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보통 귀속의뢰는 제한 시간이 붙어 있기 마련인데 이렇게 제한시간이 붙어 있는 의뢰를 받아두고 다른 의뢰를 동시에 받아 진행하다가 제한시간이 붙은 의뢰를 달성해야 할 시기가 지나 실패하게 된다면 다른 모험가들은 물론 의뢰를 의뢰한 이에게도 민폐가 아닌가?
차라리 의뢰를 수주받지 않았으면 다른 모험가나 단체가 의뢰를 받아 진행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귀속의뢰의 경우에는 무조건 한 번에 하나밖에 수주받을 수 없다는 모양. 만약 단체일 때 다른 사람들은 의뢰를 받고 있지 않은 상황인데 한 명만 의뢰를 받은 상황이라고 해도 해당 단체는 의뢰를 받을 수 없다는 모양.
그럴 경우에는 이미 다른 의뢰를 진행하고 있는 사람을 빼거나 하는 방식이라면 의뢰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같았다.
“지명의뢰는 귀속의뢰랑 크게 다를 게 없어. 단, 게시판에 의뢰가 게시되는 방식이 아니라 의뢰를 의뢰라는 사람이 특정 모험가나 단체를 지목해서 의뢰를 의뢰한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겠군.”
보통 이와 같은 지명의뢰의 경우에는 어지간히 등급이 높은 모험가들이거나, 혹은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이상은 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같았다.
“이렇게 의뢰를 수주받는 형태에 따라서 3가지로 나눌 수 있고, 의뢰의 내용에 따라서도 의뢰의 종류가 달라지기도 하지.”
의뢰의 내용에 따라서 나누어지는 의뢰의 종류는 총 6가지였다. 토벌, 채집, 호위, 던전, 조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달.
토벌은 말 그대로 무엇인가를 토벌하는 의뢰였다. 몬스터나 에너미와 같은 것이 이 의뢰의 주요 대상이 된다는 모양. 당연히 몬스터나 에너미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계열의 의뢰였다.
채집 역시 의뢰에서 요구하는 물건을 채집해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단, 이때 채집해야 하는 물건은 약초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몬스터나 에너미의 특정 신체 분위일 수도 있기에 토벌 의뢰처럼 몬스터나 에너미를 사냥해야 할 때도 있었다.
호위의뢰의 경우 보통 몬스터가 자주 출현하는 구역을 지나야 하는 행상인들이 의뢰한다고 했다.
요컨대 주로 행상인들을 호위하는 임무라는 것 같은데 이게 또 경우에 따라서는 모험가한테 의뢰가 들어오는 게 아니라 용병 쪽으로 의뢰가 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 같았다.
때로는 모험가와 용병이 혼합되어서 상인들을 호위하기도 한다고 한다. 몬스터가 아니라 도적이 자주 출현하는 구역에서는 용병을, 몬스터가 더 자주 출현하는 구역에서는 모험가를.
혹은 두 종류가 비등비등하게 출현하는 장소에서는 모험가와 용병을 동시에 고용하기도 한다는 것.
던전 의뢰는 모종의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을 요구하는 종류의 의뢰라는 모양. 던전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공선자를 모르고 있었기에 일단은 던전의 클리어를 요구하는 의뢰를 던전 의뢰라고 한다고만 알고 있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조사의뢰. 이것 역시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조사를 요구하는 의뢰라고 받아들이면 되었다.
몬스터나 에너미, 혹은 던전과 같은 ‘미지’를 조사하는 형태의 의뢰. 그런 의미에서 ‘모험가’라는 이름에 가장 걸맞은 것은 이 조사 의뢰일 수도 있다고 사내는 가벼운 어조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단, 이때 조사의 영역이 ‘사람’에 해당하게 된다면 보통은 모험가가 아니라 용병 쪽으로 의뢰가 간다고 설명해주었다.
그 설명을 들어보면 공선자가 예상한 것처럼 모험가는 주로 몬스터와 던전 같은 ‘인류의 명백한 적’을 대상으로 하고, 용병은 어디까지나 같은 ‘인간’을 대상으로 주로 의뢰를 수행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배달 의뢰. 이것도 특이한 것은 없었다. 단어와 다를 것 없이 의뢰자가 요구하는 물건을 ‘배달’하기만 하면 되는 의뢰였으니 말이다. 단, 모험가 등급에 따라서 배달해야 하는 위치가 엄청나게 멀고 험할 수도 있었다.
