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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35화 (1,435/1,559)

제 1435화

“아하하하! 저 멍청한 새끼!”

낄낄거리며 코미디 영화를 보고 있는 노아를 승현은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와선 언제 그랬냐는 듯 뻔뻔한 작태를 유지하지만.

조금 전 방송실에서 그녀를 내쫓은 뒤 들여보내 달라며 소리치는 그녀를 무시했을 때 본 것이 거짓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됐다고 했지.”

그제야 승현은 자신의 요구사항이 마냥 로망마냥 달콤한 게 아님을 알았다.

노아는 그의 부탁으로 인해 넬타리드가 태어나게 한 감정을 지닌 호문클루스. 사실상 인간처럼 정상적으로 태어난 방법이 아닐 뿐,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성격은 멀쩡해 보이지만 아직 세상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노아에게 유일한 것은 승현뿐이었다.

“야, 꼬마야.”

외관은 꼬마라고 하기엔 제법 풋풋한 십 대의 외형이지만 하는 짓은 아직 경험이 부족한 꼬맹이였다.

“노아라고 불러.”

“밥이나 먹자.”

그는 조금 전 배달온 것들을 식탁에 세팅하며 말했다.

“이제 여기서 사는 거잖아.”

“그렇지?”

“내가 싫다고 하면?”

그 말에 치킨 다리를 손에 든 노아가 움찔했다.

동시에 입꼬리는 웃고 있지만, 눈매가 사정없이 떨렸다.

“구라야. 멍청아. 먹어.”

“승현, 성질머리가 참 더럽네.”

“넌 내 곁에 오기 위해서 태어난 거지?”

“엉.”

치킨을 맛있게 오물거리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볼일이 벌어졌지만 결국 시작은 승현이었다.

그리고, 외로움을 타고 있던 그와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외로운 인물. 취향도 그와 비슷하니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주변의 시선? 애초에 호문클루스라고 방밍아웃을 때려버린 현시점에선 상관없는 일이다.

웃긴 일이긴 하지만 무슨 상관일까.

“그래. 환영한다. 태어나줘서 고맙다.”

승현은 그의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태어난 노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동시에 노아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태어나줘서 고맙다라는 한마디.

그 한마디가 그녀의 마음을 강하게 울렸다.

“그…… 솔직히 겁났는데…….”

“겁이 나?”

“지금 보니까 참 좋은 사람이네.”

“헛소리하기는. 사고만 치면 내쫓아버릴 테니 그리 알아.”

그의 헛웃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노아는 로봇이 아니다. 무려 지구의 신이 감정을 불어넣어 만든 하나의 감정체이며 지구에서 유일하게 홀로 존재하는 새로운 존재였다.

“적어도 네가 내 곁에 머무르는 동안만큼은 내가 너 먹여 살려주마.”

“음…… 넬타리드 님이 너무 많이 먹으면 승현이 거지새끼가 된다고 했는데.”

넬타리드가 거지새끼라는 과격한 표현을 썼을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만.

“그래. 먹는 양은 좀 줄이고.”

그래도 위장이 저토록 큰 건 경악스러운 일이다.

하인스에서 유명하다며 에반젤린에게 전해 들은 미식연구회도 이렇게 먹는 양에 집착하진 않았는데.

괜히 웃음이 나왔다.

* * *

“심심하다. 승현, 전에 하던 방송 안 해?”

“며칠은 푹 쉰다고 말했어. 잘됐지. 그동안 네 옷가지나 생필품을 좀 사야 하는데…….”

잠시 고민한 그가 물었다.

“너, 혹시 꼭 필요한 물품 같은 게 있나?”

그 질문에 노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눈을 반짝였다.

“전설의 용사가 쓰는 검을 원한다. 인간.”

“따로 필요는 없고. 그럼 간단한 의류만 구하면 된다는 거네. 겉옷이야 문제가 없다만…… 아무리 그래도 내의까지 사러 가기엔 참…….”

그러던 중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몇 인물이 있었다.

그나마 연락이 잘되는 에반젤린.

-저 방송중. ㅅㄱ.

