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저……, 그, 그럼 스프라우트 등급이 수주할 수 있는 의뢰는 대충 어느 정도의 난이도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나요?”
“……흠. 내 조언을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아니라 제대로 받아들일 생각인 거냐? 태도는 괜찮군. 그래, 아무리 겁이 많아도 차라리 너처럼 신중하게 겁이 많은 타입이 이 바닥에서는 더 오래 살아남는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런 태도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군.”
자신의 충고를 귀담아듣는 것 같은 태도의 공선자의 행동이 마음에 든 것인지 사내가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서는 어떻게 설명해줘야 좋을지 잠깐 고민하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다가 설명할 방법을 결정한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여는 것이었다.
“일단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는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면 웬만해서는 무리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의뢰들을 기준으로 잡아 놨다. 그러니까 어지간히 허약체질이 아닌 이상은 별 탈 없이 달성할 수 있어.”
그렇기에 강한 무력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 진지하게 모험가로서 활동하기 힘든 일반 시민들 중에서도 용돈 벌이로 가끔씩 모험가 등록을 한 뒤에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를 수주해서 달성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요컨대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 난이도는 지구에서의 인력 사무소 수준의 난이도라는 이야기.
“단, 모든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가 그렇다는 건 아니야. 도시 내부에서 수행하는 의뢰의 경우에는 목숨의 위협이 거의 0%에 수렴하지만 아무리 스프라우트 등급이라고 해도 도시 밖에서 수행해야 하는 의뢰의 경우에는 위험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지.”
그렇기에 스프라우트 등급이라고 해도 정말로 미친 듯이 운이 없으면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때문에 모험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용돈 벌이로 인력 사무소를 찾듯이 의뢰를 수행하는 이들은 무조건 도시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의뢰만을 수주한다는 모양.
“애초에 모험가의 주된 업무는 도시 밖에서의 의뢰고 말이지. 도시 내부에서 발주되는 의뢰는 대부분이 인력을 요구하는 의뢰들이니 길드의 입장에서도 자신들이 자리 잡은 도시에 약간 정도 보탬이 되려고 발주 받는 의뢰들이라고 해야 할까? 이미지 메이킹, 뭐, 그런 걸 위해서 말이지.”
요컨대 인력 사무소 같은 일도 하지만 그게 모험가의 주된 업무라고 착각하지는 말라는 이야기 같았다.
인력 사무소 같은 일은 어디까지나 도시에서 모험가들의 이미지를 좀 더 좋게 만들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제대로 모험가로서 성장하고 싶으면 도시 외부에서 수행해야 하는 의뢰들을 받도록 해. 이 역시 평범한 성인 남성이라면 운이 어지간히 나쁘지 않은 이상은 달성할 수 있는 의뢰들이지만 도시 외부에서 달성해야 하는 의뢰인만큼 도시 내부의 의뢰들과 다르게 경험 쌓기 좋으니깐 말이지.”
“겨, 경험이라고 하면 구체적으로…….”
공선자의 질문에 사내가 조금 생각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다 이와 같이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것저것 소재를 수집하면서 각종 소재에 대한 지식을 쌓게 되거나……, 혹은 스프라우트 수준이라고 해도 몬스터를 잡는 것으로 실전 경험을 쌓게 되거나 말이지.”
그렇게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서 실력을 늘려간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실력에 자신이 생기면 그때 가서 파티를 모집해서 노비스 등급에 도전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정석이라는 소리.
“이 이상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군. 일단 정말로 진지하게 모험가로서 활동을 할 생각이 있으면 스프라우트 의뢰부터 몇 가지 달성해 봐. 그럼 내가 이야기하는 ‘경험’이라는 게 뭔지 스스로 실감할 수 있을 테니깐 말이지.”
설령 도시 내부에서 수행하기에 지극히 안전한 의뢰라고 해도 해보는 것과 안 해보는 것은 차이가 존재한다고 사내는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당장 어떤 식으로 의뢰를 받고, 어떤 식으로 의뢰 달성을 보고하며, 어떤 식으로 의뢰 보상을 전해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경험의 유무라는 차이가 생겨나니깐 말이다.
“실제로 스프라우트 등급을 무시하고 곧바로 파티를 만들어서 노비스 등급에 도전하는 간덩인 큰 녀석들조차도 아예 한 번도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를 달성하지 않고 가는 건 아니니깐 말이지.”
보통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를 얕잡아 보고 곧바로 노비스 등급으로 넘어가려는 이들은 대부분이 한두 번 스프라우트 등급을 경험해보고 너무 쉽고 지루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모험가로서의 활동과 다르게 너무 안전하고 쉽고, 경우에 따라서는 지루하기까지 하니 스프라우트 등급은 진지하게 모험가로서 활동할 사람들이 아닌 용돈 벌이로 모험가로 등록한 이들이나 수주받는 의뢰다, 라는 선입견이 생겨버리는 것.
