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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75화 (1,475/1,559)

제 1475화

일리나와 결혼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던가.

장담컨대 내게 있어서 세 사람을 차별한 적은 없었다.

특히 자존심 세우느라 나와 눈치싸움을 자주 하던 페르세르크나 부끄러움에 쉬이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에이리아와 달리 일리나는 말 그대로 하나의 불도저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단 한 번도 아이를 가진 낌새를 제대로 보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굳이 아이를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어때? 어때?”

눈을 반짝거리며 한창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일단 확실하진 않아. 지켜보자.”

“영혼시로도 안 보여?”

“아직은.”

사람마다 아이가 잉태되고 사령안으로 볼 수 있는 혼의 흔적 발현속도가 차이 나는 경우가 있다.

다만 그녀의 증세만 보면 분명 그녀가 알게 모르게 바라왔던 임신이 맞아 보였다.

“꺄악! 진짜지? 사랑해! 고마워!”

그대로 벌떡 일어나 내 품에 안겨드는 일리나를 보자 헛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좋을까. 페르세르크도 아벨을 가졌을 때 그토록 좋아했지만 일리나도 만만찮은 모성애를 보였다.

격하게 포옹하고 입을 맞추던 그녀가 흠칫 놀라며 물러났다.

“아차. 이제 뱃속에 아이도 있는데 무리하게 움직이면 안 되지. 조심히 움직이고 좋은 거 많이 먹고 좋은 음악 듣고…….”

“증세만 보면 임신이 분명해. 축하해. 그리고, 고마워.”

조용히 그녀를 안아주자 그녀는 빨개진 얼굴로 손부채를 부치며 헤프게 웃었다.

“히히…… 이히히힛!”

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으로 자랑을 할 거라며 나가는 그녀를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저기. 데이비.”

“응?”

“이번엔 아들일까 딸일까.”

그 물음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딸이 다섯 아들이 둘.

성비만 놓고 보면 아들이 좋겠지만 미묘한 기분이기도 했다.

“누가 됐건 잘 태어나면 좋겠네.”

“경사로구나. 한데. 일리나는 임신을 한 상태로 그 망할 도마뱀과 싸운 것이더냐?”

그녀의 질문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한 손에 콱 잡았다.

작은 모습으로 여유를 부리던 그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데이비?”

“페르세르크. 본좌가 아까 무엇 때문에 그대를 쫓아다녔는지 알고 있느냐.”

“휴…… 흉내 내지 말거라!”

그녀가 버둥거리며 내게서 벗어나려 했다.

“은근슬쩍 넘어가려 드네?”

그녀를 잡아 옆에서 나른하게 늘어져 있던 엔젤캣, 참다랑어에게 던져주자 녀석은 페르세르크를 보자마자 칼같이 발톱을 수납하고는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으부붑!”

기분이 좋은 듯 꼬옥 끌어안고 다시 눈을 감는 녀석과는 별개로 페르세르크는 털에 휘감겨 버둥거릴 뿐이다.

그것도 모자라 녀석은 페르세르크를 꼭 끌어안은 채 그루밍을 해대며 그녀를 괴롭혔다.

“이…… 이거 놓거라!”

-냐아앙…….

“이…… 이 녀석!”

페르세르크에게 적당한 응징을 가해준 뒤 나는 조금 전 그녀의 몸을 진찰하면서 확인한 사항들을 바라보았다.

“흐음…….”

아직은 확실한 게 아니지만, 가능성은 크다.

기분이 묘했다. 아벨이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또 아이가 생겼으니 말이다.

“이러다가 애들만 모아서 축구시합도 가능하겠네.”

“지금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어떻게든 참다랑어 녀석에게서 빠져나온 페르세르크가 부스스해진 머리를 정리하며 투덜거렸다.

“솔직히 본녀는 기쁘기도 하지만 조금 걱정이로구나.”

“걱정?”

“저 아이들이 컸을 때…… 혹여 하인스를 이어받는 문제로 싸우는 건 아닌가 하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만 자라준다는 보장 따윈 없었으니까.

“그런데. 미래가 바뀐 건가?”

“음?”

“예전에 아벨이 넘어왔을 때 기억해?”

그 물음에 페르세르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기억하지. 본녀가 어찌 잊을까.”

“그때 아벨이 가족 이야기를 했잖아. 비화는 사정이 있어서 그렇다 치는데…….”

왜 일리나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지.

의문 어린 내 말에 페르세르크는 내 뺨을 가볍게 찔렀다.

“어차피 그 미래와 이곳은 달라진 게지. 그 결과가 일리나의 아이이고.”

“그랬으면 더없이 좋겠는데.”

그때였다.

덜컹!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몸놀림으로 창문을 열고 레이나가 들어왔다.

“보고할 게 있어서 왔어요.”

