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89화
일리나는 늘 그렇듯 데이비를 시야에 담았다.
“크흐흐흐.”
“뭐야. 왜 그렇게 음흉하게 웃어.”
“이거 볼래?”
데이비가 보여주는 스마트폰에 누군가의 영상이 찍혀있다.
-얍! 얍얍! 야아압!
영상 안에는 어린 소녀가 목검을 들고 요란스럽게 날뛰고 있다.
“넬타리드가 준 영약을 먹었나 보더라. 저저 작은 몸으로 요란스럽게 뛰어다니는 거 봐라. 이거 SNS에 퍼지면 아주 재밌을 거야.”
넬타리드 교단은 성녀 아가사에게 완벽한 이미지를 심어주지 않는다.
그저 계시를 받는 척하며 순진무구한 이미지만을 남긴다.
물론,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드러나면 자연스레 문제가 되겠지만 적어도 이 영상만큼은 그런 느낌보다는 차라리 그 나잇대의 소녀라는 느낌을 받으리라.
그렇게 한참을 휘두르는듯하더니 이내 주변에서 흐뭇하게 보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 평소에 하지도 않던 칭얼거림, 어리광을 피운다.
그러더니 이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여신의 장난.
그녀가 준 축복 자체엔 이런 능력이 없지만 그 안에 프리아 여신의 장난이 한번 들어가면서 이 모든 사태가 벌어졌다.
저게 정확히 어떤 것을 기준으로 움직이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현아나 크리스가 겪은 것과는 조금 다른 케이스로 보였다.
“아마 장난이라 해놓고 다른 목적이 있겠지.”
실제로 아가사가 그런 행동을 한 뒤로 간간이 그녀가 말 못 했던, 고충들을 하나둘 들어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야지. 아가사가 크기 전까지는.”
그녀는 아직 보호받아야 할 존재일 테니 말이다.
“음…….”
“왜. 뭐 기분 나쁜 거라도 있어?”
조심스레 물어보니 일리나는 고개를 저어 보일 뿐이다.
“아냐. 아무것도.”
“뭔가 있는 거 같은데. 말 안 해줄 거야?”
“……응. 나중에 해줄게.”
최근 들어 그녀가 뚱한 얼굴로 있는 경우가 늘었다. 아이를 가지고 있는 만큼 그녀가 혹여라도 불편할까 나름대로 신경을 써주고는 있는데 정작 그녀는 편치않은 모양이었다.
물론 임신하면 감정 기복이 강해진다곤 하지만 일리나는 그 정도가 좀 티가 나는 편이었다.
“난 들려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강요는 안 할게.”
“미안해. 너한테 말하긴 좀 부끄러운 이야기라…….”
그녀가 그러하다면 더는 할 말이 없다.
데이비는 더는 강요하지 않고 물러났다.
이후 데이비가 떠나간 직후 일리나는 자신의 양 뺨을 착착! 소리 나게 때리고는 몸을 웅크렸다.
“막내야. 네 덕분에 엄마 요즘 너무 욕구불만이야…….”
아이가 생긴 뒤로 더 이상 무리할 필요가 없다면서 데이비와 잠자리를 거의 가지지 못했다.
물론, 무리하는 수준을 넘어 임신이 확정된 순간부터는 아이가 다칠 수 있으니 피해야 하니 말이다.
문제는 페르세르크나 에이리아가 아이를 가졌을 때 일리나가 키득거리며 두 사람을 놀린 전례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후…… 둘 다 단단히 벼르고 있을 텐데. 아으 열 올라…….”
머리를 쥐어뜯으면서도 이 사실을 데이비에게 말할 자신은 없는 그녀였다.
그렇게 좋아해 놓고 아이가 있어서 욕구불만이 된다니.
“이상하네…… 애를 가지면 보통 이런 기분 잘 안 든다고 하던데…….”
생각해보면 페르세르크나 에이리아도 비슷했던 것 같았다.
