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31화 - 마인
우르르르-
“도망치지 못하게 포위해!”
“둘러싸! 문을 막아!”
조직원들이 신재혁이 도망치지 못하게 둥글게 포위했다. 건장한 남자 열댓 명으로 구성된 반원 모양 벽이 탈출구를 가렸다.
“비켜, 비켜!”
째지는 고성과 함께 조폭의 벽을 뚫고 한 사내가 튀어나왔다. 흰 가운을 입은 홀쭉한 노인. 빼빼 마른 뺨과 대비되는 불거진 광대가 상당히 두드러졌다. 컨테이너에 숨어있을 때 본 인물이었다.
‘전부 컨테이너에 숨어서 본 얼굴들이군…. 정말로 이게 이 비밀스러운 연구소 인원의 전부인 모양이야.’
그가 숨을 헐떡거리며 신재혁을 쳐다봤다. 거친 호흡에 그의 작은 체구가 오르락내리락 흔들렸다. 똥그랗게 뜬 두 눈이 도대체 이곳에 어떻게 들어왔지-라는 물음을 시선으로 던지고 있었다.
그가 숨을 고르며 차분히 심호흡을 했다. 그러더니 가운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불.”
“여깄습니다. 허 부장님.”
곁에 서 있던 조직원 한 명이 품에서 라이터를 꺼내 담뱃불을 붙여주었다. 탁한 담배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스읍, 후우-”
담배를 피우는 와중에도 허 부장이라 불린 노인은 침입자의행색을 찬찬히 살펴봤다. 눈에 띄지 않는 검은 옷차림. CCTV를 의식한 캡모자. 손에는 교전을 대비한 메이스. 등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가방.
명백한 스파이의 복장. 자신의 연구 결과를 훔치기 위해 잠입한 것이 틀림없었다. 참으로 괘씸하게도….
그가 무슨 말을 꺼내기 전에 신재혁이 먼저 선수를 쳤다.
“네가 여기 책임자인가 보지?”
“그래. 넌 뭐냐? 여긴 어떻게 찾은 거지? 이곳의 위치는 조직 내에서도 극비일 텐데….”
몇 개의 의문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허 부장이라 불린 늙은이가 누런 손톱으로 초조하게 목덜미를 마구 긁어댔다. 그가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이 프로젝트의 내용은 회장님밖에 모르는데. 누가 보낸 거지? 팔광이? 지필이? 아니면 덕출이? 회장님 앞에선 웃으면서 뒤에서 칼 갈고 있는 놈이 한두명이어야지…. 젠장.”
신재혁은 대답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면서도 툭툭 던진 말 속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찾아내기 위해 애썼다.
차은경은 현재의 흑사파가 적룡파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모인 일종의 연합이라 했다. 한때 우두머리였던 자가 여럿이 모이면 서로 권력 싸움이 발생하기 마련. 흑사파 내부에 현재의 회장인 류창근에게 불만을 품는 파벌이 꽤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이 상태로 물어봤자 뭔 소용이냐…. 필두야!”
그가 냅다 소리를 빽 질렀다. 조폭들의말로 추론했을 때 필두라면 아까 신재혁에게 쓰러진 사시미남 아닌가? 그는 기절해서 문 안쪽의 복도에-
콰아앙! 촤르르륵-
신재혁 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갑자기 두 갈래 촉수가 튀어나왔다. 한 가닥 끝에는 몇 분 전에 본 사시미 칼이 들려있었다.
슉-!
“윽!”
‘각성자? 신체변형계인가!’
문어 다리같은 두 가닥의 살덩이가 신재혁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약하게 긁힌 뺨에서 핏물이 튀었다.
문어 다리는 순식간에신재혁의 몸을 휘감더니, 뱀처럼 매듭을 조여오며 몸을 꽉 붙잡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신재혁은 꼼짝달싹도 못하게 되었다.
양팔을 꽉 조이는 압력에 신재혁이 손에서 메이스를 놓쳤다. 메이스가 바닥에 떨어지며 묵직한 소음을 냈다.
“크윽-.”
“부장님! 제가 잡았습니다!”
문에서 촉수의 주인이 나타났다. 역시 아까 신재혁이 상대한 놈이었다. 그의 두 팔이 마치 고무고무 열매를 먹은 것처럼 길게 늘어나 신재혁을 묶고 있는 것이었다. 턱을맞고 기절한 것을 분명히 봤는데, 벌써 일어났다니!
‘게다가 이놈, 각성자가 아니야. 마나가 느껴지지 않아. 오히려 이 사악한 기운은-’
“크크, 역시 연체동물 쪽이 호환도 잘 되고 맷집도, 유틸도 끝내준단 말이지. 내가 봐도 참 잘 만들었어.”
허 부장이 흡족하게 웃으며 허공에 담뱃재를 툭툭 털었다. 다시 누런 이빨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는 묶인 상태의 신재혁에게 다가왔다.
