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공선자가 그렇게 자신이 얻게 된 정보를 정리하고 있을 때 사내가 길드 회관 안쪽에 배치된 게시판을 가리키며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공선자로서는 처음 보는 문자로 적혀진 각종 너덜너덜한 종이들의 핀으로 고정되어 부착되어 있었는데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는 그 게시판들을 가리키며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모험가는 그 등급, 그리고 일행의 규모에 따라서 받을 수 있는 의뢰가 한정되어 있어. 스프라우트 등급 혼자라면 당연히 스프라우트 등급에 해당하는 의뢰밖에 받지 못하지. 단, 모험단 규모의 조직이라면 1단계 위의 의뢰까지는 수주 가능해.”
“……모험단 규모요?”
“아, 조직의 규모에 대한 설명을 아직 안 했던가? 모험가의 경우에는 10명 이하의 규모, 흔히 파티라고도 불리는 규모의 조직을 모험단이라고 칭해.”
그리고 그 모험단이 5개 이상 모인 조직을 모험대라고 칭하며 또다시 그 모험대가 모여서 모험대를 3개 이상 짤 수 있는 규모의 조직을 모험연맹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요컨대 모험가들이 자기들끼리 조직을 만들 경우 그 조직의 규모에 따라서 모험단, 모험대, 모험연맹이 된다는 이야기지. 모험연맹을 초과하는, 500명 이상 규모의 조직은 나라에서 허락해주지 않으니까 모험가끼리 조직할 수 있는 조직 규모는 모험연맹이 한계야.”
그야 기준 이상의 무력을 지닌 이들이 그 이상의 규모로 조직을 이룬다면 나라에서 허락하지 않을만했다.
권력자들의 입장에서는 그 조직들이 언제든지 자신들에게 칼을 향할 수 있는 반란분자로 보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모험가는 모험가로 이루어진, 최대 500명 이하의 규모로 조직을 이룰 수 있고, 이 조직의 규모에 따라서 받을 수 있는 의뢰의 등급이 상승하기도 한다는 거지. 기준은 해당 의뢰에 참가할 모험가들 중 가장 등급이 낮은 이를 기준으로 모험단일 때는 1등급, 모험대일 때는 2등급, 모험연맹일 때는 3등급으로 말이야.”
굳이 가장 등급이 낮은 이를 기준으로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등급이 낮은 이가 혹시라도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인원수가 많다고 높은 등급의 의뢰에 참가할 경우 개죽음을 당할 확률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
그렇기에 모험가가 혹시라도 개죽음당할 것을 방지하여 아무리 인원수가 많다고 해도 의뢰를 수주하는 조직에 속한 가장 낮은 등급의 모험가를 기준으로 잡은 것이라고 한다.
“자, 여기까지가 자신의 등급과 속한 조직의 규모에 따라서 받을 수 있는 의뢰 수준의 제한에 대한 설명이었는데……, 묻고 싶은 건 없지?”
“아, 저기……, 그 드, 등급이라는 것의 기준이 뭔가요?”
자신이 예상한 것처럼 모험가에는 등급이 있고 그 등급에 따라서 수주할 수 있는 의뢰의 난이도가 달라지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공선자는 모험가의 등급을 결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그가 예상하기에는 무력 역시 그 기준의 하나일 것 같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상.
그렇기에 공선자는 사내에게 모험가의 등급의 기준이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묻는 것이었다.
“모험가의 등급을 결정하는 기준을 2가지다. 얼마나 많은 의뢰를 달성했는가, 그리고 그 모험가의 무력이 그 기준이 되지. 어쩔 수 없는 게 결국 모험가라는 직업을 등급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강력한 무력을 필요로 하는 의뢰를 받게 되니깐 말이지.”
몬스터와 마수, 던전과 관련된 의뢰라는 것은 결국 무력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무력만이 절대적인 요소인 것은 아니었다.
던전 탐사에는 무력 외에도 각종 기술들이 필요했고, 몬스터와 에너미를 사냥할 때에도 타겟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기도 했으니까.
단순히 무력이 강하다고 해서 달성할 수 있는 의뢰만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 하지만 그 어떤 의뢰라고 해도 ‘무력이 있어서 안 좋은 의뢰’는 없었다.
즉, 뭐가 되었던지 모험가로서 활동을 하려면 일신의 무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모험가의 등급을 결정하는 기준에 무력이 있는 것은 공선자의 예상대로 모험가에게 무력이 필수적인 요소였기 때문.
“가장 낮은 스프라우트에서 시작해서 유저 상급 수준의 실력을 지니고 1년 이상이 지났거나 노비스 등급의 의뢰를 50개 이상 달성한 이들은 노비스가 될 수 있다. 이처럼 다음 등급으로 넘어가려면 모험가가 된 뒤에 실력을 갖추고 그에 걸맞은 시간이 지났거나, 혹은 한 등급 높은 의뢰를 다수 달성해야 하지.”