그렇기에 일단 처음에는 길드 회관 행정직들의 조언을 듣고 스프라우트 등급을 몇 번 수행하다가 자신감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정확히는 내가 생각하던 모험가는 이런 게 아니야! 라는 식의 실망감과 초조함 때문에 곧바로 노비스 등급으로 넘어가는 이들이 많다는 모양.
여기에 스프라우트 등급을 몇 번 정도 경험해보니 고작해야 한 등급 차이인 노비스 등급을 얕보는 경향이 생겨나고 말이다.
“뭐, 그 결과 우습게도 노비스 등급의 의뢰 실패 확률이 그 위 단계인 인턴 등급의 실패 확률보다 더 높다는 결과가 만들어지고 말이야.”
인턴 등급을 수행할 정도라면 실력도 어느 정도 받쳐주고 거기에 모험가로서 경험도 쌓인 만큼 오히려 경험 부족에 실력도 바닥인 이들이 주로 하는 노비스 등급보다 의뢰의 달성 확률이 더 높다는 이야기.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 입장에서는 제발 좀 몇 달 정도는 스프라우트 등급을, 구체적으로 도시 외부에서 진행해야 하는 의뢰 위주로 경험 좀 쌓고 파티를 구하든지 해서 노비스 등급의 의뢰에 도전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거지.”
그야 수주받은 의뢰를 실패하면 길드 측에서는 큰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해도 길드에 대한 신뢰도가 깎여나가니 말이다.
……뭐랄까, 노비스 등급의 의뢰를 의뢰할 때는 실패를 각오하고 의뢰를 넣으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이미 늦었다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말이다.
“……말은 이렇게 해도 어디까지나 경고이자 조언이니깐 말이지. 강제할 생각은 없어. 의뢰를 받을 것인지 말 건지는 어디까지나 모험가 스스로가 선택해야 하는 것이니깐 말이야. 그 선택에 의한 결과 역시 결국에는 모험가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하기도 하지만 말이지.”
모험가는 상당히 자유로운 직업이지만 결국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사내는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조언을 귀담아듣는 것도, 아니면 다른 이들처럼 몇 번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를 해본 뒤 곧바로 노비스 등급으로 넘어가는 것도 결국에는 스스로 선택할 문제라는 이야기.
“재능이 있는 녀석들은 내 경고가 우습게도 처음부터 노비스 등급에 도전하고 문제없이 의뢰를 달성해오기도 하니깐 말이지. 단, 그런 경우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니까 자신이 그에 해당한다는 어지간한 자신감이 없으면 지양하도록.”
그와 같은 사내의 설명에 공선자는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이 뇌리에 떠오른 의문을 묻는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실례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입을 여는 그.
“저, 저기……. 의뢰를 강제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 어떤 경우에서 모험가 길드에서 의뢰를 강제하는 경우가 없다는 건가요?”
“그래, 설령 지명 의뢰라고 해도 결국 해당 의뢰를 수주받을 것인지, 받지 않을 것인지는 지명 당한 모험가, 혹은 모험가 단체가 결정해야 하는 일이니깐 말이지. 모험가 길드는 어디까지나 모험가라는 이들은 단속하고, 일을 중계하는 등과 같이 그들을 서포트 단체지 모험가들을 강제 징집하거나 하는 단체가 아니니깐 말이지. 부조리하게 강제적으로 의뢰를 떠맡거나 하는 경우는 없어.”
그와 같은 사내의 설명에 공선자는 내심 ‘그 말은 부조리하지 않으면 강제적으로 떠맡을 수도 있다는 건가?’ 라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지만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공선자가 있던 세상이나 이쪽 세상이나 절대라는 것은 없을 테니깐 말이다. 모험가 길드에서는 결코 강제하지 않는다고 입으로는 이야기하지만 뒤에서 길드로서의 권력을 휘두를지 말지 공선자가 알게 뭔가?
그러니 일단 적어도 ‘겉’으로는 길드가 모험가에게 억지로 의뢰를 떠맡기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만 알아두는 공선자.
“아, 그러고 보니 지명의뢰라는 말이 나온 김에 그것도 설명해줘야겠군. 의뢰의 종류에 대해서 말이야.”
“으, 의뢰의 종류여?”
공선자가 자신이 얻은 정보를 뇌리에 정리하고 있을 때 사내가 막 떠올랐다는 어투로 이야기해오는 것이었다.
그 발언에 의뢰에도 종류가 있나? 하는 표정을 짓는 공선자에게 남자가 자신이 발언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금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그래, 의뢰의 종류. 요컨대 의뢰의 형태나 수주 방식에 따라서 의뢰가 구분된다는 이야기야. 흐음, 일단 수주받는 형태에 따라서 의뢰가 어떻게 나누어지는지부터 설명을 해볼까?”