“자, 이제 좀 서로에 대해 알아갈 자세가 된 것 같군?”
“크으으….”
신재혁의 신음소리에 노인이 비열한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누가 보냈지? 아니, 아니지. 어떻게 여길 찾아왔지? 이게 제일 궁금하군. 도대체 여길 어떻게 찾은 거지? 최대한 꽁꽁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 비밀이 샌 거지?”
허 부장은 주름진 얼굴을 신재혁의 얼굴에 가까이 대고, 먹잇감을 살피는 뱀처럼 그의 표정을 샅샅이 관찰했다. 다음에 튀어나올 대답을 기대하면서.
기대와 달리 신재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노인이 팔을 들어 올렸다.
“말해. 말해. 말해.”
찰싹-! 찰싹-! 찰싹-!
그가 박자에 맞춰 뺨을 때렸다. 뺨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가 입에 문 담배를 엄지와 검지로 집었다.
“말해!”
치이이익-
담뱃불이 신재혁의 뺨을 지졌다. 불꽃과 얼굴이 만난 부분에서 고기 타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
“하…. 이 씨발련이.”
신재혁의 입이 열릴 기미를 보이질 않자, 그가 잔뜩 열 받아서는 소리 질렀다.
“말-해애! 말 하라고오!!”
어디서 힘이 솟아올랐는지, 노인이 앙상한 두 팔로 신재혁의 얼굴을 마구 두들겼다. 그의 주먹이 신재혁의 얼굴을 퍼버벅 때리며 피가 튀었다.
“….”
신재혁은 신음 하나 내지 않았다. 평생 수라장을 거쳐온 그에게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때리고 때려도 입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자, 부장이 전략을 바꿨다.
“하, 독한 새끼. 그래. 내가 어떻게 하면 입을 열 테냐?”
상대가 어지간히 입을 열 것 같지 않으니 그를 구슬리려 한 것이다. 그제야 신재혁이 입을 열었다.
“궁금한 걸, 하나씩, 번갈아 물어보기.”
“이제야 금보다 무거운 입을 여시는군! 푸흐흐. 질문 게임이라. 어지간히 궁금했나 보지? 내 위대한 연구가?”
푸하하하하-! 크크크크키키킥!
미치광이 같은 웃음소리가 방에 울렸다.
“좋아! 곧 죽을 놈 소원 하나 못 들어주랴!”
어차피 침입자는 제 손바닥 안. 비밀 유지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이 게임이 끝나면 그는 시체가 될 것이고, 시체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차라리 저놈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으로 어떻게 보안이 뚫렸는지 알아낼 수 있으면 그 편이 이득이었다.
‘걸려들었군.’
그리고 그것은 신재혁의 노림수이기도 했다.
그가 왜 고작 동네 깡패 따위에게 붙잡혀 뺨을 맞고 고문당하는 치욕을 감내했겠는가? 당연히 자신이 ‘위험인물’일 때는 들을 수 없는 정보를 듣기 위해서였다.
일부러 적에게 붙잡혀, 약자를 연기하고 상대의 비밀을 캐내는 것. 제가 우위에 서 있다고 착각하는 놈들은 쉽게 경계를 풀고 곧장 위험한 비밀을 나불대곤 했으니까.
“여기서 무슨 실험, 아니 수술을 하는 거지?”
“호오,수술실을 봤나! 그러면 대충 눈치챘을 텐데? 저 방에서 본 생물이 무엇인지 말이야.”
갇혀있는 실험체들.
문에 부착된 연구 일지.
수술실 쓰레기통에 있던 사람 장기.
가죽 속이 텅 빈 악마 시체.
사람의 것이 아닌 검은 혈관.
그 혈관에서 흐르는 사이한,
마기魔氣
“…악마와 인간의 융합.”
짝짝짝! 허 부장이 박수를 쳤다. 진심으로 감탄한 표정이었다.
“머리가 돌아가는 속도가 제법인데! 그래! 비슷하지. 정확히는 융합이라기보단, 강화지만….”
사람 장기 대신 악마 장기를 레고 부품처럼 갖다 끼우는 거지. 아니, 건담인가? 아무튼-
그가 혼자 재잘재잘 떠들었다. 자신의 실험에 관심을 가지는 이가 생기니 즐거워 보였다. 학계에 발표도 하지 못하고, 적막한 연구소에 갇혀 혼자 연구하느라 얼마나 입이 갑갑했겠는가. 멍청한 부하들이 자기 연구를 이해할 리도 없고.
“하긴, 백문이 불여일견인가?”
그가 뒤돌아 부하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아그들아! 함 보여줘라! 궁금하시단다!”
뒤에 서 있던 조폭들이 낄낄대며 소매를 스윽 걷어 올렸다. 그들이 옷소매를 들추자 살갗 위로 기괴하게 부푼 핏줄이 보였다. 그 속에서 어두운 마기가 흐르고 있었다. 팔을 휘감은 뱀문신이 핏줄의 태동에 맞춰 꿈틀거리니 마치 흑사가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너희, 전원이 마인이군….”
