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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42화 (42/328)

제 42 화. 박제(剝製) (22)

차로 달려가 시동을 거는 날 얼결에 따라온 김연주가 조수석에 타며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경위님?”

나는 김연주의 말에 답을 하지 않고 무전기를 들었다.

“전 병력, 최대한 빨리 단양 상진성당으로 집결합니다.”

급하게 차를 출발해서인지 몸이 뒤로 쏠렸던 김연주가 얼른 안전벨트를 하며 물었다.

“성당은 갑자기 왜요?”

“거기가 아지트였습니다.”

김연주의 눈이 커진다.

“성당이 아지트라고요??”

마음이 급하다. 만약 공범이 있다면. 내가 봤던 신부님이 공범이 아니더라도 내가 거길 찾아왔었다는 걸 알았을 공산이 크다. 빨리 가지 않으면 증거나 시신이 사라질 수도 있다. 아직 새벽녘이라 차가 없는 도로. 나는 신호까지 무시해가며 엑셀을 밟았다. 단양에 내려올 때 늦은 밤에도 교통신호를 지켰던 나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란 표정으로 시트를 꽉 잡는 김연주.

“경위님! 조심 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과속방지턱을 넘는 바람에 우리 둘의 몸이 잠시동안 공중에 붕 떴다가 강하게 떨어진다.

“악!”

미안, 근데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야. 마구 달려가는 차. 몇 번 더 질문을 던졌지만 오직 운전하는 것에 온 신경이 쏠린 나에게서 답이 돌아오지 않자 김연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잡이를 꼭 붙잡는다.

곧 도착한 상진성당. 아직 도착한 형사들이 없다. 하긴 다들 산장이나 고구마 밭에 있을 텐데 당연히 내가 제일 빨리 왔겠지.

나는 날 듯이 차에서 내려 성당 문을 두드렸다.

쾅쾅!! 쾅쾅쾅!!

“안 계십니까! 경찰입니다!”

이 새벽에 성당 문을 두드리는 건 큰 실례다. 아직 새벽기도가 시작되기도 전이라 수녀님이나 신부님들도 막 일어나셨거나, 혹은 아직 주무시고 계실 것이다. 어린 시절을 성당에 딸린 보육원에서 보냈기에 나는 그들의 생활패턴을 잘 알고 있다.

한참이나 문을 두드리고 있을 때, 형사들이 속속 도착한다. 그들은 차에서 내려 성당 앞으로 와 서로를 바라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는 무언의 질문들을 서로에게 하는 눈치였지만 아무도 답을 알지 못한다. 옆에 멀거니 서 있는 김연주가 그들의 시선을 독차지했지만 그녀 역시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설명은 나중에. 지금은 증거인멸의 위험을 먼저 제거해야 된다. 마구 문을 두드리자 막 잠에서 깬 듯 보이는 수녀님이 한쪽 눈만 뜨고 문을 여는 것이 보인다.

“무슨 일이십니까, 형제님?”

마음 같아서는 수녀님을 확 밀치고 안으로 진입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노 수녀님의 모습에서 날 키워 주인 루이사 수녀님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신분증을 내밀며 정중히 말했다.

“경찰입니다, 중요사건 때문에 성당을 조사할 필요가 있어 찾았습니다.”

수녀님은 아직 덜 깼던 잠이 확 달아나는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사, 사건이요?”

“예, 잠시 안을 조사할 수 있게 해 주시겠습니까?”

김연주가 입을 달싹이는 것이 보인다. 아마 이러면 안 됩니다, 수색영장을 발부 받아 조사해야 됩니다 같은 말을 하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다행히 눈치 빠른 그녀는 그 말을 삼킨다. 수녀님은 갑자기 험상궂은 형사들이 성당을 덮친 것에 겁을 먹었는지 침을 꿀꺽 삼킨다.

하지만 오랫동안 수녀 생활을 한 연륜이 나오는지 차분해진 얼굴로 물러난다.

“하느님의 공간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충분히 조사하세요.”

다행이다. 수색영장 가지고 오란 소리를 했으면 실례를 저지를 뻔 했다.

“감사합니다, 수녀님.”

나는 뒤에 선 형사들에게 외쳤다.

“거기 두 분은 저 위에 종탑부터 확인하시고, 나머지는 흩어져서 각 층을 수색합니다.”

형사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을 한 후 성당 안으로 우르르 들어간다. 김연주 역시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일단 수색을 위해 성당 안으로 진입하는 것이 보인다. 나는 수녀님께 질문을 던졌다.

“성당에 지하가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지하가 있다. 성당에 지하공간이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미사 때 성찬을 하기 때문에 그때 쓰일 포도주를 담그는 저장공간이 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그곳을 방문하신 적이 언제 입니까?”

