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80화
호텔의 정경을 내려다본다.
“무슨 생각해?”
발코니에 몸을 기댄 채 도시 풍경을 내려다보는 내 옆으로 일리나가 걸어 나왔다.
밤바람에 흩날리는 머리를 살며시 잡은 채 내 옆에 찰싹 달라붙은 그녀가 나를 올려다본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일리나가 유별나게 키가 작은 편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그런 주제에 제 몸만 한 거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는 강자라는 게 상당한 갭을 불러일으켰다.
“생각 안 하고 있던 게 생각나서 머리가 아프네.”
“무슨 일 있어?”
걱정스레 물어오는 모습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 소원이.”
“응?”
“인간일까, 아니면 반신일까.”
내 물음에 일리나는 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악! 너 때문에 나도 고민되기 시작했잖아!”
내 어깨를 찰싹찰싹 때리며 투정을 부리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인간이면 어떻고, 하프면 어떻고, 반신이면 어때.”
그녀가 기분이 좋은 듯 내 품에 안겨들었다.
그리고는 너무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다본다.
“네가 여기 있고. 내가 여기 있고, 우리 막내가 이 속에서 자라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기뻐.”
그녀의 행복해 보이는 미소에 나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급기야 내게 매달리듯 안긴 그녀는 내 목에 자신의 팔을 휘감은 채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넌 내 평생의 행운이야.”
한 치의 거짓조차 없는 행복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녀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런데 반신일까 인간일까.”
“아 진짜!!”
한번 시작된 고민은 쉽게 떨치지 않는다.
“그런데 그거 무슨 일일까.”
일리나의 말에 내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일?”
“그거, 식당에서 봤던 그 일.”
사람이 쓰러지면 곧바로 움직이는 건 거의 직업병에 가깝다.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음식을 옮기다가 그대로 쓰러져버린 것이다.
“겉보기엔 과로로 보였다만, 잠깐 스치듯 봤을 때 증세는 없었어.”
“응? 그럼?”
“글쎄. 단시간에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있었나 보지.”
빙그레 웃자 그녀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데이비. 일반 기사단에 황족이 나타나면 어떻게 될 거 같아?”
“뭐긴 난리 나겠지.”
“그렇지? 보통 며칠 전부터 언질이 가. 그럼 기사들은 뭘 할까?”
“종자고 기사고 할 것 없이 미화부터 시작해서 아주 피를 토할걸?”
“그게 맞지.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하긴, 호텔에 찾아온 손님이 티오니스에서 온 이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단순 방문만으로도 뉴스에 뜰 수 있는 알하자드까지 있었으니 광고효과를 제대로 보려는 호텔은 아주 이 잡듯이 짧은 시간에 많은 준비를 해야 했을 터였다.
“그런데…… 조금 꺼림칙하긴 하네.”
“신경 쓰지 마. 힘든 건 이해하지만 우리는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고 이 호텔에서 하루를 머무르는 거니까.”
실제로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해본바. 이 호텔의 주가가 폭발적으로 상승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자잘한 것을 내버려 두고서라도 노이즈 마케팅 하나만큼은 제대로 한 것이다.
그때였다.
웨에에에에엥!!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스레 울려 퍼진다.
“저건…….”
“아무래도 단순한 과로는 아닌가 본데?”
“가보려고?”
“한번 보기나 하게.”
상당한 고층 빌딩이지만 망설임 없이 뛰어내리자 일리나가 위쪽에서 내려다 보는 게 보였다.
그리고는 뭔가 생각을 마쳤는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인다.
후우웅!!!!
갑작스레 낙하하듯 지상으로 내려서자 주변에서 깜짝 놀라 숨을 들이키는 게 보였다.
“소…… 손님! 지금 위에서…….”
“문제없으니 걱정 마세요. 그보다 무슨 일입니까?”
“아…… 별일 아닙니다. 불편을 끼쳐 죄송…….”
“딱히 불편하다고 클레임 넣으려고 온 건 아닙니다.”
담담하게 말하며 이내 이동식 들것에 실려 나오는 청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발작을 일으켰는지 손과 발이 옅게 떨리고 있다. 입에는 피가 섞인 거품이 올라오고 있었고 환자를 중심으로 기묘한 냄새가 퍼져 나온다.
바다 비린내 같은 냄새였다.
‘심정지?’
구급대원이 심각한 얼굴로 침대 위에 올라탄 채 이동하면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며 나는 그것을 막아섰다.
“뭐하시는 겁니까! 위급한 환자입니다! 비켜주세요!”