충격에 빠진 신재혁이 중얼거렸다.
악마와의 신체 공유.
이것은 일종의 계약이었다.
악마와 조폭이 허 부장이라는매개자를 거쳐 맺은 간접 계약.
“그래! 오로지 나만! 이 세계에서 나만, 할 수 있는 위대한 업적이지! 수술 한 번으로 일반인이 각성자에 버금가는 힘을 얻을 수 있게 된다고! 회장님께선 강력한 군대를 손에 넣어 뒷세계의 왕이 되실 것이고, 나는 개국공신이자, 인류를 한 걸음 더 진보시킨 위대한 과학자로-”
허 부장이 화려한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제 야망을 지껄였다. 그러나 신재혁에게 그런 계획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문제는, 이런 연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였다.
그를 이대로 내버려 둬서 이 연구가 유포된다면, 지구에 마인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이다.
불티 하나가 숲 전체를 태우는 화마火魔로 자라듯.
여기서 싹을 끊어야 했다.
살의를 품은신재혁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가 애써 살의를 억눌렀다. 아직은 참아야 했다. 계획의 배후가 누구인지 캐내야 한다….
혼자 떠들던 노인이 홱 포로를 돌아봤다.
“우선 방해꾼부터 처리해야겠지….
여길, 어떻게, 찾았지?”
그가 씹어먹듯이 한 음절씩 또박또박 끊어 물었다.
머릿속을 꿰뚫어 보는 뱀 같은 동공. 어설픈 거짓말은 통할 것 같지 않았다.
“트럭을 쫓아왔다. 인천항에서부터. 흑사파 문양을 새긴 컨테이너를 싣고 가더군.”
허 부장이 신재혁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며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와 증언을 조합했다.
“쯧- 멍청한 놈들이…. 떡하니 화물에 조직 문양을 새겨? 수상한 일 꾸민다고 어디 동네방네 광고할 일이라도 있냐? 이 씨-발 새끼들. 그 양반이랑 한 번 날 잡아서 따져야겠구만….”
허 부장이 누군가를 떠올리며 짜증을 냈다. 비밀스러운 밀수가 가능하도록 그들에게 유통망을 빌려준 VIP였다. 애초에 조력자 하나 없이 자기네만으로 바다 건너에서 화물을 들여오기란 불가능했다….
신재혁이 다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인간에게 악마의 형질을 부여한 거지? 단순히 장기를 꿰맨다고 악마의 힘을 얻을 수는 없을 텐데.”
“크크…. 날카로운 질문이군. 역시 똘똘해, 아주 똘똘해.”
역시나 배후가 있었군. 신재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허 부장이 연극배우처럼 과장스럽게 손을 뻗었다.
”위대한 분께 은혜를 받았지. 너희 같은 평범한 인간들은 영원히 알 수 없을 지옥의 지식을.”
허 부장은 과거를 회상하며 아련한 눈빛을 지었다.
“아직도 그 순간이 선명하게 기억이나는구나. 유독 배가 고프던 밤, 그분께서는 거미의 형상으로 나타나셨지. 아! 한낱 미물의 형태를 취하셨지만, 나는, 나만큼은 그분의 위대함을 알아볼 수 있었어! 자신의 진신眞身을 알아본 나를 기특해하며 그분께서 내게 무엇을 바라냐 물으셨지. 나는 현명한 솔로몬 왕처럼 지혜를 주십사 빌었고, 그분의 거미 다리가, 다리가, 다리가 내 귓속으로 들어가, 내 뇌에 직접 금기된 지혜를 속삭이셨다…. 어리석은 정신을 계몽시키는, 황홀하고, 마약보다 더 고양되는 그 감각! 아-! 그 기쁨을 어찌 잊겠나?”
그가 노구老軀를 배배 꼬며 황홀하게 신음했다. 잇몸 사이로 침이 줄줄 새어 흘렀다.
‘제대로 맛이 갔군…. 역시 어떤 위험한 놈이랑계약한 건가.’
그의 상태를 보니 그와 계약한 악마가 뇌 속에 직접 사악한 지식을 꽂아 넣은 것 같았다. 그의 말대로라면, 악마는 대가도 바라지 않고 일방적으로 선물을 준 것 같았다.
하지만 신재혁은 악마가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악마란 어떻게든 인간을 파멸시키려고 애쓰는 생명체다. 인류를 증오하는 악마가 인간에게 이유 없는 호의를 베풀 리가 없었다. 호의로 포장한 수면 아래엔 인간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으리라.
중간계에 마인을 증식시켜 내부로부터 붕괴시킬 셈일까? 아니면 자신의 세력을 늘리기 위해 추종자를 만드는 작업?
신재혁은 악마의 정체와 목적이 무엇일지 추리해보려 했다. 하지만 짐작도 가지 않았다. 예상되는 후보가 지나치게 많았다.
지옥은 깊고, 악마는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