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4화 〉54화 – 비행기 (1) (54/72)



〈 54화 〉54화 – 비행기 (1)

[승객 여러분, 저는 기장 배승민입니다. 편안한 여행이 되셨습니까. 현재 이 항공기는 펜실베이니아 주 상공을 통과하고 있으며 앞으로 약 30분 후에 목적지인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현지 시각은…]

착륙을 예고하는 안내방송이 기내에 울려퍼졌다. 졸린 눈으로 창밖을 응시하던 신재혁에겐 희소식이었다.

‘드디어 벗어날 수 있는 건가!’

메피스토의 수다를 더 듣지 않아도된다는 소식에 잠이 번쩍 달아났다. 메피스토는 잠도 안 자고 몇 시간 동안 옆에서 뉴욕은 어떤 음식이 맛있니, 관광지는 어디가 좋니 일곱 번째 반복하고 있었다….

“이제  도착하나 봐.”
“으아~! 피곤하다…. 잠을 설친  같네. 호텔 가면 곧장 침대로 다이빙해야지.”
“너 거기 여권 떨어뜨렸어! 흘리지 않게 가방에 넣어 둬….”

다른 승객들도 기장의방송에 잠에서깨어나며 물을 마시던가, 소지품을 정리하던가 했다. 객석이 부산스러워지는 가운데 방송이 이어졌다.

[현지 날씨는 약간 구름이 끼었고 기온은… 어? 어? 지지직-.]

말을 하다 말고 기장이 방송을 멈췄다. 예상외의 사태에 승객뿐 아니라 승무원들도 당황했다.

“뭐지? 무슨 일이야?”
“내가 한 번 알아보러 가 볼게.”

교육받은 매뉴얼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이보다 직위가 높은 스튜어디스  명이 대표로 기장실로 향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불안감을 느꼈는지 승객들이 그 스튜어디스의 뒷모습을 의자 너머로 힐끔힐끔 쳐다봤다. 남아있는 스튜어디스들이 승객들을 안심시켰다.

“괜찮습니다. 자리에서 대기해주세요.”
“아까 방송은  끊긴 건가요?”
“마이크 조작에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해결될 겁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얼마 있지 않아 기장실에 들어갔던 스튜어디스가 돌아왔다. 그리고 사람들에겐 결코 달갑지않게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침착해야 한다는 스튜어디스의 지침도 잊고 다급히 일등석 앞자리로 갔다. 그녀가 도착한 곳에 빌헬름 션이 있었다. 비행형 몬스터의 출현을 대비해 비행기마다 한 명씩 배치하는 것이 의무화된 호위 헌터.

신문을 읽는 그에게 스튜어디스가 뭐라고 속삭였다. 승객들에겐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급한 태도와 겁에 질린 표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전혀 어렵지 않았다.

“몬스터가 나온  같은데..?”
“뭐!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더니..!”

가장 가까이 있던 일등석 승객들부터 공포가 퍼져나갔다. 공포란 들불처럼 번지는 감정이다. 입을 타고 부풀려진 소식이우등석까지 확산됐다.

“몬스터 떼가 나타났대! 자동차 크기라는데? 우리 어떡해!”
“미친! 수십 마리나 된다고? 진짜야?”
“젠장, 왜 내가 탔을 때 이런 일이!”

누구도 목격하지 못한 몬스터에 대한 두려움이 좌중의 마음을 장악했다. 옆 사람에게서 들은 몬스터의 형상은 너무 섬뜩하고 무시무시했다. 정체불명의 몬스터는 입과 입을 거치며 더욱 두려운 형상으로 진화했다.

겁을 집어먹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대로는  감옥 같은 쇳덩어리에 갇혀 있다 꼼짝없이 염라대왕 만나러 갈 판이었다. 뭐라도 해야 한다.

앉아서 죽느니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사람들이 황급히 창밖을 확인했다. 몬스터를 찾기 위해서였다. 적어도 누구한테 죽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눈을 바짝 뜨고 배경 속 생명체를 찾으려 했다.

짙은 구름, 그리고 하늘, 그리고 또다시 구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몬스터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반대쪽은 보여?”
“아니, 여기도 아무것도 안 보여.”


그리고 그것은 신재혁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빽빽한 구름과 하늘뿐. 기감을 확산해 마기를 감지하려 했지만 걸리는 것은 없었다.

“…없는데? 몬스터 문제가 아닌가?”

