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24화 - 탈출
신재혁은 리-템의 돌진 공격을 피하기 위해 재빨리 기둥 위를 타고 올랐다. 한 번 오른 적이 있는 만큼 두 번째는 올라가기 훨씬 수월했다.
괜히 지상에서 뛰어다니다가 석상의 표적이 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함이었다. 지금이라면 먼지구름과무너진 돌기둥에 거려석상의 눈을 피할 수도 있겠지만, 차라리 리-템의 손이 닿지 않는 기둥 위에서 뇌창으로 악마를 공격하는 편이 더 안전할 것이라 판단했다.
물론 리-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힘이 약화되었을지언정, 악마의 교활함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먼지구름을 두르고 달려오던 리-템이 돌진의운동량을 담아 등 뒤의거대촉수를 확 휘둘렀다.
콰-아아앙-!
그 강력한 일격에 신재혁이 타고 오르는 기둥이 마구 떨렸다.
“큭!”
하지만 아직 버틸만했다. 꽤 단단한 재질인지, 돌기둥에 생긴 흠집도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기둥을 쓰러뜨리려면 몇 번은 더 도끼질을 해야 할 테고, 그때면 신재혁이 기둥 정상에 도착해 악마에게 뇌창을 먹이기엔 충분한 시간일 것이었다.
리-템은 자기의 혼신을 담은 일격에도 기둥이 단번에 부러지지 않자 약간 당황한 듯 주춤거렸다. 그 틈을 타 신재혁은 더 빠른 속도로 기둥 위를 향해 등반했다.
그때 리-템의 부푼 살덩이에서 튀어나온 눈알이 기둥 대신 주변의 석상을 돌아봤다. 그러자 리-템의 거대촉수가 다시 분열하며 수십 개의 다발로 갈라졌다. 악마는 무슨 계책을 떠올린 듯 단호한 몸짓으로 석상을 향해 다가갔다.
‘저 석상을 뽑아 던지려는 건가!’
아니었다. 리-템은 신재혁이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취했다. 그는 우선석상의 시선이 기둥뿌리를 향하도록 석상머리를 돌렸다. 그렇게 촉수와 기둥, 석상이 일직선이 되도록 자기 촉수 한 가닥을 석상의 눈앞에 두고 흔들거리더니-
“뭐-!”
투명한 촉수 끝이 점점 불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반대로 촉수를 보고 있던 석상의 눈에는 점차 빛이 충전되어 갔다. 강렬한 빛이 석상의 안구에 모이더니,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죽음의 광선이 발사됐다.
콰아아아아아!
광선은 리-템의 촉수 한 가닥을 녹이고 쭉 직진하더니, 그대로 기둥 밑둥을 때렸다. 아무리 거대한 돌기둥인들 에덴인의 비밀병기인 마력집광포의 위력을 버틸 수는 없었다. 기둥이 출렁거리며한쪽으로 기우뚱 넘어지기 시작했다.
‘제기랄! 석상을 이용하다니!’
신재혁의 미래를 상상한 악마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네놈을¾ð¾î¶ 죽이고 나면, 다음은 ×·¡¹ 감히 나를 이곳에 가둔 ¾Æ가짜¾ð¾î À 마왕놈에게 복수하¤È®고 말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사탄 폐하î¶ó´를 찾아내 지옥의 왕좌를 그 주인x¿î¿µ에게 돌려주리라-!”
신재혁은 기둥이 심각하게 기울어지자 즉시 등반을 포기했다. 기둥에 박은 단검과 창을 갈무리하곤 비스듬하게 무너지는 돌기둥 위를 달리며 생각했다.
‘기만의 권능을 거두면 석상에게 포착되는군! 방금 녀석은 촉수 한 가닥을 희생해서 석상의 공격을 유도했지…. 그렇다면, 석상의 공격이 리-템에게도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소리-!’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신재혁의 머릿속에 승리를 향한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 조각, 승리까지 단 한 조각이 부족해. 어떤 조건으로, 어떤 원리로 석상이 목표물을 감지하는 거지?’
정신을 발가락끝에 집중하고, 돌기둥 가장자리를 박차며 뛰어올랐다. 반투명한 촉수들이 떠나는 연인을 붙잡으려는 손처럼 격렬하게 허공으로 솟아났다. 촉수 끝이 날카로운 갈고리처럼 변해 그를 낚아채려고 했다.
“삿된 것을 물리치는 광휘여-!”