“못된 년.”

다음으로는 비화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바쁨, 수고.

비화가 노아와 관련되어 물어볼 게 있으면 하라며 주었던 수정구에서도 똑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그나마 비화는 최소한의 정성은 보인다.

“자매가 아주 쌍으로…… 초단이에게 부탁하긴 좀 그렇고…….”

어떻게 주변에 아는 이들이 하나같이 티오니스와 연관이 있는지.

“내 인생 참 기묘하다.”

싸구려를 사주기도 뭣했던 탓에 승현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켠 뒤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미래를 준비한답시고 죄다 저축해버린 탓에 현재 생활비가 빠듯한 상황.

뭐가 되었건 먹는 입만 살짝 줄이면 한 달 정도는 버티지 않을까.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어?”

놀란 승현이 잠시 눈을 끔뻑거리다 손으로 눈을 비볐다.

그리고 다시 떴을 때 그의 얼굴에 피로가 모여든다.

“와, 돈을 많이 쓰긴 했구만, 적금이라도 깨야 하나…….”

통장에 남은 돈은 고작해야 100만 원.

그의 자산 대부분은 적금식으로 들어놨으니 당장 쓸 돈은 100만 원이 전부였다.

“왜?”

나무늘보 저리 가라 할 수준으로 소파에 늘어져 있던 노아가 이쑤시개로 제 이를 콕콕 찌르며 물었다.

“돈이 없네…….”

“돈? 아. 넬타리드 님이 내 생활비라면서 주신 게 있어. 교단에 가져다주면 돈으로 바꿔준대.”

그렇게 말한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곧 다시 늘어진다.

“으. 귀찮아…… 그래도 배는 안 고픈데. 그냥 잘래.”

그녀의 머리카락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녀와 함께 추욱 늘어진다.

흔히 만화에서나 볼법한 반응이 확실한 머리카락이다.

“야야! 자지 말고 일어나! 외출해야 하니까!”

“됐어. 승현도 나가는 거 귀찮잖아. 나가지 말자 응?”

“나가면 네가 좋아하는 파스타도 사주마.”

그 말에 그녀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고작 그런 거로 나를…….”

승현은 곧바로 딜을 추가했다.

“화덕피자.”

“…….”

“네가 먹어보고 싶다던 폭립도 추가.”

아무리 호문클루스라도 박스티 한 장만 걸치는 꼴을 더는 지켜봐 줄 수가 없다.

노아는 피식 비웃음을 던졌다.

“이번만 져준다.”

그리고는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하의실종 박스티 아랫부분에 손을 불쑥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배 쪽에서 무언가를 쑤욱 꺼냈다.

“미친, 척 봐도 비싸 보이는 조각상이네, 이거…… 팔아도 되냐?”

“응. 이거 가져다주면 거기 신부님들이 바로 사줄 거래. 뭐라더라? 신물?”

그녀가 꺼낸 것은. 척 봐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 듯 보이는 조각상이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팔지? 넬타리드 본산은 여기서 너무 먼데…….”

그때였다.

우우웅!! 우우우웅!!

맹렬하게 울리는 스마트폰에 승현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추욱 늘어져 있던 노아의 발목까지 오는 머리카락 일부가 떠올랐다.

그리고는 박스티 아래로 슬쩍 들어가더니 이내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겉보기엔 엎드린 채 늘어져 있는 그녀의 등 쪽으로 머리카락이 살아서 움직이는듯한 느낌이었다.

“뭘 찾는 거야.

“넬타리드 님이 주신 거.”

“너 대체 얼마나 받아온 거야.”

“막 몸 안에 이것저것 쑤셔 넣긴 했지.”

“거 말 표현 참…….”

“난 슬라임형의 호문클루스니까. 몸 안에 엄청 많이 보관할 수 있거든. 그나저나 어딨더라…….”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다는 듯 발목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을 이용해 조작하기 시작한다.

“머리카락으로 터치가 돼?”

“내 몸 어디든 된다고는 했어. 다른 사람은 못 쓴다고. 어…… 누구야. 잡상인 안 받아요. 안 사요.”

