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그렇게 5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길드장의 뒤를 따라가고 있을 때 길드장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죄다 기억상실인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길드장의 설명도 제대로 이해해 먹지 못하는 이들의 수두룩한 것.
그 사실에 길드장이 한숨을 내쉬면서도 일단은 중요한 점만 간단하게 간추려서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모험가가 뭔지는 모험가가 된 다음에 직업 알아봐라. 단지 지금은 신원이 불명확한 너희들이 신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모험가로 등록할 수밖에 없다는 건만 알아두면 된다.”
“……신분이 불명확한데 모험가라는 게 쉽게 될 수 있는 건가?”
“그럴 리가 있나. 용병이라면 몰라도 모험가는 신분을 상당히 상세하게 조사하는 편이야. 하지만 자네들의 경우에는 예외다. 애초에 신분 자체를 조사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모험가의 길드장이 내가 직접 꽂아 넣을 생각이니깐 말이지.”
뭐, 그것도 이 도시의 특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첨언하는 남자. 다른 도시였으면 아무리 길드장이라고 해도 이 정도 숫자의 신원불명의 사람들을 단체로 모험가로 만드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물론 정작 당사자들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눈치 채고서도 길드장이라는 사람은 제대로 된 설명을 해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 같았다.
그가 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필요최저한의 내용. 그 외의 내용은 너희들이 직접 알아내라, 라는 태도가 여실하게 전해지고 있었으니깐 말이다.
“그렇게 너희들은 모험가로 만들면 약 일주일 동안 지낼 장소를 준비해주지. 미리 빌려놓은, 50명 정도는 숙박시킬 수 있는 여관이 있으니까 거기서 지내면 된다. 단, 어디까지나 일주일이다. 일주일 뒤에는 내쫓을 거니까 알아서 먹고 살도록. 내가 받은 ‘신탁’은 딱 일주일 동안만 너희들에게 시간을 주라고 말했으니 말이야.”
“신탁?”
그러던 도중 길드장의 말에 섞인 이해하기 힘든, 그러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단어에 공선자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그 단어를 잘 캐치했다는 것처럼 씩, 미소를 지으며 공선자를 바라보는 길드장.
길을 가던 그가 갑작스럽게 뒤를 돌아 자신을 쳐다봐오는 상황에 공선자는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공선자의 반응에도 길드장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 할 말만은 다하는 것이었다.
“그래, 신탁. 난 신이란 걸 믿지 않는 무신론자인데 말이야. 어처구니없게도 일주일 전에 그런 나한테 신탁이라는 게 내려왔더라고. 7명의 주신들 중 어떤 신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신탁을 받는 순간 ‘아, 이건 신탁이구나!’ 라는 확신이 들게 하는 그런 신탁을 말이지.”
그렇게 이야기하자면서 길드장의 시선을 공선자에게 고정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을 통해서 느껴지는 ‘흥미롭다’는 감정에 공선자는 더더욱 긴장을 할 수밖에 없는 것.
다행이도 다른 이들은 길드장이 해주는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그가 공선자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것이 추측건대 저 신탁이라는 것이 길드장이라는 사람이 자신들을 돕는 것처럼(아직 도와주고 있다는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보이는 이유로 추정되었으니까.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들의 기억상실, 그리고 자신들이 처해있는 상황이 저 신탁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길드장의 이야기에 다른 이들이 집중을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단지, 주변에서는 갑자기 멈춰선 뒤 무슨 학교의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일행들을 이상하게 쳐다보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신탁의 내용은 간단했다. 도저히 신의 사자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천사’ 아가씨가 나와서 말이야, 너희들의 존재를 예견했다. 앞으로 일주일 뒤 이 도시로 50명에 해당하는 ‘기억상실자들’이 도착한다. 그러니 나는 일단 그들의 신병을 확보한 뒤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신분’을 만들어줄 것. 거기에 그들이 이 도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의식주를 책임져줄 것.”
“……거기에 우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같은 건 없었다는 건가?”
도저히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갑자기 신탁이라니? 아니, 신을 믿는 이들은 이 50명의 내부에서도 있을지 몰랐다.