그말에도 나는 비키지 않은 채 손을 뻗어 환자의 감겨있는 눈을 뜨게 하고 동공을 확인했다.
“아니 지금 뭐 하는!!”
내가 의술을 지닌 존재이거나 성자임을 알아도 화를 내는 것을 보면 직업 정신 하나만큼은 투철한 인물이리라.
평소라면 간섭하지 않았겠지만…….
“이대로 호송하면 이 환자 죽습니다. 당장 세워요.”
“무슨…… 당신이 뭔데 그런 소리를…… 아…….”
화를 내며 내게 소리치던 구급대원이 흠칫 놀라며 내 얼굴을 바라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곧바로 환자의 몸을 덮고 있던 천을 들춘 후 와이셔츠를 손끝에 모은 오러로 잘라내 버렸다.
적당히 근육 잡힌 상체가 드러나자 나는 바로 손끝에 새하얀 빛을 모은 뒤 그의 흉부 곳곳에 가져다 댔다.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굳은 얼굴로 나를 보던 구급대원들은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가만히 있던 환자가 다시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우선 비켜주십시오! 자격 없는 이가 함부로 치료하는 건…….”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나는 곧바로 흉부 일부에 손을 올린 뒤 손끝에 대량의 스파크를 일으켰다.
파지지직!!!!
동시에 발작하던 그의 몸이 일순간 굳었다.
그리고 주변의 모두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겉보기엔 내가 그를 감전시켜 죽여버린 것 같은 모양새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의 흉부에 가져다 댄 검지와 중지를 천천히 움직였고 이내 다시 한번 스파크를 일으켰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방금까지 피거품을 물며 죽어가던 청년이 크게 기침을 토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헙?!”
심장이 뛰지 않아 급히 심폐소생술까지 하던 구급대원은 환자가 기침하며 의식을 되찾기 시작하자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응급처치는 끝났습니다. 이제 괜찮을 겁니다.”
“방금 뭘 하신…….”
“간단한 응급조치입니다.”
구급대원들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이내 환자의 신음에 흠칫 놀랐다.
“여…… 여긴…….”
“환자분 정신이 드십니까?”
“으윽…… 온몸이…… 뜨거워요.”
“바로 이송하겠습니다.”
구급대원의 고갯짓에 다른 이들이 환자를 구급차에 태웠다.
“그…… 원래라면 이러면 안 되지만…….”
그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감사합니다.”
“잠깐 확인해보니까 비타민이 극심하게 결핍상태더군요. 확인해보고 투여하는 게 좋아 보인다고 전해주세요.”
내 말에 구급대원은 고개를 끄덕인 뒤 의식만 겨우 찾은 환자를 데리고 빠르게 병원으로 향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찍는 느낌이 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후 가볍게 바닥을 박차듯 날아올라 객실로 돌아오자 일리나가 내 품에 안겨들며 옅게 웃는다.
“누구 남편인지 참 멋져.”
“낯 간지럽게 왜 이래.”
“아가, 네 아빠가 방금 사람 한 명을 살렸어. 자랑스럽지?”
기분이 좋은 미소를 지으며 배를 쓸어내리는 그녀의 모습에 괜히 헛웃음이 나왔다.
“됐어. 오늘은 게임이나 할까?”
본래라면 다른 이들도 함께 해야 했지만,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단둘이서 보내라며 페르세르크가 자리를 비킨 덕에 객실에는 그녀와 내가 전부였다.
아공간에서 휴대용 게임기를 꺼내 하나를 그녀에게 건네주자 일리나는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데이비.”
“어?”
“너 개 못하잖아.”
내가 꺼낸 레이싱 게임의 전적은 총 121전.
내 전적은 120승. 1패.
일리나의 전적은 120패 1승이다. 한번을 못 이기자 극대노하며 샷건을 쾅쾅 치던 일리나가 안쓰러워 보여서 한판 져준 것이 화근이었다.
“…….”
“난 못하는 사람이랑은 게임 안 하는데…….”
“현실 레이싱 하기 전에 빨리 하지?”
“허접이지만 한판만 같이 해주십시오. 고수님이라고 해봐.”
“죽는다 진짜.”
게임기를 휙 던져버리고 그대로 일리나를 잡아 침대에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마구잡이로 그녀를 간질이자 폭소를 터뜨리며 버둥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한참동안 놓아주지 않고 간지럽혔고 그녀가 눈물까지 짜내며 기진맥진한 이후에야 놓아주었다.
