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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58화 (1,458/1,559)

제 1458화

륜 베르타스 공작 영애 본인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지금 같은 행동은 자충수였으니까.

분에 이기지 못해서 투정을 부리듯 말한 결과였다.

본래라면 늘 사교계에서 있는 일이었다. 기세가 약한 영애를 짓밟는 행동 같은 경우는 흔하지는 않더라도 간간이 보이는 행동이기는 했다.

물론, 륜 베르타스 또한 이렇게까지 일을 키울 생각은 없었다. 그녀를 희생양 삼아 마음에 두고 있던 크로네스 왕자에게 관심을 더 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경쟁자인 린디스 제국의 후작가 영애. 라우라 멜 때문에 조급해진 것도 한몫했다.

비록 스파르트 왕국이 제국 같은 위상을 지닌 건 아니지만 한창 성장 중인 스파르트 왕국이며, 크로네스는 그런 것을 덮어놓더라도 잘생기고 강했으며 지위도 높았으니까.

갑작스레 시비가 붙었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교계의 미친개로 불리는 이오샤 페트릭의 약혼자와 충돌이 생긴 건 예상범위가 아니다.

물론, 충돌은 있다고 하지만 보르네 후작가의 라티우스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일이 꼬이진 않았을 것이다.

저 멍청한 근육 덩어리 뇌는 전후 사정 따윈 보지 않고 베르타스 공작 영애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 점은 고맙지만, 정도가 조금 지나쳤다.

미친개의 약혼자를 건드렸다.

이것만으로도 참 피곤해지는데 그 약혼자를 테이블에 처박아버렸으니 더 일이 커질 수밖에.

결국, 이사달이 났다. 문제는 그녀의 거짓말을 증언해줄 수 있는 이가 없는 만큼 여기서 일이 더 꼬이면 안 되는데.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정령을 통한 사실 여부.

설마 티오니스 성자의 딸이 정령을 불러낼 거라곤 생각지 못했던 만큼 당황해버린 베르타스 공작 영애는 이 사태의 원흉이라 판단한 에반젤린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말았다.

이 행동이 자충수임을 모를 정도로 그녀가 어리석진 않았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그녀에게 후퇴 같은 건 없었다. 집안의 사업문제를 이용해 라티우스 보르네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내세웠다.

에반젤린이 따로 기사를 대동하지 않았고 딱히 그녀가 남성과 어떤 연결점을 만들진 않았으니 이번 결투는 사실상 에반젤린의 판정패나 다름없다 여겼다.

하지만 크로네스 왕자가 거기서 에반젤린의 편을 든다.

왜? 왜 당신이 그 여자의 편을 드는데.

“보기 추합니다. 공작 영애.”

그 한마디에 륜 베르타스는 나락으로 처박히는듯한 아득함을 느꼈다.

처음부터 어쩐지 그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해 있는 것 같더라니.

지금이라도 물려야 하지만 크로네스가 에반젤린의 편을 들어버리는 게 너무 화가 나는 그녀였다.

“……정말 이대로 해?”

라티우스는 굉장히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상대로써 서 있는 건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에반젤린이였기 때문이었다.

딱히 무를 익힌 것 같지도 않은 체격, 크게 마나 또한 느껴지지 않는다.

티오니스 성자야 강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의 딸아이가 어떨지는 사실 의문이다.

이종족과의 하프라는 점을 생각하면 뭔가 수단은 있겠지만, 어디 고서에 나오는 태생부터 강한 종족인 드래곤이 아니고서야.

반면 크로네스는 뭔가 복잡한 표정이다.

“라티우스.”

“왜.”

“상대는 레이디다.”

“알고 있어. 힘 조절할 거야. 그보다 맨손으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정작 대결 상대인 에반젤린의 표정은 한없이 평온하다.

정말 무언가 한 수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저기…… 레이디. 솔직히 지금 상황이 웃기긴 하지만, 그래도 무기는 들어야 하지 않을까?”

“무기 말인가요.”

담담하게 중얼거린 에반젤린은 새하얗고 작은 양손의 장갑을 벗었다.

“이걸로 가죠.”

“…….”

아무리 레이디라도 무시는 적당히 해야지. 라티우스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쪽도 마냥 거부할 수는 없는데. 미안하지만 최대한 빨리 제압하도록 할게요.”