수녀님이 고개를 저었다.

“성찬은 신성한 의식입니다. 우리 성당은 항상 신부님이 직접 포도주를 담그십니다.”

내 눈썹이 꿈틀거린다.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성당의 신도는 꽤 많다. 아무리 시골이라도 가톨릭 신자의 숫자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포도주를 신부님 혼자 만든다고? 보통은 수녀님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만든다.

“포도주 제작과 보관 모두 신부님 혼자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거기 청소하러 들어가신 적도 없는 겁니까?”

“네, 신부님이 직접 하십니다.”

나는 눈을 빛내며 주변을 보았다.

“신부님 어디 계십니까?”

“아직 주무실 시간이세요.”

“관저에 계신 겁니까?”

“네.”

“신부님 방이 어디입니까?”

“왜 그러시는지.”

“죄송합니다, 수사기밀이라. 위치만 좀 부탁드립니다.”

수녀님이 주저하다 말했다.

“관저 3층 끝 방입니다.”

“지하 저장실은요?”

“저 쪽이요.”

수녀님이 가리키는 곳. 미사를 드릴 때 신부님이 서는 교단 왼쪽에 두 개의 문. 아마 하나는 신부님의 대기실일 것이고 하나는 지하 저장실 입구인 모양이다. 둘 다 검은 커튼으로 가리워져 있다. 나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뒤 가장 가까운 형사를 툭툭 건드렸다.

형사는 주변을 살피다 날 돌아본다. 나는 수녀님께 들리지 않도록 그에게 속삭였다.

“관저 3층 끝 방으로 가서 신부님 신병 확보하세요.”

형사가 놀란 눈을 한다. 지금 제 정신이냐는 얼굴이다. 그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보다 수녀님을 힐끔 본 뒤 속삭였다.

“신부님이 공범이란 겁니까?”

나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혹시 몰라 그런 겁니다. 체포하진 마시고, 신병만 확보해 주세요. 참고인 조사라고 둘러대도 좋습니다.”

형사가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도 천주교 신자인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형사가 빠르게 자리를 옮기자, 나는 교단 뒤의 입구 앞에 섰다. 조용히 문고리를 돌리자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 문이 열린다. 그런데.. 열려 있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손을 모으고 있는 수녀님께 물었다.

“신부님께서 평소 이 문을 잠가 두시지 않으십니까?”

수녀님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신부님이 직접 관리하시는 걸 좋아하시지만 그렇다고 잠가 두진 않으세요.”

내 눈썹이 꿈틀거린다. 안 잠가 둔다고? 여기에 시신을 유기해둔 장진수와 신부님이 공범이라면 여길 오픈해 둘 이유가 없다. 수녀님들과 신부님의 맹목적 신뢰관계를 이용한 걸까? 나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그러자 시멘트로 만들어진 계단이 보인다. 바로 앞에 불을 켜는 스위치가 있다.

스위치를 누르자 계단에 따뜻한 주황색 불이 들어오고, 계단 옆 벽면에 예수님의 초상화들이 보인다. 나는 총을 꺼내 들고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계단 끝에 내려오자 계단에서 흘러나오는 불빛 덕에 또 다른 스위치가 보였다. 그 스위치를 켜자 지하실에 불이 들어온다. 와인이 익어가는 퀴퀴하면서도 향긋한 내음이 난다. 지하공간은 와인 저장을 위한 오크 통으로 가득하다.

지하실은 성당 규모와 같은 크기라 규모가 꽤 크다. 중앙에 커다란 책상이 있고, 그 위는 비어 있다. 평소 관리를 잘 하는지 책상 위에는 먼지 하나 없다. 아마 저기서 성찬에 쓰일 떡을 한입 크기로 자를 것이다. 나는 오크 통 뒤쪽을 모두 살핀 후에 총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꼭 타이밍을 맞춘 것처럼 아까 보낸 형사가 신부님을 데리고 지하실로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천주교인인 형사의 배려일까? 자다가 불려 나왔지만 옷을 다 갖춰 입고 온 신부님이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그때 그 형제님 아니십니까?”

기억하는 구나. 나는 고개를 슬쩍 숙여 보이며 말했다.

“다시 만나는 군요, 신부님.”

신부님이 마주 고개를 숙인다. 인사를 한 나는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진심으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신부님은 공범이 아니다.’

바로 확정 지어서는 안 된다. 물을 것이 몇 개 남았다. 나는 오크 통을 만져보며 말했다.

“모든 와인을 직접 담그십니까?”

신부님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예, 그렇습니다만.”

“고생스러우실 텐데 왜 혼자 하십니까?”

신부님은 잠시 말없이 날 바라보다 플라스틱 컵을 하나 찾아 오크 통 끝에 달린 수도꼭지를 튼다. 그러자 붉은 와인이 피처럼 컵으로 쏟아진다. 잔에 반쯤 와인을 채운 그가 내게 잔을 내밀며 말했다.

