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35화
12. 지하철 괴담(1)
경찰청 인근 소고깃집.
여주에서 도움을 주었던 우진의 환송회를 겸한 사건 해결 축하 회식 자리다.
정육식당이라 원하는 고기를 직접 골라와야 하는 식당. 관우가 차돌박이와 등심, 살치살을 가지고 와 집게와 가위를 든다.
“소고기라는 놈은 원래 불 닿으면 바로 먹는 거 아시죠? 자자, 다들 젓가락 드시고 전투 준비하시죠.”
우진이 벌떡 일어나며 집게를 잡는다.
“형님, 제가 하겠습니다.”
“어? 그럴래?”
항상 고기 굽는 역할을 하던 막내 관우는 생소한 표정으로 집게를 넘겨준다.
하지만 우진이 고기를 굽기 시작하자 눈이 벌게져서는 피가 줄줄 흐르는 고기 겉면이 익자마자 번개처럼 집어 내 그릇에 옮겨준다.
“자자, 과장님. 한 점 드세요.”
난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너희도 많이 먹어라.”
“흐흐, 소고기 회식이라니. 이정호 반장님 밑에 있을 때는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했는데. 잘 먹겠습니다!”
관우는 한 번에 여러 점을 집어 입안에 욱여넣다 연주에게 숟가락으로 뒤통수를 맞는다. 우진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배를 잡고 웃는다.
기분이 좋다. 맛있는 소고기도.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며 내는 소리와 연기도. 오늘따라 목 넘김이 알싸한 소맥 맛도 모두 날 기분 좋게 한다. 사람들이 이래서 출세하려고 기를 쓰는 걸까?
연주가 내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
“경정 진급 축하드려요, 과장님.”
“어, 고마워.”
관우가 안주를 그릇에 놓아주며 말했다.
“하, 과장님 잘나가셔서 기분 좋습니다. 우리도 빨리 진급해야 될 텐데.”
그때 낯선 목소리 하나가 끼어든다.
“그렇지?”
관우가 고기를 구우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죠, 국가수사본부 소속인데 경사는 좀 폼이 안 나잖…….”
관우는 대답을 하다, 일행들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자 고개를 돌렸다가 화들짝 놀라 천장에 머리를 박을 듯 뛰어오른다.
“헉!!”
모두가 목소리 주인에게 시선을 돌린다. 난 사실 그가 문으로 들어올 때부터 봤기에 그저 미소만 지었다.
관우가 바들바들 떨며 경례를 붙인다.
“처, 처, 처, 청장님! 충성!”
멀리서, 혹은 뉴스에서만 보던 청장이 순간 매치되지 않았던 연주와 우진이 놀라 벌떡 일어나 경례를 한다.
“충!! 성!!!”
“충성!”
고깃집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강혁 아저씨는 강제로 애들을 앉히며 말했다.
“조용히 좀 해라, 이놈들아. 고기 먹던 사람들 체하겠다.”
강혁 아저씨의 차림새를 본 나는 고소를 지었다. 저러고 다니는 청장이라니. 다 늘어난 회색 트레이닝복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타난 아저씨. 정체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이 동네 복덕방에서 장기나 두는 백수 아저씨다.
나는 옆자리에 놓아둔 옷을 치워주며 말했다.
“왜 오셨어요?”
아저씨가 내 옆에 앉으며 씩 웃는다.
“왜 오긴, 인마. 조카 진급 축하 턱 얻어먹으러 왔지.”
“월급도 많으신 분이.”
“월급 많아도 남이 사주는 고기는 여전히 맛있어, 인마. 여기요! 잔 하나 더 줘요.”
알바생이 잔을 갖다주자, 관우가 발딱 일어나 소주병을 든다.
“제가 따르겠습니다!”
강혁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조카 놈한테 받고 싶은데.”
“아, 예! 과장님 여기.”
관우가 내게 병을 넘겨주자 눈이 왕방울만 해진 연주가 속삭인다.
“진짜 과장님 삼촌이 청장님이야?”
관우가 눈치를 보며 고개를 젓는 것이 보인다. 나는 강혁 아저씨를 째려보며 말했다.
“애들 오해하잖아요.”
“뭐 어때, 조카나 마찬가지인데. 가득 따라봐라.”
아저씨 잔을 가득 채우자, 시원하게 모두가 건배를 한다.
우진은 처음부터 좀 얼어 있었지만 관우와 연주는 편하게 있다가 날벼락을 맞은 듯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잔을 비운다. 그래, 이해는 한다. 청장님과 술을 마시는 자리가 어렵겠지.
강혁 아저씨는 우진을 물끄러미 보다 물었다.
