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 화. 목소리(Voice) (4)
3층 302호 앞.
연주가 초인종을 누르고 최영현과 나는 한걸음 물러났다. 성범죄 피해자가 남성에게 가지는 혐오감과 두려움, 공포심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초인종 소리가 울리고, 문 안쪽에서 인기척이 났지만 여느 집을 방문했을 때처럼 ‘누구세요?’라는 말은 들려오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 문 뒤에 웅크리고 있는 기척만 느껴질 뿐이다.
연주는 이런 탐문을 자주 해봤는지 안쪽에서 자신의 얼굴이 가장 잘 보이는 각도로 서서 말했다.
“황지영씨? 조금 전 전화 드렸던 종로경찰서 김연주 경사입니다.”
“··················”
연주는 능숙하게 품에서 신분증을 꺼내 현관문 구멍 쪽으로 들어올린다.
“여기 신분증입니다.”
“·····················”
“잠시 인터뷰 가능할까요?”
잠깐 침묵했던 안쪽에서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혼자··· 오셨나요?”
연주가 물러나 있는 나와 최영현을 힐끔 본 후 최대한 황지영이 안심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사건의 담당형사님들과 함께 왔습니다.”
“·····················”
“괜찮습니다, 두분 모두 진짜 경찰입니다.”
“확실한가요?”
“네, 신분증 보여 드리겠습니다.”
연주가 손을 내민다. 나와 최영현은 얼른 품을 뒤져 신분증을 넘겨준다. 연주는 사진이 잘 보이게 신분증을 내밀며 말했다.
“여기 두 분입니다. 생긴 것과 다르게 바른 경찰입니다.”
최영현의 얼굴이 구겨진다. 생긴 것과 다르게 바른 경찰이란 말은 분명 자신을 지목해 먹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 양반이 인상이 좀 더럽긴 하지. 잠깐 고민하던 황지영이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연주는 탐문에 능숙한 경찰 답게 황지영이 열어주는 문고리를 잡아당기지 않고 물러난다. 그녀가 열고 싶은 만큼 문을 열게 해주는 것으로 이 인터뷰에 자유의지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연주와 눈을 맞춘 황지영은 그녀의 뒤에 있는 우릴 보고 흠칫 몸을 떤다. 특히 최영현 쪽을 보았을 때는 정말 두려운 얼굴이다. 이런 사람이 과연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까? 연주가 내게 눈짓한다. 자신이 계속 주도할 건지, 내가 나설 것인지를 묻는 모양이다.
나는 연주가 이미 보여줬던 신분증을 다시 보여주며 말했다.
“종로경찰서 강력 3반 현도경 팀장입니다.”
일부러 계급이 아닌 호칭을 말했다. 굳이 동성의 형사 대신 내가 나서는 이유를 상대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황지영은 팀장이란 소리에 별말 없이 문을 조금 더 연다.
“무슨 일이신지···”
나는 일단 황지영의 외모부터 살폈다.
머리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
피부가 매우 하얗고, 입술은 붉다. 하지만 사건을 당하고 관리를 하지 않았는지 피부가 푸석하고 입술은 갈라져 있다. 긴 생머리 역시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머리 끝이 갈라져 있다.
내 경험이 짧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나는 성범죄 피해자를 처음 만나본 것이다.
‘성범죄 피해자 접촉 시 주의해야 할 점.’
상대는 피해자다. 사건이 접수되고, 범인은 잡혀 감옥에 갔지만 정작 삶이 무너진 것은 피해자 쪽이다. 우리는 이러한 피해자들을 재 접촉 시 조심해야 할 점 몇 가지를 상기해야 한다.
첫 번째, 신체적 접촉을 금하라.
가급적 피하라가 아니다. 완전히 금해야 한다. 작은 접촉으로도 상대에게 끔찍한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할 수 있다. 그것은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행위이다.
두 번째, 되도 않는 위로를 삼가라.
이겨내라, 성장해라, 버텨라. 말은 쉽다. 말 하는 쪽은 피해자의 경험이 없으니까. 하등 위로도 되지 않는 소리는 잔소리다. 모든 것은 네가 약해서 그렇다는 말로 들린다. 그저 혼자 있을 시간을 주어라. 인간은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 당신이 잔소리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 없다.
세 번째, 동정하지 마라.
조심하되, 동정의 눈빛을 보내지 마라. 상대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건 내가 제일 잘 안다. 세상은 내가 고아라는 사실을 밝히면 대부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정작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그들의 눈빛 때문에 되려 상처를 받았다. 성범죄 피해자들도 마찬가지다.