신성한충격파가 공중에서 접근하는 손들을 쳐냈다. 상승하던 촉수들이 힘을 잃고 흩어졌다. 기둥을 박차오른 신재혁의 몸도 최고점에 도달하더니, 곧이어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대책없이 땅에 닿았다간 석상들의 표적이 될 터. 방법을 떠올려야 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신재혁은머릿속에 과거의 파편을 재생시켰다. 전생의 기억이었다. 이스카리옷이라 불리우던, 한때는 그의 동료였던 흑마법사와의 대화였다.
「눈앞에서 골렘에게 들키지 않는 방법이 있냐고? 흠. 재미있는 질문이구나. 일반적인 골렘이라면 마법사가 직접 조종하니, 마법사의 감지를 피하면 되겠지. 하지만 자동형 골렘이라면- 그야 불가능하지. 자동형 골렘은 ‘움직이는 마나’를 탐지해 침입자로 간주하니까. 그리고 에덴의 그 어떤 인간도, 한 톨의 마나조차 품지 않을 수는 없다….」
“보였다-!”
바닥에 착지한 신재혁이 한바퀴 데굴 굴러 충격을 분산하고는, 어떤 지점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석상들의 시선이 몰려있어, 결코 마력집광포를 피할 수 없을 것만같은 장소였다. 하지만 그의 거침없는 발걸음에는 망설임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침입자의 존재를 인지한 석상들의 눈이 푸르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하¤È®È하하하- 제 발로 사지를âÀ§ 향해 들어가±â´É는구우나아¾ð¾아아-!”
자충수를 둔 신재혁을 비웃으며 리-템이 쫓아왔다. 신재혁은 독 안에 든 쥐와 같은 신세였다. 도망치지 못하게 가두는 것만으로도 이 벌레는 석상에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석상의눈이 타오를 듯이 빛났다. 몇 초 후에 광선이 발사되면 신재혁은 잿덩이가 되어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승부수를 던질 타이밍이었다.
신재혁이 재빨리 힙백을 허리에서 뜯어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벌렁거렸다. 지금 신재혁이 하려는 행동은 도박수였다. 기억과 관찰에서 얻어낸 정보를 조합한, 승리로 향하는 방정식. 신재혁의 추론이 틀렸다면, 그는 석상들의 포화에 죽고 말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다른 방법도 없었다. 긴장감에 말라붙은 입술을 살짝 핥았다. 그의 손에는 힙백에서 꺼낸 마력 나침반이 들려 있었다.
“지금!”
신재혁은 속으로 타이밍을 재고는, 그 나침반을 공중에 힘껏 던졌다.
나침반이 포물선을 이루며 리-템을 향해 날아갔다.
‘내 예상대로라면-!’
날아오는 물체를 일종의 공격이라고 판단한 리-템이 촉수손을 이용해 나침반을 붙잡았다. 촉수를 잠시 움츠리며 공격을 대비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고만장해진 리-템이 신재혁의 최후를 기대하며 그를 비웃었다.
“헛되Á¤È엔 발악이었다, 벌±×·¡¹Ö레에야아아-?!”
석상들이 일제히 마력집광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수십 쌍의 마력 광선이 방출되며 자신의 시야에 담긴 표적을 노려왔다.
“뭐x¿î¿엇-?”
하지만 석상들이 보고 있는 것은 신재혁이 아니었다. 광선들은 리-템을, 정확히는 리-템의 촉수에 들린 마력 나침반을 노리고 있었다. 나침반에 들어있는 ‘마력의 움직임’을 감지한 것이었다.
‘통했다!’
