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66화 – 공장 (2)
“헥, 헥, 정말 죄송한데, 잠시만 쉬었다 가면 안될까요?”
김재민 뒤를 따르던 CIA 요원, 제시카가 힘겹게 부탁했다. 애석하게도 앞서 걷던 김재민은 기진맥진한 제시카의 상태를 볼 수 없었고 귀가 들리지 않아 그녀의 애처로운 요청을 들을 수도 없었다. 김재민은 제시카가 말을 걸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열심히 테러범 수색을 계속했다.
“에라이…. 나도 어서 각성을 하든가 해야지. 헥헥.”
매정한 처우에 투덜거리며제시카가 터덜터덜 김재민을 쫓았다. 제발 멈추라 붙잡고 싶었지만 김재민은 국가에서 고이 모신 귀빈인지라 일개 요원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에라이, 헨리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김재민과 제시카는 한나절 동안 뉴욕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스카이스크래퍼의 부탁을 받고 생사 불명의 각성자 테러리스트를 찾기 위해 김재민은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을 택했다. 뉴욕 곳곳을 직접 돌아다니며 광대한 기감에 포착되는 후보들, 그러니까 A급 수준의 마나를지닌 각성자가 테러리스트로 예상되는 한국인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S급의 체력은 과연 대단해서 김재민은 쉬지도 않고 다섯 시간째 뉴욕 방방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귀가 안 들리는 김재민을 위해 도우미 역으로 스카이스크래퍼 전속 담당 요원인 제시카가 붙었는데, 제시카는 처음으로 과거의 자기가 한국어를 배운 사실을 원망했다.
‘내가 볼 때는 둘 다 죽었을 것 같은데…. 한명은 치명상을 입었고, 다른 녀석은 게이트 속에 휩쓸렸다며? 헨리 클라크는 너무 잔걱정이 많아서 탈이라니까….’
일개 요원의 불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색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제시카가 괜히 스카이스크래퍼와 김재민을 만나게 해줬나 후회할 즘이었다. 갑자기 김재민이 멈춰섰다. 드디어 쉴 생각인 걸까? 제시카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쉽게도 아니었다.
돌연 김재민이 먼 하늘을 올려보며 중얼거렸다.
“-저긴가? ...[텔레포트]”
‘저긴가’라는 말까지는 제시카도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그 후에 나온 말은 제시카가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어가 아닌것 같았다. 무슨 의미인가 의아해하던 차, 갑자기 김재민의 신형이 훅 꺼졌다.
“앗?!”
제시카가 눈을 비벼봤지만 사라진 김재민은 돌아오지 않았다.
갑자기 국가 귀빈이 사라져 당황할 법도 했지만 제시카는 침착했다. 스카이스크래퍼와 일하면서 많이 겪어본 상황이었다. 같이 걷고 있다가도 멀리서 강도를 발견하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가던 근육 바보가 단지 김재민으로 대체된 것 뿐이다….
예고없이 훅 사라지는건 S급 종특인가, 내가 무슨 보모인가 속으로 불평하며 제시카가 부하 요원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여기 J야. 김재민 헌터께서 지금 먼저 사라지셨는데 아무래도 범인 위치를 찾으신 것 같아.”
- 드디어 발견했군요! 어느 쪽입니까?
제시카는 김재민이 마지막에 쳐다보던 하늘을 바라봤다. 멀리서 희미하게 검은 연기가피어오르고 있었다.
“데스웜에 의해 파괴된 도시 외곽, 폐허 부근에서 화재가 발생했는지 매연이 피어오르고 있어. 일단 소방차 대기시키고 각성자 제압 부대 주변에 배치시켜.”
-알겠습니다. 스카이스크래퍼께도 연락할까요?
‘음….’
잠시 고민하다 제시카가 대답했다.