“거…… 문으로 들어오면 안 되나?”

레이나는 옅게 웃은 뒤 서류를 내밀었다.

“국제연합에서 이번에 있었던 가르강티아 문제의 처우에 대한 결과를 적어 보냈어요.”

그녀의 말에 서류를 훑는다. 큰 문제가 되는 사항은 없었다. 대충 유도한 대로 잘 흘러간 셈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됐네.”

“그런데.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소름이 살짝 돋았다. 딱히 표정을 풀지도 않았는데 바로 알아챌 거라곤 생각지 못했으니까.

“지금 거울이나 보고 말하게. 미소가 사라지질 않는구나.”

페르세르크의 타박에 그제야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에 허탈하게 웃으며 사실을 털어놓았다.

“일리나가 임신한 거 같아서. 조금 전에 확인해봤는데. 임신 증세가 보이더라.”

그말에 레이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어?

* * *

“폐하. 일리나 황녀 저하께서 하인스에 시집을 가신지도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재상.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지?”

“슬슬……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조카가.”

재상의 물음에 살리반은 인상을 찌푸렸다.

“조카는 이미 많이 봤다만.”

“황녀 저하의 피를 이은 조카 말입니다.”

“…….”

“사실 일가견에선 그런 말이 나돕니다. 하인스는 현재 이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영지이지요.”

일전에 확인한 몇몇 전쟁만으로도 군사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현재의 라운 왕국, 아니 하인스 영지는 일개 영지의 전력으로 대륙과 전쟁을 벌여 일주일 내로 모조리 멸망시켜버릴 수 있다고.

당연히 그만한 전력을 지니고 있으니 욕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일부에선 일리나 황녀가 낳은 적생이 하인스를 물려받으면 향후 팔란 제국에 크나큰 이득을…….”

“재상.”

짧게 말을 끊은 살리반이 싸늘한 살기를 내뿜기 시작하자 재상이 침을 꿀꺽 삼키고 물러났다.

“시…… 실례 했습니다. 제 의견이 아니라…….”

“그건 알고 있다. 하지만…… 아니,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겠지.”

“폐하?”

“형님도 나도, 그리고 지금은 승하하신 선대 폐하도 알고 있던 사실이다. 일리나는 아이를 가지지 못해.”

그건 페르세르크의 봉인이나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예?”

“그 아이는 여성이 모두 가지고 있는 신체 일부가 변이를 일으켰다. 흔히 난소라 부르더군.”

그 한마디에 재상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그게 무슨…….”

“그렇기에 짐도 걱정이 많다. 혹여 일리나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데이비 올 라운 대공이 알게 되면 어찌 될지.”

그의 말에 재상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폐하. 허나 신은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

“오래전…… 일리나의 친모가 뱀파이어에게 살해당했을 때. 그때의 사고로 그 아이는 그때의 기억 일부가 날아갔다. 알고 있나?”

“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자기 몸이 정상인 줄 알고 있지. 그때 상황을 모르면 어지간한 의사나 신관들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그때 참사로 일리나 또한 다쳤고, 그때 입은 부상과 바이러스로 인해 육체가 상했다.”

“하…… 하오나 폐하. 일리나 황녀 저하는 분명 월마다 여성들이 겪는…….”

“가임기는 오지만 정작 중요한 게 씨가 말라버린 것이니…….”

일리나는 가임이 가능한 여성과 같은 증세를 보이면서도 정작 중요한 것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어린 나이에 죽어 영혼 상태로 존재하다 다시 육신을 구성한 특수케이스인 페르세르크와 달리 일리나는 오래 전 망가진 신체기관으로 인해 환골탈태를 겪었음에도 회복하지 못했다.

“아아. 이럴 수가…….그런 참담한 현실이…….”

“뇌가 망가진 이가 환골탈태를 한다 하여 돌아오지 못하듯 이미 죽은걸 되살리는 건 불가능하거니와 설마 그런 일로 데이비 대공이 일리나를 구박할까 함부로 말하지 못했네.”

오랫동안 숨기지도 못할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씁쓸한 중얼거림을 들으며 재상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활발하고 착하며 정의롭던 황녀 저하가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을 거라곤 말이다.

“생각해보니 그 아이의 재능이 폭발한 시기가 그때였군…….”

* * *

“그게 사실이야?”

“네. 저는 닉스의 실험 때문에 충격을 워낙에 많이 받아서 알고 있어요. 평행선의 세계와 이 세계의 과거가 큰 차이가 없다면. 그리고 검에 대한 압도적인 재능이 동일하다면 100퍼센트 확률로 그녀는 자신의 불임을 모를 거예요.”

충격적인 소식이다. 악기를 잡았다 하면 지옥의 세레나데를 연주하던 초단이가 지구에서 빌보드를 휩쓸 정도의 연주실력을 지녔을 때처럼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나는 침묵했다.

