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36화
12. 지하철 괴담(2)
이틀 후, 장영훈 본부장의 호출을 받고 온 그의 방. 나는 황당한 얼굴로 인상을 썼다.
“진짜 수사를 하라고요?”
장영훈 본부장님도 마음에 안 드는 얼굴로 한숨을 쉰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입장이란 게 있어. 청와대에서 국민들에게 약속을 해버렸다. 그리고 우리에게 조사하라고 넘겨 버렸지. 일선 형사들 바쁜데 이런 일 맡길 수가 없다. 너희 두 달 동안 사건 배당 없었잖아. 이번 한 번만 맡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터넷 괴담을 진짜 수사하라고 하시면.”
“그냥 시늉만 해. 어차피 여론이란 건 청와대가 국민 청원으로 움직였다는 것에 집중되어 있어. 경찰이 국민의 힘에 의해 움직였다는 것이 중요한 거지.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
관우 녀석 말이 정말 씨가 되었다. 설마 진짜 이따위 수사를 해야 하는 날이 오다니 황당하다.
장영훈 본부장이 말했다.
“사건 브리핑 같은 거 없다. 인터넷 직접 확인하고 어디부터 수사할지 계획 짜서 보고해. 청와대 발표자료로 써야 되니까.”
장영훈은 황당해하는 날 보며 어깨를 토닥거린다.
“미안하게 됐다. 이해해라.”
“…….”
와, 미치겠네. 진짜 이걸 해야 된다고? 나는 할 수 없이 본부장의 방에서 나와 사무실로 돌아왔다.
예전 사건 데이터를 보며 스터디를 하던 관우가 내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햄버거 사왔습니다, 과장님 거 남겨뒀어요.”
“…….”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관우의 입술을 붙잡았다. 졸지에 입술을 내민 채 웁웁거리는 관우가 눈으로 왜 그러냐 묻는다.
“입이 방정이지. 이놈에 입.”
“웁웁?”
연주가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우릴 바라보다 와락 인상을 구긴다.
“설마!”
그래, 그 설마다. 나는 한숨을 쉬며 관우 입술을 놓아주고 말했다.
“인터넷 뒤져서 지하철 괴담이란 거 정보 싹 모아. 한 시간 뒤에 회의 시작한다.”
관우가 벌겋게 달아오른 입술을 문지르다 인상을 쓴다.
“예?”
연주가 서류철을 관우에게 던지며 소리친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어, 안 했어! 이 방정 맞은 새끼!”
“으아!”
한 시간 뒤.
회의실 브리핑석에 선 관우가 머리를 긁으며 눈치를 본다. 머리가 아파온 나는 미간을 매만지며 말했다.
“시작해.”
“흠, 그럼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관우가 빔 프로젝터로 화면을 보여준다.
“SNS로 확산된 괴담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진은 없고 장문의 글만이 써 있는 게시물. 관우는 필요한 부분에 미리 붉은 줄을 쳐놓았다.
“한 남성이 야근을 끝내고 막차 시간에 맞춰 지하철을 탔습니다. 그날따라 지하철에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 사람이 탄 지하철 칸에는 자신과 남자 둘, 여자 하나가 있었답니다.”
하, 그래서. 뭐 갑자기 지하철 불이 꺼지고 목 돌아간 여자가 콩콩 뛰어가기라도 한 거냐? 관우도 이 상황이 어이가 없는지 연신 머리를 긁는다.
“남자 둘과 여자 하나는 글 올린 사람의 맞은편에 앉았는데 아무도 없는 지하철에 셋이 나란히 붙어 앉아 있었답니다. 일행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는데 여자의 표정이 이상했답니다.”
전형적인 인터넷 괴담이다. 관우가 화면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멍하게 초점을 잃은 여성은 자신을 보는 것 같으면서도 또 아닌 것도 같고. 계속 한 곳만 멍하게 바라봤다고 합니다. 여자 양쪽에 앉은 두 남자를 보니 자신을 뚫어지게 노려보길래 시선을 안 마주치려고 노력했답니다. 그리고 다음 역에 또 다른 남자 한 명이 탔는데, 주변을 둘러보다 여자를 뚫어지게 보더니 자신을 바라보고는 굳이 자리도 많은데 옆자리에 바짝 붙어 앉았다고 합니다.”
관우가 다시 화면을 내려 글 대목을 보여주며 말했다.
