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65화 – 공장 (1)
“여기 곽태우가 있는 게 확실합니까?”
다 무너져가는 공장 건물 앞에서 신재혁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신재혁이 메피스토에게 곽태우를 찾아달라 부탁한 다음 날, 두 사람이 차를 타고 도착한 장소는 아무리 봐도 사람 살만한 곳이 아니었다.
메피스토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렇다니까. 이런데 누가 살겠냐고 의심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이런 폐허니까 경찰에게 행방을 들키지 않은거지.”
그 말에 신재혁이 주위를 둘러봤다.
데스웜이 발생시킨 지진은 뉴욕 인근 대부분의 토지를 믹서기 속 반죽처럼 뒤집어놨다. 뉴욕 시내로부터 차 타고 사십 분 거리의 외곽지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절반으로 크게 갈라진 공장 앞의 공터, 한쪽이 무너져내려 양봉장 벌집처럼 내부가 훤히 드러난 건물…. 이마저도 다른 곳에 비하면 약과에 속했다. 데스웜이 지나간 거대 지렁이굴 근방의 토지는 약해진 지반이 툭하면 붕괴했고 싱크홀 속으로 건물 몇 채가 폭삭 가라앉기도 했다.
수도도 전기도 끊긴, 사람이 살기엔 지나치게 열악한 환경. 하기야 이런 곳이면 아무도 관심주지 않을 것이다. 신재혁이 납득하며 넌지시 질문했다.
“당신은 이제 어쩔 생각입니까?”
“나야 근처에서 기다릴 작정인데? 내가 굳이 곽태우를 만나볼 필요는 없잖아. 설마 나도 같이 싸워달라는 소리는 아니지? 난 전투력 제로의 정보상이라고.”
“그런 건 아니고… 시간 있으면 부탁 하나만 하죠.”
“부탁?”
“아마 곽태우와 대화는 말의 대화로 끝나지 않고 육체적 대화로 변질될 공산이 높은데, 아무리 시내와 동떨어진 폐허라도 각성자 둘이 일으키는 소란을 경찰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겠죠. 전투와 심문이 모두 끝날쯤이면 경찰들 시선이 여기로 몰릴 겁니다. 상대적으로 공항 쪽 병력은 줄 테고요.”
신재혁이 생각하던 내용을 입 밖으로 꺼냈다. 곽태우와 싸움이 끝난 후 어찌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었다. 메피스토는 찰떡같이 알아들어 되물었다.
“아하, 그러니까 일이 끝나자마자 뉴욕을 뜰 수 있도록 항공편을 준비해 달라?”
신재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런 부탁이었건만, 메피스토는 흔쾌히 수락했다. 심지어는 망설임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신재혁의 말에 얼핏 기뻐 보이기까지 했다.
“문제없지! 그럼 두 시간쯤 후에 여기서 다시 만나는 걸로 하자.”
“그러죠. 아, 그리고 가능하면 비행기 옆자리도 예매해 주십시오. 혼자 편하게 가고 싶어서.”
신재혁은 괜히 찔려서 변명하듯 덧붙였다. 메피스토는 떨떠름하게 수긍했다.
“..? 그러지. 이제 더 부탁할 건 없지?”
“예. 시간 맞춰서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뭔 일 있으면 연락하고. 그럼 행운을 빌어….”
메피스토는 자동차를 운전해 멀리 사라졌다. 자동차 소리가 사라질 즘, 신재혁은 폐공장에 발을 들이밀었다.
***
신재혁은 몹시 긴장한 상태로 발을옮겼다.
상대는 미친 새끼다. 호텔 방에 폭탄을 설치하지를 않나, 게이트도 아니고 도심 한가운데서 습격하지를 않나. 지금도 어떤 예상치 못한 함정을 준비했을지 모른다.
‘일단 위치 파악부터.’
확장된 신재혁의 기감에 생명체 하나가 탐지됐다. 마나량으로 보아 곽태우가 틀림없었다. 신재혁은 조심스레 그곳으로 나아갔다.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죽음의 예감. 신재혁이 고개를 홱 틀었다.
타앙-!
“-!”
