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2화 〉32화 - 집행 (32/72)



〈 32화 〉32화 - 집행

머리에 몰린 열을 식히며 허 부장이 물었다.

“그분의 뜻대로 회장님을 도와 계획을 완성해야 해…. 여기로 누가 널 보냈지? 누가, 우리를 방해하지?”

사실대로 차은경의 이름을 꺼냈다간 그녀가 흑사파의 표적이  것이다. 신재혁이 희생양을 찾기 위해 머리를 풀가동했다. 책임을 떠넘기고 적의를 분산시킬 수 있는, 그러면서도 상대가 의심하지 않을 법한 존재가 필요했다….

‘아, 그놈들이 있었지!’

“…적룡파에서 왔다. 흑사파가 밀수를 갑자기 늘렸다는 소문을 들어서 말이야.”
“적룡파..! 과연…. 부산 촌놈들이 벌써 낌새를 눈치챈 건가. 설마 인천놈들도 알고 있는  아니겠지? 그럼 골치 아파지는데….”

잔뜩 흥분한 상태의 허 부장은 신재혁의 거짓말을 간파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적룡파라는 조직의 이름값이 현상황의 개연성을 뒷받침하는 듯했다.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고 그가 고민에 빠졌다. 그는 눈가를 찡그린 채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방 안을 초조하게 왕복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약 삼십 초 동안 아무 말도 없이 한창 서성이던 그가 걸음을  멈췄다.

“안 되겠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군. 빨리 회장님을 찾아뵈야겠어…. 그리고 이놈은,”


힐끗 신재혁을 본 그가 부하들을 향해 돌아보며 씩 웃었다. 차가운 선고가 포로의 운명을 결정했다.

“이놈은 너희들에게 맡기마. 그냥 가지고 놀다 죽여.”

매일  나르는 임무만 맡다가 오랜만에 기꺼운 명령을 받은 조폭들이 눈을 반짝였다.

“크크크. 예, 부장님. 감사합니다.”
“하루종일 여기 지키느라 스트레스가 꽤 쌓였는데, 당분간은 지루할 틈이 없겠어.”
“우선 샌드백  치다, 심심해지면 피부를 벗겨버리죠. 흐흐흐.”

그를 붙잡고 있던 문어남도 신이 나서는 신재혁의 귓가에 속삭였다.

“악마에 가까워지니까, 성격도 조금 잔인해지는 것 같단 말이지…. 사람의 비명소리가 즐겁고, 유혈이 낭자한 그림이 사랑스럽고. 걱정 마. 형님은 바쁘시지만 우리가 계속 놀아줄 테니. 제발 오래 버텨다오. 우리의 즐거움이 끝나지 않게.”

크크크키키키킥-
후흐흐흐하하!

조폭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앞으로의 일이 기대하는 잔인한 웃음소리였다. 그들은 제각기 혀로 입술을 핥고, 입맛을 다시며, 소매를 걷어 올리며 곧 있을 격렬한 유흥을 준비했다.



─역시, 이놈들은 안 되겠군.

흑사파 두목에게 보고하기 위해 떠날 준비를 하는 허 부장의 뒤통수에 대고 신재혁이 물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다.”

고저가 없는 음성이었다. 체념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연구소 인원의 전부냐?”

자신에게 닥칠 고문을 두려워하는 걸까?
마침내 적에게서 두려움을 발견했다고 생각한  부장이 웃으며 답했다.

“크크크. 그래. 걱정하지 마. 이놈들 상대하기도 바쁠 테니….”

신재혁이 담담히 고했다.

“그렇군. 그러면, 여기 있는 네놈들이랑, 회장이라는 놈만 족치면 된다는 소리겠다?”

신재혁이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는 사납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을 본 순간, 부장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삿된 것을 물리치는 광휘여-!”

──!

신재혁의 몸에서 뿜어진 빛의 충격파가 방안의 마인들을 휩쓸었다.

“크아아악! 내 팔,팔이-”
“아아악! 뭐냐, 이게! 몸이 불타는 것 같아아악-!”

