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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121/194)



〈 121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그가 모험가로서 블러드라는 가명을 만든 이유가 무엇인가? 함부로 진명을 밝히면 위험해질 수도 있어서였다.

또한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중에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사용할 그 순간이 올 때까지의 스스로의 결의에 대한 의미도 있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까먹고 곧바로 자신의 진명을 밝히려고 했던 것. 그 사실에 공선자는 또다시 바보 같은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이, 이 사람들이 진명을 밝힌 건지, 가명을 밝힌 건지는 알 수 없어.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난 진명을 밝혀서는 안 돼!’

이것은 상대를 기만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스스로를 보호하고, 자신이 여기에 있을 수 있었던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결의를 지키기 위해서.

그렇기에 공선자는 자괴감에 빠져 눈앞의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기 전에 어떻게든 힘겹게 자신의 ‘가명’을 입에 담는 것이었다.

“……브, 블러드. 블러드라고 합니다. 그……, 다, 다시 한 번 도와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말씀 드리겠습니다. 덕분에 빠르게 정신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하…….”

마지막에 가서 자신이 가명을 쓴다는 게 찔려서 그런지 어색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공선자의 발언에 다시금 세 사람의 시점이 그에게 집중되는 것이었다.

“에? 블러드라면 영어로 피라는 이름이지? 살짝 살벌하네. 아니,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다른 의미일 수도 있을까?”

“우리 세계에서도 영어로 같은 의미였던 것 같음. 그쪽은?”

“우리 세계는 다른 의미다. 영어라는 단어는 과거에 사장되어서 잘 모르지만 테라 어로는 분명히……. 기억이 안 나는군.”

공선자의 자기소개에 세 사람이 각각의 반응을 보이고 있을 때 공선자가 이다음에는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였다.

“뭐, 이름은 아무래도 좋아! 아, 아니, 딱히 네 이름이 뭐든지 좋다는 게 아니라 이름이 사람을 결정하지 않는다! 대충 이런 의미로 말한 거거든? 착각하면 안 된다? 절대로 네 이름이 뭐든지 신경 안 쓴다는 건 아니니까? 아니, 신경 안 쓰는 건 맞기는 한데…….”

“아……, 네……, 뭐…….”

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소녀의 발언에 공선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공선자의 반응에 자신이 조금 이상하게 이야기했다는 자각이 들었던 것인지 살짝 홍조를 띄우며 헛기침을 한 소녀가 다시금 말을 이어갔다.

“그것보다 지금 급한 건 네 몸 상태야. 어때? 역시 병원, 아니, 병원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니까 일단 병원 같은데 라도 가야 하지 않을까?”

“아, 아뇨……. 딱히 어딜 크게 다쳐서 의식을 잃었던 게 아니야. 그, 조, 조금 충격적인 경험을 해서 기절했던 거니까 굳이 어디 가서 치료받을 필요는 어,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네, 아마도.”

자신의 몸 상태를 걱정해주는 프로아의 목소리에 공선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야기할 때 밀리언이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흠? 그러면 방금 전의 비명소리는 뭐지?”

“아, 그, 그게 마, 말씀드렸다시피 조금 충격적인 경험을 해서, 아, 악몽을 조금…….”

말을 하면서도 공선자는 내심 잘도 지어내고 있다는 생각에 살짝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솔직하게 예지몽을 꾸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막 말한 것인데 의외로 이게 스스로 생각해도 꽤나 그럴듯하게 느껴졌던 것.

애초에 반쯤은 사실이었고 말이다. 원래 거짓말이라는 것은 80% 정도의 진실에 가장 중요한 진실을 숨기는 20% 정도의 거짓말을 첨가했을 때가 듣는 사람에게 가장 그럴듯하게 들리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흥! 고작 악몽 가지고 비명이라니 약해빠졌군. 그런 정신 상태로 기억도 잃은 상태에서 험상 세상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냐?”

“잠깐?!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잖아? 누구나 살면서 악몽을 한 번쯤은 꾸는 법이라고!”

“동의. 거기에 남 말할 때가 아님. 충격적인 경험이라는 거 몬스터? 우리도 앞으로 몬스터 경험해야 함. 그 말은 즉, 우리도 악몽을 꿀만 한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악몽은 숙면의 천적. 다시 말해서 나한테는 쥐약! 그렇게 막 무시할만한 일이 아님!”

공선자의 거짓말이면서도 거짓말이 아닌 변명에 밀리언이라는 소년은 딱히 의심을 하지 않았다.

단지, 악몽 때문에 그렇게 큰 비명을 질러서 자신들을 올라오게 만들었다는 게 내심 마음에 들지 않은지 공선자한테 약간 빈정거리는 어투로 이야기하는 것.

그러나 그런 밀리언과 다르게 프로아와 쿠루미라는 소녀가 공선자의 편을 들고 나서도 밀리언이 혀를 차면서도 어째서인지 그렇게 큰 반발을 하지는 않는 것이었다.