신재혁의 입가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K̵̢̯̻̀̄̋͊̂̀͊̄̃̂͂̕̕ŗ̵͎͈̫̻̭̫̞̙͉̳̩̹̑̃̾̏̋͐͆̉́̄̋͘̕ŗ̶̨̻̬̯͇̩͉̔̂̽̉̏̈̅̄͊͗͝u̵̥̩̍͋́̑̔̔͂ú̵̞̞͊ư̶̧̡̖̯̱̻̦̙̳͎̬͔̼̖̦̽̃̆͂̑̂͂g̷̨͎͎̰͕̼͔͖͚͗̍̂ģ̶͈̲̪͉̲̹̽̆̑̇̅̀̀̑̏͗̉ͅģ̶̹͓̤͐̑͑̊ą̵̧͔̩͎̹͔͖̫̻̥̯̭̩̈́̅͊͗̈̄̿̅̎̀͠ą̶̲̪̙̱̟̻̪̋̍̀̋͜å̶̻̱̪͚̘̑̚ä̴̺͎̝̠͍͎̙́̋͒̏̍̽́͆̌͘͜͠ą̴̡͈̱͚͔̬̫͔̝̞̭̝̆̊͝͝a̶̤̙̘͒͗̌̒͌͗͂́͒̈̎̕̕͘͜a̷̰͒̽̾͊̍̊̌̋͋͊̑̾͘͝à̸͎̹͚͖̙͎͇͙̊̄̋͛̊̽̓͂̇̍͆͝͠h̵̼͊̃̊̊h̶̢̯̖̼̪̿̀̊̈́̆̾̈͑̂͆̄̎̚͜h̸̡̨͖͕͙̘̻̩̱̩̱͓̃͛̌͊͝h̸̡̖̙̫̗̥̲̭̘͔͑̍̀́̋̅̈͆͋̂͑͌͜͝h̶͎̠̎̈̽́̾͛̈́͑̾h̸̨̧̨̖͚̯̫̪͇̥͑̑̇̿̔ͅ-̴̡͉̪̱͖̇͑́͛̾͊̀̂̇̕!̴̩̬̣̮̯͎̫̳͈̀̐̐͘!̵̬̮̱̣̳̮̙̦̾́̽̌̈́͊͊̊̾͂̕͜͝!̶̫̭͈̩͉̞͑̃́̎̉͐͗̃̏͛̊
무자비한 집중포화에 악마의 살점이 찢겨나갔다. 극한까지 압축된 고밀도의 마력 광선에 닿은 악마의 살이 지져지고, 녹아내렸다. 리-템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살을 부풀어 올렸지만, 부풀어 오른 살덩어리는 모든 걸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광선의 새로운 제물이 될 뿐이었다.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 악마가 울부짖었다.
“어, 어떻게 ÀÖÁ너¹Ö 따위가 저 석상들에게서 §Ç 무사한 거½ºÅ지이이이-!!”
신재혁이 숨을 가쁘게 내쉬며 대포알로 때린 것처럼 쿵쾅거리는 호흡을 진정시켰다.
“골렘은 이동하는 마나를 감지해 적을 인식하지.
그런데, 나는 마나가 없거든.”
에덴과 달리, 지구의 인류는 날 때부터 마나를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마나라는 기적을 허락받은 사람은 각성자들뿐. 하지만 신재혁은 각성자가 아니었다. 그에겐마나가 한 톨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석상들의 표적이 되지 않는다.
“크아아ix¿î¿아아아-, 네 노오옴이ð¾이이-!”
리-템의 몸이 일순 줄어들더니, 곧장 터질 것처럼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제까지의 팽창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였다. 유지하던 이재연 헌터의 몸 형태까지 포기하고서는, 밤송이처럼 혹은 고슴도치처럼 몸에서 촉수들이 마구 튀어나오며 요동쳤다. 젖먹던 힘까지 끌어다 쓰는 최후의 발악인 것 같았다.
죽음을 각오한 그 발악은 과연 효과가 있었다. 필사적으로 길게 뽑아낸 촉수들이 발광하며 주변의 석상들을 쾅쾅 후려쳤다. 촉수가 채찍처럼 공기를 찢으며 내려쳐질 때마다 경로상의 석상들이 부서졌다. 포화가 약해지자 리-템의 재생속도도 빨라졌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엘로아흐여- 당신의 빛을, 나의 손으로-!”
쫙 편 손바닥 위로 모든 신경을 집중해 신성력을 유도했다. 신재혁의 영혼에서 신성력이 폭포처럼 쏟아져나오며 손바닥 위에 창의 형태로 맺혔다.
‘더, 조금만 더-!’
악마의 몸체가 묶여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지금 결정타를 먹여야 했다. 신재혁이 현재 제어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선 막대한양의 신성력이 뇌창 한 자루에 담겼다. 자기 몸보다도 거대해진 번개에서 정전기가 튀며 갑옷과 바닥을 검게 그을렸다.
묵직한 감각에 신재혁이 얕은 신음을 흘렸다. 손이 저릿저릿했다. 더이상은 제어하기가 버거웠다.
“엘로아흐여-!”