신재혁이 의아하게 앞자리를 바라봤다. 읽던 신문을 접고 창밖을 심각하게 살피는 빌헬름 헌터가 보였다. 그의 반응으로 보건대 기장이 몬스터를 목격한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중얼거리는 그의  모양에 주목했다.

“…Where is it?”
어디 있지?

영어를 못하는 신재혁도  정도는 알아들을  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빌헬름도 몬스터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한 것 같았다. 자신만의 착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자 급격한 안도가 몰려왔다.

‘감지 범위에 없나 본데. 그냥 엇갈려 지나간 것뿐인가?’

신재혁은 이 소란이 별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비행기 타면 으레 있는 일 아닌가. 갑작스런 난기류에 비행기가 추락할 것처럼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조금 후엔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잠잠해지는 상황. 이번 사건도 그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일반 승객의 입장에선 신재혁과 같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무지는 공포를 낳는다. 공포는 혼란을 낳고.

“우린  죽을 거야! 씨발, 씨발!”
“어떡하지? 도착하면 엄마한테 전화하겠다 했는데…. 미안해요. 흐윽, 흑.”
“주여… 저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승객석의 혼란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승객 사이에서 떠도는 유언비어를 진압하고자기장이 다시 방송을 켰다.

[배승민 기장입니다. 혼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현재 정체를   없는 몬스터의 출현인 확인된 상황입니다. 현재는 구름이 짙어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우나, 다행히 수는 한 마리뿐이고 저희 비행기에는 호위 헌터이신 빌헬름 션 헌터께서 탑승하고 계십니다. 지금 관제 센터와 연결해 도움을 요청하고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고 있사오니 부디 자리에 앉으셔서…]

기장의 진심 어린 호소는 효과가 있었다. 반응은 극적이었다. 사람들은 차츰 부풀려진 공포에서 벗어나 진정하기 시작했다.

“괜, 괜찮아…. 한 마리뿐이래. 별일 아닌가 봐. 아니겠지….”
“몇 분 전에 목격하고 아직 공격이 없다는 건 몬스터가 우리를 못 보고 지나친 거 아냐?”
“그런가보다…. 정말 다행이야….”

“씨바아아알 불덩어리이이이이!!”

안도하는 말소리를 뚫고 비명이 들렸다. 시선이 쏠렸다. 창밖으로. 그 말대로였다.

비행기로불덩이가 날아오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앗!”
“위, 위험해애애!”

심상치 않은 크기. 비행기에 맞았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했다. 모두가 갑작스런 공격에 아무런 반응도 못 하고 얼어붙은 가운데, 타이밍 좋게 기장이 공격을 발견했다.

[…께서는 당황하지 마시고 부기장빨리핸들꺾어어어어엇-!!!!]

항공기가 급하게 몸체를 뒤틀었다. 기체가 급격히 기우뚱 쏠렸다. 살벌하게 날아온 불덩이가 날개 아래로 스쳐 지나갔다.

항공기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간신히 삼도천 도강을 면한 승객들이 비명을 질렀다. 승무원들조차 패닉에 빠져 떨고 있었다. 몇은 용감하게도 승객들을 진정시키며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억제하고 있었지만, 그들도 표정에 드러난 두려움 숨기지는 못했다.

모두가 두려움에 빠진 가운데 기장이 덜덜 떠는 목소리로 방송했다.

[안, 안심하십시오, 승객 여러분! 빌헬름 헌터는 B급 헌터로서 협회의 시험을 통과해 1급 항공기호위기사 자격증을 취득하신 베테랑이시며…]

그래! 호위 헌터가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등석으로쏠렸다.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구세주가 있는 곳. 그 시선 속에서 빌헬름이 창밖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디 있지?’

그러나 노려본들 바뀌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감지 범위에 몬스터는 잡히지 않았다. 기감이 닿지 않는, 초원거리에서의 공격인가? 아니다. 빌헬름은 공격 직전에 마나가 모이는 것을 느꼈다. 몬스터 특유의 질척질척한 기운을 착각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밖에 없었다.

‘마나 은폐 능력..!’

베테랑 헌터답게 첫 공격만에 진상에 접근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낭패감을 느끼며 빌헬름이 이를 꽉 깨물었다. 구름이 짙어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인데 설상가상으로 은신 능력을 가진 적이라니….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제자리에 앉아서 적이 공격하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었다. 최소한의 견제는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했다.