거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단순히 물건을 배달해야 하는 것이 아닌, 배달해야 하는 물건을 직접 ‘조달’해서 배달해야 할 수도 있기에 주의해서 수주해야 하는 계열의 의뢰.
“어떤 등급의 의뢰라고 해도 이렇게 각각 3개와 6개의 종류의 의뢰로 나누어지니까 알아서 잘 확인해보고 수주하라고. 어떤 종류의 의뢰인가에 따라서 요구되는 지식과 무력 밸런스 같은 게 달라지기도 하니깐 말이야.”
“무, 무력 밸런스……?”
“아, 그 왜 있잖아? 마법사는 몇 명, 무술가는 몇 명, 뭐, 그런 거 말이야. 포지션의 밸런스 같은 거.”
하긴, 단순히 어떤 몬스터를 잡아야 하는가에 따라서도 파티에 요구되는 밸런스 비율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니 확실히 의뢰를 받기 전에 해당 의뢰가 어떤 형태의 의뢰인지는 확실하게 확인하고 의뢰를 수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에는 공감이 가는 것.
“……자, 일단은 여기까지가 내가 해줄 수 있는 설명과 조언이다. 이 이후부터는 스스로 알아가도록. 일단 열심히만 일하면 당장 굶어 죽을 걱정은 없을 정도의 수입을 벌 수 있을 테니깐 말이야.”
그리고 그 설명을 마지막으로 사내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전부 해주었다는 것 같은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뒤로는 자신이 도와줄 것은 없으니까 알아서 하라는 태도.
설명해줄 만큼은 설명해주었으니 이제는 공선자가 직접 모험가로서 의뢰를 받고 해당 의뢰를 달성하라는 것 같았다.
그런 사내의 태도에 공선자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단은 사내가 조언을 해준 대로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뢰를 수주받고 달성하는 것으로 모험가로서의 경험을 착실하게 쌓아가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들어보니 스프라우트 등급이라고 해도 몬스터와 싸우는 의뢰가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레벨을 올릴 생각이라면 일단 가장 약한 몬스터, 즉, 일반 성인 남자라고 해도 무난하게 잡을 수 있는 몬스터에게부터 도전해서 사냥을 해야 하는 만큼 해당 기준에 딱 맞는 스프라우트 등급의 토벌 의뢰가 요구하는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게 적당하다는 소리.
‘애초에 난 몬스터라는 게 어떤 존재인지조차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어. 그러니 괜히 노비스 등급의 토벌 의뢰가 요구하는 몬스터한테 도전했다가 낭패를 볼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해.’
……그러나 그렇게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공선자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냥 평범한 성인남성이었다면 고민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허나, 공선자는 평범한 성인 남자가 아니었다. 무술가니, 마법사이니 하는 녀석들한테 비비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초능력자로서 세계 하나를 멸망시키고 왔던 경험이 있는, 요컨대 전투 자체는 스페셜리스트라는 이야기.
그런 만큼 그 경험을 믿고 그냥 좀 더 강한 몬스터들의 사냥에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아니, 난 어디까지나 사람하고만 싸워왔어. 그러니 생전 처음 듣는, 몬스터라는 생명체들과 싸워야 하는 만큼 신중해야 해. 거기에 애초에 지금 내 등급으로는 노비스 등급의 의뢰를 수주받을 수 없잖아?’
레벨을 높이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일단 노비스 등급의 게시판에 부착된 토벌 의뢰를 살펴보고 적당하다 싶은 몬스터를 확인한 뒤에 의뢰를 받지 않고 그냥 그 몬스터를 잡으러 가는 것도 방법이었다.
단지 레벨을 올리겠다는 분야에서만 보자면 공선자에게 필요한 것은 레벨을 올리기에 적당한 몬스터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허나, 지금 공선자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당장 이쪽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한 ‘화폐’가 필요한 상황.
그러니 단순히 강해지기 위해 레벨을 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모험가로서 ‘활동’을 할 필요성이 존재하는 것.
그야 레벨을 올린다고 당장 식량이 떨어지거나 잠을 잘 곳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휴우, 그러니 일단 괜히 초조해하지 말고 스프라우트 등급의 토벌 의뢰를 받자. ……경우에 따라서는 채집 의뢰를 받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당장 공선자의 1차적인 목표는 이쪽 세계에서 살아갈 돈을 버는 것, 그리고 2차적인 목적은 레벨을 올려서 에볼루션 시스템을 통해 강해지는 것.