“아니. 만전의 상태가 아닌데 괜히 김재민 헌터의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그가 다치기라도 하면 누가 책임져? 미국에 하나밖에 없는 S급이라고. 김재민 헌터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거야. 따로 인력도 투입하지도 말고, 그냥 기다렸다가 범인 잡히면 검거하기만 해. 그리고 기자들 관심 못 가지게 막고. 괜히 스카이스크래퍼의 부상 소식이 새면 골치 아프니까.”
***
건물 내부 전체가 스모그라도 낀듯 공기가 희뿌얬다. 아무래도 곽태우가 도망치며 온갖 곳에 연막을 터뜨린 것 같았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재혁은 기감에 느껴지는 기운에만 의지하여 달려나갔다.
‘싸우길 포기하고 도망치려는 건가? 안 돼! 여기서 놓치면 더 곤란해진다..!’
곽태우를 그냥 보냈다가 한국까지 쫓아오면 도리어 상황이 악화된다. 여기서놈을 붙잡아 심문하고 관계를 마무리지어야했다.
‘도대체 네 목적과 정체가 무엇인지, 미스터 B는 무슨 생각인지, 물어봐야 할게 많단 말이다..!’
이를 악물고 달리던 와중이었다. 보호막에 별안간 저항감이 느껴졌다. 찰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웬 철선이 걸려 있었다. 철선 끝은 기둥에 묶여있었고, 다른끝은 이상한 장치에-
콰아아아아아앙-!!!
화염이 터져나오며 보호막을 덮쳤다. 보호막 덕에 신재혁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안전했지만 공기를 통해 화끈한 열기가 전해졌다. FPS 게임에서 종종 겪어본 상황이었기에 신재혁은 이 현상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트랩 와이어!”
그제서야 신재혁은 곽태우의 의도를 파악했다. 곽태우는 도망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녀석은 지금 자신을 함정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함정? 아니, 어쩌면 시간을 번 사이 도망치려는 것일지도..!’
폭발에 발이 묶인 사이에도 곽태우의 기운은 멀어지고 있었다. 앞에는 더 많고 교묘한 트랩이 기다리고 있을게 틀림없다. 그걸 알고도 신재혁은 멈출 수 없었다.
'단순히 도망치려는 거든, 나를 유도하는 거든, 상관없다. 일단 붙잡고 보자!'
신재혁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십 미터 채 나아가지도 못하고 발밑에 묻혀있던 지뢰가 터졌다.
콰아아아앙-!!!
“아이, 씨발!”
불꽃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보호막이 통과시키는 열풍에 의한 간접적인 피해는 있었다. 화상 입은 발을 치유하며 신재혁이 생각했다.
‘어차피 보호막 때문에 심각한 유효타를 주진 못할 테고, 설령 피해를 준다 해도 금방 회복할 수 있으니 함정은 무시하고 쫓아가자!’
주위 오미터 직경의 보호막을 전개한 채였기에 접촉 범위가 컸고, 따라서 함정에 잘 걸렸다.
기상천외한 곳에서 함정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바닥을 밟았더니 바닥이 푹 꺼지며 숨겨진 염산 수조가 나타나질 않나, 바닥 조심한다고 벽면을 밟았더니 돌벽 속에서 머신건이 발사되지를 않나….
이능 없이 순수히 기술과 폭약, 맹독으로 만든 트랩이라 사전에 알고 피하기도 불가능한데다 함정의 개수도 지나치게 많았다. 도망치면서 다 설치했을 리는 없고, 미리 준비해뒀음이 명백했다.
곽태우의 철저한 대비가 무색하게 신재혁은 가로막는 모든 것을 짓밟는 중전차처럼 우직히 전진했다. 그럼에도 보호막이 건드리는 함정이 너무 많아 자꾸만 발목이 잡혔다. 그런 상황에도 상대의 기운은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초조해진 신재혁이 작전을 바꿨다.
‘그냥 닥치는 대로 부수면서 전진하면 함정도 무력화되겠지!’
