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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74화 (1,474/1,559)

제 1474화

마치 환각에 휩싸인듯한 착각이 인다.

가르강티아는 자신의 몸에 박힌 기이한 화살 하나에 마치 온몸의 감각이 비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이라면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실시간으로 약해지는 걸 넘어 죽어가고 있다.

몸이 비명을 지른다.

수천 년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기에 사실 그가 가장 혼란스러웠다.

더 이상은 언데드를 유지할 힘도, 대륙에 퍼져있는 다른 인간들을 간섭할 힘도 남지 않았다.

언데드의 강화? 유지하는 것조차 벅찬 상황인 만큼 그는 조금 전 언데드의 대부분을 다시 본래대로 되돌리고 힘을 회수하지 않았던가.

연합군이라는 것들은 왕국 내로 빠르게 침투해왔고, 결국 남은 건 그 혼자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비실비실 웃음을 터뜨렸다.

허탈해서가 아닌 기쁨이었다.

“엄마…… 쟤 웃는데요?”

“내버려 두어라. 처음 느낀 생소한 감각들이 온몸을 지배해서 제정신이 아닐 테니.”

페르세르크가 두 번째 화살을 그의 심장을 겨눈다.

반사적으로 몸을 튕겨 그의 신형이 그녀를 향해 날아든다.

모르긴 몰라도 저 화살에 더 이상 맞는 건 피해야 할 일이었다.

지금 느끼고 있는 이 생소하면서도 자극적인 감각들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다행이라면 그녀의 활은 딱히 큰 조예가 없기에 조금만 집중하면 맞을 일이 없는 공격이기도 했다.

물론, 그게 다른 이들이 가만히 있는다는 전제하에 그렇겠지만.

서걱!!!

엄청난 속도로 날아든 검기가 용으로 변한 그의 육신을 베어 넘긴다.

단순한 검기가 아니라 한번 베이는 순간 치명상에 달할 정도로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그뿐일까.

그의 퇴로를 틀어막듯 날아드는 황금빛 기검과 브레스가 그의 육신을 걸레짝으로 만들어버리며 피할 수 있는 여력을 틀어막아 버렸다.

동시에 하늘 높이 떠오른 작디작은 소녀가 별빛을 머금은듯한 황금빛의 창을 내리꽂아 그의 육신을 지면에 고정시켰다.

투콱!!!

두 번째 화살이 속절없이 그의 몸에 틀어박혔다.

마치 안개처럼 흩어진 화살은 그의 몸에 두 번째 죽음의 사슬을 새겨넣었다.

그제야 가르강티아는 다음번 공격이 마지막임을 직감했다.

본래대로라면 절대 자신을 헤칠 수 없는 공격. 하지만 지금은 너무도 치명적이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지.’

그는 더 이상의 싸움은 극도로 불리함을 깨닫고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려 했다.

어떻게 얻은 이 생소하면서도 기분 나쁘고 황홀한 감각인데.

이걸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죽는다니 절대 안 될 말이었다.

물론, 죽음을 직감했기에. 죽을 정도로 약해졌기에 느끼는 감각이지만 그로서는 그런 자세한 내막 따위 알 길이 없었다.

그는 다른 이들이 모르게 공간 전이 마법을 준비했다. 그리고는 맹렬하게 위협해오는 작은 생체 골렘, 륀느의 공격을 받아 쳐내듯 거대한 꼬리를 휘둘렀다.

까아아아앙!!

묵직한 두 금속이 서로 부딪힌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륀느와 그의 신형이 동시에 튕겨 나갔다.

이윽고 활을 든 페르세르크가 세 번째 화살을 준비한다.

그녀는 이 화살의 위험에 대해 따로 경고한 바가 없지만, 바보가 아니고서야 두 번째나 맞은 상황에서 다음 변화를 예측하지 못할 리가 없다.