그렇게 운을 뗀 사내는 의뢰를 수주받는 방식에 따라서 의뢰가 자유 의뢰, 귀속 의뢰, 지명 의뢰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공선자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자유 의뢰는 누구나, 그리고 동시에 수주받을 수 있는 형태의 의뢰였다. 심지어 한 번 달성한 의뢰라고 해도 의뢰가 계속 게시되어 있는 한 얼마든지 의뢰를 수주받고 달성할 수 있는 형태의 의뢰라는 것.
요컨대 게임으로 지차면 반복 퀘스트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단, 게임과 다른 게 있다면 진짜 반복 퀘스트처럼 ‘무한’이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
그야 현실인 만큼 자유 의뢰 역시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변동되기 마련이었으니 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자유 의뢰의 경우 게시판에 고정된 상태로 의뢰를 게시해둔다.
그러면 이 의뢰를 확인한 모험가가 해당 의뢰에서 수배하는 물건을 가져오거나, 혹은 토벌을 요구하는 몬스터나 마수의 신체 부위를 토벌 증거로서 가져오면 모험가 길드 측에서 그것을 수거하여 의뢰서에 적혀 있던 만큼의 보수를 대가로서 지불하는 것.
이때 자유 의뢰의 경우에는 누군가가 먼저 해당 의뢰의 토벌 증표나 수배 물건을 가져온다고 해서 의뢰가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정말로 어지간한 수준의 물량을 구해오는 것이 아니라면 자유 의뢰는 계속해서 게시판에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며, 이때 뒤늦게 게시판을 확인하여 해당 의뢰를 발견한 사람이 나중에 요구되는 물건이나 증표를 가져온다고 해도 길드 측에서 보수를 지불한다는 소리였다.
즉, 자유 의뢰는 의뢰가 게시판에 계속해서 올라가 있는 상태라면 누구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자유 의뢰에서 요구하는 물건이나 토벌 증표를 건네주고 보수를 건네받을 수 있는 형태의 의뢰라는 것이었다.
“물론 길드 측에서도 어디까지나 수요에 맞춰서 자유 의뢰를 게시하니까 정말로 어지간히 수요가 넘쳐나는 의뢰가 아니면 어느 순간에 자유 의뢰가 사라질 수 있지만 말이지.”
보통 이런 자유 의뢰로서 게시되는 의뢰들은 수요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약초나 잡고 잡아도 계속해서 나타나는, 바퀴벌레 같은 계열의 몬스터들의 토벌을 의뢰할 때 사용된다는 모양.
“그 다음으로 귀속 의뢰의 경우에는……. 뭐, 평범한 의뢰를 생각하면 돼. 게시판에서 뜯어낼 수 있는 형태로 게시된 의뢰들 있지? 그게 보통의 귀속 의뢰인데, 이런 의뢰의 경우 의뢰를 받고 싶으면 게시판에서 수주받고 싶은 의뢰를 뜯어서 각 층의 카운터에서 업무를 보는, 나 같은 사람들한테 가져오는 형태로 의뢰를 수주받을 수 있어.”
그리고 이와 같은 귀속 의뢰의 경우 말 그대로 해당 의뢰를 가장 처음 받은 사람에게 의뢰가 귀속된다.
그렇기에 이 의뢰를 받은 사람이나 혹은 모험가 단체가 해당 의뢰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같은 의뢰를 다른 모험가나 모험가 단체가 받을 수 없다는 모양.
“해당 의뢰를 받은 모험가나 단체가 의뢰 달성에 실패했을 때 아직 의뢰 달성 제한까지의 날짜가 충분하다면 다른 모험가나 단체가 수주받을 수 있도록 게시판에 다시 걸어두기는 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누군가가 의뢰를 진행하고 있으면 다른 이들은 해당 의뢰를 수주받을 수 없기에 ‘귀속’의뢰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내가 설명하는 것처럼 보통 모험가들이 받는 의뢰는 이 귀속 의뢰라는 모양. 게시판에 존재하는 의뢰를 하나 선택해 카운터로 가져와 수주받고 해당 의뢰를 진행한다.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자유 의뢰와 귀속 의뢰를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는 것.
그럴 게 카운터에서 직접 의뢰를 수주받아야 하는 귀속의뢰와 다르게 자유의뢰는 대충 게시판에 있는 자유의뢰를 확인한 뒤 모험가가 알아서 의뢰로 올라온 품목을 가져오는 방식이었으니 말이다.
귀속의뢰를 진행하며 자유의뢰가 요구하는 물건이나 토벌 증표를 모으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은 것. 단, 그와 다르게 하나의 귀속의뢰를 진행한다면 다른 귀속의뢰는 진행할 수 없다는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