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30화
11. 주유소 습격사건(13)
연주가 고성진의 핸드폰 위치를 확인 후 말했다.
“과장님! 현재 위치 세종로 쪽입니다!”
나는 재빨리 주차장으로 뛰며 말했다.
“계속 위치 알려줘!”
“네!”
세종로 쪽으로 차를 몰고 가며 우진에게 전화를 걸어 합류를 지시했다. 우진은 이쪽 지리를 잘 아는 녀석답게 추적 중에 내 차 뒤를 따라붙는다.
연주와 연결해 둔 핸드폰에서 끊임없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여주대 삼거리에서 좌회전, 정문 진입 후 곧바로 우회전하세요. 용마 체육관 쪽입니다.
뭐야, 대학교 안으로 들어갔다고?
학교 안으로 진입하자, 학생들이 없는 한산한 시간의 대학교가 보인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저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용마 체육관 앞에 차를 세우고 전화에 대고 물었다.
“체육관 안이야?”
-기지국 전파 범위로 봐야 해서 확실하지 않습니다. 체육관 부설 건물은 총 세 곳입니다. 모두 확인해 봐야 합니다.
“알았어.”
내가 차에서 내리자 내 차 바로 옆에 주차한 우진이 뛰어내린다. 나는 눈짓으로 메인 건물 양옆에 있는 작은 건물들을 눈짓했다.
“네가 왼쪽, 내가 오른쪽. 수색 후에 별일 없으면 메인 건물에서 만난다.”
“예!”
“총기 소지했지?”
“예, 과장님.”
“가.”
최우진이 먼저 뛴다. 나 역시 내가 맡은 건물을 향해 뛰었다. 아무도 없는 건물 앞에 선 나는 우선 총을 꺼냈다.
문고리를 슬쩍 돌리자 부드럽게 열린다. 여긴 뭣 하는 곳일까?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경기장 같다. 아무래도 농구 코트가 있는 건물인가 보다.
총구를 겨눈 채 문 안으로 들어가 사주 경계를 했다. 저 멀리 반대편 농구 골대 아래 하나가 입에 재갈이 물려진 채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하나는 날 보고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는다. 나는 하나의 신호를 보고 누군가 숨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총구를 겨누고 하나 쪽을 노려보고 있는 내 눈에 농구 코트 우편에서 야구 배트를 질질 끌고 나오는 녀석이 보인다.
그런데 고성진이 아니라 처음 보는 놈이다. 머리는 노란색이고 초록색 패딩을 입은 놈이다. 나는 총구를 겨누고 말했다.
“가만있어.”
“…….”
놈은 말없이 배트를 질질 끌고 하나와 나 사이 중간 즈음에 선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또 다른 녀석이 각목을 질질 끌고 걸어 나오는 것이 보인다. 이번에도 처음 보는 놈이다. 촌스러운 올백 머리를 하고 트레이닝복 차림을 한 놈이다.
하나가 잡혀 있는 농구 골대 뒷문에서도 처음 보는 녀석이 쇠파이프를 들고나온다. 셋인가? 나는 총구를 겨누고 천천히 전진하며 말했다.
“대가리 빵꾸 나고 싶지 않으면 무기 버려.”
녀석들은 천천히 걸어와 어깨에 무기를 척 얹으며 히죽 웃고 있다.
“대한민국 경찰이 잘도 실탄 가지고 다니겠네, 낄낄.”
이 새끼들이 드라마를 많이 봤구나. 그런데 어쩌지? 세 발은 공포탄이 맞지만 그다음은 실탄인데.
“객기 부리지 말고 내려놔. 이거 실탄이다.”
“낄낄, 쏴 보든가.”
이 자식들이 도대체 뭘 믿고 설치는 거지? 그때 내 뒤에 있던 건물 정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힌다.
반사적으로 뒤를 총구로 겨누자, 고성진과 또 다른 녀석이 보인다. 나는 고성진 옆에 선 놈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기억에 있는 놈이다. 손은정의 옆에 서 있다가 그녀를 때린 장발. 바로 그 녀석이다. 장발이 고성진에게 물었다.
“이 새끼 맞아?”
고성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팔짱을 낀다.
“맞아요, 형.”
장발 녀석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내게 다가온다. 나는 총을 꽉 잡으며 외쳤다.
“가만있어! 이거 실탄이다!”
장발은 멈칫하더니 씩 웃는다. 그러더니 내 뒤편을 보고 눈짓하는 것이 보인다. 나는 바로 뒤쪽을 겨누었다.
그러자 맨 처음 나타난 초록색 패딩에 노란 머리 녀석이 야구 배트를 질질 끌고 다가온다.
“멈춰!”
하지만 초록색 패딩을 입은 녀석은 겁도 없이 히죽거리며 배트를 질질 끌고 다가온다.
“한 발만 더 오면 쏜다!”
그때, 뒤에서 고성진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이, 꼰대 아재.”