그리고는 통화를 끊어버리는 모습에 승현이 잠시 멍한 얼굴을 했다.

너무 당연하게 대답하는 그 모양새에 승현이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누군데? 잡상인이 네 스마트폰에 전화를 해.”

“몰라. 자기가 성녀 아가사라고…….”

“다시 전화해, 임마!!”

* * *

“넬타리드 님의 계시. 제가 높게 평가. 하지만 날다람쥐는 여전히 낮게 평가해요.”

조용히 기도를 올린 그녀는 넬타리드로부터 내린 계시를 이행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재 세계 각지에 넬타리드 교단이 뿌리를 내리면서 혹여 교단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른 게 아닌가 싶어 여러 방면으로 발품을 팔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주교님. 차량을 준비해주시겠어요?”

“차량 말씀이십니까.”

“네.”

넬타리드 교단이 오랜 시간 자리를 잡아 온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 알려진 신의 교단인 만큼 그 영향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어디로 향하는지 여쭤도 될까요.”

“신께서 계시를 내리셨어요. 넬타리드 님의 힘이 서린 신물을 내려보냈으니 그것을 적정한 대가를 주고 회수하라고.”

“신물…… 이라 하심은…….”

신물이라는 말이 참 묘하게 다가온다.

그도 그럴 것이 넬타리드 교단의 역사가 그리 긴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교단은 한번 대참사를 겪었고 많은 것들을 잃었다.

다행히 넬타리드 신이 초창기에 안배한 경전이나 계율, 혹은 역사서에 알려진 미스테리하고 숨겨진 기적에 대한 기록들이 남아 보관되어있지만 그럼에도 상당수 소실된 건 사실이었다.

“신께서 주신 축복이 서린 조각상이에요. 그것만으로도 일대 전체에 넬타리드 님의 축복이 내려진다고 해요. 저도 봐야 알겠지만…….”

아가사가 갑자기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기에 대주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한국에 있기를 잘했네요. 위치를 알려드릴 테니 곧바로 출발해 주세요. 아 참. 최대한 정중하게 모셔와 주세요.”

“알겠습니다. 성녀님.”

성녀. 참 듣기엔 오글거리는 단어지만 진짜 성흔을 가지고 있는 순수한 아이인 그녀는 명실상부 넬타리드의 성녀였다.

새하얗고 아이가 입기엔 조금 무거워 보이는 법의와 법모를 고쳐 쓰며 아가사는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이거 벗고 직접 다니고 싶은데…….”

당연히 그녀의 움직임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다.

과거 교황청의 교황이 움직인다고 해도 뉴스에 대서특필되는데 현존하는 신의 성녀가 움직인다고 하면 시끄러워질 수밖에.

실제로 기적을 몰고 다니는 성녀로 불리고 있으니까.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달갑진 않았다.

그 후 그녀는 넬타리드가 계시로 내려준 독특한 20자리 번호로 전화를 걸자 놀랍게도 전화가 이어졌다.

“신기한 번호네요.”

이후 나른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아가사는 목을 가다듬고 최대한 정중하게 그녀에게 인사를 올리려 했다.

계시에는 그녀가 넬타리드가 직접 만들어낸 존재라고 했으니 배분만 놓고 보면 노아가 더 높은 존재였다.

“먼저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넬타리드 교단의 성녀 아가사…….”

-어…… 누구야 잡상인 안 받아요. 안 사요.

뚜…… 뚜…….

그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반가워요. 넬타리드 교단의 성녀 아가사라고 해요 불쑥 연락드린 점은 죄송하나…….”

“헙! 성녀님! 조금 전엔 죄송했습니다!”

또 말을 끊었다. 지금까지 아무리 어려도 그녀의 말을 함부로 끊는 사람은 스승을 제외하고 없었는데…….

그녀가 울상을 지었다.

* * *

“만나서 반갑습니다. 성녀 아가사라고 합니다.”

아가사는 최대한 정중하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바…… 반갑습니다. 성녀님!”