사람들이 물러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런 일이 잘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연회는 엄연히 어린 소년 소녀들만 모여있는 혈기가 왕성한 연회였다.

소드마스터니 대마법사니 굉장히 눈을 반짝거릴 나잇대의 아이들인 터라 더욱 이런 면에 관심을 두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만히 서서 라티우스를 바라보던 에반젤린은 새하얀 맨손을 가볍게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에반젤린 영애.”

“무슨 일이시죠?”

담담한 질문에 잠시 입을 다문 크로네스 왕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일은 레이디가 직접 하기엔 너무 거칩니다.”

“신경 안 써도 됩니다.”

“제가 불편해서 그렇습니다.”

그의 말에 에반젤린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왕자께서 왜요?”

“그야…….”

“괜한 오지랖이시니 물러나세요.”

“자꾸 신경이 쓰이니 그러는 겁니다. 지금이라도 제가 대리로…….”

“크로네스 왕자님.”

에반젤린이 그의 말을 끊었다.

“적당히 하세요.”

“…….”

그는 굳은 얼굴로 물러났다.

“최대한 힘 조절하고 제압할 테니 걱정 마라.”

라티우스는 자신의 친구 중 하나인 크라마에게 무언가 말하고는 걸어 나왔다.

“듣기로는 무투가시라고 들었는데요.”

“레이디에겐 너무 거치니까.”

그의 말에 에반젤린이 빙그레 웃었다.

“그런가요.”

“그럼…… 먼저 들어와.”

마치 고수가 하수에게 선수를 양보하듯 검을 까딱인다.

이에 에반젤린은 한숨을 내쉰 뒤 7보 이상 떨어진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응?”

“음?”

이에 구경하던 사람들은 그녀의 기이한 행각에 의문을 표했다. 대련을 하면서 이렇게 무방비하게 걸어 들어가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각. 또각.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구두를 신은 채 접근하는 그녀를 보며 라티우스는 뭔가 기분이 나쁜지 에반젤린을 노려보았다.

자신감과 자존심이 그 누구보다 높은 그였기에 아무리 레이디라도 결투에서 봐주는 건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크로네스 때문에 최대한 봐줄 수 있는 범위까지 넘어가 주건만, 이건 선을 넘는 게 아닌가.

그가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찰나. 에반젤린이 슬쩍 움직였다.

그녀의 희고 가느다란 손이 가볍게 말아쥐어 졌고 아주 천천히 그를 향해 뻗어져 나왔다.

이렇다 할 기술도 없는 정직한 주먹. 라티우스는 대체 에반젤린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가볍게 발을 뗐다.

선수를 양보하기로 한 만큼 공격을 하면 말을 어긴 게 되니 말이다.

빠아악!!!

그때였다.

묵직한 충격과 함께 그의 눈에서 불이 번쩍 뒤는 착각이 일었다.

“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린 그는 바로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무…… 무슨?”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시선에 보기엔 에반젤린이 천천히 주먹을 뻗어 그의 얼굴에 박아넣었을 뿐이고 라티우스는 피하려다가 엉겁결에 정타를 허용하며 주저앉은 모양새였다.

“푸훕…….”

“큭…….”

일부는 제대로 된 사정 따윈 모르면서 라티우스가 꼴사납게 주저앉아버린 사태에 비웃음을 날렸다.

이에 라티우스가 순간적으로 분노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보다 빨리 몸을 일으킨다.

우연인가. 바로 전에 자신은 분명 에반젤린의 공격을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피해내려 했다.

“시…… 실수야. 똑바로 하겠어.”

붉어진 얼굴을 애써 숨기며 그가 검을 들었다.

“선수는 양보했고, 영애가 원한 일이니, 이제 원망하지 마.

그가 검을 빙그르르 돌린 뒤 에반젤린을 시야에 담았다.

동시에 에반젤린이 다시 천천히 걸어온다.

파앙!!!

이윽고 그의 신형이 쏘아져 나갔다. 어지간한 이들은 반응도 못 할 속도였다.

하지만 에반젤린은 묵묵히 주먹을 뻗는다.

아슬아슬한 거리까지 끌어들인 뒤 피하고 급소에 검을 가져다 대 제압한다!

