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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녀는 절대 함락되지 않는다-39화 (39/62)

39화. 샴페인과 감귤 소스는 같이 먹으면 안돼요 (1)

뭔가 이상하다.

레오폴트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스트리드 폰 미테리엔.

레오폴트의 약혼녀이며, 이 아인트하펜 건국의 지대한 공헌을 한 볼프강 폰 미테리엔의 딸.

어린 시절부터 가깝게 자라왔고,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많이 비틀렸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스트리드는 레오폴트의 길지 않은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자신도 매몰차게 대해왔다는 것을 레오폴트도 잘 알고 있었다.

‘정신을… 놓은 건가?’

눈앞의 아스트리드는 어쩐지 횡설수설하는가 하면, 조금 전과 말투도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어쩐지 눈매라던가 인상 자체가 변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는데. 아스트리드 역시 나를 증오하니까… 내가 매몰차게 대한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괴로워할 일은 없지 않나.’

하지만 눈앞에 있는 아스트리드는 이상한 게 사실이었다.

말투, 분위기, 횡설수설 갈피를 잡지 못하는 태도 등등 이유를 대자면 바로 댈 수 있을 정도로 지금의 아스트리드는 이상하다.

“아스트리드, 괜찮은가?”

“괘, 괜찮아요. 그냥 머릿속이 좀 시끄러울 뿐이라.”

‘머릿속이 시끄럽다…?’

의학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긴 하지만, 머릿속에 환청이 들린다거나 잡소리가 들린다거나 하는 게 그리 좋은 징조는 아니리라는 생각을 했다.

“…아스트리드, 오늘 저녁에 약속이 있나?”

“얼마든, 아니. 아니! 네! 없, 앖어요!”

레오폴트의 눈썹이 살짝 찡그려졌다.

숫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저녁에, 식사라도 같이하지.”

“조, 좋아요.”

굳이 집에 돌아갔다가 오지 않아도 황궁에는 남아도는 게 방이었다.

게다가 황태자의 약혼녀인 아스트리드를 위해서라면 없는 방이라도 만들어야 할 터, 아스트리드는 그렇게 안내받은 대기실에서 푹신한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저녁 식사가 준비되기 전, 몸치장을 위해 시종들이 올 테니 그전까지는 자유롭게 쉴 수 있었다.

【세상에, 전하께서 식사 권유를 먼저 하시다니. 역시 전하께는 저밖에 없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아스트리드는 짜증이 치솟다 못해 혈압이 솟구칠 지경이었다.

세상 누가 봐도 레오폴트는 아스트리드를 싫어한다. 같이 있기조차 꺼릴 정도로 싫어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아스트리드의 말투 자체가 워낙 날이 선 데다가 고압적으로 살아온 탓에 누구에게나 항상 권위적이고 내려보는 듯한 어조였었다.

레오폴트에게는 그렇게 대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좀 순화시킨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라, 그렇게 틱틱대는 여자를 좋아할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네 목소리 안들릴 때는 세상천지가 조용했는데 말이지… 그때로 돌아갈 수 없나?’

【마, 말 다했나요!?】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 아무튼 지금까지 말도 못 걸어놓고 왜 갑자기 또렷해진 건대?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니까.’

【저도 모른다고 했잖아요. 그냥-】

*

무도회가 진행되고 있을 무렵, 미테리엔 영지 북단 설원 어귀.

“대장님, 저기 저거 이상한 거 보이지 않으십니까?”

4계절이라는 개념조차 없이 1년 내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영구동토.

그 속에서, 야간 순찰하고 있던 미테리엔 유격대원 중 하나가 눈보라 저 건너편을 가리켰다.

“이상한 거? 야, 너 또 이상한 설녀니 뭐니 이딴 거 아니냐고 하면 가만 안 둔다.”

“에이, 그런 게 아니지 말입니다. 저기 보십쇼, 뭔가 탑 같은 거 있지 않습니까?”

“탑…?”

그 말에 대장 역시 눈에 힘을 주어 눈보라 건너편을 내다보았다.

과연 뭔가 거무스레한 것이 있었다.

사람 키보다 조금 더 높아 보이는 저 모습.

“탑 같은데. 이것들 또 제단 쌓아놓은 거 아니냐?”

“무너뜨려야 하지 않을까요?”

이 영구동토에서 살아가고 있는 야만족들은 그 수조차 헤아릴 수가 없이 많았다.

많다는 것도 끝없이 밀고 내려오는 침입 때문에 어림잡아 판단했을 때 그런 것이고, 실제로 많은지 적은지는 아직도 의문에 싸여있었다.

“무너뜨려야겠지. 자, 가자!”

유격대에 소속된 스무 명의 대원은 일제히 기척을 죽이며 눈밭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탑이 조금씩 가까워지나 싶다가도, 이내 거세어지는 눈발에 제대로 거리를 재기가 힘들다.

눈보라는 갈수록 거세지기 시작하고, 발이 푹푹 빠지는 눈밭에 점점 전진하기도 힘들어지던 그즈음.

“대장, 안될 거 같습니다! 차라리 나중에 후반조랑 같이 오는 게 어떨까요?!”

근처에 있음에도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거센 눈발.

대장은 한참이나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래, 퇴각하자. 더 이상 무리한 전진은 위험할 것 같다.”

탑과의 거리는 발견 당시보다 조금 더 줄어든 상태.

하지만 거센 눈보라를 뚫고 가서 무너뜨리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판단한 대장은, 더 이상 무리하지 않고 퇴각하는 것을 선택했다.

*

【-어느 순간에, 그렇게 된 거라고요.】

‘그래…?’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하지만 이런 현상을 어디다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고, 같은 현상을 겪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는 줄 알고 찾아볼 것이며, 그 사람이 해결 방법을 알고 있다는 보장도 없다.