꼰대 아재? 그거 나한테 하는 말이냐? 초록색 패딩을 노려보는 내 귀로 녀석의 말이 이어진다.
“아재가 겨누고 있는 놈 몇 살인지 알아?”
이놈이 몇 살인지 내가 알아서 뭐 해, 이 새끼야. 나는 다시 한번 초록색 패딩에게 경고했다.
“멈추라고 했다.”
하지만 녀석은 천천히 야구 배트를 끌며 다가온다. 고성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열일곱이야, 저 새끼.”
내 눈이 커졌다. 열일곱? 고작 열일곱 살이라고? 고성진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쏠 수 있어? 열일곱인데? 뉴스에 뭐라고 나갈까? 형사가 고작 열일곱 살 꼬마 총으로 쐈다고 나가면 아저씨 어떻게 될까?”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초록색 패딩을 노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무척 앳되다. 노란 머리에 이상한 표정으로 웃기까지 해서 또라이 같아 보이긴 해도 분명히 어린아이다.
농구 골대 아래에 묶여 있던 하나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어 재갈을 풀고 소리친다.
“아저씨! 도망가요!”
다행히 하나 주변에 아무도 없다. 누군가 있었다면 기억 속 손은정 씨처럼 한 대 맞았을 것이다.
나는 서서히 총구를 내린 후 건 캐리어에 총을 넣었다. 초록색 패딩 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히죽거리며 계속 다가온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웃고 있는 고성진에게 물었다.
“다섯?”
고성진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뭐가?”
“다섯 놈이냐고.”
고성진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 다섯이지. 꼰대 아재 하나 묻어버리는데 다섯이면 됐지.”
고성진이 뒤쪽을 보며 눈짓한다.
“아재,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돼? 그 나이 처먹고 상황 판단 느리면 죽어야지. 더 살아서 뭐 해.”
장발과 고성진을 제외한 나머지 셋이 일제히 무기를 꼬나쥐고 뛰어온다. 묶여 있던 하나가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는다.
“아저씨 도망가라고요!”
녀석. 잘나가는 학생인 척 온갖 폼은 다 잡더니. 사실은 착한 아이였구나. 이 상황에 살려달라는 소리보다 도망가라는 소리를 먼저 하는 걸 보니.
나는 주먹에서 우두둑 소리를 내며 고성진을 힐끔 보고 웃었다.
“상황 파악 잘못한 건 너희들 같구나.”
고성진이 인상을 쓰며 반문한다.
“뭐?”
전력으로 달려오는 세 녀석. 그 앞에 선 나는 천천히 두 주먹에 힘을 풀었다.
“애들이니까 적당히 살살.”
* * *
반대편 건물을 수색하고 메인 건물에 한참 서서 기다리던 우진은 도경이 한참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어 도경이 수색하기로 한 건물로 왔다. 총을 꺼내고 문을 연 우진의 눈이 커졌다.
“이, 이게 뭐…….”
문 바로 앞에 고성진이 누워 있다. 이빨 몇 개가 부러져 바닥에 흩어져 있고 녀석은 입도 다물지 못하고 쩍 벌린 채로 신음하고 있다.
“아아…… 아여주에여……아어이…… 아여주에요…….”
우진은 놀란 나머지 주저앉아 물었다.
“뭐야? 뭐라고 하는 거야, 누가 이랬어?”
“우우…… 괴, 괴무…… 웨물…….”
“뭐?”
고성진이 다 부러진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킨다. 고개를 돌린 우진의 눈에 농구 코트 한복판에 대짜로 뻗어 있는 여러 명의 남자들이 보인다.
야구 배트가 구석에 처박혀 있고 각목은 부러져 있으며, 쇠 파이프는 가운데가 우그러져 기역 자가 되어 있다.
초록색 패딩을 입은 녀석은 패딩이 거꾸로 입혀져 머리에 씌워진 채 코트 구석 벽 쪽에 거꾸로 누워 있다. 발이 벽을 타고 위쪽을 향해 있으며 목이 꺾여 있다.
올백 머리를 한 녀석은 머리가 산발이 되어 무릎을 꿇고 부러진 다리를 붙잡고 울고 있다.
“으아아아!!!”
농구 골대 근처에 골대의 쇠 부분에 머리를 박았는지 얼굴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놈 하나가 기절해 있고, 코트 중앙에 선 도경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의 왼손에 장발을 한 녀석의 머리채가 잡혀 있다. 얼마나 맞았는지 몸이 축 늘어진 녀석을 질질 끌고 간 도경이 고개를 모로 꺾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한다.
“끝이냐?”
“끄르르르…….”
목구멍에서 피가 끓는 소리를 내는 장발. 우진이 얼른 총을 집어넣고 달려간다.
“과장님! 더 패면 죽습니다!”
우진의 목소리를 들은 도경이 돌아본다. 우진을 물끄러미 본 도경이 장발을 내려 본 뒤 씩 웃는다.