화끈한 감각이 귀에 퍼졌다. 신재혁이 다급히 외쳤다.
“지키소서-!”
천상의 보호막이 전개된 것과 두 번째 총성이 울린 것은 동시였다. 신재혁은 총탄이 보호막에 파문을 일으키고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피 흐르는 귀에 기운을 집중했다. 신성한 치유력으로 귀는 금방 회복되었다.
‘시발, 직감적으로 얼굴을 비틀지 않았다면 골통이 날아갈 뻔했다..!’
예고 없는 저격에 섬짓함을 느낀 가운데, 신재혁은 이대로 꾸물거리다간 죽도 밥도 안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놈을 잡아야 한다. 결심과 함께 곧장 발을 박찼다.
보호막을 전개한 채로 신재혁이 달렸다. 본래는 할 수 없었으나, 상태창의 위업으로 발전한 신성 주문 덕에 가능해진 기예.
달리는 와중에도 연신 총성이 울렸으나, 날아온 쇳조각은 모조리 신성한 막에 막혀 튕겨 나갔다.
‘전생에는 공격이 멎을 때까지 가만히 있어야 했는데! 다 막으면서 움직일 수도 있는 거 진짜 씹사기….’
진화한 주문의 사기성을 새삼 실감하는 가운데, 신재혁은 기어코 곽태우의 앞까지 이르렀다. 더 이상의 총격은 무용지물임을 깨달았는지 곽태우는 저격총을 내던지고 피뢰창과 롱소드를 들고 있었다.
“신재혁..! 역시 살아있었구나!”
곽태우가 으르렁대며 덤벼들려던 차, 신재혁이 외쳤다.
“잠깐-! 우선 얘기를 하자!”
당연하게도 곽태우는 무시로 일관하며덤벼들었다. 그러나 직후 곽태우는 신재혁에 제안에 따를 수밖에 없음이 드러났다.
삼 초 만에 행해진 다섯 번의 칼질이 모두 방어막에 튕겨 나갔다. 보호막은타격을 입기는커녕 지나치게 건재했다. 신재혁의 신성력으로 전개한 천상의 보호막은 무척 견고해, 곽태우의 수준으론 흠집조차 내기 불가능했다.
곽태우는 낭패감을 느끼다 말고 신재혁이 반격하지 않음에 안도했다.
'격벽 안팎의 물리적 간섭을 차단하는 건가! 나도 공격이 불가능하지만 녀석도 마찬가지….'
곽태우는 이 상태에선 서로 공격수단이 없음이 깨달았다. 자기 공격은 모두 방어막에 막히며, 상대 역시 방어막 때문에 창질이 불가능하다. 원거리 공격수단인뇌창마저 피뢰창으로 봉쇄되었으니, 정말이지 완벽한 스테일메이트 상태.
그리하여 전투는 부득이하게 중단됐고 두 사람은 대치 상태에 빠졌다. 곽태우가 아티팩트 중에 배리어를 부수는 만한 게 있던가 기억을 더듬는 틈을 타 신재혁이 소리쳤다.
"곽태우! 왜 나를 습격한 거냐? 미스터 B에게 사주를 받아서?"
“사주? 하, 무슨!”
얼토당토않은 오해에 황당해선 곽태우가 무심코 대답했다.
“고작 돈 때문에 내가 살인을 저지른다고? 무슨 헛소리를! 너는 여기서 죽어야하니 죽는 거다.”
곽태우의 어투는 어째서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듯이 확신이 가득했다. 신재혁은 그 어조뒤에 숨겨진 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숨 막힐듯한 분노와 증오…. 그것은 자신을 향한 감정이었다.
‘무슨 소리지?’
신재혁은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곽태우와 대면한 적은 과거 교도소로 면회 갔을 때가 유일했다.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이 저 정도 원한 질 만큼 잘못한 부분이 있었던가?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의 근원에 신재혁은 혼란을 느꼈다.
“죽어야 하니 죽는다고?그게 무슨 소리-”
"그야 지금의 넌 모르겠지.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알 일 없을 거다-!"