“자넨 못 보던 얼굴인데.”
우진이 벌떡 일어난다.
“여주경찰서 경사 최우진입니다! 이번 사건 해결을 위해 임시 파견되었습니다!”
“아아, 앉아서 해. 또 일어나면 나 화낸다?”
“죄송합니다!”
강혁 아저씨는 관우와 연주를 보며 말했다.
“정관우, 김연주 경사.”
반사적으로 일어나려고 하다 꾹 참은 두 사람이 허리를 펴고 답한다.
“예, 청장님!”
“예!”
강혁 아저씨가 사람 좋은 웃음을 걸고 말했다.
“두 사람 다 이번 경찰간부시험 응시 좀 하지?”
연주와 관우가 서로를 바라본다. 강혁 아저씨가 턱을 괴며 말했다.
“관우 말이 맞아. 명색이 국가수사본부 소속인데 경사는 좀 그렇지. 경위 정도는 돼야 구색이 맞지.”
경찰간부시험은 매우 어렵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보고 들어온 연주와 달리 아시안게임 특채인 관우는 머리를 긁으며 자신 없는 표정을 짓는다.
강혁 아저씨가 빈 잔을 흔들며 말했다.
“아, 물론 응시만 하면 되는 거야. 뒤는 알아서 해주지.”
연주와 관우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진다. 속으로 ‘정말이십니까?’를 수십 번 외치고 싶은 얼굴들. 두 사람은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래, 내가 대신 물어줄게.
“응시만 하면 진급하게 해주시게요?”
강혁 아저씨가 빈 잔을 흔들며 말했다.
“3초 안에 이 잔이 채워지면.”
관우가 얼른 소주병을 잡으려 하자, 번개처럼 병을 먼저 채 간 연주가 허리를 숙이며 잔을 따른다.
특별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빠른 행동을 보이는 연주를 보고 웃음이 터진 강혁 아저씨가 말했다.
“하하, 이 친구 동작이 빠르네. 그런데 또 하나 조건이 있어.”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래진다. 이 아저씨가 또 짓궂은 장난을 치려는 거구나. 나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요?”
강혁 아저씨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는 관우와 연주를 눈짓하며 말했다.
“내가 일어날 때까지 이 두 친구 허리가 새우등처럼 굽어 있었으면 좋겠어. 편하게 말이야.”
말이 떨어지자마자 관우와 연주가 허리를 굽히고 편하게 앉는다. 이럴 때는 진짜 빠른 녀석들이구나. 이래서 아랫사람 데리고 장난을 치는 건가? 재미있긴 하다. 하지만 오래 지속되면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다.
나는 확인을 받기 위해 턱을 괴고 물었다.
“확실히 진급시켜 주시는 거죠?”
연주와 관우의 눈이 반짝인다. 강혁 아저씨가 웃으며 잔을 들이켠다.
“어, 맘 같아서는 그냥 해주고 싶은데 경위부터는 시험을 봐야 되니까. 안 보고 올리려면 귀찮은 일이 잔뜩 있거든. 그러니 시험만 봐.”
연주와 관우가 서로를 바라보며 감격한 표정을 짓다 동시에 날 바라본다. 뭐냐 그 부담스러운 눈빛은. 관우가 내게 찰싹 달라붙는다.
“과장님! 평생 따라다니겠습니다!”
“징그러워, 놔.”
“과장님!”
낙지처럼 들러붙는 관우. 그런데 반대편 팔도 누가 잡고 있다. 고개를 돌려보니 얼굴이 빨개진 연주가 내 팔짱을 끼고 있다. 너까지 이럴 거야?
강혁 아저씨는 실소를 지으며 웃다가 우진을 바라본다.
“자네도 더 열심히 해서 서울 올라와. 가급적 이놈 따라다니면 좋고.”
우진은 눈앞에서 본 것이 있어 그런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날 바라보는 녀석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제길 생각해 보니 아저씨 장난에 놀아난 건 관우와 연주가 아니라 나였구나.
내가 가자미눈을 뜨자 아저씨는 호쾌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자, 내 볼일은 끝났고. 대가리가 오래 앉아 있으면 눈치 없는 거지. 난 그만 일어날 테니 즐겁게 마시고 가도록.”
“아! 처, 청장님! 괜찮습니다. 같이 드시죠!”
강혁 아저씨가 일어났다가 도로 앉는 시늉을 하며 웃는다.
“아이쿠 감사합니다! 하고 앉으면 이 싸가지 없는 현도경 경정이 날 가만두지 않을 거란 말이지. 하하, 난 간다.”
아저씨는 내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나중에 포차 가서 한잔하자.”