가장 가까이에 있던, 신재혁을 붙잡고 있던 문어남의 피해가 가장 컸다. 그는 이미 양팔이 새까맣게 타서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충격파를 문어남이 받았기 때문에 치명상을 입은 조폭들은 많지 않았다.

“뭐냐- 각성자?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는데?!”
“끄으윽, 뭐야 이 역겹고 토악질 나오는 기운은!”

신재혁은 바닥에 떨어뜨린 메이스를 주워 곧장 조폭들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신성력이 온몸에돌자 담뱃불에 지져졌던뺨도, 노인네 주먹에 맞아 찢어진 이마도 전부 회복되었다.

‘차은경 부탁만 듣고 얌전히 떠나려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이놈들은 마인이다. 마인은 모조리 죽여야 한다.’

혼자 장기이식 시술을 받지 않아 타격을 덜 입은 허 부장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자기에게 달려오는 신재혁을 발견하고는 비명을 질렀다.

“막아! 저놈이 온다! 나를 지켜!”

그가 부하들의 몸을 떠밀었다. 얼떨결에 선두로 떠밀린 조폭이 잠깐 멈칫거리다 기합을 지르며 마주 보고 달렸다.

“흐아아아아아얍돶뒁봍뜵돞럔-!!”

그가 한발짝 씩 내딛을 때마다 몸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목덜미엔 사자의 갈기가 자라났고, 주둥이가 앞으로 쭉 튀어나왔다. 기합을 뱉는 와중에 구강구조가 변화하니 첫소리는 분명 인간의 것이었으나 끝소리는 악마의 목소리였다.

그는 양팔을 활짝 펼쳐 신재혁에게 점프했다. 각성자만큼 강해진 근력으로 그를 붙잡아 찌뿌러뜨릴 생각이었다.

신재혁의 대응은 간단했다.

“빛이여-”

신성한 빛이 검은 메이스를 감쌌다. 마인을 상대하기 적합해진 무기를 휘둘렀다. 철퇴가 큰 호를 이루며 공중을 갈랐다. 정확히 철퇴가 지나갈 궤적 위에 사자머리가 떨어지고 있었다.

“어, 엇-”

자신에게 닥칠 미래를 어떻게든 피해 보고자 사자머리 마인이 공중에서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체공 상태의 그가 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 그에게 닥쳤다.

콰앙-! 퍼퍽-! 철퍼억-!

종류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번째는 메이스가 마인의 두개골을 부수는 소리였고, 두 번째는 머리가 목에서 뜯겨나가는 소리, 세 번째는 떨어진 머리가 바닥에 나뒹구는 소리였다.

어지럽게 섞인 소리들 사이에서 이질적인 소리 하나가 잡혔다. 무언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 신재혁이 재빨리 앞으로 굴렀다.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무언가가 땅에 파박 박혔다. 고슴도치 가시처럼 뾰족한 뿔이었다. 하지만 그 뿔은 연필만큼 컸고, 돌바닥을 뚫을 만큼 강력했다.

“큭! 빗맞췄다!”

이마 정중앙에서 뿔이 돋아나고 있는 마인이 꽥꽥댔다. 새로 뿔을 만들어 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저 뿔. 맞으면 회복할 수야 있겠지만, 저런 가시가 관절부나 근육에 끼었다간 움직임에 제약이 생기겠지. 신재혁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그가 메이스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파지법을 고쳐 잡았다.


하지만 그때 패닉 상태의 조폭들이 정신을 차렸다. 가시를 피하느라 신재혁의 공격이 멈추자 고통과 충격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몇 명이 죽었지만, 그들이 보기에 아직 자기네가 유리했다. 그들은 수가 많았고, 상대는 한 명이었으니.

“그냥 한 번에 덮쳐!”
“으아아아야얄엷娥]9I윕?膠岷납켓T퓷I썗翔-!!!”

마인들이 우르르 몸을 던졌다. 하나하나가 육상선수보다 월등한 각력으로 바닥을, 벽을, 책상을 밟아 부수며 뛰어왔다.  여파로 책상이 우지끈 무너지고 벽과 천장에 짐승의 발자국이 찍혔다.