비행기 창문 밖으로 마나가 뭉쳤다. 빌헬름의 스킬, 번개 화살이었다. 여섯갈래로 분리된 마나 결정체는 빌헬름의 의도대로 전기의 형태를 띠었다.전후, 좌우, 상하, 각각 하나씩. 여섯 발의 번개 화살이 날아갔다.

과연 반응이 있었다. 구름이 한순간 부자연스럽게 꿈틀거리더니, 무엇인가 구름 속에서 번개를 피해 쑥 움직였다. 급격한 움직임에 악마의 보호색이 적용되기까지 약 0.8 초의 시간 지연이 있었고, 그 간격은 B급 헌터가 몬스터의 윤곽을 포착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Gotcha-!”

빌헬름이 활시위를 겨누듯 허공을 당기고는, 놓았다. 비행기 밖,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서 홀연히 나타난 번개가 발사됐다. 빌헬름은 자신만만했다. 빌헬름의 스킬은 원거리 공격에 유리했고, 그는 <명사수>라는 위업도 가지고 있다. 두 개의 시너지는 매우 뛰어났다. 그가 한 번 목표를 포착한 이상 놓칠 리가 없었다….


익룡은 날렵한 몸놀림으로 구름 속을 누비며 화살을 이리저리 피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비행에 익숙하더라도 쏟아지는 공격을 전부 피할 수는 없었다. 하나하나가 시스템에 의해 보정을 받는 궤적이라면 더욱.

결국 번개 하나가 날개에 맞았다. 빌헬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곧바로 어두워졌다.

“What the fuck..!”

익룡은 지나치게 멀쩡했다. 잠깐 몸을 움찔하더니,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날개를 펄럭거렸다. 실제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리 잡몹이라지만 S급 게이트에 출현하는 몬스터다. B급 헌터의 공격 따위에 타격을 입을 리가.

익룡이 어떤 게이트에서 튀어나왔는지, 그리고 그렇게  인과는 무엇인지 빌헬름이 알 턱은 없었다. 그래도 지금과 같은 비슷한 경험은 많았다. 빌헬름은 게이트 공략 과정에서 자기보다 강한 몬스터를 여러 번 상대해 본 베테랑이었다. 그가 이를 악물었다. 하나로 안되면 둘, 둘로 안되면 셋을 맞추면 될 뿐….


마나를 끌어 올리며 빌헬름이 상대를 향해 마구잡이로 화살을 난사했다. 개개의 정확도는 낮아졌지만, 워낙 수가 많았기에 맞추는 수는 더 많아졌다. 여전히 유의미한 타격감은 없었으나 빌헬름은 몬스터 몸속에 전기가 차곡차곡 축적되고 있으리라 믿었다. 언젠가 축적된 전기가 한 번에 방전되어 큰 피해를 주리라고도.

악마는 얌전히 기다리지 않았다. 비행기 주위를 삼백육십 도로 회전하며 회피 비행을 펼치던 악마는 기괴한 부리를 벌리곤 입에 마기를 모았다. 게임에서 몬스터가 에너지 포를 쏘기 전에 에너지가 모이듯이 입에서 불덩이가 만들어졌고, 충전이 완료된 화구는 순식간에 비행기를 향해 쏘아졌다. 피하기엔 지나치게 빨랐다.

“Shit-!”
[오른쪽! 오른쪽! 안돼, 엔진이-!]

경로는 무섭도록 정밀했다. 목표점을 예상한 기장이 비명 질렀다. 이대로면비행기 날개와 엔진이 손상될 것이다. 그것은 곧 추락을 의미했다.
빌헬름이 불덩이를 요격하기 위해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불덩이는 번개의 포위망을 너무나 손쉽게 정면 돌파했다.

빌헬름이 경악하는 가운데 불덩이는 지척까지 다가왔다. 몇 초 후면 직격할 것이었다. 최후를 직감한 빌헬름이 망연자실하게 불덩이를 바라볼 때였다.

그 순간이었다.

“..?!”

갑작스레 공중에 형성된 반투명한 벽이 화염구를 막았다. 워낙 순식간에 전개되었다 사라진 지라 다른 이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B급 사수의 눈썰미는 찰나를 포착했다. 빌헬름은 그 현상이 무엇인지 짐작했다.

“Barrier skill..!”

객석에 다른 헌터가 있었던가? 여유롭게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도움을 감사히 여기며 빌헬름이 전력으로 마나를 뿜었다. 공격 직후 모습이 드러난 익룡 몬스터에게 십여 발의 번개가 날아들었고, 반절이 몸을 직격했다.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익룡이 재차 몸을 날개를 펄럭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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