‘한 번 더 허용하면 반드시 죽는다. 그렇게 되면 일리나의 검에 내 목이 날아가는 순간이 끝일 터.’

이전처럼 세상에 퍼진 사념의 파편을 이용한 부활도 이제는 불가한 상황이다.

자신이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텐데도 활을 든 페르세르크의 표정은 침착했다.

‘우선 가장 위협적인 건 그녀다.’

그의 내면에서 페르세르크를 가장 우선적으로 처리하라는 본능이 불을 밝혔다.

다행이라면 다행인지 활을 들고 있는 페르세르크의 마법은 사실 그에게 크게 위협적이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경지는 자신이 더 높다. 그렇다면, 그녀를 빠르게 죽인 뒤 혼란을 틈타 이 장소를 벗어나리라.

모든 것을 얻은 이상 더 이상 그에게 다른 계획은 필요하지 않았다.

빠르게 도망치듯 날아오르자 뒤따라오는 셋이 보였다.

그리고 지상에 홀로 무방비하게 서 있는 페르세르크가 보인다.

‘물리적인 수단은 먹히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그는 마치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올라가던 로켓이 갑자기 멈춘 것처럼 속도를 죽여버렸고 이내 중력에 이끌리듯 빠르게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의 그런 갑작스러운 제동에 빠루와 창을 들고 빠르게 쏘아져 올라오던 륀느의 눈이 크게 뜨여지는 게 보였다.

아주 찰나의 순간 륀느와 교차하듯 지나친 가르강티아는 시선을 정확하게 페르세르크에게 고정시킨 뒤 엄청난 속도로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이게!”

뒤늦게 놈의 목표가 페르세르크임을 확인한 레이나가 날개를 펄럭이며 그를 향해 빠르게 파고들어 왔다.

레이나의 기검이 순식간에 분열하며 놈의 육신을 찢고 꿰뚫었다.

치명적이라곤 할 수 없지만 지독한 고통이 온몸을 적셔왔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로 낙하하는 그를 저지하기 위해 일리나가 검을 쥐고 기수식을 취했다.

그리고는 허공을 박차듯 엄청난 속도로 파고들어 왔고 놈의 목을 정확하게 노렸다.

피할 수 없다. 이대로 목이 잘려나가면 아직 부활은 가능할지라도 다시 기회를 잡기 힘들 터다.

그는 망설임 없이 육참골단의 수단을 선택했다.

스팡!!

“저 미친놈이?!”

강제로 폴리모프 마법을 덧씌운다. 이렇게 한순간에, 준비도 없이 폴리모프를 가동한 것으로 그의 내면에서 엄청난 반동이 일었다.

죽을 수도 있지만, 페르세르크만 죽이는 데에 성공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윽고 페르세르크의 화살이 그를 겨누자 그는 낙하하면서 모아온 모든 마나를 일순간에 방출했다.

그리고는 그것을 자신의 용언에 담아 내뱉었다.

[죽어라]

강력한 용언에 9서클 경지에 들어선 죽음의 마법이 덧씌워진다.

동시에 검은 안개 같은 것이 페르세르크의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고 페르세르크는 활시위를 거둔 채 주변을 둘러보며 안개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누구 마음대로.”

빠르게 전이 마법을 사용하려는 그녀를 보고 가르강티아는 뒤가 없음을 깨달았다.

이에 도망치기 위해 준비해두고 있던 전이 마법의 식을 비틀어 페르세르크의 전이 마법을 디스펠시켰다.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페르세르크의 놀란 눈동자가 그에게 닿았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것일까.

놀란 그녀의 표정은…… 참으로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결국, 검은 안개는 피할 틈도 없이 페르세르크를 완전히 잠식하듯 휘감았다.

이후 그는 힘없이 추락하여 바닥에 처박혔다.

무리하게 속도를 올린 터라 온몸의 뼈가 바스러지는 듯한 충격이 가해졌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빛으로 된 기검이 그의 전신에 꽂혀 그를 대지에 고정시켰고 륀느의 창이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

그의 심장에 새겨진 특정 주술은 페르세르크의 마력에 반응한다.

