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83화 (83/328)

제 83 화. 먼저 인간이 되어라 (18)

김상식이 벽에 등을 기대고 피할 곳을 찾는다. 하지만 뚱뚱한 몸 덕에 느려 터진 형과 달리 동생은 재빠르다. 허리를 숙이고 김상식의 다리 사이에 목마를 타듯 머리를 끼워 넣는 김상원. 김상식이 수갑 찬 주먹으로 동생의 등을 내리친다.

“놔! 놓으라고!”

“증명하라고!”

“놔, 이 새끼야!”

“봐! 난 꼭 봐야겠어!”

소란이 일자 전화를 하러 나갔던 변호사가 문을 벌컥 열고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헌법 12조 1항!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 수색, 압수, 심문을 받지 않습니다! 영장도 없이 진술 중에 이래도 되는 겁니.....”

변호사의 고함에 난 양손을 들었다. 난 아무 짓도 안 했다. 변호사가 급히 문 바로 옆 벽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두 형제를 보고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경찰이 강압적으로 수색한다면 변호사가 막을 수 있지만 형제 간의 싸움에 끼어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금 전 김상원의 서슬 퍼런 일갈을 들었기 때문인지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쉽게 말리진 못한다.

변호사가 열어 두고 온 문으로 경비를 서고 있던 순경들이 얼굴을 들이민다. 취조실에서 소란이 일어나면 뛰어들어와 말리기 위해 세워 두는 경비들이다. 몸싸움을 벌이는 두 사람을 확인하곤 뛰어 들어오려는 순경들. 나는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 시켰다.

괜찮으니 나가서 일 보라는 신호를 하자, 몸싸움 중인 두 사람을 힐끔 보곤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순경들. 순경들이 떨떠름한 얼굴로 문을 닫고 나가자 마자 김상식이 동생을 옆으로 밀어버린다. 엎드린 자세로 있던 김상원이 몸무게 차이에서 오는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책상에 나동그라진다.

“컥!”

김상원이 나뒹굴며 구둣발로 변호사의 코를 차 버렸다. 코를 싸잡고 마구 물러나는 변호사의 얼굴에서 피가 쏟아지는 것이 보인다. 뭔가 속이 후련한 이 기분이다. 김상원이 벌떡 일어나 다시 김상식에게 달려드는 것이 보인다. 나는 티슈 한 장을 뽑아 변호사에게 내밀었다.

“이거.”

변호사는 손을 벌벌 떨며 티슈를 받아 코를 마구 닦는다. 자기 코에서 나는 피를 보더니 놀라 손을 더 떨기 시작한다. 코피 좀 났다고 안 죽는데 엄살은. 김상원이 달려가 몸으로 김상식을 밀어버리자, 그가 벽에 강하게 부딪힌다.

“그만 하라고, 이 새끼야!”

“봐! 보자고!”

김상식의 표정이 달라진다. 어떡하든 동생에게 무죄를 증명할 방법을 찾던 형은 드디어 분노가 폭발했다.

“이 씨발 새끼가 형이 우습냐!”

김상식이 동생의 얼굴을 발로 차 버린다. 쓰러진 동생에게 기어 올라가 수갑 찬 주먹으로 얼굴을 내리 찍는다. 이거 더는 그냥 둘 수 없겠다. 나는 벌떡 일어나 동생을 때리려고 양 손을 높게 든 김상식의 팔을 낚아챘다.

“여기까지.”

김상식이 붉어진 눈으로 으르렁거린다.

“놔, 이 형사 나부랭이 새끼야. 좆도 아닌 게 더럽게 나대네. 안 놔? 형사 생활 때려 치고 싶지?”

허, 본색이 나오는 건가? 하긴 기억 속에서도 분노 조절에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긴 했다. 나는 김상식의 팔을 잡은 채로 말했다.

“아니? 나 정년 퇴임해서 연금 받을 건데? 난 너처럼 돈 많은 부모가 없어서 내 앞가림은 스스로 해야 되거든.”

“일개 경찰 새끼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왜? 부모님 백? 어, 나 부모님 없다. 근데 너 이제 나랑 같은 입장 아니냐?”

김상식이 코웃음을 친다.

“미친 새끼. 부모가 없다고 다 같은 인생인 줄 알아?”

아, 돈? 그래, 유산 이야기구나? 나는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김상원을 힐끔 본 뒤 김상식의 팔을 잡은 채로 빙글 돌아 뒤로 꺾었다. 어깨 관절이 꺾이자 김상식이 죽는 소리를 낸다.

