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29화
11. 주유소 습격사건(12)
고성진은 스무 살이라도 고등학생이다. 대한민국의 법은 성인이 된 나이라 하더라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미성년자로 규정한다.
하지만 강력 범죄의 경우 미성년자와 다른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일부러 테이블 위에 수갑을 올려두었다. 그리고 슈트 앞섶을 열어 건 캐리어가 보이도록 앉았다.
고성진을 압박하기 위해서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 안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고성진도 총과 수갑 앞에서는 얌전한 고양이가 되었다. 고성진은 자꾸 내 건 캐리어를 힐끔거리며 더듬는다.
“그, 그게 저기.”
나는 아예 외투를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옆구리 안쪽에 메인 권총을 본 고성진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그 새끼들 이름도 몰라요, 전.”
나는 검지와 엄지를 비비며 말했다.
“그건 아까 들었고. 가슴에 일본어 문신 한 놈 인상착의 말해봐.”
고성진이 잠시 머뭇거리다 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마른 체형에 삭발이요. 내가 말했다고 하시면 안 돼요. 저 진짜 죽어요, 아저씨.”
마른 체형에 삭발. 내가 본 녀석과 비슷하다.
“문신에 대해 말해봐.”
“삭발 새끼요?”
“그래.”
“그게…… 문신해 주면서 상체는 봤는데. 일본어 문신이 가슴에 있었고, 어깨에 천지신명이라고 써 있었어요.”
“끝인가?”
“그게, 제가 뱀 문신을 해주긴 했는데.”
나는 말없이 손등을 눈짓했다. 그러자 고성진이 눈을 번쩍 뜨며 고개를 마구 끄덕인다.
“맞아요! 팔뚝에서부터 손등까지 가시나무 문신이 있었어요, 속에 해골이 숨어 있는 문양.”
이 자식이 맞는 것 같다.
“네가 새겨준 건 뱀 문신뿐인가?”
“예, 딴 새끼들도 제가 해줬어요.”
“넷이라고 했지?”
“처음에 찾아온 놈은 넷이었어요.”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나중에 또 다른 녀석들이 찾아왔다는 뜻인가?”
고성진이 한숨을 쉰다. 자기도 모르게 테이블 위에 있던 담배를 잡으려던 녀석이 멈칫하며 내 눈치를 본다. 나는 가만히 고성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무 살이라도 담배는 교복 벗는 날부터 피워라.”
“예…….”
“계속 말해.”
고성진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삭발 새끼부터 문신 시작했고, 다음으로 나머지 셋이 시술받았어요. 나중에 친구들이라고 잔뜩 데려왔는데 총 여섯이었고요.”
“처음은 넷, 다음은 여섯. 그럼 총 열인가?”
“예.”
“전부 뱀 문신 해줬어?”
“예, 우정 문신이라고 하던데. 그 새끼들 때문에 영업도 못 했어요. 열 명이나 되는 놈들 뱀 문신 하고 돈도 못 받고, 제길.”
나는 고성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열 명 중에 이름 아는 놈 하나도 없어?”
고성진이 고개를 젓는다.
“없어요.”
음, 이 녀석도 학교 안에서나 떵떵거리며 사는 녀석인가 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으며 말했다.
“너 학교 나와도 수업 안 들어가면 올해도 졸업 못 한다. 내년에도 여기서 보내고 싶어?”
“…….”
“학교에서 늙어 죽어 귀신이 되고 싶지 않으면 수업 들어가라.”
“예…… 그런데 형사님.”
“왜?”
“제가 문신해 준 거 누구한테 들으셨어요?”
“…….”
순간 하나 얼굴이 스쳐 간다. 정보원이라고 할 건 없지만 진술을 해준 사람은 보호해 줘야지.
“알아서 뭐 하게.”
“아니, 뭐 그냥.”
“소문 들었다. 조폭들 쪽에서.”
고성진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조, 조폭들이요? 소문이 났어요?”
“그래, 웬 고삐리가 장난 같은 문신 새기고 다닌다고 웃더라.”
“…….”
“그러니까 그만둬. 괜히 조폭들한테 끌려가서 처맞지 말고.”
고성진이 고개를 푹 숙인다. 조폭들이 자기 문신을 인정해 주길 바랐던 모양이다. 그 실력으로 무슨 인정을 바라냐, 녀석아. 공부를 더 하든가.
나는 고성진의 담배와 라이터를 빼앗은 후 학생부실을 벗어났다. 선생과 함께 밖에서 기다리던 우진이 보인다.
“담배 태워?”
“예? 아, 예…….”
나는 고성진에게서 빼앗은 담배와 라이터를 던져주며 말했다.
“너 피워라.”