신재혁이 허공에 뇌창을 소환해서 진행 경로로 쏘아보냈다. 피뢰창을 든 곽태우 앞에선 소용없었으나 곽태우가 없는 지금이라면 마음껏 뇌창을 사용할 수 있었다.
쿠쾅! 콰아앙! 콰콰콰광-!
번개가박히자 벽이나 바닥 곳곳에 은닉된 폭약이 스파크에 터져나갔다. 폐공장 전체가 무너질 듯 건물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렇게 많은 곳에 살인 도구가 설치되어있었음에 신재혁이 질려하는 한편, 앞서 달려나가던 곽태우는 낭패감을 느끼고 있었다.
뒤에서 폭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 간격도 지나치게 짧았는데, 심지어 점점 더 짧아지고 있었다. 초반엔 그나마 일 분 간격으로 들리더니 이제는 오초 간격으로 폭음이 터져나왔다.
“제기랄! 경찰한테 잡힐 위험을 무릅쓰고 기껏 총포상 하나를 털어 밤새 설치한 덫들이..!”
곽태우는 파죽지세로 접근하는 적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상황을 부정하고 싶어도 천장에서 떨어지는 먼지며 돌조각이 이것이 현실음을 일깨웠다.
뇌창이 파괴하지 못한, 예상치 못한 덫을 맞닥뜨릴 때마다 신재혁이 멈칫거리며 추격이 지체되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둘 사이의 속도차가 명확했다. S급과 A급의 차이는 그토록 컸다. 근력을 증강해주는 파워 슈트 없이 곽태우의 신체능력은 고작해야 A급 중반 급에 불과하다.
이대로면 금세 따라잡힐 것이다. 지난밤과는 역전된 상황에 곽태우가 침음을 흘렸다.
‘괜찮다. 급히 설치한 함정으로 신재혁을 죽이리라곤 기대도 안 했다. 저건 단지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것뿐, 마지막 한 수에 걸어보자..!’
아공간에서 화염 내성의 수호부를 꺼내 팔목에 두르며 곽태우가 최후의 수가 기다리는 곳으로 달음박질쳤다.
뒤따라오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
'-! 멈췄어?'
곽태우의 기척을 열심히 쫓아가던 도중이었다. 신재혁은 마침내 상대의 기척이 멈춰섰음을 깨닫고는 속도를 줄였다.
도망치기를 포기한 것일까? 아니면 마지막 수를 걸어 보려는 것일까? 신재혁은 두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방문을 벌컥 열었다.
안은 막다른 방이었다. 곽태우는 문 반대편 벽에서 신재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면상을 보자니 확 열이 뻗쳐 왔다.
“씹새끼야! 함정을 설치해도 적당히 설치해야지 인간적으로 저 숫자는 좀 아니지 않냐? 일단 심문하기 전에 좀 쳐맞자….”
도발에도 굳게 입을 다문 상대방을 향해 위협적으로 창대를 붕붕 휘두르며 신재혁이 방 중앙으로 나아갔다. 여유로운 태도를 가장하고 있었으나 신재혁은 방심하지 않았다.
곽태우는 A급 각성자. A급에겐 웬만한 쇠창살조차 감옥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런 녀석이 단지 벽돌에 둘러싸였다고 도망치지 못할 리가. 곽태우가 멈췄다는 의미는 맞서 싸우겠다는 의미다….
‘기습에 주의하자. 녀석은 허공에서 물건을 소환할 수 있다. 어떤 괴상한 아티팩트가 출현할 지 몰라.’
신재혁이 곽태우의 손에 주의를 기울이며 걸어갔다. 사각형 모양 방 정중앙에 도착할 쯤이었다. 가만히 있던 곽태우가 돌연 액션을 취했다.
“흡!”
곽태우가 진각을 밟았다. 바닥이 쿵 내려앉으며 숨겨진 스위치를 눌렀다. 소음사이에 숨겨진 딸칵 소리를 신재혁이 포착했다.