* * *
데이비가 응급조치를 했던 호텔 직원 청년은 결과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뻔했고 직원을 구해주어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지배인을 통해 뒤늦게 듣긴 들었다.
다만 무슨 이유인지 이일은 뉴스에 대서특필 될 정도로 관심을 끌어모았다.
단순히 티오니스 성자가 사람을 구해서?
아니.
발작에 심정지가 온 청년이 기적처럼 목숨을 건져서?
아니.
그가 발작을 일으킨 원인 때문이었다.
-각성자를 상대로 발병하는 특수한 발작 증세. 유일한 생존자가 나타났다.
헤드라인 자체는 참 간단했다. 아무래도 내가 어제 살려낸 청년은 각성자였던 모양이었다.
다만 최근 각성자들을 상대로 어떤 발작 병이 도지기 시작했는데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다가 급기야 발작하며 그대로 죽어버리는 무시무시한 병이라는 게 문제였다.
단순한 병이 아닌 마나가 관련된 병이기도 하고 발병자가 낮아 제대로 된 대처가 잘 안 되고 있던 찰나에 유일한 생존자가 나타난 셈이었다.
그동안 따로 들은바 없었던 일인데 이게 기사화되면서 요란스러워진 셈이었다.
“에헴, 우리 아빠 대단하죠?”
-뭐지? 잘한 일이고 대단한 일인 건 맞는데. 방장이 저러니까 왜케 킹받지?
-ㅋㅋㅋㅋ 아니 콧대 세우는 거 봐 진짜 ㅋㅋㅋㅋ
-그런데 진짜 각성자 병 고친 거임? 그거 불치병이라 잘해봐야 각성 능력 잃고, 심하면 그 자리에서 죽는다던데.
“각성자 병이면…… 그거죠? 최근에 우크라이나 소속 S급 헌터 사망한 그 병.”
-ㅇㅇ 맞음.
-세계 각지에서 낮은 확률로 발병해서 걸렸다 하면 다 죽는다고 난리였는데 생존자가 나와버렸네?
-내가 그 관련 병원 의사였는데 진료한 선생님 말씀으로는 티오니스 성자 아니었으면 그 환자도 죽었을 거라고 했음.
“아빠는 뭘 어떻게 했길래 불치병 환자를 단시간에 살린 거래요?”
-그걸 왜 우리한테 물엌ㅋㅋㅋ
-방구석에서 방송이나 보는 우리들은 그런 거 모른다!
-xx아! 광역딜 멈춰!
“어허 심한 욕은 자제해주세요. 그보다 아빠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침울하게 에반젤린이 중얼거렸다.
-?? 뭘 안 좋아함?
“의술로 사람 살려서 이렇게 관심받는 거요. 눈앞에 환자가 있으면 일단 살리고 보는 거라고, 이런 거로 요란 떠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실제로 이런 경험은 몇 차례 있었다. 그저 데이비가 요란 떠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기에 굳이 언급되지 않았을 뿐.
-그래도 대단한 거지. 사람 살린 건데.
-솔직히 개 멋있었다.
-그 호텔에 나도 있었는데 솔직히 대단하긴 하더라.
자신의 아빠를 칭송하는 채팅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에반젤린 본인이 부끄러워지는 광경이었다.
“으…… 왜 이렇게 내가 다 화끈거리지…….”
-ㅋㅋㅋㅋㅋㅋ 그 마음 잘 알지.
-ㅋㅋㅋㅋ
웃음으로 도배되는 채팅창을 보며 에반젤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그런데 치료법 찾은 거 아님? 이러면 각성자들 허무하게 죽는 것도 이제 막을 수 있는 건가?
“글쎄요. 모를 일이죠.”
단순 우연이었지만 데이비가 행한 의술로 인해 불치병이 치료된 이가 나왔다는 것으로 상당히 시끌시끌했다.
다만.
-그런데 그거 발병자. 점점 늘어나는 건 암? 이제라도 치료된 사람 나왔으니 다행인데. 진짜 잘못했으면 각성자 대참사 터질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이 그러던데.
-님이 전문가임? 왜 아는척함?
-내가 전문가임. 그래서 아는 척하는 거야.
-죄송.
채팅을 보며 에반젤린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방송에서 자신의 아빠를 칭송하는 글을 계속 보고 있는 것도 굉장히 낯간지럽다는 걸 새삼 깨닫는 그녀였다.
그러던 중이었다.
-방장. 남아공 쪽에서 각성자 병 대량발병한 모양임.
그녀의 시선을 잡아끄는 채팅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