그런 이들이라면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수긍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특히 자신들의 처한 상황을 저 길드장이라면 속 시원하게 해결해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던 이들은 내용만 확인하면 길드장이라는 녀석도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낙담할 수밖에 없는 것.
그렇기에 차라리 신탁이니 뭐니 하는, 대충 지어낸 것 같은 이야기는 자신들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에 불과하고 사실 길드장이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파악하고 있기를 바라는 자도 있었다.
그야 저 길드장이라는 남자는 애초에 자신들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들의 신병을 확보하고 움직였으니깐 말이다.
그러니 기대를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적어도 저 길드장이라는 사람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깊게 관계되어 있다는 기대를.
……그런데 까놓고 보니 저자도 아는 것은 없다고 한다. 그저 신이 시키니까 그대로 행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그래, 없었다. 내가 너희들……, 아니, 그래도 일단 신이 예견한 이들이니 조금은 예의를 차리지. 자네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자네들이 기억상실자라는 사실뿐. 그리고 자네들이 신원미상의 정체불명의 사람들이라는 사실. ……마지막으로 내가 자네들을 단 일주일 동안만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지.”
그와 같은 길드장의 설명에 순간적으로 50명의 사람들은 침묵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지 않은가?
‘……과, 과연. 인벤토리에 초기 물품이 있는 만큼 적어도 초반 지원은 존재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이런 식으로 초반에, 아니, 초반만 우리들을 지원한다는 건가.’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50명 중 49명에 해당하는 이들의 상황이었고, 공선자만큼은 길드장의 설명을 통해서 거의 완전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길드장이 말하는 신이라는 존재는 분명 그 천사가 이야기했던 위대한 존재니 하는 존재일 터였다.
그 존재가 ‘챌린저들의 초반을 지원하기 위해서 준비해둔 장치’가 바로 저 길드장이라는 이야기.
살아있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면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요컨대 초반 도우미에 해당하는 NPC에 가깝다는 소리였다.
그야 위대한 존재라는 녀석의 입장에서도 챌린저라는 녀석들이 의식주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서 굶어 죽으면 골치 아프지 않겠는가?
그래서야 일부러 죽었던 이들을 되살린 보람이 없을 터. 심지어 이들은 에볼루션 시스템인지 하는 걸 각인한 대가로 기억을 잃어버렸다.
요컨대 더욱 객사하기 좋은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그런 만큼 초반 지원은 확실히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힘을 내려받았던지 결국 아무것도 몰라 어디 가서 객사하기 좋은 이들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존재는 신탁이니 하는 방식으로 저 길드장이라는 남자한테 간섭해서 자신들 일주일 동안 책임질 수 있도록 만들어둔 것 같았다.
마치 인벤토리에 존재하는 기초 물품과도 같은 느낌인 것. 거기에 어투를 들어 보니까 길드장이 그들은 보호해주는 것은 딱 일주일에 불과한 것 같았다.
스스로 이 세상에 적응하여 살아남기 위한 지식을 익힐 수 있도록 해주는 시간이라는 느낌일까?
여기에 덤으로 다른 세계에서 온 만큼 자신들을 증명할 수단이 없는 그들에게 활동을 보장할 수 있게 모험가라는 신분을 만들어주는 것은 덤.
……단, 어디까지나 딱 거기까지. 그야말로 딱 ‘초반 지원’이라는 수준의 지원만 해준다는 느낌이었다.
기억을 잃었으니까 그에 대한 대가로서 허무하게 죽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시간만큼은 보장해주겠다. 허나, 그 이후는 스스로 하기 나름, 이라는 느낌.
그야말로 최후의 양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최후의 양심만 존재하는 무정한 자식이라는 소리다, 그 위대한 존재는.
‘메인 스트림에서 이 도시, 소나타로 오라고 유도한 것도 저 사람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 거겠지. 그래도 양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닌 것 같기는 한데…….’
도저히 위대한 존재라는 자의 의도를 모르겠다. 왜 자신을 포함한 50명의 사람을 이 ‘멸망이 예정된 세계’에 보낸 것이지?
생각할 수 있는 건 멸망을 막아내기 위한 장기말. 하지만 그렇기에는 ‘지원’이 부족했다.