‘지뢰?’
신재혁은 놀랐지만 새삼 당황하지는 않았다. 이곳까지 따라오면서 충분히 반복된 깜짝 선물에 이미 익숙해진 마당이었다. 보호막 덕에 어차피 타격입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신재혁이 곧 철조각이며 불꽃이 튀어나올 바닥을 주시했다.
그리고 예상과 정반대로, 화염은 천장에서 쏟아졌다.
“?!”
천장에 설치된 화염방사기가 불의 폭포를 쏟아냈다. 용의 숨결처럼 가열찬 불줄기가 보호막 표면으로 흘러내리며 대기를 불태웠다. 보호막 너머로 절실히 느껴지는 열기에 신재혁이 일순 움찔했다.
‘녀석의 발이 묶인 지금이다!’
포션을 머금느라 입을 다물고 있던 곽태우가 화염 내성의 수호부를 발동하며 불꽃의 해일 속으로 뛰어들었다. 손에는 에너지를 베는 검, 아론다이트를 쥐고 있었다.
곽태우는 생각했다. 녀석의 재생력은 일반적인 지뢰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머리 잃어도 복구되는 수준이라면 팔다리 잘려도 재생하고 말 것이다. 아예 재생 불가능할 정도로 다져버리거나, 불태워 버려야 한다.
‘보호막을 한번만 갈라 막 속에 화염이 들어가면 그대로 끝이다..! 몸 전체를 재로 만들어버리면 아무리 녀석이라도 재생할 수 없겠지!’
마지막 기회임을 명심한 채 곽태우가 검을 휘둘렀다. 정면에서 맞는 불꽃은 지나치게 뜨거워 화염 내성의 수호부를 사용했음에도 옷이 녹고 피부가 불탔다. 포션이 화상을 치유했으나 그럼에도 분신의 고통은 존재했다.
곽태우는 꾹 참았다. 불꽃이 고통스러울수록 화염방사기의 성능이 확실하다는 의미다. 그 불꽃이 확실하게 신재혁을 죽음으로 이끄리라….
불꽃 아래에서 신재혁이 당황해 뒷걸음질쳤다. 외부와 단절된 보호막 속에선 곽태우의 칼질을 막을 수 없다. 그렇다고 보호막을 내리면 그대로 천장의 불세례를 맞고 말 것이다. 방을 빠져나가야 한다.
신재혁이 뒤로 풀쩍 뛰었다. 그러나 본래 뒤로 뛰는 것보단 정면으로 뛰는 속도가 훨 빠른 법이다. 곽태우가 휘두른 칼날은 불을 가르며 착실히 나아가는 모습이 신재혁의 눈에 슬로우모션으로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검끝이 확실히 보호막에 닿았을 때 곽태우가 환호했다.
“해묵은 원한을 청산할 때다, 암흑기사-!!!”
“-그건 안 되지.”
제3자의 목소리. 곽태우가 흠칫하며 돌아봤다.
“누구-?”
언제부턴가 이곳에 존재했던 웬 사내가 손에 쥔 검을 휙 털었다. 그 간단한 움직임에 맞춰 화염 방사기가 두 동강나며 터졌다. 쏟아지던 불줄기가 끊기자 신재혁은 털썩 주저앉아 폐가 익는 고통에 쿨럭거렸다.
최후의 수가 실패했다는 노여움, 난입자에 대한 당황을 한 데 모아 곽태우가 눈을 부릅떴다. 난입자의 정체를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요새 뉴스에 익히 등장하는 얼굴.
“-용사, 김재민-!!”
곽태우가 찢어지는 고함을 질렀다. 지난 밤에는 스카이스크래퍼더니, 이번엔 김재민이 자기를 방해하다니. 믿을 수 없으리 만큼 재수없는 상황이었다. 마치 행운의 여신이 신재혁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으나 이대로 경악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는 걸 곽태우는 알았다. 김재민은 S급 상위권에 위치한 강자다. 스카이스크래퍼조차 일 대 일로 이기지 못하는데, 김재민을 이기기란 불가능하다. 김재민의 존재를 알아차린지 3.3초 만에 판단을 마친 곽태우가 아공간에서 텔레포트 스크롤을 꺼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김재민이 그것을 알아봤다.