* * *
저급한 도발에 말려 들어가서 모양 빠지는 건 비화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녀는 한껏 여유로운 자태를 뽐내며 에반젤린을 향해 기묘한 웃음을 보냈다.
“에린이 너 개 못하잖아.”
“아악! 웃기지 마! 한 번도 안 해본 주제에!”
“글쎄. 처음 해도 잘하지 않을까?”
맹렬한 도발에 에반젤린이 부들부들 떨었다.
누굴 닮아서 저렇게 승부욕이 강한 건지.
더 놀렸다간 울음을 터뜨리거나 달려들 것 같았기에 비화는 적당 선에서 멈추기로 했다.
“자리 만들어봐 보여줄게.”
에린이의 오락방에 있는 컴퓨터 하나에 손을 뻗었고 컴퓨터가 자연스레 움직이며 가동하기 시작했다.
“대기실 만들어.”
“오케이 들어와 아주 그냥 떡으로 만들어줄 테니까.”
협동게임 아니었나?
분명 에린과 절제 노아 시우와 엘리시아까지 다섯이서 하는 이 게임은 분명 협동생존게임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에반젤린의 눈에선 불타는 투지만이 솟아오르고 있다.
-저기 에린아? 너무 열 올리는 거 아냐?
-뭉개버려! 아주 짓이겨버려!
걱정하는 승현과 달리 노아는 비화의 도발이 아주 잘 먹힌 듯 보였다.
그렇게 비화는 느긋한 마음으로 접속을 시작했다.
게임의 개요 자체는 간단했다.
숲에 떨어진 인간들이 괴물과 식인종으로부터 생존하며 최종 보물을 찾아내기 위해 장비나 탈것을 업그레이드하고 파밍하는 류의 게임이었다.
멍청하니 뭐니 했지만 사실상 협동게임이니 결국 잘 이끌어서 생존하면 되는 게 아닌가.
그녀가 본 게임의 흐름을 봤을 때 상당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규칙을 눈치채지 못한 네 사람은 아주 죽을 쓰고 있었다.
‘우선은 합류부터 해야겠지.’
“나 여기 숲인데…… 어디야?”
비화의 질문에 에반젤린은 빙그레 웃으며 좌표를 불러주었다.
이에 나침반을 켜고 해당 방향으로 빠르게 향한 그녀는 잠시 멍하니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르르르르…….
그녀를 노리고 모여드는 괴물들. 그제야 비화는 에반젤린이 자신을 엿먹이기 위해 기이한 좌표를 불러주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년이?”
“아, 미안. 좌표를 잘못 불러줬네? 그냥 한번 죽어. 걔들 지옥 끝까지 쫓아와.”
그 말에 비화는 짧게 고민했다. 장비도 없이 이 괴물들을 잡는 건 시스템상 불가능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죽었다 하면 곧바로 이어질 풍경이 눈에 훤했다.
-푸훕. 허접이라더니 제일 먼저 죽었죠?
-개 못하죠? 아무것도 못 하죠?
지금이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지만 죽는 순간 바로 시동을 걸 것이다.
절대 그 꼴 못 보지.
다행이라면 괴물의 이동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라서 도망조차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한번 어그로가 끌리면 후각 때문에 지도 끝까지 쫓아온다고 한다는 게 씁쓸한 일이었다.
그녀는 빠르게 내달리며 바닥에 놓인 나뭇가지나 돌들을 하나하나 주워들기 시작했다.
“아, 오빠. 여기 나뭇가지 좀 더 줘요.”
각자도생이라더니, 지들끼리는 서로 손발 짝짜꿍 맞춰서 협동하는 꼴이다.
너희, 실수한 거야.
그녀의 머릿속으로 수십 가지의 계산이 오가기 시작했다.
뒤쪽으로 쫓아오던 괴물이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기가 무섭게 비화는 곧바로 생존게임의 시작이나 다름없는 작업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마치 오랜 시간 해온 것처럼 필수 몇몇 장비들을 빠르게 제조해낸 뒤 주변 지형을 확인. 다시금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30분 정도가 흘렀다.