라티우스의 주 무기는 검이 아닌 건틀릿이지만 그렇다고 육체 능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비록 마나를 끌어 올려 강화하진 않았다고 해도 고작해야 가녀린 영애에겐 과한 처사임이 틀림없었다.

에반젤린의 주먹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다가온다.

이 정도면 껌이지. 그는 아슬아슬한 범위까지 그녀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퍼억!!

“쿨럭!?”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또 벌어졌다.

무조건 피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절대 그녀가 공격을 맞출 수 없어야 정상인데.

왜 제대로 한방이 들어온 것일까.

“크으?!”

“뭐 하는 건가요! 라티우스! 제대로 하지 못하겠어요?!”

“라티우스가 제법 머리를 썼군요.”

말은 그리해도 곤란한 상황에 놓인 라티우스가 에반젤린을 배려해 일부러 져주고 있다고 여긴 것이다.

라티우스의 친구인 크로네스와 크라마는 라티우스의 행동이 의외라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멍청하긴, 라티우스는 지금 일부러 저주고 있는 거다.”

“져준다고? 아!”

그제야 다른 귀족들도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무슨?!’

정작 라티우스는 현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자신은 봐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왜 두 번이나 주저앉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에반젤린이 선보인 주먹은 엄연히 영애들의 호신기. 딱히 대단한 기술은 아니었다.

어지간한 영애들 중에서도 일부가 배우는 그 정도의 기술,

쓸데없이 명예니 우아함이니 따지는 그런 호신술이기에 라티우스는 그것을 상당히 혐오하는 편이었다.

“뭐하나요. 안 일어나요?”

“……말은 잘하는군.”

그는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 가녀린 영애라도, 티오니스 성자의 딸이라 이거지.”

그가 목검을 휙 던졌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마나가 흘러나온다.

“아무래도 영애는 보통의 가녀린 영애들과는 다른가 봐.”

“그걸 꼭 맞아봐야 아나요?”

“…….”

라티우스는 인상을 찌푸리고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제법 호신기를 단련한 모양이네. 그럼 이쪽도 마냥 무시할 순 없지.”

그는 보이지 않게 마나를 이용해 육체를 강화했다.

바위도 가볍게 부수는 주먹의 힘이 서린다.

에반젤린은 드레스에 구두를 신고 있어서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다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도 크게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역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주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한 그가 몸을 살짝 낮춘다.

지금 하려는 것을 한다면 반드시 주변에서 따가운 시선이 들어오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중돌격 충격]

[버팔로]

그는 자신이 익힌 무투술을 그대로 활성화하며 그대로 덤벼들었다. 아무리 그녀의 손이 조금 독특하게 움직여 치명적으로 가해져도 이렇게 파고들면 그녀도 피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잠깐! 라티우스!!”

라티우스의 행동에 순간적으로 크라마와 크로네스가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말리려 했다.

하지만 라티우스는 이미 바닥을 박찬 후였다.

포탄처럼 쏘아져 나가는 그의 몸이 그대로 에반젤린의 허리를 낚아채 마운트하듯 쓰러뜨리려던 찰나였다.

라티우스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치마 속에서 에반젤린이 한쪽 다리를 들었다는 것을 말이다.

남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아주 미세한 변화, 그리고 본능이 소리 질렀다.

그리고.

뽀각!!

그녀의 오른 다리 구두 굽이 박살 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어…… 어엇?”

균형을 잃고 그녀의 자세가 무너지자 역으로 라티우스의 공격에 허점이 발생한다.

동시에 쓰러지듯 에반젤린의 손바닥이 휘둘러졌다.

허우적거리다가 휘둘러진 듯한 손바닥. 하지만. 그 손바닥은 정확히 라티우스의 뺨에 닿았다.

짜아아아악!!!!

굉장한 소리와 함께 그의 뺨을 경악스러운 파워로 쳐올렸다.

“컥!!”

자신의 힘에 그대로 역으로 카운터를 당해버린 그는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아이고……”

바닥에 주저앉아버린 에반젤린이 울상을 짓는다.

“흰색 드레스라 티가 많이 날 텐데…….”

불평하는 것과 달리 바닥을 뒹굴었던 라티우스는 눈을 부릅 뜬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후우……”

“운이 좋은…… 건가?”