“신의 보혈입니다.”

안다, 떡을 신의 육신으로 여기고 와인을 보혈로 생각해 먹고 마신다. 그것이 종교인들이 성찬을 하는 방식이다. 보육원 출신의 아이들은 모두 미사를 드리니 나도 안다. 잔 속에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와인을 물끄러미 보는 나. 신부님은 내게 내밀었던 와인을 쭉 들이키고 난 뒤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하느님의 자식들에게 대접하는 성찬입니다. 제가 정성으로 만들고 싶어 그랬습니다.”

“·····················..”

나는 신부님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빛에서 내가 나고 자란 성당의 고집스럽지만 강단 있고, 신에 대한 강렬한 믿음을 가진 우리 신부님을 보았다. 저런 분이 공범일 리가 없다. 그때 위쪽을 수색하라 보낸 김연주를 비롯한 형사들이 지하실 계단으로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김연주는 신부님과 서 있는 날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형사들이 머리를 거칠게 긁어 댄다. 그들 입장에서 무척 곤란해지는 일이다. 매주 얼굴을 맞대야 하는 신부님의 성당을 새벽부터 이 꼴로 만들어 놨으니 어지간히 미안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 신부님이 공범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분명히 이 성당에 뭔가 있다.

나는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새벽부터 대단히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신부님.”

“·····················”

신부님은 사과를 해오는 날 물끄러미 바라본다. 하지만 곧 온화한 얼굴로 돌아와 물었다.

“토마스 때문입니까?”

“·····················”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신부님을 바라보았다. 신부님은 자기 말이 맞냐는 물음을 눈빛으로 던지고 계신다.

“장진수가 이곳을 자주 들락거렸습니까?”

“여긴 저만 옵니다.”

“하지만 잠가 두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음.”

신부님은 그래도 여기 출입하는 자는 없다고 말하려는 듯 입을 떼다 잠시 눈동자가 흔들린다. 뭔가 생각을 하는 듯하던 신부님이 말했다.

“딱 한번이긴 한데.”

딱 한번? 뭐가?

“뭐가 말입니까?”

“토마스가 여기 온 것 말입니다.”

“장진수가 여기 온 적이 있습니까?”

“예, 일요일 미사가 끝나고 오후 세시쯤. 그 날도 포도주를 담그기 위해 내려왔더니 토마스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장진수가 여기 왔었다. 분명히 여기 뭔가 있다.

“그래서 어쩌셨습니까?”

“여긴 출입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줬습니다. 포도주는 꽤나 민감해서 사람 손을 자주 타면 쉽게 산화되거든요. 설명을 잘 해주고 내보냈습니다.”

“그 후로는 못 보셨습니까?”

“예,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마지막이 아니다. 신부님이 목격한 것이 마지막이었겠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 몸통만한 오크 통들이 가득 쌓여 있는 지하실이 보인다.

“이 많은 통들에 다 와인이 있는 겁니까?”

신부님이 내 왼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뇨, 여기 열 일곱 통에만 있습니다.”

열 일곱 통? 언뜻 봐도 백 통은 넘어 보이는데?

“나머지 통에는 뭐가 있습니까?”

신부님이 오크 통을 툭툭 치며 말했다.

“말리는 중입니다. 아까 말했듯이 포도주는 민감합니다. 한번 사용한 통은 꽤 오랫동안 말려 둬야 하죠.”

아, 돌아가면서 쓰는 구나. 그때 내 눈에 계단 뒤쪽의 공간에 잔뜩 쌓여 있는 통들이 들어온다. 사용흔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다.

“그럼 저것도 말리고 있는 겁니까?”

신부님이 내가 눈짓하는 곳을 보며 손사래를 친다.

“아뇨, 저건 지금 안 씁니다.”

“왜 안 쓰십니까?”

“오래 사용해서 그런지 포도주가 산화하면서 약간 냄새가 배인 것 같더군요. 사용할 수 있나 해서 한번 포도주를 담갔는데 곰팡이 냄새 같은 것이 났습니다. 분리수거하기도 애매해서 일단 쌓아 두고 있습니다.”

신부님의 말을 들은 나는 천천히 계단 뒤 편에 쌓인 오크 통으로 다가가 주먹으로 통을 툭툭 건드렸다.

통통··· 통통···

소리를 들은 김연주의 표정이 대번에 변한다.

“속이 비어 있는 통의 소리가 아닙니다, 경위님.”

“··················”

나는 가만히 오크 통을 노려보다 수도꼭지를 틀었다. 그러자 강한 악취와 함께 투명한 액체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나는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나 소매로 코를 가렸다.

‘포르말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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