“텔레포트 스크롤? 얕은 수를.”
김재민이 손가락을 휘저었다. 압도적인 마나 제어력에 텔레포트 스크롤 주위의 자연지기가 반응했다. 지독하게 짙은 마나 안개가 폭풍처럼 파지직 거리더니, 스크롤에 재밍을 일으켰다. 스크롤에 새겨진 마법진을 흩뜨리는 일종의 마법적 EMP….
대마법사나 가능한 기예였고, 대마법사가 아닌 곽태우가 그 원리를 알 턱이 없었다. 하지만 스크롤을 찢어도 제 몸이 안전 장소로 날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상대가 무언가 수를 썼음을 깨달았다.
‘큭! 도망조차 불가능하다고?’
마법 계열 헌터라면 누구나 보고 경악했을 기예를 손쉽게 실현시킨 김재민은 무심하게 개중을 훑어보더니 툭 내뱉었다.
“스카이스크래퍼의 부탁으로 뉴욕을 둘러보던 차에 폭발음을 듣고 와 봤는데. 간밤의 범인들이 여기에 모여 있었군? 게다가….”
김재민의 시선이 화염 방사기 아래에 있던 인물에게 향했다.
“범인이 한국인이라더니, 너를 여기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안 그래, 신재혁?”
정말이지 뜻밖의 정체에 김재민은 놀라워 했다. 신재혁은 위기에서 벗어났음에 안심하는 한편 바라지 않던 재회에 탄식했다.
“하, 하…. 오랜만이네.”
‘젠장…. 나를 기억하고 있다니.’
불행히도 김재민은 자기 얼굴을기억하고 있었다. 스카이스크래퍼의 부탁이라는 말에 신재혁은 김재민이 자기와 곽태우를 잡기 위해 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대로 빼도 박도 못하고 경찰에체포되는 것일까?
그리 걱정하던 와중이었다.
곽태우가 은밀한 손놀림으로 반지를 쓰다듬었다. 그 즉시 손에 소환된 용울음의 단검. 곽태우는 김재민이 자기에게서 관심을 거둔 틈에 아티팩트를 발동했다. 생명체의 육신을 경직시키는 음파가 퍼져나갔다. 음파와 동시에 곽태우가 달렸다.
“흐아아아아아아-!!!”
곽태우가 기합을 내지르며 아론다이트를 휘둘렀다. 도망이란 선택지가 사라진 상황에서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전력으로 끌어올린 마력에 몸 주위로 푸른 광채가 넘실거렸다.
‘혹시 모른다! 설령 김재민이라도 경직 상태의 기습엔-’
곽태우는 멍청하게 미래를 위해 인류 최대 전력 중 하나인 김재민을 죽여선 안된다는 것도 잊고 필사적으로검을 휘둘렀다. 그의 머릿속엔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기에 곽태우는 한 가지 사실을 더 잊었다.
김재민은 귀머거리다.
“쯧.”
용의 포효에 경직당하지 않은 김재민이 입술을 달싹였다. 블링크.
아론다이트의 궤도에서 김재민의 신형이 사라졌다. 목표 잃은 검이 허공을 무의미하게 갈랐다.
“어-”
김재민은 곽태우의 뒤편에서 불쑥 나타났다. 성검을 슬쩍 휘둘렀고, 순식간에 행해진 일곱 번의참격이 곽태우의 다리와 어깨 힘줄을 끊어 냈다.
“-디-?”
곽태우는 베였음도 눈치채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뒤늦게 상처부위가 화끈거리며 제가 다쳤음을 알려왔다. 허무한 패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