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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88화 (1,488/1,559)

제 1488화

“와. 달다 달아.”

“선배님. 헛소리 말고 이거나 틀어막으십시오. 역류했잖습니까.”

거대한 마나의 파장이 흘러넘치는걸 막아야 하는 비화가 농땡이 피우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넬타리드가 타박하듯 말했다.

“야. 지금 그게 중요해? 풋풋한 사랑이 얼마나 달달한지 몰라?”

초단이나 홍단이, 청단이와 달리 비화는 이성과의 사랑이라는 것에 상당히 흥미를 느꼈다.

“요즘 주변에서 당분이 과다하게 들어오는데.”

노아와 한참 투덕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승현이나 엘리시아와 좋은 분위기를 풍기는 시우도 그러하지만, 현아나 크리스의 조합도 제법 괜찮은 느낌이었다.

처음엔 싫다 싫다 하더니. 며칠이 지나니 자신도 모르게 크리스에게 녹아들고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철옹성처럼 버틴 게 용할 지경이었다.

“정확히는 그가 전면에 나섰기 때문에 변화가 생긴 것이겠죠. 생명체의 의지라는 건 가끔 자신의 역량을 넘어설 때가 있으니까요.”

역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결과적으로 잘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아 선배님!!”

자신이 할 일도 하지 않고 구경하던 비화에게 결국 넬타리드가 소리치고 나서야 그녀는 화들짝 놀라 자신의 권능을 발현했다.

“아 할게! 소리치지 마! 임마!”

“후우…….”

과거의 신들이었다면 이런 대화가 필요했을까.

굳이 내려다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서로 접점을 가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넬타리드와 타나토스 그리고 프리아 여신은 그런 느낌이 강했다.

그러던 중 비화는 이 신의 성역에 있는 프리아 여신의 연못을 바라보았다.

찌꺼기나, 이끼 하나 없는 깨끗한 수조 같은 연못은 푸른 빛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기, 넬타리드.”

“예?”

“저기 저 연못에 물고기. 신스크리트어였나?”

“네? 아 네. 그렇습니다만.”

흔히 성서에나 나오는 존재인 신어.

일반적인 생명체가 아닌 신의 사자라고도 불리는 길조의 상징 중 하나며 전설로는 저 신스크리트어 하나만 먹어도 엄청난 활력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도 있다.

물론, 이 신스크리트어는 하나의 상징으로만 남아있기에 실재하는 걸 본 이는 없지만 말이다.

“선배님…… 아닐 거라 믿습니다.”

“야. 수십 마리중에 한 마리야. 따로 영혼이 있는 애들도 아니잖아.”

애초에 신스크리트어는 말 그대로 여신의 축복이 모여 만들어진 생명체 같은 무언가였다.

전설대로 신스크리트어를 섭취하는 것으로 방대한 활력을 얻는 건 틀림없는 진실이 맞았다.

이에 비화는 그녀가 입고 있는 날개옷의 치맛자락을 걷어 올려 새하얀 다리가 드러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신이 난 듯 여신이 늘 발을 담그곤 하던 연못에 들어가 유유히 헤엄치는 신스크리트어 한 마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휘리릭!!

하지만 이 생명체를 흉내 내는 에너지 덩어리는 마치 그런 비화를 놀리듯 유유히 빠져나가 버렸다.

“아…… 그 연못에는 여신님 이외의 존재가 발을 담그면…….”

“뭐?”

비화가 고개를 돌리자 넬타리드는 고개를 저었다.

선대의 기억대로라면 저 연못에 프리아 여신을 제외한 존재가 들어가면 그 존재 자체가 뜯겨 나간다고 들었는데.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이며 여신의 축복이 뭉쳐진 저 격류에는 아무리 여신이라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으리라.

하지만 비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물장구를 일으키며 신스크리트어를 구석으로 몰고 있었다.

“이것들이 얌전히 잡힐 것이지!”

급기야 비화가 신력으로 그물을 만들어내자 신스크리트어들이 한쪽으로 도망치듯 몰려든다.

“야! 너도 도와. 이 새끼야!”

“선배님…… 지금 농땡이를 피울 때가 아닙니다만…….”