사람들은 에반젤린이 당황하여 쓰러지다가 운 좋게 라티우스를 카운터 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인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방금 에반젤린은 일부러 실수한 척 넘어졌다.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에 카운터를 먹였다.

자신이라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완력, 속도, 모든 면에서 자신이 압도적인데. 자신이라면 자신보다 한참 강한 상대를 상대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이렇게 쳐내는 게 가능할까.

그제야 라티우스는 이 기이한 이질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에반젤린은 약자가 아니다.

본능적으로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대는 모습을 보면 가녀린 영애가 분명한데.

가녀려? 힘이 없어?

웃기는 소리. 저건 괴물이었다.

과거 에반젤린은 용사가 되겠다며 대뜸 가출을 감행해 엄청난 힘을 선보인 바 있었다.

하지만 그때 사건도 있고 데이비가 적당히 소문을 잠재웠기에 그녀에 대해 아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물론, 모두가 모르는 건 아니었다. 연회에 참석해 처음부터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일부 영식이나 영애 중에는 에반젤린의 소문을 알고 있기에 그저 침묵한 채 바라보는 이들도 분명 있었다.

“운이 좋았군.”

“그렇군, 라티우스도 마지막에 힘을 뺐어. 흐름은 잘 흘러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라티우스. 잘못했으면 영애가 크게 다칠뻔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떠드는 저 친구라는 탈을 쓴 두 멍청이는 알고 있을까.

자신은 처음부터 단 한 번도 봐준 적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주변 분위기는 그가 마치 에반젤린을 봐주면서 지는 척을 한다고 여긴다.

이에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치 자신이 허당처럼 보이지 않는가. 이에 격분한 그가 전신에 마나를 유형화시키며 두르자 크로네스와 크라마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라티우스!”

“뭐 하는 짓이지?!”

마나를 유형화시킬 정도면 장난으로 넘어가기 힘들다. 하지만 라티우스는 확인해야 했다. 눈앞의 저 검은 머리칼의 아름다운 공녀님이. 대체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 자신의 착각인지. 정말로 자신이 진 건지.

그렇게 그가 날뛰려던 찰나.

파악!!!!

크로네스와 크라마가 반사적으로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만!! 영애의 구두가 부러졌다. 결투는 여기서 끝이야.”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결투였다. 라티우스.”

이 멍청한 것들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라티우스는 멍한 얼굴로 그들에게 무어라 말하려 했다.

“야. 이 멍청한 새끼들이 지금 내가 장난…….”

파악!!!

그때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연회장의 불이 일제히 꺼져버리자 주변에서 소음이 일었다.

우우우우웅!!!!

동시에 엄청난 두께의 마나 장막이 연회장 전체를 휘감는다.

늦은 밤 뻐꾸기가 울기 시작했다.

* * *

“괴…… 괴물!!”

검은 복장을 입은 사내 몇몇은 담담하게 뒷짐을 진 은발의 소녀와 백은의 검을 한 손에 쥔 채 차갑게 내려다보는 금발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자신들을 찾아냈는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다. 주변에 있는 건 그의 동료들의 시신뿐이다.

“이걸로 끝인가?”

“아닐 거에요. 이놈들 준비가 제법 철저한 거로 봐서…….”

“크…… 크흐흐흐. 맞다. 네년 같은 괴물들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지만, 뭐가 되었건 아무래도 좋아. 내 목적은 발목을 잡는 것뿐이니.”

방금 전까지 겁에 질려있던 사내가 소리쳤다.

“아무래도 이들의 목적은 연회장의 아이들인 모양이로구나.”

“그렇겠네요.”

하지만 두 사람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였다.

“에린이가 옷이 더러워졌다고 울적해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일리나의 작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뭐…… 뭐라고? 지금 네 년들은 상황이 어떤지 모르는…….”

“모르는 건 너희 아닐까?”

일리나의 검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관통하며 그를 지면에 고정시켰다.

“끄아아아악!!”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와. 세계 대전이라도 일으킬 생각이었어?”

“끄으으윽!?”

그가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렀다.

“아무래도 그 말이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구나.”

“정말로…… 세계 대전을 일으키려 했다고요?”

“지금 대륙의 정세는 사실상 고여있으니까.”

페르세르크는 무언가 생각한 듯 작게 중얼거렸다.

“우선 이자를 기사단에 넘기고 에린이를 찾아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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