네 번째, 갑자기 움직이지 마라.
상대에게 모든 남자는 잠재적 범죄자다. 잔뜩 경계하고 있는 자 앞에서 갑자기 움직이는 것은 상대를 놀라게 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최대한 천천히 움직여라.
이 순간 떠올릴 수 있는 건 고작 경찰대 시절에 배운 지식뿐이다. 하지만 교과서는 괜히 교과서가 아니다. 수많은 경험들이 몇 줄의 교과서 안에 녹아 있다. 나는 배운 그대로 양손바닥을 보이며 천천히 한걸음을 걸었다.
“괜찮으시면 잠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겠습니까? 물론 이쪽 김연주 경사도 동행합니다.”
황지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나와 연주를 번갈아 보다 최영현을 힐끔 보더니 몸을 움츠린다. 눈치 빠른 연주가 얼른 말했다.
“최 경위님은 잠깐 차에 계시겠어요?”
최영현은 살짝 기분이 나쁜 표정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인상이 더러운 것을. 평소 그의 성격이었다면 욕은 안 해도 혀라도 한번 차며 기분 나쁜 기색을 보였겠지만 그도 성범죄 피해자 앞에서는 얌전히 물러나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그 역시 아주 천천히 발소리를 내지 않고 내려가고 있다.
최영현이 내려가자 연주가 나서며 말했다.
“들어가도 될까요?”
황지영은 최영현이 내려간 계단 쪽을 힐끔 본 후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난다.
“네··· 들어오세요.”
연주가 먼저 들어가고, 나는 조금 늦게 들어갔다. 황지영은 불안한지 연주 곁에 딱 붙어 함께 움직이고 있다. 사건이 난 건 7년 전. 하지만 무려 7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피해자는 저런 공포 속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불쌍하지 않다고 생각한 건 처음이다.
연주의 팔을 붙잡고 거실로 가는 황지영. 낡은 파란색 소파에 황지영을 앉힌 연주가 그녀를 안심시킨다.
“괜찮아요, 아까 나간 우락부락한 형사님이 생긴 것과 다르게 제대로 된 형사예요. 지금쯤 집 주변에 위험한 건 없는지 살펴 주고 계실 거예요.”
“························”
황지영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녀의 손을 꼭 잡는 연주. 황지영 쪽에서 먼저 손을 잡고 있었으니 불필요한 신체접촉으로 볼 수는 없다. 연주는 슬쩍 내게 눈짓을 한다. 자신이 주의를 끌고 있는 동안 집을 확인하란 뜻이다. 사전에 질문 리스트를 뽑아 회의를 했으니 황지영과 인터뷰는 연주에게 맡기는 편이 좋겠다.
302호는 방 두 개에 주방과 거실이 딸려 있는 비교적 작은 집이다.
방이 두 개라고는 하지만 문이 열려 있는 방의 크기를 보니 여느 집 화장실만큼 작다. 물론 내가 사는 고시원 방에 비하면 오성 호텔 같지만 낡은 물건들을 보았을 때 궁핍한 삶이 어느 정도 보인다.
열려 있는 방은 황지영의 방 같다. 나는 조금씩 뒷걸음질을 쳐 열린 틈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방을 힐끔거렸다. 낡은 침대, 침대보는 푸른색이다. 여기 저기 구멍을 기운 자국이 있는 매우 낡은 침대보다. 침대 옆에 작은 화장대가 있고, 노트북 한 대가 있다. 작은 창문에 커튼이 달려 있고, 낡은 옷장이 하나 있다.
방에 있는 건 그게 전부다. 저 나이 또래들이 가지고 있을 만한 연예인 브로마이드 한 장 없는 무미건조한 방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방. 저곳은 문이 닫혀 있어 안을 볼 수가 없다. 나는 연주가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인터뷰를 들으며 주변에서 혹시 있을지 모르는 범행의 흔적을 찾았다.
“불편하시면 답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시작해도 될까요?”
“네···”
“다시 기억을 떠올리게 해드려 정말 죄송합니다만, 7년 전 사건에 대해 여쭈러 왔습니다.”
“············..”
“혹시 가해자의 신상을 알고 계십니까?”
“아니요··· 오빠가 알아 내려고 했는데 경찰이 알려주지 않았어요.”