신재혁이 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최후의 일격을 상대에게 날렸다. 지금의 신재혁이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기술이 구사됐다. 신재혁의 손을 떠난 뇌창은 번개의 속도로 표적을 향해 쏘아졌다. 빛줄기가 광장을 갈랐고, 천둥이 그 뒤를 따랐다.
콰아아아아아앙-!!!
̵̡̥͓̝̻̺͔̫̊̓͂̓̉̈́̑͑̎̋̃͐̈́̅͠ͅA̵̢̨̱̬̥͔̤͙̩̪̝̘̘̮̤̽̆̉͂̄͐̀̀̈́͊͝Ḁ̶̈̃̏̄̉̐͐̓̏͛͐̿̔͛̄ǎ̷̹͔̙͓̦͍̭̫̲̹͙̬͜ͅa̷̡̼̺̩̫̭̬̅̀à̴̢͉̳̫̻̞͓̪̬̖̖͗̊̊̇͆̒̿̌̇̾̈ą̵̨̨̯̲͎͎̳̺͇̥͕̆á̷͕̘̯͇̪̹͓̤̳̣̀́̋͊̆̕͜a̷̫͙̹̣̺̖͈͉͇̭̓̑̇̎ĥ̸̞̥͎͙͙̺͉̲͍̱̣͌̑A̶̼̒̽̽͑̂̐̓ȟ̷͕̩̺̪̀̓͠ͅḧ̵̨̰̞̞̤̠̤̥̺́͆͒͐͘ḧ̷̘̙̙̱̻̝͍̲̝̘͊̐̏͛́͊̒̎̄̋̀͠ͅh̶̫̹͔͇͚̮͎͚͙̘̫̘͉̀ḩ̷̮̟͓̲͓̞͍̭̮̻̣̓̌̈̌̅̽̅͗͝͠͠-̷̧̜̥̯̘̔̑̎́
폭음을 만들며 날아간 창은 거대해진 악마의 살덩이 깊숙이 박혔다. 그것을 확인한 신재혁이 주먹을 콱 쥐었다. 그러자 악마의 몸속에서 뇌창이 폭발하며 강력한 번개 줄기가 몸 내부를 헤집었다.
“──────!!!!!”
장기가 전부 지져진 리-템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치명타였다. 파르르 떨며 발작하는 몸뚱이가 점차 색을 찾으며 불투명하게 변해갔다. 어느샌가 석상들도 공격을 멈추고 작동을 정지한 채였다.
황량한 유적을 훑으며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회색 안개로 뿌연 하늘에선 여전히 햇빛이 쨍쨍 내리쬐었다. 먼지구름이 조금씩 가라앉았고 유적에는 다시금 정적이 흘렀다. 신재혁이 갑작스런 움직임을 경계하며 바닥에 널부러진 악마의 몸뚱아리에 천천히 다가갔다.
바짝 익은 악마의 몸에 잔류한 뇌기가 타닥거리며 튀었다. 황금빛의 신성력이 악마의 마기 운용을 방해하며 재생을 억눌렀다. 재생이 멈춘 악마의 몸에서 핏발선 두 눈이 점점 감기고 있었다.
눈가의 힘줄은 끊어져 덜렁거렸고 동공은 풀어져 눈동자가 혼탁했다. 재생되지 않는 신체 곳곳의 상처에선 희멀건 체액이 울컥울컥 토해졌다. 부르르 경련하던 촉수들도 그 형체를 이미 잃고는 바닥에 물웅덩이처럼 퍼질러있을 뿐이었다.
리-템이 새까맣게 탄 자신의 촉수 한 가닥을 부들거리며 겨우들어올렸다. 최후로 뻗은 촉수 끝에는 흑갑의 성기사가 자신의 두 다리로 당당하게 서 있었다.
“폐하, ©°¡ 사탄 폐하께서 돌아¸¸µé가셨을 리가 없ð¾î¶ó´는데에ý에에에에â´ÉÀ»°¡Áø ÇÁ·Î±×·¡¹Ö ¾ð¾î ÀÔ´Ï´Ù….”
리-템의 마지막 말은 먼지 바람을 타고 힘없이 날아가다, 소용돌이와 함께 사그라들었다. 촉수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며, 작은 돌먼지를 일으켰다.
신재혁이 자세를 풀며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
「===
시스템 로그
보스가 처치되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문명 무력 수치[0/5 Lv]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생존 인원 13/30
곧 게이트가 활성화됩니다….
===」
***
“젠장, 이걸 어떻게 보고해….”