“그래서 못하겠다?”

“하아.”

넬타리드는 한숨을 내쉬며 연못에 손을 가져다 댔다.

콰직!

동시에 넬타리드의 손이 사라져버린다.

“이럴 거 같더라니.”

프리아 여신의 상위권능으로 물려받아 여신이 된 비화와 달리 그는 닿는 것만으로도 이 지경이 되는듯했다.

“선배님. 제 손 사라졌습니다.”

“어…… 음. 그래. 고생해.”

비화도 당황스러운지 떨떠름하게 답했다.

퍼덕퍼더덕!!

이윽고 비화는 신력으로 만든 그물로 신스크리트어 한 마리를 낚아 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극한의 활력을 보여주듯 펄떡거리는 신스크리트어를 보며 비화는 빙그레 웃었다.

“잡았다!”

“그걸로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요리해서 고모 줄 건데?”

“인간에게 신의 축복 덩어리를 먹이겠다는 겁니까? 그게 얼마나 큰일인지 모르십니까?”

“에이. 뭐 어떻게 되겠지.”

비화는 능글맞은 얼굴로 키득거리며 손사래를 쳤다.

아름답고 우아한 날개옷을 입은 주제에 저런 푼수 같은 웃음을 보고 있자니 이게 맞는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그때 넬타리드의 시야에 섬뜩한 것이 비쳤다.

“자자. 이렇게 하면.”

펄떡거리는 신스크리트어를 봉인하듯 잠재운 비화가 만족한 얼굴로 연못의 가장자리로 걸어오자 넬타리드가 고장 난 기계처럼 손을 뻗었다.

“어휴. 여신님도 참. 이런 건 좀 나눠주고 그러지. 밴댕이 소갈딱지마냥 혼자서 키우기나 하고.”

“서…… 선배님?”

“너도 그렇게 생각 안 해? 나이도 많은 분이 말이야. 아빠로 덕질이나 하고. 그거 푼수야 푼수.”

“선배님?”

이제는 파랗게 질려버린 얼굴로 그가 덜덜 떨 듯 소리쳤다.

“왜 그래 너.”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비화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때 그녀의 기감에 인기척이 느껴졌고 그녀도 그대로 굳어버렸다.

첨벙…….

손에 들고 있던 봉인된 신스크리트어가 철퍼덕 소리와 함께 연못 속에 빠졌고 그녀는 고장 난 문처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감정을 읽기 힘든 무표정이다.

하지만 손에 든 회초리는 그녀가 무슨 의도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어디론가 사라졌던 프리아 여신이 그녀의 뒤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 신이시여…….”

여신이 신을 찾는 기괴한 광경이 펼쳐진 건 한순간이었다.

* * *

흔히들 만화에서나 볼법한 동그란 혹으로 5층 탑을 쌓은 비화는 울먹거리며 구석에 쪼그려 앉아 훌쩍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화를 응징한 프리아 여신은 비화가 봉인시켰던 신스크리트어를 연못에 풀어준 뒤 가볍게 손으로 푸른 등을 두드렸다.

하늘빛 물고기는 마치 다시 살아난 것처럼 맹렬하게 연못의 저편으로 도망가버렸지만, 여신은 신경 쓰지 않았다.

“밴댕이 소갈딱지…….”

훌쩍거리며 투덜거리는 비화의 목소리에 넬타리드는 비화야말로 정말 신 중에서 최고의 깡을 지닌 미친년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 그거 하나 빼간다고 어디 세상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좀 주면 덧나요?”

결국, 비화가 화를 내며 투덜거리자 여신은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에 넬타리드가 움찔하고 비화가 겁에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또 때리려고! 아빠한테도 맞아 본 적 없는데!”

헛소리였다.

여신이 다가오자 비화는 와들와들 떨면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고통에 대비하듯 눈을 감은 그녀는 이윽고 아무런 고통도 없자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여신이 건네준 작은 약병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에요…… 이게?”

그 물음에 여신은 조용히 태블릿을 들어 톡톡 두드린다.

[신스크리트어를 그냥 먹이면 인간은 존재를 견디지 못하고 소멸하게 될 거야.]