“그런가, 확실히 차림새랑 방금 전까지의 행색을 보면 기절하기 전까지 몬스터를 사냥했던 것 같은 행색이기는 하지. 잘도 그런 성격에, 거기에 그런 시간에 몬스터랑 싸우러 갈 각오를 했군.”

아마도 그 이유는 쿠루미라는 소녀가 자신들과 비슷한 디자인 위에 입고 있는 경갑, 그리고 그 경갑과 옷에 묻는 피와 먼지를 통해서 공선자가 전투를 벌이다 왔다는 추측을 밀리언 역시 해낼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무리 밤의 공선자라고 해도 완벽할 수는 없었기에 최대한 피를 안 묻게 전투를 벌였다고 해도 땅을 미친 듯이 구르며 전투를 했으니 입고 있던 옷과 가죽 경갑이 더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피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어서 군데군데 더러워져 있다 보니 그를 통해 공선자가 여관에 돌아와 기절하기 전까지 전투를 벌였다는 추측을 한 모양.

그리고 현재 챌린저들이 전투를 벌일만한 이들은 몬스터밖에 없었다. 설마 플라워 차원에 막 떨어진 이들이 뭐가 좋다고 사람과 싸우겠는가?

그러니 그들의 추측은 이상할 게 없었다. 실제로 그 추측이 사실이기도 하였고 말이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부정하기보다는 다른 식의 변명을 꺼내는 것이었다.

“그, 그게……. 구, 굶어 죽는 건 더 무서웠고……, 거기에 사람들이란 마주치는 것도 내키지 않아서 일단 혼자서 무작정 돈을 벌러……, 그, 그런데 몬스터랑은 싸우고 싶어서 싸운 게 아니라 스프라우트 등급의 의, 의뢰를 하던 사이에 어쩌다 보니…….”

“하긴, 그 성격에 직접 몬스터를 처리하러 가겠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겠군. 길드 회관에서 들었던 설명으로는 우리 같은 초짜들은 주로 몬스터 서식지에서 채집을 하는 형태의 의뢰를 하며 경험을 쌓는다고 했는데 그쪽 계열의 의뢰를 하러 갔다가 몬스터와 마주친 건가.”

혹시라도 자신이 새벽녘에 몬스터를 사냥하러 나갔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기 전에 자신도 모르게 변명을 주워담는 공선자였다.

그리고 이게 바로 거짓말쟁이의 본능이라는 것일까? 아니면 당황해서 제대로 이성이 돌아가지는 않아도 에이전트로 활동하며 쌓아왔던 경험이 빛을 발하는 것일까?

공선자가 무의식적으로 떠들은 변명이 상당히 그럴듯했기 때문에 의심 없이 공선자의 설명을 수긍하는 밀리언이었다.

아니, 오히려 공선자가 생각하지 못했던 디테일한 부분까지 자기 멋대로 추측하며 혼자서 수긍하는 것이었다.

“하아…….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의뢰를 나가다니 무모했어. 다행히 상처 없이 돌아왔지만 그대로 기절해버릴 정도로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 거잖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수십 마리의 몬스터에게 둘러싸이는 절체절명의 상황! 이라든가? 간신히 탈출해서 정신력이 바닥났다?”

밀리언뿐 아니라 프로아와 쿠루미 역시 딱히 공선자의 변명을 의심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밀리언이 그냥 수긍을 했다면 프로아 쪽은 공선자의 무모함을 질타하는 것이었고, 쿠루미의 경우에는 공선자가 여관으로 돌아오자마자 쓰러질 정도의 경험을 했다는 사실에 흥미가 있는 모양.

“아, 아뇨…….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은……. 그냥 몬스터라는 생명체를 처음 만나는 순간 뭐라고 해야 할까……, 보, 본능적으로 겁을 먹었고 그로 인해서 정신력이 완전히 바닥이 났다고 해야 하나…….”

그래, 이것 역시 반은, 아니, 80% 이상이 사실이었다. 공선자는 아침의 공선자(?)가 되는 순간에 강철 같은 이성의 방벽이 너무나도 손쉽게 허물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각성스킬의 응용스킬들 중에는 분명히 정신 방벽을 강화해주는 스킬도 있었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신이 ‘모종의 힘으로 간섭’받는 것을 막아주는 능력이었다. ‘소지자가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을 억제하는 감정 제어와는 다른 것.

요컨대 외부의 간섭을 막는 스킬이지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치솟는 감정을 막는 스킬은 아니라는 이야기.

그 결과 경비병처럼 보이는 사내들이 언급했던 몬스터 특유의 ‘살기’로 인하여 공선자가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 것은 스킬로 막을 수 있었다.

허나, 완전히 ‘살기’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은 아닌 것. 몬스터를 처음 보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오금이 저리고, 심약하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실금을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살기.