무슨 의미냐고 되물으려던 차, 곽태우가 말을 끊고는 행동을 개시했다. 손에는 이미 익숙한 용머리 장식의 단검이 들려 있었다. 진동하는 날로부터 기이한 음파가 퍼져 나왔다.
신재혁이 멈칫했다. 그리고 0.01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자유를 되찾았다. 신재혁의 육체는 전날의 싸움에서 이미 음파에 수없이 노출된바 이미 용울음에 적응을 마친 상태였으며 더구나 신성력이 몸의 회복을 도왔다. 이제 경직 공격은 신재혁에게 무의미했다.
곽태우는 혀를 차더니 아공간에 용울음을 집어넣었다. 그도 같은 공격이 두 번 통하리라는얕은 기대는하지 않았다. 괜찮다. 다음 수가 있었다….
곽태우가 보호막을 뚫지 못하리라 확신했기에 신재혁은 여유로웠다. 슬금슬금 다가오는 곽태우에게 집중하는 대신, 신재혁은 그의 상태창을 떠올리고 있었다. 상태창의 항목 중에서 구체적으로는 상대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항목을.
‘좀 더 자세히…. 통찰안.’
「===
《위업》
<필리아>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벌레 학살자> - 살업의 길을 걷는다. 작은놈들은 전부 밟아 죽이며. 이 길을 걷는 자는 길의 끝에서 더 큰 발에 밟혀 죽을 것이다.
<성배기사> - 열쇠를 모아 성배의 이용 자격을 얻다.
<여섯 번째 하늘을 기억하는 자> - 우주가 되감아 진다. 단 한 사람을 위해.
===」
웬 특이한 업적이 많았다. 본래 위업은 하나같이 특이한 법이지만, 곽태우의 것은 특히나 유별났다.
상태창을 확인했던 당시에는 도망치느라 이에 관해 고민할 경황이 없었다. 하지만 목적 불명의 당사자를 눈앞에 두니 다시 의문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필리아, 벌레 학살자는 그렇다치고 여섯 번째 하늘을 기억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지? 우주가 되감아진다고?’
알 듯 말 듯 했다. ‘우주가 되감아진다.’ 창작물에서 클리셰처럼 등장하지 않았던가? 그 의미는-
곽태우는 오래 기다려주지 않았다.
“너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악의 씨앗이다. 너 같은 해충은 사라지는 편이 세계에 이로워. 그렇기에 내가 너를 처단하러 온 것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말을 끚맺음과 함께 곽태우가 돌진했다. 달려오면서 반지를 쓰다듬어 손에 새로운 무기를 쥐었다. 밋밋한 장식의 양날 장검. 그것을 배리어를 향해 내리쳤다. 신재혁은 자신만만했다.
“소용 없..?!”
챙-!
케이크 자르듯 매끄럽게 칼날이 방어막을 가르자 신재혁이 황급히 창을 움직여 공격을 튕겨냈다. 너무나 손쉽게 천상의 보호막이 뚫렸음에 기겁하며, 신재혁이 재차 보호막을 전개했다. 하지만 두 번째 벽 역시 고작 한 번의 칼질에 허무하게 분쇄됐다.
“미친!”
“아론다이트는 에너지를 베는 검. 보호막을 써 봤자 무용지물이다! 맞서 싸워라-!”
한 손엔 아론다이트, 한 손엔 피뢰창을 든 곽태우가 공격해왔다. 창 든 손으로는 섣불리 공격하지 않았는데, 혹여 뇌창이 날아올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 같았다.
신재혁도 창을 고쳐잡았다. 방어막 하나 없다고 못 이기는 건 아니다.
“하압-!”
“흐읍-!”
콰아앙-!
두 사람이 내지른 날붙이가 허공에서 부딪히며 불티를 튀겼다. 두 초인의 격돌에 충격파와 함께 굉음이 일었다. 창이 튕겨나가자 신재혁이 재차 팔을 내질렀다. 그 모습을 보던 곽태우도 마찬가지로.