그 말에 비화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자칫하면 자신이 두 사람을 죽일뻔했다는 소리였다.

[소량의 축복. 불로의 힘에 대량의 활력을 생명체에게 줄 거야.]

그제야 여신이 준 게 신스크리트어의 방대한 축복을 소량 정제한 것임을 깨달은 그녀가 손을 뻗어 그것을 잡았다.

“이거…… 주시는 거예요?”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할게요!”

비화가 눈을 반짝이자 여신은 조용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그것을 건네주었다.

“이거 먹이고 올게요!!”

그리고는 허공을 찢으며 후다닥 사라져버렸다.

“여신님.”

그리하여 남게 된 넬타리드는 조심스레 프리아 여신에게 질문했다.

“저런 걸 함부로 풀어도 되는지요.”

그 물음에 여신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괜찮아.]

어차피 세대를 거듭하지 않는 단일 효과일 뿐이니까.

여신의 말에 넬타리드는 괜히 욕심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저걸 자신의 성녀인 아가사에게 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고도 놀랄 정도의 욕심인 터라 그가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여신은 똑같은 약병을 그에게도 건네준다.

“여…… 신님?”

[자식을 사랑하는 네 마음을 꼭 간직하렴.]

그 말에 넬타리드는 어떤 감동 비스름한 무언가를 느꼈다.

“그런데. 남은 일들은…….”

넬타리드의 걱정이 앞선다. 방금 전까지 비화와 함께 조율하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걱정은 여신이 손을 한번 휘젓기가 무섭게 사라져버렸다.

“다녀오겠습니다! 이걸 전해주고 올게요!”

환한 얼굴로 사라져버리는 넬타리드를 보며 여신은 조용히 연못에 다가가 새하얀 발을 담갔다.

그리고는 허공에 데이비의 모습을 비추는 빛무리를 만든 뒤 아름다운 음률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 * *

비화는 손에 쥔 작은 약병을 내려다보며 비실비실 웃음을 터뜨렸다.

마침 일본 쪽에서 발생한 상위 게이트를 일본의 각성자들과 협력하여 조사하고 돌아온 크리스에게서 보고를 듣기 위해 현아는 같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 현아를 대신해 모습을 드러낸 비화의 모습에 크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넌…….”

“반가워요. 크리스.”

“오…… 여신님.”

그는 비화를 편안하게 맞이했다.

“무슨 일로 고귀한 여신님이 여기까지?”

“두 사람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간질거려서요. 선물이라도 줄까 해서.”

“선물!”

다른 이도 아니고 여신이 직접 건네주는 선물에 크리스가 눈을 번뜩였다.

애초에 여신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내려 와있는걸 보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다른 신과 달리 비화는 조금 특이한 여신이라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이건?”

“지금 먹는 음식에 뿌려서 나눠 드세요. 방대한 활력을 주고 불로의 축복을 줄 거에요.”

그 말에 크리스가 눈을 크게 떴다.

“정말로?”

“그럼, 내가 구라칠까요?”

“아하하하하! 이거 참 고마워서…….”

“대신 약속 하나 해요.”

비화가 손을 휘젓자 주변의 색채가 사라진다.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모습이었다.

“어……?”

“고모 눈에 눈물 나면 당신 눈에선 피눈물이 흐를 거에요.”

“어…… 음…….”

제 아빠와 똑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싶은 크리스였다.

애초에 아빠가 성자인데 딸이 여신이라니 조합이 참 신기하기 그지없다.

“약속할게. 비록 시간이 흘러 사랑의 감정이 희미해지는 순간이 와도 그녀를 내 반쪽으로 여길 거야.”

“그거면 됐어요.”

비화는 다시 손을 튕겨 세상을 원래대로 바꾸었다.

크리스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비화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여신은 여신인가 보네…….”

그리 말하며 그는 손에 쥔 약병을 미련 없이 그녀와 그의 음식에 뿌렸다.

“일어서서 뭐해요.”

“어? 아무것도 아니야. 먹자고.”