적은 여럿이나 무기는 하나인 상황.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재혁이 수습 성기사일 적에 읽었던 무기술 교본을 떠올렸다.

메이스는 한 번의 강력한 회전으로 적을 단번에 무력화시키는 무기다. 하지만  번 휘두른 메이스를 멈춰 반대로 휘두르려면 관성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딜레이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메이스로 다수의 적을 상대하려면, 한 번의 회전이 끝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신재혁은 입술을 비틀어 올리며 메이스 손잡이를 손으로 움켜잡았다. 한 손으로 휘두를 때보다  가볍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흐으읍-!”

허리를 비틀며 양손으로 크게 휘두른 메이스가 신성력을 흩뿌리며 빛의 길을 만들었다.  모습이 마치 황도 위를 달리는 태양처럼 보였다. 궤도면 위를 미끄러지는 태양이 길 위의 방해물 셋을 불태우고 지나갔다. 로드킬당한 세 구의 대가리 터진 시체가 바닥에 널부러졌다.

“지금이다! 공격해!”

공격 직후에 발생할 딜레이,  틈을 노린 마인 몇 명이 습격해왔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 달리 신재혁은 메이스를 반대로 휘두르기 위해 팔을 멈추지 않았다.

대신 그는투포환 선수처럼 메이스와 함께 몸을 빙글 회전했다.

쾅!

천구 주위를 공전하듯 갑옷 바깥을 한 바퀴 공전한 태양이 한 명을 때렸다. 갈비뼈가 부러진 마인은 신음 하나 뱉지 못하고 절명했다. 시체의 무게가 더해지자, 메이스가 아래로 급격하게 휘었다.

“합!”

신재혁은 바닥을 짓누른 무릎에 힘을 주고 팔을  당겼다. 메이스의 경로가 굽이치는 시냇물처럼 역동적으로 변화했다. 어둠 속에서 감고 꺾이고 비틀린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발광체는 쥐불놀이처럼 화려하고 변화무쌍했다.


메이스는 연이어 몇 바퀴를 빙글빙글 돌더니, 덮쳐드는 장애물들을 모두 격퇴했다. 모두가 목표물을 직격한 것은 아니었지만, 신성력 품은 무기가 피부를 긁고 지나가자 난생처음 맛보는 생경한 통증에 마인이 비명 질렀다.

“끄아아악! 몸이, 몸이!!”

한 명이 이루었다고 믿기 힘든 압도적인 위용을 본 조폭들이 주춤거렸다. 고맙게도 그들의 공포와 주저는 신재혁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드디어 혓바닥을 움직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기자, 노련한 성기사는 일체의 망설임 없이 아리아를 외었다.

“주여! 당신의 빛을, 나의 손으로!”

뇌창이 손에 잡히자마자 목표지점을 보지도 않고 냅다 집어던졌다. 일견으로 상대와자기 팀 선수의 위치를 모두 파악하는 농구선수처럼 누가 어디에 있는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백 번의 난전을 겪으며 체득한 순간 기억력이 빛을 발했다.

“-장전 다 됐으으아각악!”

뿔이 다 자라 올라 신재혁을 노리려던 유니콘 마인이 번개를 맞고 감전사했다. 유일하게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마인이었기에 눈여겨봤던 놈이었다. 이제 남아있은 적은 허 부장을 포함해 다섯.

“내가 접근했다!”
“뒤져버려엇!”

동료를 고기방패로 삼아 기어코 신재혁 앞까지 도착한 마인들이 있었다. 앞의 두 명이 신재혁의 팔을 붙잡아 움직임을 봉인하는 사이, 뒤의 둘이 자유롭게 공격을 퍼부으려는 속셈.

이런 얄팍한 협공을, 악마를 상대하는 데 이골이  신재혁이 간파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주는 미쁘사 나를 굳게 하시니, 이 영혼을 악에서 구하소서-!”

신성주문, 천상의 보호막.