‘결국엔 혼자 찾아보는 수밖에 없는 건가.’

【그러려고 황립 도서관 이용 허가를 받은 게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도서관에도 그런 정보가 있을까.

기록이라면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이러이러한 일을 겪었다고 하는 그 정도의 기록.

그 사람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 그런 기록은 없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적어도 같은 현상을 겪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소문한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겠지.

그러면… 나도,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아스트리드는 레오폴트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

【일어나요. 시종들이 왔잖아요.】

‘…응?’

머릿속이 시끄러워서 아스트리드는 눈을 떴다.

눈을 떠보면 다소 난처한 표정이었다가 다시 확 얼굴이 펴지는 시종의 얼굴이 보였다.

【무슨 눕자마자 잠이 들 수가 있나요.】

‘원래 누우면 자는 거야…’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눈을 뜨고 나서도 한참이나 정신이 들지 않아서 멍하니 앉아있었더니, 금발 머리의 시종이 아스트리드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미테리엔 영애…?”

멍하니 그녀를 올려다보던 아스트리드가 여전히 멍한 시선으로 입을 열었다.

“레오폴트…?”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머릿속이 뒤흔들리는 것 같은 고성에 아스트리드가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앞에 있는 시종 역시도 당황스러운 얼굴이었고, 아스트리드는 그런 그녀를 보고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정신이 든 듯 머리를 몇 차례 가로저었다.

“…시, 실례했어요. 무슨 일인가요?”

“아, 네, 네에… 전하와의 식사 시간이 다가오는지라, 치장을 위해…”

어색한 얼굴의 시종이 옆을 가리켰다.

세면을 위한 대야와 함께 수건, 그리고 화장품 보관함과 함께 의상이 걸린 행거가 줄지어 들어선 방에, 아스트리드는 그것들을 둘러보고 아연했다.

세면부터 해서, 사실 아스트리드는 딱히 할 게 없었다.

대야부터 해서 모든 준비는 시종들이 다 해왔고, 세면은 아스트리드가 가만히 앉아있는 사이 시종들이 직접 세면부터 세안, 그리고 마무리까지 모두 시종들이 해주었기에 아스트리드는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그리고 화장은, 시종들이 감히 아스트리드의 피부에 대해서 논할 수는 없겠지만 아스트리드는 워낙 피부가 좋기도 했고, 피부 역시도 새하얀 편이었기에 색조 화장도 더할 나위 없이 잘 먹는 편이었다.

혈색이 잘 드러나지 않는 새하얀 피부 위에 기본 화장이 더해지고, 그 위에 색조가 덧씌워지며 불그스름하게 건강해 보이는 얼굴로 변해간다.

“드레스는 혹시 마음에 드시는 게 있으실까요?”

복장의 노출도는 낮았다.

아마 레오폴트와의 단독 식사이니, 지금은 불시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아스트리드의 노출을 최소화하는 디자인 위주의 드레스.

이 부분만큼은 아스트리드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

결국 아스트리드에게 입혀진 드레스는 연푸른색의 파티 드레스였다.

가슴 부분의 파임을 최소화하고, 비교적 청순해 보이는 드레스여서 아스트리드도 나름 마음에 들었다.

“왔나?”

“…네.”

소연회장에 마련된 식사 자리에 먼저 와있던 레오폴트가 문을 들어서는 아스트리드를 맞이했다. 제법 잘 차려입은 하얀 제복이 그럴 듯하게 어울렸다.

【역시 전하… 너무 멋있으셔…】

‘그래, 그래…’

그 말에, 아스트리드는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새하얀 제복에, 오른쪽 어깨에서 대각선 아래로 가로지르는 붉은 휘장.

황금색 단추가 채워진 제복은 오렌지빛 조명 아래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금발과 아스트리드를 향하고 있는 푸른 눈동자까지 매혹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앉지.”

시종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레오폴트가 직접 움직여, 맞은편의 의자를 빼주며 아스트리드에게 권했다.

“감사합니다, 전하.”

“별말씀을.”

소규모 악단이 연주하는 감미로운 선율이 소연회장을 은은하면서도 조용히 가득 채웠다.

흐르는 음악 속에, 식전 빵을 비롯하여 함께 먹을 버터를 비롯해 잼까지 함께 보기 좋게, 먹기 좋게 차려지기 시작했다.

“소스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아스트리드는 감귤 소스를 싫어하-“

“아, 감귤 소스 주세요.”

레오폴트가 말하다 말고 아스트리드를 빤히 쳐다보았다.

【전 감귤 소스 싫어한다구요!】

아차,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감귤 소스를 싫어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레오폴트는, 스스로 감귤 소스를 요청하는 아스트리드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입맛이 바뀌었어요.”

“그런가. 너도 좀 철이 들려나 보군.”

【절 어린애처럼 귀엽게 봐주고 계셨나 봐요!】

‘…너 바보냐?’

머릿속의 진짜 아스트리드와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사이, 두 사람의 앞에 놓인 잔에 샴페인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샴페인.

문제는, 아스트리드는 여태 이곳에서 술을 마신 적이 없었다.

‘너 술 잘 마시냐?’

【그럼요. 제가 약한 게 어디 있겠어요?】

하기야 북방 설원을 누비며 사람 잡는 백정이었던 아스트리드가 술이 약할 리가 없지.

아스트리드는 샴페인 잔을 가볍게 받쳐 들고서 레오폴트를 향해 살짝 기울인 후 한 모금 들이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강의 하나가 취소되는 바람에 놀러나가기 전에 시간이 남았어요

그래서 썼습니다!

앖어요는 오타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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