즉, 그녀만 죽는다면 그 이상의 효능을 잃게 될 터.

승리에 취한 기분에 그가 끌끌 웃기 시작하자 그에게 빠르게 접근한 일리나와 륀느, 그리고 레이나. 에반젤린이 보인다.

“내가 이긴 거 같네?”

그는 온몸이 고정되어 제압당해있는 상태에서도 이죽거리는 얼굴로 에반젤린을 향해 도발했다.

“잡종. 네 미약한 힘으로는 그 누구도 지킬…… 커헉?!”

시작은 에반젤린이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쓰러진 가르강티아의 얼굴에 싸커킥을 갈겨 버렸고, 그녀를 시작은 나머지 세 사람도 그를 둘러싸듯 망설임 없이 짓밟았다.

말없이 그를 집단 린치하는 네 여성의 행동거지에 그는 지독한 고통을 느끼며 신음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이것들은 피가 얼음장이라도 된단 말인가.

저 죽음의 마법에 당한 페르세르크를 어떻게든 꺼내려 들 텐데. 어찌 되먹은 건지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자신의 목숨이라도 취하겠다는 것인가.

인의니 뭐니 하는 것들이 참 잔인하고 냉정하기 그지없구나.

그는 조소를 흘렸다.

“그만.”

그때였다.

미친 듯이 쏟아지던 발길질이 우뚝 멈춤과 동시에 가르강티아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그의 고개가 돌아간다.

그곳에는 질척질척하게 달라붙는 검은 안개를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내며 다가오는 페르세르크가 보였다.

“어…… 어떻게?!”

그녀의 경지로는 이 마법을 막아낼 수 없다. 단순 상위마법에 파훼를 경계하여 용언까지 사용하지 않았던가.

고룡의 용언은 그만큼 거대한 하나의 마법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페르세르크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그녀는 손에 달라붙은 마지막 안개 덩어리를 가볍게 털어낸 뒤 저벅저벅 걸어와 활시위를 당겼다.

그리고는 그의 육신을 짓밟은 뒤 화살 끝을 그에게 겨누었다.

“몰래 판 함정이 스스로를 죽였구나.”

“어떻…… 게.”

그는 페르세르크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운지 눈동자를 바들바들 떨었다.

전이 마법도 잃어버렸고 온몸이 고정되었다.

저항하고 싶지만 추락 직후부터 힘을 끌어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어느새 주변에는 사태를 마무리 짓고 포위하기 시작한 연합군이 보였다.

그들은 쓰러진 가르강티아와 그런 그를 적당히 포위하듯 거리를 벌리고 서 있는 네 명의 여성. 그리고 가르강티아를 압박하듯 짓밟고 있는 페르세르크를 조용히 시야에 담는다.

“어떻게……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페르세르크는 망설임 없이 화살 끝을 그의 심장에 겨누고 쏘아 보냈다.

푸콱!!!

화살촉이 살점을 꿰뚫고 그의 심장에 닿는다.

의 전신에서 엄청난 속도로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육신은 더 이상 부활이 불가했고, 그녀의 이런 치명타에도 반응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궁금하더냐.”

죽어가던 그를 향해 페르세르크가 왼손 약지에 낀 반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명줄을 공유하는 반지. 본녀가 죽으면 그도 죽는 그런 반지인 게지.”

다른 이들은 듣지 못하는 거리에서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사람들은 착각하더구나. 이것이 그의 약점이 아닌가 하고, 그를 죽이려면 본녀를 죽이면 되는 게 아닌가 하고.”

그 말대로였다.

데이비 올 라운. 티오니스 성자가 죽지 않는 강자라면 페르세르크를 죽여 계약으로 묶인 그를 죽이면 되는 일이다.

“허나 그건 착각인 게지.”