일반인에게 신의 성흔을 받은 성녀의 존재는 까마득히 먼 존재라 할 수 있다.

승현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다수의 신관들을 보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교단이 생긴 지 오래 되지 않았으니 젊은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듣기로는 교황청의 교황 후보 몇 명조차 넬타리드의 계시와 기적. 그리고 경전의 진실을 계시받고 개종했다는 뉴스를 들은바 있는 것 같았다.

교단의 운영이라는 것도 결국 전문가들은 필요했으니까.

뭐라 해도 넬타리드 교단은 아직 해야 할 게 많은 교단임이 틀림없었다.

아가사는 최대한 깔끔하게 차려입은 승현과 이상하게 속이 전혀 비치지 않는 하얀 박스티 한 장에 작은 슬리퍼 하나만 신은 노아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신을 모시는 교단. 그것도 성녀의 앞치고는 굉장히 무례한 차림새였으나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가사가 성흔을 받은 존재이듯 노아 또한 넬타리드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존재임을 아는 이들이었다.

“이렇게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은 넬타리드 님께서 계시를 내리셨어요.”

“네. 안 그래도 어떻게 찾아뵈어야 하나 했는데 다행이네요.”

“그러게요. 제가 마침 한국에 있을 때라.”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하하…….”

어색하게 웃는 그를 향해 생긋 웃어준 아가사는 속을 최대한 진정시키며 말했다.

“안으로 드실까요?”

“알겠습니다.”

승현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이 거대한 성장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짧게 탄성을 흘렸다.

뉴스에서도 겉모습만 나올 뿐 내부 모습은 크게 드러난 적이 없으니까.

“승현. 나 귀찮아…… 어서 업어!”

그때 승현의 다리를 툭툭 치며 노아가 투정을 부렸고, 그는 피식 웃으며 노아에게 등을 내주었다.

“어휴. 나는 나를 도와줄 녀석을 원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난 귀한 몸이야. 잘 받들어 모시고 살아.”

“그냥 돌아가도 되는데.”

그 말에 노아가 표정을 찌푸리더니 그대로 승현의 목을 뒤에서 콱 졸랐다.

하지만 아이의 투정처럼 연약하다.

아가사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그는 역시나 신기한 내부를 보며 두리번거렸다.

“쪽팔리게 그만 두리번거려…….”

“야. 뉴스에서도 보기 힘든 장소야. 내가 여기 언제 와보겠냐.”

“신기하신가요?”

“아…… 아. 네.”

“후훗.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달리 이 거대 성당과 본산 건물은 넬타리드 신께서 직접 자아올리신 건물이니까요. 역사는 짧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건물보다 신성한 장소였다.

“실은 신께 계시를 받았어요. 넬타리드 님의 신물을 가지고 계시다고.”

“야. 보여드려.”

그 말에 노아는 등에 업힌 채 하품을 쩍쩍하다 가볍게 내려섰다.

“귀찮은데…….”

“약속했잖아.”

넬타리드였다면 오히려 안 한다고 강짜를 부렸을 노아였지만 이상하리만치 승현의 말은 잘 듣는 편이었다.

“잠시만…….”

원피스처럼 큰 박스티를 팔랑거리던 그녀가 이내 옷 아래로 황금빛의 조각상을 툭! 하고 떨어뜨렸다.

동시에 아가사를 따라 들어온 상위 대주교들이 흠칫 놀란다.

“저…… 저런!”

“세상에……”

일부는 작은 소녀의 몸에서 나온 것 같지 않은 거대한 조각상의 정체에 놀라워했고, 일부는 그녀의 굉장히 남사스러운 행동에 당황했다.

“세상에……이토록 짙은 기운이 서린 신물이라니…….”

그들의 당황은 곧 아가사가 탄성을 흘리자 곧바로 다른 곳으로 신경을 바꾸었다.

현재 교단을 이끄는 대주교들은 신에 귀의하며 특수한 신성력을 얻은 이들이었다.

세례.

성수를 머리에 작게 뿌린 이들 중 마음이 맑고 경건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힘이 바로 그 정체였다.