“예, 감사합니다.”
“그래.”
강혁 아저씨는 금일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산까지 하고 갔다.
청장의 등장에 얼어붙어 있던 팀원들은 강혁 아저씨가 사라지자마자 진급 이야기에 신이 나 지금까지보다 더 떠들기 시작한다. 진급이 그렇게 좋으냐, 너희들.
관우가 잔을 채운 후 말했다.
“국가수사본부 제2과여~ 영원 하라!”
뭐냐, 그 중2병 걸린 건배사는.
* * *
두 달 후.
특별히 배당된 사건은 없었지만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관우와 연주는 간부시험에 응시했다. 경찰청장 뒷배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열심히 공부한 두 사람. 강혁 아저씨는 약속대로 두 사람을 경위로 진급시켰다.
또 여주에서 체포한 열한 명의 범죄자들에게 판결이 떨어졌다.
먼저 조직을 결성한 두목 우지영은 사형이 구형되었고, 초기 결성 인원 셋은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나머지 일곱 중 다섯은 징역 7년, 미성년자인 두 명은 소년원으로 갔다. 하나를 납치했던 고성진은 징역 1년에 처해졌다.
나쁜 소식도 있다. 오진규 경감이 맡았던 국가수사본부 수사1과가 해체되었다. 납치사건에서 아이 사망 후 거센 여론을 버티지 못한 장영훈 본부장님이 해체를 명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국가수사본부의 수사과는 우리만 남았다. 라이벌 구도를 만들겠다고 두 팀을 만든 것인데 서로 경쟁을 해보기도 전에 한 팀이 공중분해 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다.
지금은 잘나가고 있지만 나도 잠시 삐끗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본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진규 경감이 좌천된 것은 아니다. 아무리 수사 중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 하더라도 여론에서 떠들어 대는 것처럼 수사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던 장영훈 본부장님이 손을 써 일시적인 유급 근신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여론의 거센 폭격을 받았기 때문일까? 꽤 오랫동안 사건이 배정되지 않고 있다.
처음 경위 계급장을 달고 신이 나 열정에 타올랐던 관우 녀석은 사무실 의자에 눕듯이 앉아 핸드폰을 보며 하품을 하고 있다.
연주는 이제 더 이상 청소할 것도 없는지 지난 사건의 데이터들을 살피고 있다.
나 역시 별달리 할 일이 없다. 차라리 강력계 시절에는 일이 쉼 없이 들어왔는데. 여긴 일선 형사들이 해결하기 힘든 사건만 올라와 그런지 오히려 한가하다.
관우가 하품을 하며 핸드폰을 보다 중얼거린다.
“하, 이게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갔어?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거지.”
심심했던 차에 관우의 중얼거림을 들은 나는 건성으로 물었다.
“무슨 일 있어?”
관우가 핸드폰을 들고 일어나 내 자리로 온다.
“한 달쯤 전에 SNS에 지하철 괴담이 떠돌았거든요.”
뭐, 귀신 이야기 그런 건가? 그거 가끔 보면 재미있긴 하던데.
“그런데?”
관우가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냥 괴담 같은 거였는데. 그걸 믿는 사람이 꽤 많았던 모양입니다. 실제 수사를 해야 한다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갔어요.”
잉?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을 실제 수사하라고?
“청원 올린다고 되겠어?”
관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은 청원동의자 20만 명이 되면 의무적으로 답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보통 답변이 나가는 건 대통령 특별지시로 조사를 하든, 수사를 하든, 뭘 바꾸든 하죠. 솔직히 연임제도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이지만 소속 정당 이미지가 있으니까. 다음 선거 때를 위해 국민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척하는 거죠. 덕분에 그거 처리하러 다니는 공무원들만 죽을 똥 싸는 거고.”
노트북을 하며 듣고 있던 연주가 혀를 찬다.
“아무리 그래도.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을 수사하라는 지시가 나올 리가 있어? 경찰들이 한가한 것도 아니고.”
관우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주변을 본다.
“우리 뭐 바빠? 엄청 한가하지 않아?”
연주가 눈을 흘긴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말이 씨가 된다. 내가 차라리 청소를 더 하면 했지. 누가 지어낸 줄도 모르는 인터넷 괴담을 수사하고 싶진 않거든?”
관우가 낄낄대며 말했다.
“농담이지. 그렇게 될 리가 있냐?”
나는 화면을 쓱 보다 물었다.
“그래서 지금 청원 동의자가 몇 명인데?”
관우가 입술을 내밀며 말했다.
“15만 명 넘었습니다. 청와대가 곧 움직이긴 할 거예요. 어떻게 움직일지는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