-이야 이번엔 운이 좋은데? 벌써 철검이야. 방어구 만들고 슬슬 괴물 사냥해도 될 거 같은데?
게임이 잘 풀렸는지 승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에린이는 도발하듯 비화에게 말했다.
“언니, 아직 안 죽고 살아있나 봐? 그런데 그렇게 도망만 다니면 아무것도 못 한다니까? 돌칼이나 돌창 같은 거론 절대 못 잡아. 그냥 죽고 합류해.”
“아니. 전쟁은 니가 시작했어.”
비화의 눈에 어마어마한 투지가 쏟아져나왔다.
조금만 계산을 틀려도 제작을 완성하지 못하고 뒤에 쫓아온 괴물에 의해 오체분시를 당할 터다.
그렇기에 그녀는 괴물이 쉬는 타임과 걷는 속도. 자원을 캐는 시간과 제작 시간까지 모두 계산했다.
다행이라면 비화를 쫓는 것이기에 그녀의 건축물까지 부수진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에이. 그냥 포기하지. 이거 타임어택하는 사람도 시작부터 괴물 어그로 끌고 시작하면 그냥 포기할걸?”
거리가 좀 있기에 에린이는 비화의 화면을 보지 못했다.
처음 어그로가 끌린 괴물을 포함해 날마다 쳐들어오는 일정량의 괴물들의 추적까지 컨트롤하며 무지막지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비화를 말이다.
도저히 기계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그리고 최적의 루트를 생각해놓은 게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성장 속도는 당연히 단순히 즐기기만 하는 네 사람이 따라갈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실제로 이제 철제무기를 만들었다며 즐거워하던 다섯은 슬슬 괴물을 사냥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기를 정비했다.
-그런데. 비화는 뭐 하고 있는 거야. 아직 안 죽은 거 같던데.
“몰라요. 언니 지금 눈 돌아갔어. 그냥 두고 죽으면 데리러 가죠. 뭐.”
콰아앙!!!!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 멀리서 폭음이 울려 퍼진다.
갑작스러운 굉음에 에반젤린은 의아한 얼굴로 캐릭터를 소리가 난 곳으로 보냈고.
이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녀의 눈앞에 보인 것은 극도로 효율적인 소형 요새가 자리하고 있었다.
철제로 도배되진 않았지만 틈새마다 중요 부위만 철제로 덧대고 지형적인 버그를 이용해 완벽하게 방어하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방어 시스템이었다.
“어. 잠깐. 이런 건 본적이 없는데?!”
당황한 에반젤린이 소리치기가 무섭게 요새 속에서 한 캐릭터가 고개를 쏙 내밀더니 그녀를 향해 무언가를 발사했다.
푸콱!!
콧물 같은 찐득한 점액을 맞아버린 에반젤린이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악! 이게 뭐야! 유혹 젤리잖아!”
유혹 젤리. 숲의 괴물을 사냥할 때 놈들을 유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비로 현재 에반젤린을 포함한 다섯에겐 크게 쓸 일이 없는 장비이기도 했다.
-그오오오오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에반젤린의 캐릭터 주변으로 괴물들의 굉음이 들려왔고 장비가 부실했던 에린이는 기겁하며 베이스캠프로 미친 듯이 내달렸다.
“꺄아악! 오빠 살려줘요!”
-으악! 너 나가서 무슨 짓을 하고 온 거야!
“몰라요! 이상한 요새에서 언니가! 언니가아아!!”
비명을 지르는 에반젤린을 따라 몰려드는 수 마리의 괴물들.
준비가 되었다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대처는 생각도 못 한 생존자들은 순식간에 모여드는 세 마리의 괴물과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 했다.
-시…… 시우 씨! 저 죽었어요!
-으악! 나도 죽었다!
-야, 야야야! 노아! 지금 나를 미끼로 쓰고 튀는 거야?!