‘일단 강해져야지 좀 더 넓은 범위에서 활동할 수 있을 테고, 그래야지 이쪽 세계가 왜 멸망하는지도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깐 말이다.’
스트림이라는 시스템도 존재하니 강해지기만 하면 우선은 자신이 어떤 식으로 이쪽 세계에서 살아가야 할지 보다 구체적인 방향성을 정할 수도 있을 것 같았고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선뜻 스프라우트 등급의 게시판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것은 역시 아직 그에게 망설임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대로 모험가로 활동을 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망설임이 말이다. 애초에 눈앞의 사내가 열심히만 일을 하면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그게 정말 사실인지도 알 수 없었고 말이다.
거기에 진짜로 몬스터라는 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존재했으니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일단 자신의 능력이 능력인 만큼 성인 남성도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에게 당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지만……, 역시 미지를 앞에 두고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저, 저기. 제가 몬스터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저, 정확히 어떤 걸 기준으로 몬스터로 구분하는 건가요?”
그렇기에 공선자는 일단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얻기로 하였다. 대충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을 상상했지만 정말로 그런 녀석들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으니 말이다.
“몬스터의 기준? 솔직히 말해서 나도 그렇게까지 확실하게 아는 건 아니야. 그냥 어디서 다른 종족에 대한 절대적인 적의가 기준이 된다는 걸 들은 것 정도? 그렇기에 굶주림과 상관없이 다른 종족과 적대한다나 뭐라나……. 그냥 편하게 괴상하게 생긴 생명체가 덤벼들면 아, 저 녀석들은 몬스터구나! 하고 생각하는 게 편해.”
그리고 그런 사내의 설명에 공선자는 차마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몬스터가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인지 자체는 알 수 있었다. 즉, 생존을 위한 사냥이라는 이유가 없어도 덤벼드는 괴상한 모습의 생명체들이 몬스터라는 이야기.
허나, 그렇다고 해도 공선자로서는 원하던 정보를 얻었다고 이야기할 수가 없었던 것. 그야 그가 원한 것은 몬스터들만의 특성이나 뭐, 그런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 그럼 몬스터는 단순히 다른 종족에게 적대적이기에 몬스터로 구분되는 거지, 딱히 몬스터여서 더 강하다, 뭐, 그런 건 없는 건가요?”
“그럴 리가 있냐? 생각을 해봐라. 그저 살기 위해서 사냥하는 하는 짐승들하고 다른 종족이 보이면 일단 덤비고 보는 몬스터들, 어느 쪽이 더 강하겠냐?”
사내의 물음에 공선자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저 다른 종족에게 무조건 적인 적대감을 보이는 녀석들이 아니었다.
그렇게 무조건 적대감을 보이면서도 ‘생존하는 것’이 가능한 녀석들. 즉, 다시 말해서 일단 다른 종족에게 덤벼듬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강하게 진화’한 녀석들이 바로 몬스터라는 이야기.
그런 녀석들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저 먹고 살기 위한 사냥에만 충실한 짐승들보다 약할 리가 없기는 할 것이었다.
무조건적으로 다른 종족에게 적대하면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만큼 강력한 힘을 지녀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거 몬스터다 싶은 녀석들을 보게 된다면 무조건 경계해. 그 녀석들은 평범한 짐승들과 다르게 ‘싸우는 방법’을 알고 있는 녀석들이니깐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원하는 만큼의 정보는 아니었지만 일단 몬스터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정보는 얻었다. 그렇게 몬스터에 대한 정보까지 얻은 공선자가 또다시 한 가지 고민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건 당장 토벌 의뢰를 해야 하나, 아니면 몬스터와 싸울 일이 없을 것 같은 채집이나 조사 의뢰로 모험가로서의 경험부터 쌓아야 하나를 결정하는 건가?’
안전을 우선시한다면 일단 모험가로서 경험도 쌓고 당장 무일푼인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채집이나 조사, 혹은 배달 의뢰를 해야 할 수도 있었다.
허나, 공선자는 일단 에볼루션 시스템의 레벨이라는 것을 올려보고 싶은 것. 이 레벨을 올리는 것으로 자신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 것인지 제대로 실감을 해보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야지 향후 자신이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저, 저기……. 스프라우트 등급에서 당장 제가 적당하게 잡을 만한 몬스터를 의뢰하는 토벌 의뢰 같은 게 있을까요?”
안전을 우선 할 것인지, 아니면 일단 레벨을 올려볼 것인지 고민하던 공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