그 살기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약간 섬뜩하다, 라는 수준에 그치게 만들어 움직이는 것에 지장을 주지 않게 만들 수준의 효과였다는 이야기.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느 정도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라면 전투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테니 말이다.

허나, 아침의 공선자는 달랐다. 그의 심약하기 그지없는 정신은 ‘약간의 섬뜩함’을 기점으로 생전 처음(정확히는 감정이 돌아오고 처음) 보는 몬스터라는 괴물에 대한 공포가 미친 듯이 증폭하기 시작한 것.

이것은 타의에 의한 공포가 아니었다. 자의에 의한 공포. 그래, 공선자 스스로가 느끼던 공포였던 것.

그렇기에 정신 방벽을 강화해주는 스킬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그야 아무리 정신 방벽을 강화해도 벌레는 혐오하는 사람이 벌레에 대한 혐오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런 이유로 정신 방벽을 강화한다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몬스터의 살기에 공선자와 그와 같은 추태를 부렸던 것.

그러니 공선자의 이야기는 80%는 진실이 맞았다. 단지, 몬스터를 처음 만났다는 게 진실 아닌 진실, 거짓 아닌 거짓이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자, 잘도 그런 상태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네? 아니, 옷에 묻는 그거 몬스터의 피지? 그러면 몬스터란 싸웠다는 거잖아? 난 아직 몬스터라는 생명체들에 대해서 아는 게 없고 그냥 들을 수준인데 말 그대로 괴물 같은 녀석들이잖아? 정말로 괜찮은 거 맞아?”

“아, 네……. 무, 문제없어요. 그, 그게 절 죽이려고 냅다 달려들어도 저도 모르게 마구잡이로 휘둘렀던 단검이 운 좋게 그대로 상태한테 박힌 모양이라……. 물론 그걸로 이겼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덕분에 도망칠 기회를 얻어서 그, 그대로 냅다 줄행랑을 쳤거든요.”

이것도 반쯤은 사실이었다. 자신의 몸에 묻는 몬스터의 혈액에 대한 변명거리로 꼴사납게 도망쳤다는 진실을 섞어서 변명하는 것.

……이쯤 되면 거의 천성이나 다름없었다. 정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거짓말이 술술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역시 아무리 직접보다는 간접에 더 가까운 경험이었다고 해도 전설의 에이전트이자 테러리스트로 지구에서 활동하던 경험은 어디로 가는 게 아닌 모양.

“에……, 그런 그냥 몬스터랑 마주치고 도망치기만 했다는 거? 그런데 그렇게 파김치가 된 거? 살짝 실망…….”

“쿠루미, 아직 몬스터를 본 적도 없는 우리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거 엄청나게 실례거든? 우리라고 그러지 않으리란 법이 어디 있는데?”

“아, 아니, 난 딱히 블러드한테 실망했다는 게 아님. 생각보다 거창한 경험이 아니었다는 거에 실망한 거.”

“넌 바보냐? 그게 그거다. 뭐, 거창하지 않은 경험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겁쟁이인 주제에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악을 했다는 거잖나? 난 그 부분에는 가산점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밤의 공선자였다면 ‘이 녀석은 뭐가 이렇게 잘났는데 남을 평가하는 시선인 거야?’ 라는 생각을 먼저 떠올렸겠지만 아침의 공선자는 일단은 칭찬에 가까운 그의 말에 살짝 쑥스러워져 약간 얼이 빠진 얼굴로 머리를 긁적거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녀석이 왜 갑자기 여관 앞에서 기절을 한 것인지에 대한 사정은 나 역시도 약간의 흥미가 있지만 일단은 자리를 바꾸는 게 어떻겠냐? 일단은 앞으로 엿새 동안 내가 쓸 방에 이 이상 먼지가 흩날리는 건 참아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침구도 지금이라도 세탁을 맡기면 맡아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밀리언의 발언에 그제야 나머지 세 사람이 자신들이 밀리언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정말! 막 여기서 헬스를 하는 것도 아닌데 먼지가 날리면 얼마나 날린다고 그러는 거야? 뭐, 아래에서 기다리는 녀석도 있으니 이후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라도 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건 찬성이지만.”

“거기에 덤으로, 네 녀석도 챌린저라면 인벤토리가 있겠지? 인벤토리에 그 먼지투성이에 피 묻은 갑옷 좀 넣어 놔라. 당장 우리 형편에 옷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갑옷 정도는 안 입고 있어도 되겠지? 보고 있는 사람의 숨이 다 막히는군.”

“아, 네…….”

입고 있는 가죽 경갑 자체가 워낙 급소만 가려주는 형태의, 솔직히 방어구라도 부르기도 민망한 방어구였기에 당장 쌈닭의 시체로 가득 찬 공선자의 인벤토리에도 보관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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