-아, 몰라. 일단 살아야지!
그야말로 개판 오 분 전.
결국, 다섯의 생존자는 모든 장비와 물품을 잃고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이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건축물과 제작대. 창고는 괴물들의 공세에 모조리 박살 났다.
-젠장! 위험하다 싶으면 다른 데로 튀었어야지!
“나…… 나도 놀랐단 말이에요!”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다만 이들이 가장 경계하는 건 요새의 붕괴 따위가 아니었다.
삐릭!
비화 : ^^ 허접~ 솔로보다 먼저 죽는 패배자~
말 한마디 안 하고 있던 비화의 채팅 한방이 모두의 멘탈을 뭉개버렸다.
-세상에…… 그러고 보니 비화 아직 안 죽었잖아.
-야! 쟤 뭐 하는지 봐봐!
리스폰을 하지 않고 절대시야 모드로 들어간 이들은 곧 비화가 어디 있는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워메. 미친 이게 뭐냐?
-세상에…… 저거 괴물이 갇혀있는 거야?
-야! 승현! 저거 괴물들 사체 같은데?!
세 마리에 초토화 당한 다섯과 달리 비화의 요새 근처에는 괴물들의 사체가 수십 마리 가까이 있었다.
-설마…… 이상하리만치 공격이 적었던 게…….
시우의 말대로였다.
비화는 괴물과 원주민들을 죽이고 얻는 소량의 재화를 위해 그들에게 향하는 침공까지 모조리 어그로를 끌어 한자리에 모았고, 야금야금 돌려 깎듯 그들을 잡아낸 것이다.
-아니, 미친…… 저 덫을 괴물 잡는 용도로 쓴다고?
-그보다 저 요새 뭐야? 나 저런 건 처음 보는데…….
-아무래도 비화 씨가 만든 거 같은데요?
-혼자서? 우리도 이제 꼴랑 그거 만들었는데?
그뿐만 아니라 장비 상 잡을 수 없는 괴물을 잡기 위해 화력은 강하지만 단발성인 함정을 특수한 지형에 설치해놓고 괴물을 끼이게 만든 다음 무한히 함정을 스폰시켜서 잡아버린 것이다.
-아이고 머리야…… 쟤 한 번도 안 죽었지?
-그럼 시작부터 붙은 괴물부터 해서 침공까지 전부 막아내면서 혼자 저만큼 컸다고?
-저…… 비화 씨는 이 게임 처음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세상에…… 농작물 풍성한 것 좀 보세요……. 저는 풀떼기 몇 개가 전부였는데…….
급기야 에반젤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비화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화면에 비친 창고를 보며 기겁했다.
“미…… 미쳤어. 진짜!”
창고는 놀라울 정도로 한산했다.
즉, 필요한 재료만 모아 바로바로 사용하고 낭비 하나 없이 모았다는 소리였다.
“언니…….”
“내가 말했지? 너 허접이라고.”
“아니 이렇게까지 해야 해?!”
“그러게 누가 나 시작부터 죽이려 들래?”
“아니 장난이잖아…… 그냥 한번 죽으면 되지.”
“내가 죽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뜯을 생각은 아니고?”
비화의 미소에 에반젤린은 뜨끔하며 시선을 돌렸다.
“아…… 몰라! 우리 먹여 살려! 이 정도로 튼튼한 요새면 괴물도 잘 막겠네!”
“아 그래? 어렵지 않지.”
비화의 미소에 에린이는 입술을 댓 발 내밀고는 투덜거렸다.
이게 어떻게 처음 하는 유저야. 단순히 옆에서 보는 거로 이렇게 고인물 향기를 물씬 풍기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비화의 이 게임 플레이타임은 0분이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후 스폰한 다섯은 비화의 요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비화는 문을 열고 그들을 맞이하며 환한 미소가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와. 허접들~ 내가 말했지? 에린이 개허접이라고.”
“아악!!”
“컥…….”
승부욕이 강한 절제나 노아 에반젤린은 완전히 죽상이 되었다.