현아가 가장 좋아하는 볶음밥과 그의 스테이크에 뿌려진 약은 이미 스며들었는지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오. 이상하게 더 맛있는 기분인데. 식욕이 돈다.”

현아는 그런 사실도 모른 채 맛있게 그것을 먹어치웠다.

다만 여신이 말해주지 않은 부작용에 대해선 잘 모르는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효과가 드러난 건 늦은 시각이었다.

크리스의 바람대로 현아의 집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을 단둘이서 구경하던 크리스는 현아가 졸린 듯 몸을 휘청거리는 것을 보고 손을 뻗었다.

“졸린 건가?”

“아…… 좀 피곤하기도 하고…….”

대량의 활력을 준다고 들었는데. 왜 피곤해하는 거지.

크리스는 의문이 들었지만, 현아의 모습이 더 걱정됐다.

“우선은 들어가자. 내가 업어줄게.”

“크리스…….”

게슴츠레 뜬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던 현아가 조용히 말했다.

“잘생겼네…….”

깜짝 놀랄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그녀를 보며 크리스가 눈을 크게 떴다.

“몸도 좋고…… 성격도 좋아.”

“혀…… 현아?”

평소와 같은 능글거림조차 잊어버린 채 떨떠름하게 말하는 그를 올려보던 현아가 예쁘게 웃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그의 목에 팔을 휘감더니 그대로. 입을 맞춰버렸다.

“헤헤. 입술도 맛있다.”

그녀의 돌발행동에 크리스는 혼란으로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다만 현아도 말하고 나서, 행동하고 나서 당황했는지 흠칫하며 물러났다.

“뭐야…… 뭐야. 이거…….”

자신이 한 말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지 그가 물러난다.

“당신…… 나한테 뭘 먹인 거야.”

“아…… 아니. 난 아무것도…….”

그러던 중 잊고 있던 비화의 축복을 떠올린 그가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그 약 때문인가.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건 아니지.

속으로 그리 생각했다. 그가 바라는 건 온전한 연애였지 이런 충동적인 매혹을 바란 적은 없었다.

“말해! 이 멍청아! 왜 자꾸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냐고!!”

“어?”

그제야 자신이 아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크리스는 조금 전 그녀의 행동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움직였다.

그대로 현아의 허리를 휘감는다.

그리고 놀란 그녀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췄다.

그저 생각만 했을 뿐인데. 왜 몸이 움직이는 건가.

당황한 그가 떨어지며 소리쳤다.

“자…… 잠깐! 이건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그만! 아무 생각하지 말아요! 지금 생각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고 있잖아!”

인간은 자신의 의식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다. 그녀의 말에 크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입을 맞추는 상상을 했고.

그대로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다시 입을 맞췄다.

“맛있어. 너무 예뻐. 현아.”

생각한 단어가 입 밖으로 그대로 튀어나온다.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크리스뿐만이 아닌지 현아도 그의 허리를 휘감아 입을 맞춰온다.

“이…… 이건 그냥 몸이 멋대로…….”

당황한 두 사람이 어찌할 줄 몰라 하던 순간.

허공이 열리며 비화가 나타났다.

“깜빡하고 말을 안 했는데. 그거 여신님이 장난을 쳐서…… 깊게 연모하는 이에게 숨기지 못하는…….”

서로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비화는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이미 늦었네?”

생각하는 대로 행동에 옮겨버리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비화가 익살스레 웃어 보였다.

“저는 자리를 비켜줄게요.”

비화가 떠나려 한다.

이에 크리스와 현아가 다급히 그녀를 붙잡으려 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속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자…… 잠깐 비화야! 멈춰!”

“홀리 쉣. 여신님! 돌아와!”

그러거나 말거나 비화는 사라져버렸고 둘만 남게 되자 현아와 크리스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서로를 본다.

그제야 자신들의 상태가 아주 큰일 났음을 깨닫는다.

툭…….

설상가상으로 데이비가 준 박스가 바닥에 떨어졌고 크리스와 현아가 그곳으로 시선을 돌린 그 순간.

두 사람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거침없이 행동했다.

평소에 알게 모르게 바라던 것들이 거침없이 행동으로 변하고 있었다.

“안돼! 비화 이 미친년아! 돌아와!!”

