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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84화 (84/328)

제 84 화. 먼저 인간이 되어라 (19)

나는 혓바닥으로 자기 이빨을 청소 중인 김상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김상식씨, 현재 변호인이 동석하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진술하시겠습니까?”

나는 카메라를 힐끔 보며 물었다. 김상식은 제 손톱을 정리하며 말했다.

“어, 그 병신은 도움도 안돼. 어차피 있으나 없으나 같은데 뭣 하러.”

갑자기 달라진 태도. 하지만 나는 안다. 이것이 그의 본 모습이란 것을. 나는 충격 받은 얼굴로 엉거주춤 서 있는 김상원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았다.

“잠시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밖에! 잠깐 들어와요.”

밖에 있던 순경들이 뛰어 들어온다.

“이 분 밖으로 안전하게 모셔가세요.”

“예, 경위님.”

김상원은 순경들에게 반 강제로 끌려 나왔다. 그러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지금 동생의 심정은 어떨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을 자신의 형제가 무참히 살해했다. 어느 쪽에게도 강한 미움을 던지지 못하는 지금 저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모두가 나가고, 난장판이 된 취조실. 나는 바닥에 흩어진 물건들을 주워 정리했다. 김상식은 자기 손톱만 바라보며 입으로 후 불기도 하고, 비비기도 한다. 나는 대충 정리를 마치고 그의 맞은편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평소 아버지와 교회도 같이 나갈 만큼 사이가 좋았다고 하던데.”

김상식이 실소를 짓는다.

“지랄.”

“···············..”

김상식이 손을 내리고 날 바라본다.

“너는 황금 같은 일요일에 꼰대 따라 교회 가고 싶냐? 넌 그래 본 적 있어? 없지? 누가 그렇게 살아, 씨발.”

없다. 난 그럴 부모님이 없으니까 이 개새끼야. 나는 욕지거리를 참으며 물었다.

“그럼 교회는 왜 가셨습니까?”

“오라니까 갔지. 꼰대 말 안 들으면 용돈 끊기니까. 가진 건 돈 밖에 없는 노인네. 옆에서 보필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돈을 뜯어내지.”

하, 뭐 이런 미친 새끼가 다 있냐? 나는 짧은 한숨을 쉰 뒤 물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을 하고, 제임스 박에게 연루되어 작전에 휘말려 막대한 빚을 졌습니다. 맞습니까?”

“하, 내가 병신이지. 그 새끼는 내가 꼭 잡아 죽인다.”

어차피 넌 못 나가, 이 자식아.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아버지께 빚을 갚아 달라고 하셨죠?”

김상식의 얼굴에 분노가 서린다.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때린 김상식이 소리쳤다.

“내가 평생 꼰대 눈치 보고 살았어! 왜? 이런 일 막아 달라고! 그런데 뭐? 너 같은 새끼는 쓰레기라고? 그게 씨발 자식한테 부모가 할 소리야?”

아주 용기 있는 부모다, 이 새끼야. 자식한테 그런 쓴 소리를 할 줄 알아야 자식이 올바르게 크는 거다, 이 호로 새끼야.

“옷은 왜 벗었습니까?”

“몰라서 묻···”

김상식의 말이 멈춘다. 눈썹을 꿈틀거린 그가 날 바라본다.

“대답하세요.”

김상식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어떻게 알았지?”

“·····················”

김상식의 입장에선 귀신이 곡할 노릇일 것이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머리에만 피가 묻어 있었는데 다른 곳은 멀쩡했죠. 아, 그 오른쪽 다리 빼고.”

“·····················..”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으면 몸에 피가 많이 묻었을 겁니다. 허나, 머리를 제외하고는 깨끗했죠.”

김상식의 눈이 뒤룩뒤룩 굴려진다. 꼭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 눈빛 같다.

“샤워한 겁니까?”

“·····················.”

김상식의 눈썹이 다시 꿈틀거린다. 나는 그의 반응을 보고 상황을 유추하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비정한 아들은 알몸으로 부모를 살해하고 태연하게 샤워를 해 피를 씻어낸 것이다. 잠시 후 내가 눈을 뜨자, 김상식이 날 빤히 바라보고 있다.

“진짜 신기한 새끼네, 이거?”

“··················..”

“어떻게 알았지?”

“··················..”

내가 답을 하지 않자, 김상식이 말했다.