얼결에 담배와 라이터를 받아 든 우진. 영문 모를 얼굴로 담배를 보던 우진은 그것이 고성진에게서 빼앗은 것임을 알아채곤 인상을 쓰며 선생에게 넘겨준다.
“압수 물품을 가질 순 없죠. 선생님께서 보관해 주세요.”
“아…… 예. 그런데 성진이 안 데려가십니까?”
우진이 먼저 가는 날 힐끔 보며 말했다.
“그냥 몇 가지 물어보러 온 겁니다. 별일 아니니 시끄럽게 할 것 없죠. 그럼 이만.”
멍청한 표정으로 담배와 라이터를 들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선생을 뒤로하고 학교 밖으로 나온 우리.
정문 앞에 아직도 하나와 두 명의 여학생이 있다. 그녀들은 우리를 보더니 냉큼 달려와 말했다.
“아저씨! 성진 오빠 어떻게 했어요?”
“안 잡아가요?”
나는 여학생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하나를 보았다. 하나는 꽤 겁을 먹었는지 내 눈빛을 받고는 주춤거린다.
“저기…… 오빠한테 내 이름 말 안 했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대로 학교를 벗어났다.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된 차에 올라탄 나는 우진에게 지시를 내렸다.
“범인 숫자를 최소 열 명으로 규정한다. 모두 뱀 문신이 있을 거야. 여주경찰서에 지원 요청해서 뱀 문신 있는 놈들 전부 확인해.”
“예, 과장님.”
* * *
문신으로 범인을 잡아야 할 때. 경찰은 어떻게 할까?
길 가던 사람들 붙잡고 전부 옷을 벗겨볼까? 조폭들 사무실에 쳐들어가서 전부 발가벗겨 볼까? 그런 짓을 했다가 인권 문제로 고소당하기 십상이다.
경찰은 이럴 때 전과자 기록을 본다. 전과자 중 몸에 문신이 있는 범죄자는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두기 때문이다.
연주와 우진이 가져온 산더미 같은 서류들. 나는 책상에 앉으며 내 키보다 높이 쌓인 서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걸 다 언제 보냐?
연주와 우진도 내 마음과 같은 모양인지 한숨을 쉬는 것이 보인다.
“알지? 뱀 문신. 그거 찾아.”
“작은 뱀도 찾아야 됩니까?”
“아니, 팔뚝보다 큰 것만.”
“예, 알겠습니다.”
우진과 연주가 서류를 넘기기 시작한다. 사진만 확인하면 되는 일이었기에 빠르게 진행되는 일. 그때 구석에서 이번 일에서 빠지고 CCTV를 추적하던 관우가 손을 번쩍 든다!
“과장님 잠깐만.”
나는 보고 있던 서류만 확인한 뒤 일어나 관우 자리로 갔다.
“뭐야?”
“여기 보세요.”
CCTV 영상 속에 렉서스 차량과 낡은 소나타가 보인다.
“찾았어?”
“예, 화성 소금 공장에서 추적하다 산길로 올라간 후에 사라졌었는데, 고속도로에서 다시 발견했습니다.”
“방향 어디야?”
“여주 방향입니다. 손은정 씨 사망 후 세 시간이 지난 뒤이고요.”
“잘했어, 계속 추적해. 언젠가 아지트로 갈 거야.”
“예, 과장님.”
그때 우진이 서류를 보다 말고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린다.
“예, 선배님. 예? 아…… 정말이요? 어…… 일단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내가 우진을 보자 멍한 얼굴의 우진이 날 바라본다. 왜 저러지?”
“무슨 일이야?”
우진이 전화기를 든 채로 굳었다.
“과장님…….”
“음?”
“아까 본 여학생…… 말입니다.”
아까 본 여학생 하나와 친구 둘을 말하는 거구나.
“그런데?”
“경찰서에 찾아와서 과장님을 찾는다고 하는데.”
뭔가 더 말해줄 것이 있는 걸까? 그런데 이 녀석 표정은 왜 이런 거지?
“그래서?”
“그게…….”
우진이 일어나며 말했다.
“하나가 납치당한 것 같답니다.”
나는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뭐라고?”
우진이 얼른 상의를 입으며 말했다.
“저도 전화로 전달받은 거라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일단 가 보시죠.”
나는 우진과 함께 본관으로 달려갔다. 형사계로 들어가자, 입구 쪽 벤치에 앉아 있던 두 여학생이 벌떡 일어나 울상을 짓는다. 하나가 없다.
“아저씨!”
나는 두 학생을 바라보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말 하나가 없다.
“어떻게 된 거야?”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여학생이 울먹이며 말했다.
“아저씨 가고 나서 15분쯤 있다가 집으로 갔는데 하나가 갑자기 연락이 안 돼요.”