창과 검이 춤을 추었다. 빗겨치고, 튕겨내고, 휘감아 찌르고. 페인트와 페인트 사이에 살의 숨긴 수가 교환되었다. 양측은 합이라도 맞춘 듯이 정확히 살수만을 걷어내며 재차 상대에게 공격을 가했다. 어느 쪽도 숙련된 싸움꾼이었고, 언뜻 비등한 형국이 연출되었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의 빈틈을 노리며 맞서는 상황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몇 번의 수 교환 끝에 신재혁은 자신이 작지 않은 차이로 우위에 있음을 깨달았다.
곽태우는 무기가 둘, 신재혁은 창 하나뿐이었지만 신재혁은 오히려 첫 교전보다 상대하기 훨씬 수월하다 느꼈다. 상대의 근력이 저번보다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갑옷 아티팩트가 안 보이는데, 스카이스크래퍼와 싸우다 부숴졌나? 잘 됐어!’
기량 차도 명백했다. 달인에 이른 무도가의 무기술은 본능과 계산이 최적의 방식으로 어우러져 완성되는 법이다. 신재혁은 그것이 가능했고, 곽태우는 불가능했다.
하기야 평생 창을 연마한 성기사를 고작 몇 년 수련한 헌터가 무기술로 이기기란 요원한 일이다….
처음엔 곽태우가 신재혁에게 달려들며 사나운 기세로 몰아붙이던 양상이더니, 몇 분 채 지나지도 않아 형국이 역전되었다. 창 하나만으로 상대를 압도하며 신재혁이 전진했다.
곽태우는 기묘한 각도로 급소를 노려오는 달인의 창질을 걷어내기도 급급하며 뒷걸음질쳤다. 근력을 증강시켜 주는 파워 슈트도 없을뿐더러 뇌창에 대비해 든 피뢰창이 도리어 거추장스러워 검의 휘두름을 어색하게 했다.
‘시발, 어떻게 이럴 수가..!’
자신의 칼질에는 낭비가 없었으나 상대의 창질은 더욱 낭비가 없었다. 체술을 넘어 요술을 부린 듯한 움직임. 곽태우의 기량으로는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신재혁은 신묘한 창술로 압박하는 와중에도 뇌창까지 쏘아내며 상대를 더욱 곤란하게 했다. 신재혁은 자신 주위로 10m 반경의 허공에 뇌창을 자유로이 소환하여 발사할 수 있었는데, 그말인즉슨 곽태우의 사각에서도 번개를 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곽태우는 기감을 통해 뒤편에서 공격이 날아드는 것을 알아채고 피뢰창으로 공격을 방어할 수 있었으나 그러느라 발생하는 빈틈까지 어찌하지는 못했다. 신재혁은 바로 그 틈을 노려 창을 놀려왔다.
창이 센치 단위로 움직이며 곽태우의 힘줄이며 인대를 끊어냈다. 왼 다리에 갑자기 훅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곽태우가 비틀거렸다. 간신히 피뢰창을 지팡이 삼아 넘어지지 않았다.
‘안 돼…. 격차가 너무 크다..! S급, 아니 어쩌면 그 이상..!’
곽태우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맞상대해보니 알 수 있었다. 신재혁을 정면 승부로 이기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다른 수단을 써야 한다.
곽태우가 뒤돌아선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
신재혁이 당혹해하는 사이, 곽태우는 아공간에서 물건 몇 개를 꺼냈다. 연막탄과 최루탄은뒤로 던졌고, 포션병을 따서 내용물을 입안에 들이켰다.
“지키소서!”
신재혁이 자기 쪽으로 날아드는 발사체를 경계하여 보호막을 올렸다. 연막탄과 최루탄이 터지며 시야가 뿌옇게 물들었다.
“쿨럭, 쿨럭! 아 씹-.”
천상의 보호막은 충분히 커다란 물체의 물리 공격을 방어하지만 시전자의 호흡에 필수적인 공기마저 막는 것은 아니다.
최루탄 가스가 보호막 내부에 가득 차 신재혁이 쿨럭거리며 괴로워하는 사이, 기감에 느껴지는 곽태우의 기운은 더욱 멀어지고 있었다.
‘놓치면 안 돼….’
신재혁이 숨을 참으며 다리를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