“그래, 했다. 몸에 피가 묻어 있으면 당연히 내가 용의선상에 오를 테니까.”

“머리는 왜 안 감았습니까?”

“몰랐으니까, 씨발.”

“·····················”

몰랐다? 샤워를 해 몸에 튄 피를 씻어낸 사람이 자기 머리에 묻은 피는 몰랐다? 그게 말이 되는 일일까? 그때 순간적으로 부모를 죽이기 위해 화장실에서 준비하던 김상식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거울장을 열어 둔 것이 기억 났다. 만약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쳐졌다면 머리도 감았을 것이다.

나는 가만히 김상식을 노려보다 말했다.

“흉기는 어디 숨겼습니까?”

“몰라, 어디 있겠지.”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말씀하시죠?”

“아까 통화하는 거 들어보니 내 동선 뒤져서 찾는다며? 그 형사가 찾아오겠지.”

“쓸데없는 헛수고를 줄이자는 겁니다.”

“그러면? 나한테 뭐가 좋은데?”

“··················.”

“지랄, 너희들이 직접 찾아, 짜바리 새끼들아.”

흉기는 반드시 찾아야 한다. 하지만 김상식이 범인임을 밝힐 자료는 이미 충분하다. 지금의 진술도 모두 녹화되고 있기 때문에 법정 증거는 차고 넘친다. 그런데 이상하다. 김상식의 태도는 모든 걸 포기한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그는 피식 피식 웃고 있다.

“뭐가 웃깁니까?”

김상식이 실실 쪼개며 말했다.

“어, 너 때문에 웃는 거 아니니까 신경 꺼.”

“왜 웃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강하게 묻자 김상식이 날 노려본다. 가만히 나와 눈싸움을 벌이던 녀석이 입을 연다.

“제임스 박 새끼 생각했다. 됐냐?”

“무슨 생각 말입니까?”

김상식이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죽일까 고민하고 있었지. 그 새끼 가족들도 싹 죽일 거야.”

“··················.”

하, 이 또라이 새끼가 끝까지.

“당신 어차피 존속, 연속 살인 및 방화죄입니다. 평생 못 나올 겁니다.”

“낄낄.”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시죠.”

“킥킥, 형사라는 새끼가 법 더럽게 모르네.”

“··················”

이 자식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김상식이 씩 웃으며 말했다.

“마약 쪽 엮은 거 너지?”

“··················”

“맞지? 마약 투여 혐의 뒤집어 씌워서 일단 나 수사하려고 그랬던 거 맞지?”

나는 말을 아꼈다. 김상식은 내 표정을 보고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고 생각했는지 웃는다.

“낄낄, 너희 실수했어.”

실수? 무슨 실수를 했다는 걸까, 이 미친놈이. 김상식이 몸을 내밀며 미소 짓는다.

“마약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이 개새끼 말이 옳다. 김상식은 마약 투약을 인정한 상태다. 그에게는 엄청난 변호사들이 붙어 있는 상태. 그들은 마약으로 인한 심신미약을 주장해 김상식의 범행에 고의성이 없음을 주장할 것이 분명하다.

김상식은 내 놀란 얼굴이 재미 있다는 듯 키득거린다.

“뭐, 한 6년 살겠지. 소름 끼치는 거 말해줄까, 아저씨?”

김상식이 몸을 내밀어 내 얼굴로 다가온다. 싱글싱글 웃는 녀석이 말했다.

“나 6년 살고 나와도 30대다?”

이런 새끼가 또 다시 사회에 나온다고? 설마, 우리나라 법에 아무리 구멍이 많다고 해도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을 부정하려 머리를 써봐도 부정할 방법이 없다. 참혹한 현실이지만 이 개새끼의 말이 옳다. 그는 마약을 했고, 그것은 심신미약상태를 주장할 중요한 증거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 경찰이 증명해준 꼴이 되었다.

“하···”

그때, 노크소리가 들리며 KCSI가 들이닥쳤다. 방호복을 구비한 요원들이 내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용의자 종아리에 인교상 본 뜨러 왔습니다.”

나는 얼른 하라는 듯 눈짓했다. 김상식은 계속 실실 웃으며 다리를 척 내민다. 어차피 그에게 살인은 더 이상 숨겨야 할 비밀이 아닌 모양이다. 요원들이 열어 두고 온 문으로 최영현의 얼굴이 보인다. 아까 내 전화를 받고 급히 복귀한 모양이다. 잠깐 나오라는 눈짓을 하는 최영현.