은은하게 빛나는 아우라가 신재혁의 주위를 감쌌다. 시전자를중심으로 발현된 5m 직경의 구형 막이 안팎의 공간을 단절했다. 그리하여 앞에서 뛰어오던 두 명의 마인이 돔 속에 갇혔다. 그들은 광막光膜을 쾅쾅 두드려보더니 이내 후방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절망감에 안색이 창백해진  마인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달려들었다. 신재혁이 팔을 쭉 뻗어 첫 번째 놈의 허벅지를 내려찍었다.

“U!餉밞끼偉?ꠒG봐럫!!!!!!!!”

끈적거리는 초록빛 다리를 부여잡으며 개구리 마인이 넘어졌다. 신재혁은 메이스를 상처 부위에서 뽑아 개미핥기 마인의 턱을 올려쳤다. 입 밖에 튀어나온 길쭉한 혀가 잘리며 피가 눈가에 튀었다. 신재혁이 쓰러진 두 마인을 마무리했다. 그들은 메이스의 새로운 녹이 되었다.

보호막 속에서 두 명을 처리한 신재혁이 보호막을 풀고 뚜벅뚜벅 걸어갔다.

“크, 크으….”
“어쩌죠 혀, 형님?”

살아남은  명의 마인이 뒷걸음질 쳤다. 순식간에 열 명도 넘는 마인들이 당했다. 분명 자기들처럼 강화 시술을 받은 녀석들이었는데  명에게 일방적으로 유린당하는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으, 으아아아! 난 여기서 빠져나가겠어!”

패닉에 빠진 한 명이 뒤돌아 도망쳤다. 엘로아흐여. 그는  문에 도착하기도 전에 등에 뇌창이 꽂혀 타죽었다.

신재혁이 마지막 남은 마인 앞에 섰다.

공포에 잠긴 눈으로 신재혁을 바라보며 그가 털썩 무릎 꿇었다.  발바닥처럼 변한 털복숭이 손을 비비며 싹싹 빌었다.

“살, 살려 주십쇼. 저, 전 시키는 것밖에 한 적이 없습니다. 제발 자비를….”

신재혁이 그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봤다. 그 눈에선 자비의 편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악마가 되고 싶어 했으면서, 끝에선 인간으로 죽기를 바라는 거냐.”

망설임 없이철퇴가 떨어졌다. 두개골이 함몰된 몸뚱이가 옆으로 기우뚱 쓰러졌다.

“히- 히이익!”

그 모든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허 부장이 새된 신음을 흘렸다. 전투 능력이 전무한 노인은 다리가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아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오, 오지마! 오지마! 이 괴물!”

“이젠 입장이 반대가 됐군, 악마의 계약자.”

신재혁이  부장의 젖은 바지에서 눈을 떼고 바닥의 누런 액체를 피해 쪼그려 앉았다. 핏물이 튄 두 눈이 겁에 질린 두 눈을 마주 봤다. 그제야 노인은 알 수 있었다.

“류창근 회장은 어디 있지?”

저것은 숙련된 살인자의 눈이라는 것을.

***


난장판이  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메이스를 든 남자가 피로 얼룩진 발자국을 찍으며 문밖으로 빠져나갔다. 발자취의 반대쪽 끝에는 붉은 가운을 입은 시체가 대가리에서 피를 울컥울컥 토해내고 있었다.

시산혈해를 배경으로 뚜벅뚜벅 멀어지는발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마침내 복도에서 들려오는 공포스러운 발소리마저 사라지자 반대편 문에서 뚱뚱한 인영 하나가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목에 붉은 손바닥 자국이 남아있는 남자였다.


“허- 허억, 허억….”

그는 창고 한구석에 쓰러져있던 조폭이었다. 학살자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이 방에서 일어난 참상을 알고 있는 생존자. 그가 사시나무 떨듯 흔들리는 손으로  부장의 품을 뒤졌다. 품 속에서 꺼낸 휴대전화 버튼 몇 개를 가까스로 눌러 전화를 걸었다.

“회, 회장님. 긴급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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