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 화. 박제(剝製) (24)
일사불란 움직이는 전경들을 지켜보고 있는 내 귀로 구석으로 가 이정호 반장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는 김연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반장님. 지금 수색 중입니다. 일단 장진수 명의로 된 부동산들을 수색했습니다만,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김연주는 잠시 나를 힐끔 본 뒤 다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게.. 갑자기 현 경위님이 성당을 수색한다고 하셔서, 전경 2개 중대 지원받아서 수색 중입니다. 네, 그건 저도 잘..”
김연주는 잠시 날 바라보다 뚜벅뚜벅 걸어와 전화를 내민다.
“반장님이세요.”
나는 가만히 전화를 바라보다 수화기를 귀에 댔다.
-도경이냐?
“예, 반장님.”
-성당을 수색한다고?
“예.”
-갑자기 성당은 왜? 거기 뭐 있어?
“장진수가 이 성당을 오래 다녔습니다.”
-인마, 성당에 오래 다녔다고 시체를 성당에 숨겨 놓을 거라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 거냐?
“살해 현장에 성경 글귀를 남겼습니다.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 하.. 신부님 허락은 맡고 들어갔지?
“예, 옆에 계십니다.”
-종교기관 함부로 수색했다가 아무것도 못 찾으면 골 아파진다. 이왕 뒤졌으면 반드시 찾아내, 알았어?
“·····················.”
아무 것도 없을 수도 있다. 나는 허탕만 치고 남들 생고생만 시킨 꼴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조금 두렵다. 모두에게 얼굴을 들 수 없는 상황이 될까 봐.
-대답 안 해? 이 사달을 내놓고 허탕치면 징계는 각오해야 될 거야.
아마도 그렇게 되면 강력계 형사에서 멀어지게 되겠지. 아무리 강혁 아저씨 뒷배가 있다고 해도 당분간 파출소 근무를 하게 될 확률이 높다. 이 정도 일로 강등 당하진 않을 테니 아마도 한직으로 밀려 나겠지. 바로 그때 내 눈에 전경 한 명이 보인다. 가벼워 보이는 오크 통을 옆으로 슬슬 굴리는 전경. 그리고 그가 지나간 자리를 노려보던 내 눈이 빛났다.
“반드시 찾겠습니다, 끊습니다.”
-뭐? 야, 야야!
전화를 끊고 김연주에게 돌려주자, 그는 호언장담을 해 버린 날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그, 그런 말 해도 돼요?”
“···············..”
나는 말없이 한쪽 벽면을 눈짓했다.
“봐요.”
김연주가 고개를 돌리곤 놀란 얼굴로 외쳤다.
“처, 천사!”
일을 하던 모두의 고개가 김연주가 보고 있는 방향으로 돌아간다. 그곳에 오크 통으로 가려졌던 벽면에 걸린 천사의 그림이 보였다. 단양서의 형사들도 놀란 얼굴로 중얼거린다.
“정말··· 천사가 있었어.”
신부님도 놀랐는지 눈이 동그래져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신부님 옆에 서서 물었다.
“저거 원래 있던 겁니까?”
“저는··· 처음 보는 물건입니다.”
신부님들은 보통 2~3년 간격으로 성당을 옮긴다. 눈 앞의 신부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가 오기 전에 걸려 있던 그림일 확률이 높다. 바로 그때, 반대편에서 전경 한 명이 손을 번쩍 든다.
“여기도 있습니다!”
모두의 고개가 돌아간다. 오크 통을 굴리는 그의 뒤로 또 다른 천사 그림이 드러났다. 그림이 두 개라고? 어느 쪽이 진짜일까? 나는 달려가 그림을 만졌다. 떼어내 보기도 하고 돌려 보기도 하고, 그림이 걸려 있던 못을 눌러 보기도 했지만 아무 변화가 없다. 여기도 아니란 말인가?
그때 신부님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려 신부님을 바라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 것인지 입을 막는 신부님. 아마 수사에 방해가 되었다 생각하신 모양이다.
“신부님.”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아뇨, 방금 하신 말씀 좀 자세히 부탁드립니다.”
“방금 제 말은··· 성경 구절이었습니다만.”
“압니다, 아까 저도 그 구절을 읽었습니다. 왜 중얼거리신 겁니까?”
“아···”
신부님은 다시 두 벽면에 걸린 천사 그림들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누가는 그곳에 두 명의 천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방금 성경 말씀처럼 말입니다.”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곳에 두 명의 천사가 있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면 갈수록 성경구절과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의 답이 성경 안에 있음을 확신했다.
“사람들과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곳은 어디입니까?”
신부님이 잠시 나를 바라본다. 내 지시에 따라 성당을 뒤지니 진짜 천사그림이 나왔기 때문일까? 단양서 형사들도 이곳에 단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두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 신부님은 약간 긴장한 말투로 말했다.
“12절부터 17절 말씀에 있습니다.”
신부님이 눈을 감고 성경을 외우신다.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엠마오 마을, 그리고 25리. 1리는 400미터다. 25리면 정확히 9.81818km. 성당에서 10km 내에 시신을 숨긴 장소가 있다. 나는 급히 김연주에게 손을 내밀고 말했다.
“지도.”
김연주는 내가 뭔가 잡았다는 걸 눈치챘는지 얼른 가방에서 아까 단양서에서 봤던 지도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펼친다.