어떻게 낮은 등급의 모험가가 한 등급 높은 의뢰를 수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공선자는 굳이 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충 예상이 갔기 때문. 아마도 홀로 의뢰를 달성하는 것이 아닌 모험단이라고 말해지는 규모의 조직, 즉, 파티를 이루어서 의뢰를 달성하라는 이야기였을 테니깐 말이다.
“그 이상의 등급들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야 당장 모험가가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공선자가 당장 높은 등급에 올라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내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당장 공선자가 높은 등급에 도달하기 위한 조건을 알고 있을 필요는 없을 터.
공선자 역시 그 사실에는 수긍하였기에 굳이 사내에게 노비스 이후의 등급에 도달하기 위한 조건을 묻지는 않았다.
“그……, 모험가의 등급이 어떤 게 있는지는 알고 싶은데…….”
“스프라우트, 노비스, 인터, 레지던트, 프로페셔널, 챔피언, 히어로 순으로 7개다. 각각 증명패로 상징하는 색깔은 녹색, 동색, 주황색, 남색, 적색, 흑색, 흰색이고 가장 높은 히어로를 기준으로 마스터급의 무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지.”
그리고 마스터급의 무력을 지니고 있으면 굳이 모험가 짓을 하지 않아도 어디서든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다.
그렇기에 히어로의 등급을 가지고 있는 모험가는 평생을 가도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일축하는 사내.
“넌 아마도 막 모험가가 되었겠지? 그러면 스프라우트 등급부터 시작이다. 그러니 모험가로서 일을 하고 싶다면 저기 녹색 게시판으로 가서 의뢰를 살펴봐.”
“게, 게시판의 색깔들은 각 모험가 등급을 상징하는 색깔들인 거군요. 그런데 여기에는 3개밖에 게시판이 존재하지 않는데……?”
“나머지 등급의 게시판들은 위층에 존재한다. 덤으로 높은 등급의 모험가들 역시 위층에서 모험가 업무를 보고는 하지.”
각각의 도시의 지부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보통 높은 등급의 모험가들은 더 높은 층에서 의뢰를 받거나 의뢰 달성보고를 하는 등의 업무를 본다는 모양.
“그게 모험가들 입장에서나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길드 사무직의 입장에서나 편하니깐 말이지. 괜히 등급이 높은 사람들이 낮은 사람들한테 시비를 걸거나 하는 일도 안 생기고, 사무직들도 겉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있는 층을 통해서 등급을 판단하니까 실수도 덜 하는 편이고 말이지.”
그런 이유로 당장 1층에 존재하는 게시판은 스프라우트와 노비스, 두 가지 등급뿐으로 나머지 등급들의 의뢰가 게시된 게시판은 길드 회관의 위층에 존재한다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임시로 모험단을 형성할 때는 각 모험가들한테 맞는 층에 따라서 등급의 차이를 최소화시킨 모험단을 구성할 수 있게 해주니깐 말이지. 그런 이유로 건물 층수에 여유가 있는 길드 회관들은 대부분이 층별로 모험가들의 등급을 구분해두는 편이다.”
그렇기에 이 모험가 소나타 지부의 회관 역시 1층은 스프라우트와 노비스 등급의 모험가들만 이용하고 그 이상의 등급들은 위층으로 올라간다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게시판 역시 일 층은 각각 녹색과 동색의 2개의 게시판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말이다.
“막 모험가가 되었을 터인 너의 경우에는 스프라우트 등급의 게시판에서밖에 의뢰를 받지 못하지. 사람을 모아서 모험단을 꾸리면 노비스 등급도 가능할 테지만…….”
그렇게 설명을 해주다가 조금 뜸을 들인 사내는 이내 혀를 차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공선자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이었다.
“나쁘게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제대로 주제 파악하고 스프라우트 등급부터 천천히 경험을 쌓아. 딱 보니까 뭐,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흐음? 음? 이상하군……?”
겉으로 보기에는 소극적인 공선자의 태도를 기반으로 그를 평가한 뒤 거의 경고에 가까운 조언을 해주려고 하던 사내.
하지만 다시 한 번 공선자의 몸을 자세하게 뜯어보고서는 뭔가 위화감을 느끼고서는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혼잣말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 녀석……, 의외로 신체는 균형이 잡혀 있는 것 같은데? 펑퍼짐한 옷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는 건 힘들지만 차근차근 뜯어보면 근육도 상당한 것 같고. ……어디서 기초적인 훈련은 받은 것 같은데 행동거지는 왜 이래……?”
“저, 저기……?”