이 반지는 관점에 따라선 완벽한 보호 장비나 다름없었다.

반지는 시전자의 힘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약한 이의 힘을 강제로 보호하는 역할은 지니고 있다.

데이비가 굳이 약점이 될만한 반지를 만들이 유가 없었으니까.

“데이비가 강해지는 만큼…… 본녀를 죽이기도 어렵다는 뜻인 게야.”

단순 부활이 아닌 반지가 부서지기 전까지 그녀를 완벽에 가깝게 지켜준다.

“헛소리! 쿨럭!!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라! 9서클 저주마법을 견뎌낼 정도로 강력한 아티펙트따위!!”

그가 격하게 소리치다 눈을 크게 떴다.

동시에 그의 동공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뱀파이어 로드의 계약은 그리 쉽게 부서지는 게 아닌 게야.”

페르세르크의 말을 끝으로 가르강티아의 혼은 완전히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심드렁하게 등을 돌리는 페르세르크였고.

그가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승리를 확인한 연합군의 함성이었다.

이제야 얻었는데. 이제야 자신의 속에 빈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는데.

너무도 억울했지만, 그는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가장 소중하기에 생의 끝자락에서 얻었다는 사실이 참 묘했다.

* * *

죽음. 그 후엔 무엇이 있는가.

가르강티아는 자신의 혼이 붕 뜬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게 아니었는데.

그런데 자신은 죽음을 맞이했다.

아니, 자세히는 알 수 없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부활이 불가하며, 전신의 힘이 빠져나간 것으로 그는 죽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할 뿐이다.

마치 물에 잠긴 것처럼.

멍하니 있던 그는 갑작스레 수면 아래로 파고든 팔에 멱살을 잡혀 그대로 끌어올려 졌다.

“…….”

가르강티아의 눈이 부릅 뜨여진다.

그의 멱살을 잡아낸 존재가 첫째로 시야에 담겼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생각지도 못한 이 공간의 풍경 때문이었다.

마치 거대한 우주가 담겨있는 듯한 거대한 별빛의 강.

자극이 없어 진짜 감정이 메마른 그조차 탄성을 흘릴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영혼의 강에.”

강.

또 듣는 단어였다.

검은 복장을 한 존재였다. 외향은 인간이나 그에게서 느껴 찌는 건 사령 술사인 가르강티아가 보기엔 굉장히 괴이쩍은 존재였다.

데이비 올 라운이 나타났을 때 강에서 보자는 말을 남긴 뒤 홀연히 사라졌었다.

처음엔 그가 너무 오만해서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그가 없다면 유유히 나머지를 죽이고 달아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끝내 패배했고 이곳으로 왔다.

“너는 누구지?”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곳은 죽은 자들의 혼의 업을 청산하고 윤회의 길을 타는 장소.”

사령 술사이며 9서클까지 올라간 대마법사이지만 그는 이런 장소에 대해선 전혀 예상해본 적도 없었다.

“본래라면 당신의 혼은 영혼에 강에 오지도 못하고 소멸해야 했지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그는 멍하니 서 있는 가르강티아를 두고 어디론가 향했다.

이에 가르강티아가 청년, 저승이를 공격하기 위해 손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저승이를 통과할 뿐이다.

“저항은 의미 없습니다.”

화아아아악!!

동시에 주변의 풍경이 완전히 뒤틀리며 다른 공간이 드러났다.

지옥이 이곳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사방에 퍼진 불의 강과 끔찍한 비명에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감각이 돌아온 이후로 본능이 이곳에서 당장 나가라고 외치는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감각에 익숙하지 않았던 가르강티아는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치려 했다.

“돌아갈 길은 없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안에는 당신의 아버지인 닉스가 있습니다.”

“…….”

가르강티아의 걸음이 멈춰졌다.

“따라오시지요.”

과거였다면, 평소였다면 어떤 감흥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 자그마한 쾌락과 흥미의 자극은 있었겠지만 그게 전부인 정도.