당연하다. 피해자의 가족이 복수하려 할 수 있기 때문에 사건의 심각성을 고려해 신상정보 공개를 결정한 범인이 아닌 경우 범인의 정보는 철저히 비밀로 한다. 망할 범죄자 인권 문제 때문이다. 연주가 가만히 황지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실례지만, 이틀 전 새벽에 어디 계셨습니까?”
“새벽··· 이요?”
“네, 밤 11시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어디 계셨습니까?”
“집에 있었어요.”
“혼자 계셨습니까?”
“네··· 오빠가 군대 간 후엔 계속 혼자 지내거든요.”
“아무데도 안 나가시나요?”
“아뇨··· 학원 다녀요. 일주일에 세 번이요. 근데 이틀 전이면 월요일이니까 학원 가는 날 아닌데.”
“학원은 언제 가시죠?”
“화, 목, 토요일이요.”
“그 외에 외출은 안 하시고요?”
“2주에 한번 병원에 가요.”
병원. 그녀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무려 7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 것이다. 연주는 그녀의 사정에 코끝이 찡해지는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병원은 보통 무슨 요일에 가시나요?”
“월요일이요.”
“언제 마지막으로 방문하셨나요?”
“지난 주 월요일이요. 다음 주에 가야 돼요.”
“이번주 월요일은 안 가셨군요?”
“네.”
지금쯤 밖에서 최영현이 CCTV 위치를 따고 있을 것이다. 저 진술은 CCTV를 확인하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다행이다. 피해자가 삶을 포기하지 않아서. 학원을 다닌다는 건 무언가 배우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꿈이 있다는 방증이다. 정말 다행이다.
김연주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건 이후로 가해자가 주변에 온 적이 있나요?”
“네···?”
황지영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연주의 옷깃을 꽉 붙잡는다. 생각만 해도 힘든 모양이다. 큰 눈으로 고개를 세차게 저은 황지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없어요··· 항상 오빠와 같이 다녔어요.”
“오빠는 언제 군대에 가셨나요?”
“한달 전이요.”
음, 한달. 아직 훈련소에서 한창 구르고 있을 시기다. 훈련소는 휴가나 외박이 없다. 한달 전에 군대를 갔다면 용의선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맞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대한민국에서 군대는 감옥과 비슷하다. 절대 나올 수 없는 곳에 갇혀 있던 사람은 용의자로 볼 수 없다.
연주가 날 바라본다. 난 닫힌 문을 눈짓하며 물어보라 지시한다. 연주는 찰떡 같이 내 신호를 알아듣고 물었다.
“저쪽 방이 오빠 방인가요?”
“네···”
“제가 잠시 봐도 될까요?”
“네? 오빠 방은 왜···”
“확인할 것이 좀 있어서 그래요. 부탁합니다.”
황지영은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뒤지진 마세요. 오빠가 싫어해요.”
“물론입니다.
황지영은 오빠 방으로 가다 중간에 서 있는 날 보고는 멈칫하더니 일부러 빙 둘러 방으로 간다. 나와 스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일부러 팔짱을 끼고 베란다 쪽으로 왔다. 그녀의 동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되지만 황지영을 범인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저렇게 심약한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는 건 쉽지 않다. 단순히 이것으로 단정 짓는 건 아니다. 하지만 황지영의 신체를 보면 저 마르고 약한 몸으로 시신을 낙산공원 정상에 올려놓을 수 없다는 건 어린 아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창 밖을 보니 최영현이 담배를 물고 주변을 거닐고 있는 것이 보인다. 역시 경험 많은 형사 답게 CCTV 위치와 기기번호를 수첩에 메모 중이다. 바로 그때, 오빠 방을 보러 갔던 연주의 목소리가 들린다.
“팀장님···”
대답을 하긴 좀 그렇다. 황지영이 내 목소리도 싫어할 수 있으니까. 연주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심각한 표정이 된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왜 그러는 거지? 연주가 반쯤 열린 방문을 슬쩍 안으로 밀며 눈짓한다.
“좀 보세요.”
약간 물러나 있는 황지영이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방으로 걸어간 나. 열린 방문 안의 광경을 보는 순간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벽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가득 붙어 있는 애니메이션 포스터. 침대 위에는 각종 애니메이션 캐릭터 인형들이 놓여 있고, 매니아들이 본다는 일본어 만화잡지책이 한쪽에 가득하다.
“이건···.”
그때 연주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저기.”
연주가 눈짓하는 곳. 붙박이장의 문이 열려 있고 그 안에 세 자루의 일본도가 걸려 있는 것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