“으아아아!!”

팔 관절의 가동 범위 밖으로 꺾어 버리자, 자동으로 엎드리는 김상식이 발광을 한다.

“놔, 이 개새끼야! 변호사! 변호사 어디 갔어, 씨발!”

나는 엎드린 김상식의 등을 무릎으로 누르고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코피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변호사를 보며 싱긋 웃은 나는 아래 깔려 있는 김상식을 눈짓하며 말했다.

“변호사님도 보셨죠? 용의자가 난동을 부려 제압하는 과정입니다. 법적 문제없고, 저기 카메라에 난동 부리는 장면도 모두 담겼습니다. 인정하시죠?”

변호사는 티슈로 코를 막은 채로 감시 카메라들을 바라본다. 빼도 박도 못할 증거들이 남았다. 나는 김상식의 등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몸을 빙글 돌렸다. 김상식은 내가 뭘 할지 눈치를 채고 발을 동동 구르며 고함을 친다.

“놔! 놔 이 개새끼야!”

“발 모가지도 꺾어 버리기 전에 가만 있어요.”

“지랄하지 말고 놓으라고!”

내가 경찰만 아니었으면 넌 죽었어. 내가 읽은 기억 속의 너는 백만 번을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을 개새끼였거든. 내가 경찰인 걸 다행으로 알아라, 이 새끼야.

나는 엉덩이로 김상식을 내리 누른 채 그의 오른쪽 바지를 걷었다. 발버둥을 치긴 했지만 엎드려서 버둥거려 봐야 내 손길을 피할 순 없다. 한쪽 바지를 무릎까지 끌어 올리자 종아리에 명확한 흉터가 보인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 이건 비전문가가 보아도 이빨 자국임을 알 수 있겠다.

“으아아아!! 이 개새끼!!!”

나는 가만히 인교상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치열이 고스란히 남은 흉터. 어쩌면 이 상처를 남긴 이혜연씨는 끝까지 아들이 인간으로 삶을 살아가길 바랐을 지도 모른다. 그대로 두면 악마로 살아갈 테니 말이다. 또 어쩌면 자신들을 죽인 범인을 알려주기 위해 그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에게서 김상식을 감쌌다. 아마 그녀의 바람은 전자가 맞을 것이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고 있는 김상원에게 말했다.

“자, 확인하시죠.”

김상원이 소매로 피를 닦은 후 형의 종아리를 보고 눈을 질끈 감는다. 주먹을 꽉 쥐는 것을 보니 이제 확신이 서는 모양이다. 나는 물러나 있는 변호사를 보며 말했다.

“그 쪽도 보셨죠?”

변호사의 눈이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다.

“그, 그게···”

나는 자리를 털며 일어나 팔짱을 꼈다.

“육안으로 명확히 식별되는 치아로 인한 손상입니다. KCSI가 사망자 치열과 대조작업을 할 동안 김상식씨는 사건의 주요용의자로 구금됩니다, 이의 있으십니까?”

“·····················.”

변호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근데 너 지금 그렇게 있어도 되냐? 가만 있으면 너희 법률 사무소까지 다 털릴 텐데. 변호사는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다 김상식을 힐끔 보곤 이를 악물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또 여기 저기 전화를 돌리며 방법을 찾겠지.

김상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형을 바라본다.

“저, 정말··· 정말 형이야?”

김상식이 발버둥을 치며 일어난다. 수갑을 차고 있어서 엎드렸다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지만 필사적으로 일어난 그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아니야, 진짜 난 아니라고. 상원아, 형 말 좀 믿어. 제발!”

김상식이 눈물까지 줄줄 흘린다. 충격 받은 얼굴로 우두커니 자신을 내려보고 있는 동생에게 무릎으로 기어간 김상식이 눈물로 울부짖는다.

“난 정말 아니라고! 내가 왜 부모님을 죽여? 엄마 알잖아? 엄마가 날 얼마나 좋아했는지 잊었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알아! 내가 엄마를 왜 죽여? 도대체 왜?”

나는 의자를 끌고 와 자리에 앉으며 전화를 들었다.

“예, 최 경위님. 접니다. 그쪽 수사 접으세요. 김상식에게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예, 예. 바로 구속 수사로 전환할 겁니다. 아, 그리고 그 칼 있죠?”