하지만 지금은 알 수 없는 감각이 그를 계속해서 옥죄는 느낌이었다.

이게 두려움이라는 것일까.

저벅…… 저벅…….

묵묵히 걸어가던 그는 문득 자신의 발목을 휘감는 소름 끼치는 감각에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는 뼈만 남은 존재가 그의 다리를 붙잡고 무언가 말하려 하고 있었다.

당장 이곳에서 도망치라고 말하는 것일까. 자신을 구해달라고 말하는 것일까.

어느 쪽이건 섬뜩함이 감돈다.

“이곳은 뭐지? 흔히 말하는 지옥이라도 되는 건가?”

“비슷한 곳입니다. 본래는 없던 공간이지만 비틀린 업을 청산하기 위해 여신께서 만든 곳이지요.”

“여신이라…… 취향이 고약하군.”

“말은 자유지만 감당은 되십니까?”

그가 손을 벋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문이 있었다.

“들어가시지요.”

“저길 들어가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건 들어가 보면 알게 될 겁니다.”

그그그그극!!! 쿠웅! 끼이이이익!!

이윽고 스스로 열리기 시작하는 문을 보며 가르강티아는 입을 다물었다.

“명심하십시오. 이 연옥의 심층부에 올 수 있는 이는 극히 드뭅니다. 어지간한 악인들도 함부로 오지 못하는 곳. 그만큼 당신이 짓밟아버린 존재가 많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단순히 영혼의 강에서 업을 태우기엔 너무도 그 업이 많이 비틀린 존재들이 강 전체를 오염시킬까 염려하였기에 만들어진 곳입니다.”

그의 말에 가르강티아는 긴장한 듯 내부로 들어갔다.

“뭐가 되었건, 당신이 상상하는 이상의 지옥이 이 안에 있을 겁니다. 또한. 이 안에서의 시간은 당신이 아는 시간과 다르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그 말과 함께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한 사내가 불타오르는 벽에 묶인 채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게 보였다.

“으아아아악!! 하악! 끄아아아악!!!”

그의 정체는 과거 하인스에서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인 뒤 예술을 핑계로 수많은 사람들의 육신을 장난감처럼 만들었던 살인마였지만 그걸 가르강티아가 알 길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그의 본능을 자극하듯 끔찍한 두려움이 온몸을 잠식한다는 사실이었다.

이윽고 그 심층부에 들어선 가르강티아는 곧 익숙한 이의 신형을 볼 수 있었다.

“넌…….”

“늦었네?”

담담하게 말하는 청년이 고개를 돌렸다.

“…….”

“닉스. 네 양아들이 왔다.”

그말에 벽에 묶인 거대한 리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가르강티아!

벽에 묶인 리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도망쳐라!! 이 괴물 놈은 절대 감당하려 들지 마라!!

그의 필사적인 외침에 가르강티아는 놀란 눈을 했다.

그가 아는 아버지 닉스는 저런 말을 하는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그것보다 그와 마주한 직후 느껴지는 끔찍한 두려움에 내성이 없었기에 반사적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그가 들어왔던 문은 이미 굳게 닫혀있었다.

“어서 와. 강에서 보자고 했잖아. 개자식아.”

“지독하군. 대체 내게 무슨 원한이 있어서 이러는 거지?”

“네가 한 짓은 생각을 안 하나?”

데이비의 질문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한 일이다. 너는 자연재해로 사람이 죽는다 하여 지구를 원망하는가.”

그의 논리에 데이비는 빙그레 웃었다.

“그러니까 니가 여기 오는 거야. 네 논리대로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은 고작해야 9서클 초입에 불과한 네가 백날 이해하려 해봐야 이해할 수 없을 테니 받아들여.

그 말과 동시에 바닥에서 튀어나온 불길이 마치 거대한 짐승의 아가리처럼 그의 온몸에 들러붙었다.