물론, 각성자처럼 대단한 힘을 내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눈에는 신물이 내버리는 신의 힘이 보일 정도였다.

“세상에…… 신물 중에서도 단연…….”

“이게…… 대체…….”

“으음…… 넬타리드 님이 이걸 주면서 그랬었어.”

담담하게 반말을 까버리는 노아가 폭탄을 던졌다.

“오래전, 계율을 하사받은 목자가 신도들을 이끌기 위해 사막을 바꾸었던 신물이라고. 겉보기엔 이래도 수천 년은 넘은 물건이라던데…….”

역사서엔 한 줄도 없다. 그 어떤 기록도 없다.

하지만.

아가사는 신물에 손을 대자마자 흠칫 놀랐다.

이 정체 모를 아이의 조각상이 보여주는 과거에 눈을 크게 뜬다.

마치 순례를 하듯 한 명을 선두로 이끌리는 대이동.

지금은 초원이나 죽음의 사막 같은 곳을 지나기 위해 기적을 발현한 신물이다.

뜨거운 공기는 선선해졌고, 죽음의 땅이나 다름없던 사막은 그들이 지나가는 동안 생명력이 넘치는 초목이 되었다.

아가사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한 방울 흘리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서…… 성녀님?!”

“대주교님…… 이것 좀…… 보시겠어요?”

그 말에 대주교는 천천히 걸어 나와 바닥에 놓인 조각상에 손을 올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눈을 뜨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아아…… 신이시여…….”

수천 년 전의 물건.

세상에 기록이 남겨지지 않은 방대한 과거의 기억이 아직 조각에 남아있다.

“전 아무것도 안 보이던데…….”

“그건 신께서 주신 세례를 받은 분들이 볼 수 있을 거예요. 저분들이 진심으로 교단에 귀의하시면서 신께서 내린 기적이니까요. 그보다 이게 정확히 어떤 물건이고 어떤 유래를 지니고 잇는지는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넬타리드 신의 행보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는 귀물이었다.

“그…… 이런 말씀 드리긴 뭣하지만, 이 물건을 넘기면 노아의 생활비를 받을 수 있다고…….”

“이 귀한 신물을 넘겨주신다는 말씀이시군요.”

“뭐…… 애초에 저희 것이 아니니까요. 괜히 욕심부리다가 가지고 있는 것조차 잃고 싶진 않으니…….”

승현은 자심이 품을 수 없는 욕심은 과감하게 버렸다.

“정말 감사드려요. 하지만 이토록 귀한 물건을 헐값에 넘겨받는 건 신에 대한 모독이 될 거에요.”

“아니…… 괜찮은데…….”

오히려 교단에서 비싸게 주고 받아가겠다는 걸 그가 말리는 입장이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이 녀석 옷가지랑 생필품이라…… 보시면 아시겠지만, 녀석이 입을만한 옷이 없어서 돈을 구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대주교님.”

이에 아가사는 가볍게 손뼉을 쳐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는 대주교 하나를 깨웠다.

지구에 있던 수많은 종교. 그중 일부의 기적이 넬타리드 교단의 숨겨진 기적이었음은 이미 어느 정도 드러난 바 있지만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아아…… 성녀님. 제가 추태를 보였군요.”

“아녜요. 대주교님. 지금 당장 노아 님께서 입을 수 있을법한 의상을 좀 수배해 주시겠어요?”

“그런 것이라면 제가 하겠습니다. 성녀님의 의상도 제가 골라드렸지 않습니까.”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적발의 여성이 주교복을 여미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아가사의 고풍스럽고 우아하지만, 굉장히 무거워 보이는 의상을 흘끗 바라본 노아가 한발 두말 물러나더니 냅다 도망치려 했다.

이에 승현은 그녀를 보지도 않고 손을 뻗어 노아의 뒷덜미를 낚아챈다.

“잘됐다 그치?”

“승현! 지금 나는 배가 부른 거 같다! 돌아가서 게임이나 마저…….”

“잘 부탁드립니다.”