“그럴 리가! 일리나는 분명 입덧을…….”

“현실적으론 불가능하죠. 혹. 당신이 신적인 존재가 되었기에 회복된 게 아닌가 하고 믿고는 싶지만…….”

그녀의 말에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단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상상 임신…….”

아이를 갈구하는 여인이 마치 임신한 듯 착각하여 그 증세를 앓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일부에선 배가 부풀어 오른 전례도 있을 정도로 의식을 속이는 건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설마 그럴 리가…….”

“아니. 아직 몰라. 내가 점검했을 때 증세는 확실했다. 상상 임신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만 섣부른 판단은 좋지 않아.”

“하지만!”

“잘 생각해봐 페르.”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조용히 말했다.

“만약 임신이 사실이라면?”

“…….”

“거짓이다, 상상 임신이라고 말했을 때 일리나가 받을 충격을 계산해야 해.”

자칫 아이가 정말로 유산할 수도 있다.

“반대로 거짓이라 할지라도…….”

해맑게 웃으며 여기저기 자랑하고 있는 일리나의 모습을 창문 너머로 보며 내가 이를 살짝 깨물었다.

“저렇게 웃는데 어떻게 거짓이라 말하냐.”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아니. 늦기 전에 확인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나는 담담하게 말하며 선언했다.

“거짓이라고? 상상 임신? 뭐가 됐든 좋다.”

일리나는 자신은 괜찮다느니 뭐니 말했지만, 아이를 가졌다는 말에 저렇게 숨기지 못하고 기뻐하고 있다.

“데이비! 나 지구에 다녀올게! 아가씨랑 애기 용품 좀 사러!”

“어…… 같이…….”

“됐거든요? 전후 처리로 바쁘잖아. 오랜만에 현아 아가씨나 에린이하고 데이트나 할 거야.”

해맑게 웃으며 다가와 뺨에 입을 맞추고는 그녀가 말했다.

“사랑해. 데이비. 그리고 고마워. 욕심인 건 알지만…….”

“욕심 아니야. 우리 모두 그 사실이 기뻐, 그리고 나도 사랑해.”

사랑한다는 말.

참 오글거리지만, 그 한마디가 가족을 웃게 만든다면, 망설이지 않으리라.

내 아버지는 단 한 번도 해주지 못한 그런 것들을 나는 해낼 것이다.

종종걸음으로 금방 떠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선언했다.

“무슨 이유였건 좋다. 가족회의 소집하자.”

“가…… 가족회의?”

“거짓임신이면 진짜 임신으로 만들면 되는 일이다. 시간은 아직 충분해.”

내 말에 페르세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 이야기 저도 들을 수 있을까요?”

뒤이어 청각이 예민한 에이리아가 고개를 살짝 내밀며 과자가 담긴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저도요.”

“세상에…… 연옥과 가상공간 조율하고 돌아왔더니 이게 무슨 일이람……. 참다랑어. 이리와.”

그 후 초단이와 비화도 모습을 드러냈다.

비화가 엔젤캣 참다랑어에게 손을 내밀자 참다랑어가 우다다 뛰어와 그대로 비화의 품에 점프하듯 안겼다.

“얘는 진짜 강아지도 아니고……. 그래서 아빠. 뭐부터 시작해요?”

“뭐든 좋아. 방법을 구상해보자.”

“그렇게 해요. 서방님 말마따나 정말로 아이를 가졌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이에 비화가 복도를 빠르게 뛰어다니는 일리나를 시야에 담았다.

“마…… 마님! 그렇게 뛰시면 다치셔요!”

그 뒤로 토인족 시녀 두 명이 허겁지겁 쫓아가는 게 보인다.

“…….”

“보여?”

“아직 확인은 안 돼요. 다만, 가능성은 낮아 보이네요.”

비화의 설명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제가 홀로 임신했던 것처럼 프리아 여신님께서 도와주실 순 없을까요.”

그말에 내 고개 옆으로 태블릿 하나가 휙 하고 나타난다.

[안돼.]

단호한 한마디.

저 의미는 해주지 않겠다. 즉, 임신은 거짓이다 라는 뜻이 아니었다.

진실이 무엇이건 손을 대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오셨습니까?”

내가 고개를 돌리자 프리아 여신은 내가 앉은 의자 팔걸이에 걸터앉은 뒤 내 뺨을 사정없이 잡아당겼다.

이에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창밖에 고개만 내민 채 키득거리고 있는 이 영지의 사고뭉치 최고봉들도 불러들였다.

“유리아. 륀느, 점순이. 전부 들어와.”

머리를 맞댈수록 이득이라면 저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싸이코들도 도움이 되리라.

“지금부터 상황 브리핑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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