딱히 뜨겁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안 보이나?”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네 주변에 있는 것들.”

데이비의 말에 그가 의아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그의 주변엔 기이한 도구들을 손에 쥔 해골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전부 하나의 목적을 위해 여기서 널 기다리던 이들이야.”

“대체 뭐 때문에?”

“뭐긴. 네가 자극을 위한다는 이유로 죽인 이들이지.”

데이비가 빙그레 웃으며 말하기가 무섭게 해골들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하더니 각기 다른 생명체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인간, 엘프, 드워프, 마족, 그 외에 몬스터까지.

“본래는 이런 특혜는 없다만, 네가 한 짓을 생각해서 내가 특별히 자리를 마련했다.”

일리나에게 자신의 반려가 되라 협박을 했던 일.

에반젤린을 잡종이라 부르며 죽이려 했던 일 등등.

사실 데이비의 분노는 이미 임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널 직접 죽이지 않은 건 페르세르크가 절대 손대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이미 죽었네? 이제 페르세르크의 손을 떠났으니. 이제 데이비가 손을 댄다 하여 달라지는 건 없다.

“으…… 으아악!! 떨어져라! 떨어져!!”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해골들이 그의 육신에 손을 대고 부서짐에 따라 알 수 없는 끔찍한 고통과 감정, 기억들이 스며들어온다.

“네가 죽이고 언데드로 부리면서 네 특수한 힘으로 모든 것을 짓뭉갠 이들이 느낀 고통을 고스란히 네게 전한다. 저들은 장기간 네게 고문을 가하지 않아. 직접 느낀 걸 고스란히 돌려주고 떠난다.”

그렇기에 해골들이 사라지면.

“해골들이 모두 사라지면 네 업은 모두 청산된다. 기억은 지워지고 다시 윤회의 길에 오르겠지.”

다만.

“다만, 네가 죽인 해골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데이비의 차가운 웃음에 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단 한 개의 해골이 전해준 끔찍한 고통과 기억, 절망만으로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수를 헤아리기 힘든 해골들이 밀려온다?

“미치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해. 넌 네가 죽인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업도 짊어지지 않았기에 이런 꼴이 되는 거다.”

그들을 조롱하고, 죽은 후에도 가지고 장난감처럼 굴었다.

“당한 만큼 갚아주는 거라고 생각해.”

그말에 가르강티아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그러는 네놈은!! 네놈 또한 나와 다를 바 없을 터!! 네놈의 손에 절망을 느낀 이! 죽은 이가 한둘이라 생각하는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 가르강티아가 필사적으로 소리치자 데이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 거지 같은 곳에서 널 직접 기다리고 있었잖아.”

“…….”

“나는 내가 죽이고 절망을 안겨준 이들에 대한 업을 무시하지 않고 있거든.”

그게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거나 누군가에게 절망을 준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일 테니.

“네 휘하에 재밌는 놈들이 있던데. 덕분에 에린이가 많이 고민하더라.”

데이비가 내린 결정으로 고통을 받은 이들. 복수할 길이 사라져버려 가르강티아에게 기대고 그의 힘을 받은 이들.

그들은 적어도 가르강티아에게 삶의 목적을 빼앗기진 않았다.

가르강티아는 힘을 건네줌으로써 그들에게 자신들의 목적을 완수할 힘을 줌으로써 그들을 이용했다.

“그들을 보면서 너는 어떤 책임을 느낀 적이 있나?”

그 물음에 가르강티아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해골들이 하나둘 그의 내면에 자신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심어 넘기고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고통을 모두 떠넘긴 이들은 편안하게 모든 짐을 내려놓고 윤회의 강으로 돌아간다.

“그 업을 모두 청산하면서 생각해봐.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게 있었는지.”

감정을 되찾게 하고, 이곳으로 끌고 와 그의 업을 마주하게 한다.

사실상 가르강티아 라는 존재에게 있어서 가장 끔찍한 형벌이었다.