현아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자신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기 시작했고 크리스는 자신의 정장 상의를 거칠게 뜯어버리듯 벗었다.

“꺄아아아악!!”

“젠장! 이걸 바란 건 아닌데!”

당황한 두 사람이 어찌할 줄 몰라 하며 서로를 향해 다가간다. 마치 분위기에 취한 것처럼 서로를 탐닉하듯 끌어안은 그 순간.

파창!!!

부작용의 효과가 다 끝났는지 피곤하던 현아와 크리스의 전신에 방대한 활력이 돋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생각한 대로 움직이던 말과 목소리가 사라졌다.

“어…… 음…….”

“…….”

그대로 서로를 끌어안은 채 입을 맞추던 두 사람은 이내 상대의 시선을 마주하다 한발 두말 물러났다.

“오늘 일은…… 비밀로 해줘요……. 제발…….”

“나도 그럴게…… 망할…….”

장난이 가득한 비화에게 놀아났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지독한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마음 같아선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데 지독한 활력 덕분에 몸에 힘이 넘치는 기분이었다.

“대체…… 비화가 무슨 짓을 한 거예요.”

크리스는 낮에 비화가 가져다준 축복의 영약에 대해 떠올렸고 그 효능에 대해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반쯤 찢긴 큰 정장 상의를 현아의 몸에 덮어주었다.

“당신을 좋아해. 하지만 이런걸 바란 건 아니야.”

“…….”

크리스는 애써 시선을 돌리며 물러났다.

“먼저 돌아갈게.”

“크리스.”

그때였다.

현아가 손을 뻗어 크리스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강하게 입을 맞춘 뒤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

“그…… 고마워요. 나도 당신이 싫은 건 아닌데…….”

“오…… 망할……. 이 상황에 나를 미치게 하는구만…….”

“그래도 이런 건 좀 서로 알아간 후에…….”

크리스는 망설임 없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손이 꿈틀대며 현아를 탐할 듯 움직이려 했지만, 그는 그것을 붙잡고 버텼다.

그만큼 그녀가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돌아갈게. 계속 있으면 내가 못 참을지도 모르겠어.”

“조심히 가요…….”

같은 시각.

비화는 무릎을 꿇고 양손을 든 채 울먹거렸다.

“잘했어 잘못했어.”

“잘못했어요오…….”

그녀는 실시간으로 데이비에게 혼나고 있었다.

“그…… 그래도 답답한 구간은 전부 스킵을…….”

“애초에 그런 아슬아슬한 썸도 하나의 과정이야 임마.”

“윽…… 여신님이 그런 효과를 넣었는지 알았나요. 뭐……”

혀를 쏙 내밀며 투덜거리는 그녀를 보며 데이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이 모든 원흉은 여신님이었네.”

물론, 복수할 수는 없었다. 뭐라 해도 프리아 여신에게 덤비는 건 못 할 짓이었으니까.

“후우…….”

그리고, 며칠 뒤.

현아는 정식으로 크리스와 교제하기 시작했다.

신성의 차기 총수후보인 현아와 크리스의 열애는 당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기에 두 사람은 그것을 숨기려 했지만, 주변인들은 이미 어느 정도 눈치를 챌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달달한 분위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그 후 데이비에게 혼쭐이 난 비화는 울상을 지은 채 에반젤린의 레어에 칩거했다.

“아씨!! 그걸 왜 네가 먹어!! 아! 죽었잖아!”

-으아아악!! 좀비 몰려온다!

-망할 승현! 당장 내 식량 안 가져와?!

음성채팅 프로그램 너머로 노아와 승현의 비명, 그리고 시우와 엘리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협동생존게임을 하면서 절제 박승현에게 씩씩거리는 에반젤린을 보며 비화는 무기력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걸 왜 저렇게 죽는 거야? 허접들.”

비화의 도발을 들은 것일까.

승현이 소리쳤다.

-오호. 잘할 자신 있으시다? 어디 한 번 해보시지.

“싫어요. 당신들 개 못하잖아.”

아직 이 게임을 한 번도 안 해본 비화의 말에 모두의 자존심에 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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