정말로 세계를 막아내길 바란다면 단순히 최소한의 양심 수준에 해당하는 지원이 아니라 보다 제대로 된 지원을 해줘야만 하는 거 아닌가? 거기에 무엇보다…….
‘세계를 멸망시킨 사람한테 세계의 구원을 의뢰하다니……, 캐스팅 미스도 정도가 있지!’
그렇게 열심히 공선자가 머리를 굴리며 생각하고 있을 때 그런 공선자를 바라보던 길드장이 재미있다는 미소를 지으며 생각하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정체를 모르겠군. 전사는 아니야. 마법사도 아니고. 하지만 적어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군.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정련되어 있어. 무엇보다 저 살기……. 영웅, 혹은 악마인가.’
신탁을 받고 움직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신탁에서 예견했던 이들과 만나게 되었다. 그때 길드장이 느낀 감각은 감격 같은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신탁에서는 이 50명에 대해서 정말로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일주일 동안만 책임지면 될 이들로 알려준 것.
그렇기에 감탄은 없었다. 신이 내린 신의 사도도 아니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이들과 만나는데 무슨 감탄인가?
아니, 신이 예견했다는 점에서 신의 사도라고 해야 할지 몰랐지만 그 아름다운 천사 아가씨가 그건 아니라고 딱 잡아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러니 결코 편애하지 말라고. 그저 평범한 사람 대하듯이 대하라고. 그렇기에 감탄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안도할 뿐이었다. 그럴 것이 뭐가 되었던지 신이 예견한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무지하게 대단한 이들이 등장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그러나 그런 예상과 다르게 이들은 신탁이 없었으면 그저 스쳐 지나갔을 정도의 평범한 이들일 뿐이었다.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있었지만 그 외에는 별거 없었다. 그래도 과연 신이 예견한 이들이라는 것인지 싹수가 보이는 이들 뿐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위대한 존재에게 눈에 띌 정도의 삶에 대한 욕구를 가진 이들. 그렇기에 길드장이 보기에는 적어도 쉽게 죽을 것 같지는 않은 이들뿐.
하지만 그 외에는 평범했다. 그렇기에 적어도 사고는 치지 않겠구나, 하는 안도를 한 것. ……하지만 그 중 단 한 명, 공선자만큼은 달랐다.
일단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강하다’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움직임 자체가 이미 남달랐기 때문.
50명 중 공선자처럼 ‘전투’에 특화된 신체를 지닌 이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 그들 역시 공선자처럼 생과 사가 갈리는 삶을 살아왔을 터.
허나, 그들에게는 ‘기억’이 없었다. 그렇기에 싸움을 법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에 비해서 공선자는 기억이 존재했다. 그 차이가 50명의 이들 중 공선자를 가장 ‘강한 이’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길드장은 한눈에 파악했다. 아니,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무력적인 면에서 공선자가 강하다고 해도 작정하고 싸우면 아마 공선자도 쉽게 이길 수 없는 이들이 몇몇 보이기는 했다.
기억이 없다고 해도 몸에 각인된 기술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허나, 그들에게선 느낄 수 없는 것이 공선자에게서는 느껴졌다.
그것은 살기. ……그래, 살기인 것이다. 도저히 한 명의 인간이 지닐 수 없을 것 같은 살기.
최소 ‘수백 이상은 직접적’으로 ‘수만 단위를 간접적’으로 죽인 인간에게서나 느낄 수 있을 법한 살기.
그런 살기가 공선자에게서 느껴졌다. 거기에 이 자리에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길드장의 ‘무력’을 공선자만은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그 사실을 길드장은 공선자가 보여주는 반응을 통해서 확신하고 있는 것. 그렇기에 길드장은 시종일관 공선자에게 흥미를 보이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공선자는 그저 길드장의 시선에 안절부절못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고작 신탁이라는 걸 믿고서 우리들을 보호해준다는 걸 믿으라는 이야기요?”
“고작 신탁이라……, 겪지 않았으니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지. 그건 고작 신탁이 아니야. 행하지 않으면 ‘내가 죽어버린다는 확신’을 들게 만들어주는 강제성이 깃든 신이 ‘명령’이었지. 그런 의미에서 신탁이라는 말도 조금 어울리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