슬쩍 돌아보니 김상식이 움찔 놀라는 게 보인다. 나는 짐짓 태연한 척 말했다.

“예, 부모님 수십 군데 찌른 그 칼. 그냥 식칼일 겁니다. CCTV로 김상식 동선 따보면 어디 버렸는지 확인될 겁니다. 흉기부터 찾아주세요. 예, 부탁합니다.”

나는 지금 김상식을 따라 연기를 하고 있다.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도 아니고 이 넓은 대한민국에서 꽁꽁 숨긴 자그마한 칼 한 자루를 어디 가서 찾겠는가? 나는 지금 그를 흔들기 위해 연기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연기에 넘어간 건 김상식이 아니라 김상원이었다.

그는 형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시, 식칼로! 엄마, 아빠를 몇 번이나 찔렀어? 어? 왜 그랬어, 왜!!!”

동생에게 멱살을 잡힌 김상식이 그의 손목을 붙잡으며 도리질을 친다.

“난 진짜 아니야! 저 새끼가 지금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이 악마 새끼야! 네가 형이야? 네가 그러고도 우리 가족이야? 이 개새끼야!”

“정신차려! 난 진짜 아니라고!”

나는 의자에 앉아 형제의 싸움을 지켜본다. 나는 그의 기억을 보았다. 저 다리에 상처는 어머니인 이혜연씨가 만든 상처가 분명하다. 조사하면 바로 나올 텐데 왜 저렇게까지 부정하고 있는 걸까? 금세 들통날 거짓말을 왜 하는 걸까? 설마 사건 때 입은 부상이 아니라고 우길 생각일까?

김상식이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그럼에도 저리 부정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동생이 멱살을 쥐고 흔들 때마다 눈동자에 분노가 서렸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김상식은 지금 동생이 자신에게 하고 있는 짓에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그 분노를 참으며 자신은 무고하다 주장하고 있다. 도대체 왜?

가만히 두 형제의 다툼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뇌리에 생각 하나가 스친다. 김상식이 자신의 무고를 통해 지키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평소 시기하고 질투했던 동생이다. 그에게 저리 저 자세로 나갈 만큼 자존심 없는 인간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무고를 주장해야 지킬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뜻이다.

부모님은 자기 손으로 죽였다.

동생과도 이제 한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럼 뭘 지켜야 할까?

나는 가만히 생각에 빠졌다가 혀를 찼다.

‘돈이네.’

아버지 김중권이 남긴 막대한 유산. 그게 자신의 죄를 부정할 이유였다. 보통 사람인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생각. 부모를 죽이고도 겨우 돈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굽히고 있는 가증스러운 모습에 나는 속이 안 좋아졌다.

여전히 김상식의 멱살을 쥐고 그의 눈을 노려보고 있는 김상원. 그는 지금 갈등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형이다. 어릴 때부터 함께 컸으니 좋은 기억도 있을 것이다. 과연 형을 믿을 것인가, 증거를 믿을 것인 가 사이에 서서 갈등 중인 동생.

나는 팔짱을 끼고 김상식을 불렀다.

“김상식씨.”

멱살을 잡힌 김상식이 인상을 쓰며 날 돌아본다. 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 말했다.

“민법 제 1004조,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 그 배우자 또는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사람을 살해하거나 살해하려고 한 사람은 상속에서 제외됩니다.”

김상식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이번에도 김상원 쪽에서 더 격렬한 반응이 나온다.

“돈!! 고작 돈 때문에 죽인 거야? 정말 그랬어!!!?”

김상원이 강하게 형을 벽으로 밀어붙인다. 뒷걸음질을 쳐 벽에 쾅 부딪힌 김상식. 그는 가만히 동생을 노려보다 바닥에 침을 뱉는다.

“퉤, 하, 씨발.”

“·····················..”

갑자기 달라진 형의 태도에 놀란 김상원. 김상식은 강하게 동생의 팔을 뿌리친다.

“놔, 이 버릇없는 새끼야.”

동생의 팔을 뿌리친 김상식은 날 노려보다 한숨을 쉰 뒤 터덜터덜 걸어와 내 앞에 앉는다. 테이블 위에 두 발을 척 올린 김상식이 혀를 차며 말했다.

“하! 죽이려고만 해도 상속 제외였어? 하, 그래. 차라리 잘 됐다. 존나 쫄렸는데 이제 이 짓도 더는 못하겠네, 씨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