“성당이 어디 있죠?”
김연주가 바로 빨간 펜으로 성당 위치를 표기한다.
“성당을 기점으로 10km 원을 그려 주세요.”
김연주가 원을 그리자, 성당을 기점으로 단양강을 포함한 거대한 원이 그려진다. 김연주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저었다.
“수색범위가 너무 넓어요. 반경 10km를 수색하려면 전경 2개 중대로는 턱도 없어요.”
이 안에 뭔가 있다. 종교와 관련된 시설이 없는지 확인했지만 성당 외에 천주교 성지는 표기된 바가 없다. 어디일까? 분명히 여기 있다. 또 다시 성경에 힌트가 있을까? 방금 신부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지? 다시 한번 성경구절을 되풀이한 난 신부님을 향해 물었다.
“아까 말씀하신 엠마오 마을이란 곳. 어떤 곳입니까?”
신부님에게로 시선이 집중된다. 매주 많은 신도들 앞에서 미사를 올리는 신부님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시선이 별로 부담스럽지 않은지 온화한 목소리로 답하는 신부님.
“예수님이 돌아가신 줄 알고 실의에 빠진 두 제자가 향하던 곳이었지요.”
“되살아 나셨는데 왜 실의에 빠진 겁니까?”
“부활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을과 단양시와 관계가 있는 곳은 없습니까?”
신부님은 곰곰이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마을과 비슷한 곳은 없습니다.”
“·····················.”
또 다시 단서를 찾아 헤매야 하는 걸까? 나는 코끝을 찡그리며 내가 무엇을 놓쳤는지 다시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신부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 두 제자는 마을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부활의 증인이 되었지요.”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 그게 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나와 시선이 엉킨 신부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1751년에 태어난 김범우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응? 갑자기 이게 뭔 소리일까? 1751년이면 조선시대 아닌가?
“김범우?”
신부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역관 출신으로 서울 명례방(현 서울 명동)에서 태어나 자란 분입니다. 124위 복자 가운데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김이우와 김현우가 그의 이복동생들이며, 또 정약용 형제들과 먼 인척이었지요.”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걸까?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데.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신부님?”
신부님이 뚜벅뚜벅 걸어와 지도 앞에 서서 말했다.
“1785년 봄, 김범우는 자신의 명례방 집에서 이벽의 주도하에 신앙 집회를 열다 형조 관원들에게 체포됐습니다. 이를 을사추조적발사건이라 하지요. 의금부로 압송된 이들 가운데 양반들은 모두 훈방됐으나 중인인 그는 형조판서 앞에서 문초를 받았습니다. 그는 거듭된 강요와 형벌에도 배교하지 않고 신앙을 증거해 결국 유배지에서 노역하는 ‘도배형’(徒配刑)에 처해졌습니다.”
천주교가 박해 받던 시절의 이야기인가 보다.
“그런데요?”
신부님이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1827년 봄, 정해박해 때 경상도에서 피신해온 유순지와 교우들이 단양의 깊은 골, 대강면 신구리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20여명이 체포되어 고문과 혹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도배형을 받고 단양으로 내려왔던 김범우도 이곳에서 체포되었습니다.”
내 눈이 커졌다. 얼른 달려가 지도를 확인하자, 아무 것도 표기되지 않는 산악지형이 보인다.
“여기가.. 바로 거기라고요?”
신부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곳. 그곳은 상진성당 반경 10km 가장자리 부분이었다. 김연주가 얼른 거리계산을 해본 뒤 고개를 든다.
“대략 10km가 조금 안 되는 거리 맞습니다. 25리에 가까워요.”
여기다. 제길, 드디어 찾았다! 나는 지도를 쾅 내리치며 말했다.
“여깁니다! 전원 여기로 이동합니다!”
나와 신부님의 대화를 지켜보던 형사들이 제일 먼저 뛰어나가고, 오크 통을 옮기던 전경 중대가 뒤따른다. 김연주가 얼른 지도를 챙기는 것을 보고 있던 내가 신부님에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감사했습니다, 신부님. 새벽부터 경황이 없어 실례를 범했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성당 식구들이 고생을 했다. 신부님 입장에서는 신성한 성당 내에 다른 이가 남긴 그림이 남겨져 있는 것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겠지만 누구에게나 새벽 댓바람부터 찾아온 불청객은 달갑지 않을 것이다. 신부님의 표정이 무거워져 있는 것을 본 나는 다시 한번 사과를 드렸다.
“정말 죄송했습니다.”
“··················..”
온화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신부님의 표정이 좋지 못하다. 갑자기 왜 이러실까?
“신부님?”
“···············. 형제님.”
“예, 신부님. 말씀하세요.”
“진수 그 아이 말입니다.”
“예.”
“아까 제가 진수를 뭐라고 불렀는지 기억하십니까?”
뭐라고 했더라? 세례명으로 부르셨던 것 같은데.
“토··· 마스 아니었습니까?”
“·····················.”
신부님의 눈빛이 슬퍼진다. 살짝 고개를 숙인 신부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까 말씀드린 대한민국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
이름이 김범우라고 했던가? 하여간 그 분이 왜?
“예, 김범우라고 하셨습니다.”
“··················..”
“신부님?”
신부님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본다. 형언할 수 없는 심란한 마음이 담긴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신부님이 무겁게 말하신다.
“김범우 순교자님의 세례명도··· 토마스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