승현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자 노아가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넬타리드에게서 노아는 전투적인 능력은 거의 내려받지 못했기에 그녀의 머리카락 색만 마치 카멜레온처럼 이색저색으로 바뀔 뿐이었다.

“어휴. 속이 시원하네.”

질질 끌려가는 노아를 뒤로한 채 승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후 두 시간이 지나서야 노아는 초주검이 된 상태로 승현의 앞에 나타났다.

처음 슬리퍼에 원피스처럼 큰 박스티 한 장 걸치고 있던 것과 달리 현재의 노아는 굉장히 귀여운 옷을 입고 있었다.

“진짜 화난다…….”

“고생했다. 가서 네가 좋아하는 파스타에 화덕피자 먹자.”

“폭립도.”

“그래그래.”

엄청난 신물이 가진 가치가 얼마나 뛰어난지는 모르지만 승현은 노련한 대주교들과 신물을 넘겨받는 협상에 휘말려야 했다.

그는 싼값에 넘기려 했다지만 그렇게 되면 교단의 위신에 문제가 생긴다며 의미 없는 협상을 해버린 것이다.

두 번은 못 할 짓이었지만 그래도 결국 교단으로부터 받은 선금은 30억.

신물의 진위 여부나 어디서 사용되었고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까지 세심하게 따졌다면 아마 승현의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그만큼 이곳 성당에서 아가사와 함께 이동하는 이들은 노련했다.

물론, 한순간에 큰 금액이 들어온 건 좋은 일이었다.

그가 아무리 잘나간다 해도 그가 평소 벌어들이는 수익은 1년에 1~2억 정도.

30억은 거대한 돈이었다.

“승현, 표정이 안 좋네.”

“그게. 뭔 절차상 협상인지 뭔지 때문에 계약서만 몇 장을 썼는지 모르겠네. 덕분에 당분간 이곳에 출석해야겠더라……”

“신물 때문에 힘든 거야?”

“나도 이렇게 절차가 복잡한 줄은 몰랐지.”

그 물음에 승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아의 입꼬리가 스산하게 올라간다.

“저기 성녀님.”

그리고는 평소답지 않게 굉장히 요망한 목소리로 그들을 배웅해주려는 아가사에게 다가갔다.

“네. 노아 님.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신물.”

노아가 자신의 치맛자락을 살며시 양손으로 잡자 승현이 기겁하며 그녀를 말리려 했다.

“더 있는데. 흐흐흐흐흐.”

툭! 투두두둑!!

동시에 치맛단 아래로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크고 작은 신물 5개가 더 떨어졌다.

청동, 나무, 철 등 재질은 다양하지만 그 안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신의 영향력은 조금 전 조각상과 다르지 않다.

모두가 현재 소실된 지구에 남겨진 넬타리드의 신물들이었다.

이제는 찾을 수 없게 숨겨진 것들을 모두 직접 회수한 뒤 그걸 노아에게 쥐여준 것.

데이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 자식을 만들더니 아주 미쳤다며 혀를 내둘렀지만, 넬타리드는 성격부터가 굉장히 문제가 많은 노아가 많이 신경 쓰였던 듯 보였다.

“승현이 협상하는 동안 나 파스타랑 화덕피자, 그리고 폭립이 먹고 싶어요.”

“세상에…… 신물이 이렇게나…….”

경악하는 대주교들을 보며 승현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신물 하나하나가 세상에 알려지면 교단의 위세를 막대하게 늘릴 수 있는 것들.

그 가치는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 원형이나 모세의 십계가 적힌 석판의 원본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것이다.

이미 보인 이상 반드시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

문제는 아이 조각상 하나에 3시간 넘게 걸린 협상인 만큼 5개라면?

그가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노아는 그런 그의 바지를 콱 움켜쥐고 생글생글 웃었다.

“열심히 해. 많이 봐준 거야.”

사악하게 웃었다.

그날 저녁.

승현은 세계 각지 뉴스에 모자이크 처리된 채 대서특필 되었다.

신의 힘이 서린 진짜 성물들이 발견되었고 그것을 발견해 가져온 인물로서 말이다.

당연히 종교계에선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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