“적어도 네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업을 정면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기간이 줄어들지도 모르지.”

* * *

가르강티아의 죽음 이후 언데드들은 모두 사라졌고, 가르강티아의 힘을 받아 막대한 힘을 부리던 이들은 모두 투항했다.

그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는 허탈함과 슬픔을 느끼면서도 저항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르강티아에 의해 수도 전체가 네크로폴리스가 되며 암 왕국은 사실상 무너졌다.

하지만 지방에 있던 방계 왕족이 있었던 탓에 암 왕국의 명맥 자체는 유지가 되었다.

한동안 국제연합의 관리를 받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후 사후처리로 인해 많은 일이 있었다.

팔란 제국에서는 황실 마법사단장이자 살리반의 정적이었던 베르타스 공작이 처형을 당했다.

본래라면 그의 반역을 시작으로 연좌제를 물어 베르타스 공작가 전체가 붕괴했어야 했지만 무슨 거래를 한 건지 결국 베르타스 공작 영애는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공작가 또한 백작가로 강등되었으며 그녀는 백작가의 가주가 되어 황실에 충성을 다한다는 명목으로 그 명맥을 이어붙였다.

그 후 시간이 흘렀다.

그 사건 이후로 크로네스 왕자가 스파르트 왕국에서 주기적으로 에반젤린에게 편지를 보내는듯했지만, 에반젤린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지구로 넘어가 버렸다.

이유는 방송을 너무 안 했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스으읍…… 하아…….”

스산한 숨소리와 함께 붉은 안광이 번뜩인다.

“페르세르크. 이 년 어디 있어.”

나는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 살아왔다.

당장 그녀를 잡아 울리지 않으면 내 분노가 가라앉지 않으리라.

데이비의 추적에 페르세르크는 입을 틀어막고 몸을 소형화 시킨 채 옷장 속에 숨어있었다.

그래. 데이비가 어렵게 모아둔 재료를 털어먹은 건 이해한다.

그도 그랬으니까 할 말은 많았다.

하지만 불사파괴살을 완성하기 위해 그녀는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데이비가 꼭꼭 숨겨놓은 것들에 더욱 손을 대고 말았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큰일이로구나. 잡히면 어찌 될는지…….’

손찌검을 하거나 욕을 하진 않겠지만 차라리 그게 나을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기 싸움을 꽤 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데이비는 반드시 페르세르크가 부끄러워 견디지 못 할 짓을 저지르게 할 생각으로 가득하고 페르세르크는 그 반대의 입장을 갈구한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면서 서로를 괴롭히길 좋아하는 만큼 이번 상황에 잡히면 그 자존심 싸움의 줄다리기가 한쪽으로 끌려가리라.

그렇게 몸을 부르르 떨고 있던 찰나.

콰직!!!!

커다란 옷장 문을 뚫고 주먹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

손바닥만 한 사이즈로 옷장의 아래쪽에 쪼그려 앉은 채 숨어있던 그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여기 있었네?”

이후 옷장 너머로 데이비의 흉흉한 적안이 보이자 페르세르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분명 데이비도 찾지 못하게 은폐까지 완성했건만 어떻게 찾은 것일까.

설마 반지의 효과?

그러던 중 페르세르크는 자신이 이곳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유일하게 아는 존재를 떠올렸다.

“륀느!!!!”

륀느가 배신한 게 틀림없다.

이에 페르세르크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뻗어오는 데이비의 마수를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던 중이었다.

“두 사람 뭐 하는 거야, 쓸데없는 짓 말고 아가씨가 보내준 파인애플이나…… 우웁!!”

그때였다.

일리나의 헛구역질 소리에 기묘한 의상을 들고 있던 데이비의 손에서 옷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빠루를 꺼내 들고 데이비의 손을 쳐내려던 페르세르크도 빠루를 툭! 하고 떨어뜨렸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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