“애들이니까 살살.”
도경의 주먹이 다시 한번 장발의 얼굴에 꽂히자, 힘의 방향대로 풀썩 쓰러져 버리는 녀석.
우진은 달려와 도경을 몸으로 막아 세우려 하다 멈칫했다. 농구 골대 아래에 무릎을 꿇고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을 한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 하나?”
도경이 목을 꺾는 소리가 난다. 우드득 하며 뼈 맞추는 소리를 듣고 온몸에 소름이 돋은 우진이 움찔한다.
“과장님…….”
도경이 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지원 불러서 이 새끼들 다 연행해.”
우진이 침을 꿀꺽 삼키며 외친다.
“예!!!”
도경의 본모습을 처음 본 우진이 물러나 얼른 지원을 부른 후 묶여 있는 하나를 풀어주며 물었다.
“너 괜찮아? 나쁜 짓 안 당했어?”
하나는 묶였던 몸이 풀려났지만 여전히 멍하게 앉아 도경을 바라보고 있다. 우진이 하나를 흔들며 물었다.
“야, 정신 차려.”
하나가 움찔 놀라며 우진을 바라본다. 그러다 다시 도경을 멍하게 보며 중얼거린다.
“괴물…….”
“응?”
“저…… 아저씨 괴물이에요…….”
“…….”
“다섯 명이 순식간에 피떡이 되는데…….”
우진과 하나가 바라보는 도경. 등산 나와 발견한 놀이터에서 간단히 몸을 풀었다는 듯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어이없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 * *
여주경찰서 별관.
지원 나온 순경들에 의해 줄줄이 끌려 들어오는 다섯 명의 아이들을 본 관우가 휘파람을 분다.
“이야, 너희들 뭐 트럭에 치였냐? 꼴들이 왜 그래?”
연주와 함께 있던 두 여학생이 끌려오는 녀석들 중에 고성진을 발견하고 무서운 듯 뒤로 숨는다.
연주가 아이들 반응을 보고 허리춤에 손을 얹은 후 고성진에게 다가가 으르렁거린다.
“네가 고성진이야?”
앞니 여덟 개가 몽땅 나간 고성진은 대답도 못 하고 입에서 나오는 피를 잔뜩 물고 있다. 뒤늦게 따라 들어온 우진이 연주를 말리며 말했다.
“누님, 이 새끼 더 맞으면 죽습니다.”
“아, 놔봐. 어디 할 짓이 없어서 다 큰 새끼가 여자애 납치나 하고. 찌질이 같은 새끼가.”
“누님, 참으세요.”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사무실로 들어온 나. 고성진은 연주를 노려보다 입에 고인 침을 뱉고 싶은지 고개를 숙인다.
“사무실 바닥에 뱉지 마.”
내 목소리가 들리자 고성진의 눈이 커지며 피를 꿀꺽 삼킨 후 고개를 마구 젓는다. 필사적으로 침 뱉을 생각이 없었다는 뜻을 내비치는 고성진.
나는 뚜벅뚜벅 걸어가며 말했다.
“유치장에 넣어. 전부 따로 구금하고.”
내 지시에 CCTV 분석을 하던 관우가 일어나 한 놈을 붙잡고 얼굴을 본다.
“어디 보자. 어이구, 너 병원 가야겠다. 교통사고 났네, 딱 보니까. 어라? 이놈은 다리가 부러졌네? 의사 불러야 되는 거 아닙니까? 어쩌다 이랬어요?”
우진이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더니 관우에게로 가 속삭인다. 관우는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다 실소를 짓고는 잡고 있던 녀석 뒤통수를 때린다.
“덤빌 사람한테 덤벼야지, 멍청한 놈아. 가자, 유치장 가서 의사 선생님 불러줄 테니.”
맨 뒤에 하나가 들어오자, 기다리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가 손을 잡는다.
“하나야! 괜찮아?”
“나 너무 걱정했어, 진짜 괜찮아?”
하나는 친구들이 내게 신고를 해 일이 해결되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고마운 눈빛을 쏘아 보낸다.
“어, 괜찮아. 고마워.”
“어머, 이거 피야?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니야?”
“아저씨! 하나 피 나요, 병원 보내주세요!”
오랜만에 몸을 풀어 그런지 어깻죽지가 좀 뻐근하다. 나는 어깨를 풀어주며 말했다.
“어차피 저놈들 때문에 의사 데리고 와야 돼. 같이 진료받아.”
건성으로 답하는 날 보며 입술을 삐죽이는 여학생들. 아이들이 날 째려보다 하나에게 물었다.
“저 아저씨가 구해준 거 아니지? 저 사람이 대가리인 것 같은데 분명히 뒤에서 시키기만 했을 거야. 그렇지?”
“맞아, 겁나 성의 없어.”
친구들의 말을 들은 하나가 활짝 웃으며 날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