하정재 지휘관이 맨들맨들한 머리를 양손으로 꽉 지압했다. 기적적으로 게이트를 탈출한 그는 현재 자신의 막사 속 테이블 앞에 앉아있었다. 정면의 노트북 모니터에는 이번 ‘크리스마스 참사’에 대한 보고서가 떠올라 있었다. 하정재가 직접 작성한 보고서였다.
‘크리스마스라 다행히 기자가 아무도 없었지만….’
그는 책상 위의 컵을 낚아채듯이 확잡아선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차가운 액체가 목을 넘어가 식도를 타고 흐르자, 그제야 자신이 살아있다는 실감이 났다. 그는 자기가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었는지 회상했다….
시스템을 통해 한 명의생존자가 아직 죽음의 광장에, 무시무시한 석상들 사이에 남아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그 생존자를 구출하러 가는 것을 포기했다. 한 번 패전을 겪은 직후였다. 공포에 주저앉은 헌터들을 다시 그곳에 끌고 가 봤자 몰살 엔딩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거의 30분 후부터 갑자기 사원 안쪽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부서지고 땅이 뒤집히는 소리였다. 기괴한 비명소리 같은 것도 들려왔다. 광장에서 어떤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이 명백했다. 그 생존자가 무엇인가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30분이 흘렀다. 사원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멎고 숲은 다시 숨먹히는 고요함을 되찾았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상태창을 통해 보스가 처치되어 게이트가 활성화됐다는 문구를 발견한 것이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헌터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검은 갑옷을 입은 헌터 한 명이 사원 입구에서 천천히 걸어나온 것은 몇 분 후의 일이었다.
흑기사는 헌터들이 도망친 직후 광장 입구 반대쪽의 제단 안에서 거대한 보스 몬스터가 튀어나왔으며 석상들이 그 보스 몬스터를 공격해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과연 그의 뒤를 따라 광장으로 가보니, 그렇게 위협적이던 석상들이 온통 부서져 사방에 널부러져 있었고 유적 곳곳에 전투와 파괴의 흔적이 낭자했다. 무엇보다 부서진 석상들 한가운데에 정체를알 수 없는 거대한 살덩이가 있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이 게이트의 보스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시체는 석상의 빛에 녹아내린 것이 아니라, 마치 번갯불에 지져진 것처럼-’
“소대장님, 방문객이 찾아왔습니다.”
어떤 목소리의 방해로 소대장의 상념이 중단됐다.
“내가 절대로 기레기들 들이지 말라고 했을텐데-”
“기자가 아닙니다.”
차가운 목소리가 그의 말을 끊으며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도도한 인상의 미녀였다.세련된 정장을 입은 여성이 구두를 또각이며 하정재의 책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품속에 손을 넣어 명함 하나를 꺼내더니, 책상 위에 얹었다.
“어째서 국정원에서 여길….”
하정재가 식은땀을 흘렸다. 땀으로 젖은 그의 두피가 한층 더 맨들맨들하게 빛나며조명을 반사했다. 한때 고위 장교였던 박주관 대통령이 군부의 상층부와 긴밀한 커넥션이 있다는 사실은 군 간부라면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리고 국정원은 박주관의 명령을 따르는 충실한 전령이자 사냥개라는 사실 역시.
“덮으세요. 윗선의 지시입니다.”
여자가 담담한 어조로 명령했다. 조금도 높아지지도, 낮아지지도 않는, 감정의 고조가 없는 음성이었다. 하정재가 시선을 올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녀를 노려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알겠습니다.”
먼저 시선을 내리깐 하정재가 그녀가 볼 수 없게 책상 아래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여자는 흥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책상 위의 노트북 화면을 자기쪽으로 돌렸다. 여자의 눈이 빠르게 보고서를 훑어 내려가다 어떤 단어를 보고는 멈췄다.
“이 사람은..!”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자기에게 한 소리인 줄 알고 하정재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네?”
“이 사람에 대한 정보는 즉시 파기하세요. 전부.”
“예? 예….”
하정재의 반응조차 확인하지 않은 그녀는급히 몸을 돌려서는 막사를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갔다. 급한 용무가 생긴 것 같았다. 하정재가 모니터를 다시 자기 쪽으로 돌려 여자가 짚은 이름을 확인했다.
‘이 남자는,’
그 헌터였다.
홀로 석상들 사이에서 살아남아, 보스의 사망을 증언한 흑기사.
신재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