여학생이 핸드폰을 보여준다. 최하나라는 이름 옆에 괄호 안 숫자. 전화를 건 횟수가 표기된 숫자란에 31이라고 써 있다. 무려 31통이나 전화를 해본 것이다.
옆의 학생도 핸드폰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톡이다.
“톡도 안 봐요. 하나 한 번도 이런 적 없었어요. 불안해서 보육원에 전화해 봤는데 아직 안 왔대요. 어떡해요?”
친구 걱정에 이빨을 딱딱 부딪칠 만큼 긴장해 있는 두 여학생이 내게 들러붙으며 말했다.
“아저씨! 성진 오빠 이야기 해서 그런 건가 봐요. 제발 하나 구해주세요, 네?”
“아저씨가 책임져야 돼요! 하나 진짜 크게 다칠 수도 있어요! 성진 오빠가 얼마나 무서운데요!”
학교 정문에서 하나와 대화했던 것을 보는 눈이 있었던 걸까.
고성진이라. 그렇게 간담이 큰 녀석 같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교내에서 권력을 휘두르던 녀석이 경찰의 방문에 잔뜩 쫄았다는 소문이 나면 창피하니 보복을 한 모양이다.
나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우진아.”
“예, 과장님.”
“고성진 잡아와.”
“예!”
우진이 뛰어나간다. 나는 두 여학생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헤어질 때 특별한 일은 없었고?”
불안한 눈동자를 뒤룩거리던 여학생들은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집에 가는 길에 뭐 먹고 가자고 했는데 하나가 돈 없다고 자긴 먼저 간다고 했어요.”
“그 길로 연락이 안 돼요. 보육원 가는 길로 가는 것까진 봤는데.”
집에서 보육원까지 가다 사라졌다.
“보육원 이름이 뭐야?”
“푸른 보육원이요.”
“알았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 있어.”
“아저씨! 저희 무서워요, 성진 오빠가 우리도 찾고 있으면 어떡해요? 저희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돼요?”
나는 형사계를 둘러보았다. 다들 각자 사건 때문에 바쁜 형사들이 보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별관으로 와 연주에게 부탁했다. 연주도 바빴지만 사정을 듣더니 알겠다며 아이들을 맡아준다.
나는 사무실 밖으로 나와 우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과장님.
“고성진 잡았어?”
-학교에 없습니다. 교무실에 요청해서 주소를 받아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도 없고?”
-집 나간 지 일 년도 넘었답니다. 혼자 사는 모양입니다.
젠장, 하나가 나쁜 일을 당하기 전에 잡아야 된다. 강도살인 용의자를 쫓아도 부족할 시간에 예상치 못한 사건이 생겼다.
하지만 일에 경중은 없다.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아이가 납치당했다.
고성진이 살인범은 아니니 죽이지야 않겠지만 그렇다고 어린아이가 피떡이 되도록 맞고 있는 걸 지켜만 볼 순 없다.
“최대한 빨리 찾아. 남학생이 여학생을 납치했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잘 알지?”
-예…….
“한시가 급하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도 하나를 찾아보기 위해 주차장으로 가던 중 문득 고성진의 말이 생각났다.
‘맞아요! 팔뚝에서부터 손등까지 가시나무 문신이 있었어요, 속에 해골이 숨어 있는 문양.’
그리고 거짓말처럼 아까 고성진을 협박할 때 녀석의 손등을 본 기억이 났다. 긴 맨투맨 티셔츠를 입고 있어 손등 전체가 보이진 않았지만 문신이 있긴 했다.
문신 업체 사장부터 시작해서 요즘 온몸이 문신인 녀석들을 하도 많이 봐서 그냥 넘겼지만 소매 아래로 살짝 드러난 손등에 가시나무 같은 문양이 있었다.
순간 떠오른 기억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나는 얼른 별관 사무실로 달려가 문을 벌컥 열고 여학생들에게 소리쳤다.
“너희들! 고성진 상체 본 적 있어?”
갑자기 버럭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연주가 타준 커피를 쏟아버린 여학생들.
“예……?”
“고성진 상의 벗은 거 본 적 없어?”
“그게…… 여름에 농구 할 때 윗옷 벗은 거 본 적 있는데.”
나는 급히 여고생을 붙잡고 물었다.
“몸에 문신 있었지?”
여고생은 문신을 새겨주는 고성진의 몸에 문신이 있는 게 뭐가 특이한 일이냐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문신이었는지 기억해?”
여고생들이 서로를 바라보다 동시에 말했다.
“뱀이요.”
“뱀.”
씨X, 고성진 이 새끼도 공범이었다. 내가 놓친 거다.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