“들어오려면 암호가 필요한데.”
“암호는 무슨 암호야. 문이나 열어줘.”
“열어줄까? 암호는 이거야. 에린이는 개허접입니다! 라고 외치면 문이 열릴 거야.”
그녀의 이어지는 말에 에반젤린이 부들부들 떨었다.
“설마. 여기서 포기하게? 아니지?”
“흐…… 흥! 고작 게임이거든?”
“개 못하네? 처음 하는 사람보다 먼저 죽고. 게임도 포기하네?”
“아악!”
비명을 지르며 에반젤린이 소리쳤다.
구오오오오!!
게다가 타이밍이 안 좋았는지 괴물들이 그들의 향을 맞고 쫓기 시작했다.
“어? 괴물들 온다. 빨리 암호.”
“으윽…… 에…… 에반젤린은 개허접입니다!!”
결국, 에반젤린이 소리치자 비화는 빙그레 웃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와…… 비화한테는 까불지 말자…….
-진짜 전에 배틀 오버 스트라이크 때도 느꼈지만 쟤는 진짜 천재의 영역이 아니야…… 그냥 괴물이야……. 프로게이머도 저 정도는 아니겠다.
결국, 비화가 문을 열어줌으로써 생존한 다섯은 멍하니 괴물들이 함정에 끼여 학살당하는 것을 보았다.
“진짜 신기하네. 저렇게 끼여서 오도 가도 못 하다가 골통 부서지게 하는 방식은 처음 본다. 2천 시간 고인물도 그냥 포기하라던 걸 이렇게 성장시켜버리네.”
“그러게요. 그런데 계속해서 추적할 텐데. 대체 어떻게 이런 요새까지 만든 건지 신기하네요.”
“그러게 말이다…….”
시우의 감탄과.
“으윽…… 이 수모 절대 못 잊어.”
에반젤린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결국, 그동안 다섯이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게임을 클리어하는 데엔 성공했다.
죄다 비화의 압도적인 계산과 지형을 이용하는 능력이 대부분이었지만 고난도의 게임을 처음 하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하는 건 가히 경악스러운 수준이었다.
절제나 시우는 꽤 재밌게 즐겼다며 게임이 끝나자마자 나갔지만, 에반젤린은 조금 전부터 침대에 드러누운 채 비실비실 웃는 비화의 저 웃음이 너무도 얄미웠다.
“언니는 바쁘니까 슬슬 가볼게. 우리 허접 동생. 잘 놀아.”
결국, 에반젤린은 비화가 사라진 침대에 몸을 날린 뒤 곁에 있던 곰 인형을 마구잡이로 때리며 뒹굴었다.
“아악! 열 받아! 못된 년! 못된 년!”
복수하고 싶은데 치졸하게 굴 수도 없으니 속이 바짝바짝 타는 기분이었다. 당장 복수하지 않으면 속에서 이는 이 천불을 끌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이에 에린이는 이런 일에 전문가를 불러오기로 마음먹었다.
삐릭.
-륀느. 미식연구회 데리고 레어에 놀러 올래?
비록 또X이들이지만 사람 복장 뒤집는 데엔 미식연구회가 최고이리라.
-선제시를 요구.
당연 또X이 중 하나인 륀느는 대가를 요구했다.
-그냥 올래? 아니면 이번에 저지르고 있는 거 아빠한테 말할까?
-요구승낙. 빠른 합류를 보고.
전문가들을 불렀으니 이제 의논을 해봐야 할 일.
진이 빠져버린 에반젤린은 이제 뭘 할까 고민했다.
방송도 하지 않고 있으니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언니 플레이 영상 올려버릴까.”
비화는 달가워하진 않을 것이다. 그녀가 방송을 하지 않는 이유도 그녀가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걸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잠깐. 언니가 싫어한다?”
당장 해야겠다.
그리 생각한 에반젤린은 편집자들을 총동원시키기 시작했다.
“일하나만 같이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