나는 김상식을 노려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원들 보호를 위해 밖에 있던 경비인력을 들여보내고 밖으로 나오자, 최영현이 말했다.

“상황 어떻게 된 겁니까?’

나는 최영현에게 현재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는 내 설명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

“오른쪽 다리에 인교상 있는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

“예?”

“그······..”

“답답하게, 얼른 말해 봐요.”

“그···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던 간호사가.”

“간호사가 증언했습니까? 그쪽은 다 한통속 아니었습니까?”

“아뇨, 김상식이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잠깐 응급실에 있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담당 간호사가 증언을 해줬는데 머리 쪽이 피에 젖어 있었고, 오른쪽 다리에서 출혈이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휴, 다행이다. 이건 사실이니까 나중에 최영현이 알아본다 해도 들통날 염려는 없다. 최영현이 미심쩍은 얼굴로 날 바라보다 물었다.

“그 증언 하나로 어떻게 인교상이 있다는 유추가 됩니까?”

“··················..”

“그냥 찰과상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불길 속에서 빠져나오면서 부상당했을 수도 있는데.”

“·····················.”

하, 제길. 이놈의 거짓말은 왜 해도해도 늘지를 않을까? 나는 할말을 찾지 못해 머뭇거렸다. 최영현은 가만히 날 바라보다 내 어깨를 꽉 잡는다.

“대단하십니다!”

응?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래? 최영현은 정말 놀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네요. 만약 그게 아무 것도 아닌 부상이라면 왜 병원에서 화상 외에 아무 외상이 없다고 보고했겠습니까?”

헉, 그러네?

“그, 그렇죠? 하하···”

최영현이 내 어깨를 팡팡 두들긴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지? 하, 진짜 머리 잘 돌아가시네. 역시 경대 수석인가?”

나는 억지로 썩은 미소를 지었다. 뭐라고 오해하든 서울만 가면 된다. 최영현이 주먹에서 우두둑 소리를 내며 말했다.

“자, 그럼 이제 흉기 찾죠. 그건 제가 합니다.”

“저, 최 경위님.”

“예.”

“병원 놈들, 변호사 법률 사무소 쪽. 가만 두면 안 되지 않을까요?”

최영현이 실소를 지었다.

“아까 여기 들어 앉아 있던 변호사 놈이 차 타고 급히 나가더니 그것 때문이었군요. 이미 텃습니다. 헛수고하지 말자고요, 우리.”

“그냥 두면 계속 이런 짓을 저지를 겁니다, 경위님.”

최영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 아까 나간 변호사가 뭘 할 것 같습니까?”

“··················..”

“병원에 알리겠죠? 아마 병원에선 주치의 단독 행동이었다며 꼬리를 자를 겁니다. 주치의는? 이미 사직서 내고 어디 해외로 떴겠죠. 병원에선 법률 사무소와 자신들 간에 어떤 거래도 없었다고 잡아 뗄 겁니다. 그럼 어떻게 되느냐? 아무 것도 못 합니다. 그냥 담당의 하나 해외로 튀고 끝이라는 거죠.”

하, 젠장. 진짜 이렇게 되는 건가? 최영현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우리가 하는 일 말입니다.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저 새끼 저거 안 봐도 비디오지. 심신미약 주장할 겁니다. 마약 처먹은 거 기록에 남아 있으니까. 그럼 존속살인, 연속살인, 방화를 다 엮어도 몇 년 안 살고 나올 겁니다.”

“··················..”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저런 악마를 정말 이렇게 밖에 조치하지 못하는 걸까? 최영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괜한 일에 힘쓰지 마요. 우리가 할 일은 다 한 겁니다.”

말은 그리하지만 최영현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얼굴이다. 하지만 노련한 형사 답게 현재 자기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허무함과 공허함에 몸부림 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금세 깨닫고 기지개를 편다.

“저 새끼 흉기 위치 말 안했죠?”

“예···”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 고생 좀 하겠네. 전 관우 놈 데리고 CCTV 따러 갑니다.”

“예···”

멀어지는 최영현의 넓은 등판을 가만히 바라보는 나.

나는 어쩐지 범인을 잡고도 시원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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