하게 생긴 4족 보행형 크리처들이 미친 듯이 복도 너머에서 몰려들기 시작했다.
“우와아…….”
초단이는 맹한 표정으로 탄성을 흘리면서 비화와 에반젤린을 향해 뛰어갔다.
그때 벽면에 있던 지도를 빠르게 훑은 비화가 소리쳤다.
“저쪽! 저쪽 방호벽 너머로 가자! 아이씨! 나도 여기선 일반인이라고!”
그렇게 맹렬하게 달리던 찰나. 갑자기 초단이가 속도를 올리더니 빠르게 파고들었고 방호벽 너머의 철문을 열었다.
“나이스! 잘했어!”
초단이가 빠르게 문을 열어주자 비화는 만족스러운 듯 탄성을 흘렸다.
하지만.
“어?”
초단이가 담담한 얼굴로 비화의 가슴팍에 총구를 들이밀었고.
타아앙!!
그대로 비화를 쏴 넘어뜨린다.
“으갸악! 이 미X년이 뭐 하는 짓이야!”
바닥에 쓰러진 비화의 머리 위에 빨간색 hp바가 엄청나게 줄어들었고 비화가 화를 내며 따지려 들었다.
하지만 초단이는 예쁘게 웃으며 에반젤린을 철문 뒤쪽으로 보낸 뒤 말했다.
“넌 혼 좀 나야 해.”
콰앙!!
그리고는 문을 닫아버렸고 멍한 얼굴로 현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잇던 비화가 비명을 지르며 철문을 두드렸다.
“꺄아악! 내가 잘못했어! 문 열어줘! 문!! 문 열라고!”
쾅쾅!!
미친 듯이 두드려보지만, 초단이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후 문 너머에서 멍하니 있던 에반젤린과 초단이의 귀에는 수많은 괴물의 괴성과 비명을 지르며 총을 쏴대는 비화의 마지막 단말마만이 울려 퍼졌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 너머는 조용해졌고 얼마 가지 않아 에반젤린과 초단이의 옆으로 귀엽게 생긴 유령이 쏙! 하고 나오더니 초단이를 향해 으르렁거린다.
“초단이 진짜 넌 뒤졌어.”
“헤헤. 이제 서로 주고받은 거지? 게임이니까.”
“하.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초단이와 비화는 서로 웃었지만.
이내 얼마 가지 않아 서로를 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황당하다는 듯 두 언니를 바라보는 에반젤린과 한창 웃음이 터진 시청자들의 채팅창이 활발하게 올라갔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저게 자매지 ㅋㅋㅋㅋ
-미친 진짜 망설임 없이 쏴버리네 ㅋㅋㅋ
-와…… 우리 초단 느님 화나면 개무섭네 ㅋㅋㅋ
그 이후로도 둘은 아주 틈만 나면 서로를 노렸다.
방송의 콘텐츠는 확실히 책임진다고 말하듯 비화가 부상을 입기가 무섭게 곧바로 초단이의 다리를 쏴 이동 불가 상태를 만든 뒤 미끼로 던져줘 버리는 비화.
부활 장치를 통해 부활하자마자 낭떠러지 쪽으로 비화를 가볍게 밀어 떨어뜨려 버리는 초단이나.
평소 이상으로 아주 작정하고 싸우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두 자매의 갑작스러운 급발진 싸움은 채팅창에 올라온 한마디로 인해 완전히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띠링.
티오니스성자 님께서 5,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비화. 초단이. 너희 둘 다 집에 돌아오면 보자.
본인의 목소리를 그대로 쓴듯한 데이비의 무심하면서도 섬뜩한 목소리에 초단이와 비화는 동시에 딸꾹질을 했다.
“아이씨…… 조졌네…….”
비화의 감정이 서린 한마디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