공선자는 그런 사내의 시선에 약간의 위기감을 느꼈다. 겁을 먹은 것이 아닌, 잘못하면 자신의 연기가 괴리감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것.
그렇기에 겉으로는 사내의 강렬한 눈초리에 겁을 먹은 것과 같은 연기를 하며 어째서 자신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자 사내가 정신을 되찾고 헛기침을 하여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것이었다.
“크음! 큼. 미안하군. 잠깐 생각 좀 했다. ……혹시나 해서 묻겠는데, 너 어디서 전투 훈련 같은 걸 받은 거냐?”
“네? 아, 아뇨……. 딱히 그런 훈련 받은 적은 없는데요. 그 대,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제가 살던 곳에서는 기, 기본적으로 체력이 필요해서 체력 단련은 받은 경험이…….”
‘흐으음……. 그래서 근육이 있는 건가? 아니, 그런 것치고는 단순히 체력 단련으로 만들어진 근육보다는 실전을 위해서 키운 근육이라는 느낌이 강한데……, 착각인가? 뭐, 좋아.’
공선자의 대답에도 조금 이상하다는 것처럼 홀로 생각에 잠긴 사내였지만 이내 깊게 고민을 해봐도 적당한 해답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모험가로서 활동하는 이들 중에서 이상하기 그지없는 이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 이것도 직업병이라고 해야 할지, 이상한 것을 목격해도 그냥 대충 세상에는 각종 사건들이 벌어질 수 있지, 하고 넘어가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뭐가 되었던지 역시 경험은 중요한 거다. 그런 의미에서 괜한 욕심에 자기 역량으로는 힘든 의뢰를 받지 말고 그냥 자기 실력에 적당한 의뢰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경험을 쌓고 실력을 키우도록 해. 쯧, 이건 모험가가 된 녀석들한테 늘 하는 경고이자 조언이지만 제대로 들어 먹는 녀석들이 없더군.”
요컨대 괜히 노비스 등급을 달성하겠다고 사람을 모아서 모험단을 구성하기 전에 일단은 스프라우트 의뢰부터 달성하라는 게 사내의 주장인 것이었다.
“스프라우트 등급을 달성해서 얻는 수입으로도 일단은 입에 풀칠하고 싼 여관에서 지내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을 테니깐 말이지. 뭐, 그것도 매일매일 꾸준히 의뢰를 받고 의뢰를 달성한다는 전제하에서의 이야기지만 말이야.”
사내의 조언에 공선자는 또다시 몇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일단은 가장 낮은 등급인 스프라우트 등급이라고 해도 열심히만 의뢰를 달성한다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사실.
여기에 더불어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들을 그렇게까지 위험한 의뢰가 아닌, 모험가로서 정말로 기초적인 의뢰들만 존재하는 것 같다는 사실.
……그리고 덤으로 처음 모험가가 된 이들은 그 대부분이 자신의 등급에 맞는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를 수주하는 게 아니라 파티를 모집해서 노비스 등급의 의뢰부터 수주하는 것 같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기에 스프라우트 등급과 달리 한 단계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노비스 등급의 의뢰들은 그 위험성이 남다르다는 사실 역시 파악할 수 있었다.
그야 노비스 등급의 의뢰가 위험하지 않다면 지금의 눈앞의 사내가 굳이 스프라우트 등급부터 시작해서 차분하게 등급을 상승시켜가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을 테니깐 말이다.
아마도 노비스 등급은 가장 기본적인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를 달성하여 모험가로서 어느 정도 경험을 쌓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수준의 난이도의 의뢰일 터.
당장 스프라우트 등급과 다르게 노비스 등급의 경우에는 ‘요구되는 무력의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부터가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스프라우트는 견습에 가까운 등급이고 진짜 모험가 등급은 노비스부터라고 말할 수 있는 거겠지. 단, 진정한 모험가라고 칭할 수 있는 등급인 만큼 그에 걸맞게 난이도가 높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거겠지.’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모험가가 된 이들은 위험에서는 눈을 돌리고 한시라도 빠르게 진짜 모험가로서 활동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인지 스프라우트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파티를 꾸려서 노비스 등급의 의뢰를 수주하는 모양.
“스프라우트에서 노비스로 올라가기 위해서 노비스 등급의 의뢰를 달성해야 하는 게 필수 조건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노비스 등급의 의뢰를 파티 단위로 실행할 때 확실하게 목숨을 부지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기 전까지는 경험을 쌓으라는 이야기지.”
그렇게 이야기하자면서도 어디까지나 경고이자 조언에 불과하니 듣기 싫으면 듣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내.
물론 공선자는 사내의 그와 같은 조언을 치기 어린 마음으로 무시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공선자는 친절하게(?) 조언을 해준 사내에게 묻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