“남자는 한참 눈치를 보다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답니다. ‘내가 잘못했다. 화내지 말고 그냥 가자. 술 마시다 그렇게 나가면 내가 뭐가 되냐?’ 처음 보는 남자가 이상한 소리를 하자 고개를 갸웃거렸답니다. 그러자 남자가 옆구리를 찌르더니 막무가내로 자신을 일으켜 세워 다음 역에 내리게 했답니다.”
나는 한숨을 쉬며 턱을 괴었다.
“그래서, 여자가 귀신이래?”
관우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아뇨, 그건 아니고. 막차에서 강제로 내리게 되자 화를 냈답니다. 이거 놓치면 택시 타야 되는데 택시비 줄 거냐고. 그러자 자기를 끌고 내린 남자가 말했답니다. 자신은 의사인데 당신 맞은편에 있던 여자는 이미 죽은 시신이라고. 혹시나 두 남자가 당신을 죽일까 봐 연기한 거라고 말입니다.”
연주가 목을 움츠린다.
“으, 소름 돋아. 난 인터넷 괴담이 제일 싫어!”
그래, 무섭긴 하네. 괴담이 무서우니 괴담이지. 그런데 진짜 이걸 수사하라고? 나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
“인터넷과 동영상 사이트에 떠도는 괴담이 몇 개나 되지?”
연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셀 수가 없죠. 몇천 개는 될걸요?”
그래, 맞다. 그런데 왜 유독 이 사건만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간 걸까? 관우가 말을 이었다.
“워낙 실감 나게 잘 써서 그런 거 아닐까요? 게다가 지하철은 대중교통 중에 가장 승객이 많은 수단이라 불안감 조성도 한몫했을 거고.”
하, 어떤 자식이 이런 괴담을 지어냈는지 모르겠지만 잡아서 족쳐 버릴 거다. 전 국민 앞에서 이야기할 거다.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은 방구석 폐인 놈이 할 일이 없어 지어낸 이야기고, 너희들 청원 덕에 비싼 세금으로 운영 중인 경찰이 헛수고를 했다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브리핑은 그게 전부야?”
“예.”
“최초 글 올린 사람 찾아.”
“본부장님께서 사이버범죄 수사과에 이미 지시하셨답니다.”
이런 인터넷 괴담은 사람들이 퍼 나르며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확산이 되고 나면 누가 올렸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청와대 청원이 이슈가 된 후로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므로 빠르게 대응해야 최초에 이야기를 지어낸 망할 놈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좋아, 일단 기다린다.”
어느 지하철에 어느 역인지도 모르고 다짜고짜 수사한다고 들쑤시고 다닐 수는 없다. 국민들이 바보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움직이면 보여주기 수사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으니까.
다음 날이 되자, 사이버범죄 수사과에서 최초 글 올린 이의 신상명세가 전달되었다. 연주가 신상을 확인하고 말했다.
“30세 회사원, 유재영이란 사람입니다. 회사도 좋은 데 다니는 인간이 왜 이랬지?”
“지금 어디 있어?”
“회사요. 남양주시 양원동 근처입니다.”
“연락해서 만나자고 해.”
“네, 바로 가나요?”
“어, 나만 다녀올 테니 너희들은 대기해.”
“제가 가도 되는데.”
“됐다, 가서 쓸데없는 소리 듣는 건데 괜히 에너지 낭비하지 말자.”
“알겠습니다, 과장님.”
잠시 후 남양주시 양원동 디자인 회사 앞 카페.
먼저 와 커피를 시켜놓고 기다리자, 곧 남자 한 명이 문 열리는 방울 소리와 함께 카페로 들어와 두리번거린다.
나는 손을 슬쩍 들며 말했다.
“유재영 씨?”
유재영이 눈에 이채를 띠며 다가온다. 뭐지, 이 반응은? 내가 예상했던 반응과 다르다.
유재영은 인터넷 괴담을 확산시킨 사람이 아니라 최초 글을 올린 사람이다. 이 사건으로 경찰까지 나섰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자기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는 생각에 당황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 경찰을 만나면 죄송하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의 표정은 미안함과는 거리가 있다.
“경찰 맞습니까?”
나는 카페 테이블에 신분증을 올려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글을 최초에 올리신 분 맞습니까?”
유재영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예, 맞습니다.”
“본인이 직접 경험하신 겁니까?”
“예, 직접 경험한 겁니다.”
자신 있는 얼굴. 하, 그래. 귀신 직접 봤다는 놈들도 다 이런 표정으로 말하지. 거짓말을 진짜라고 우기는 부류들. 자기 스스로까지 속일 것 같은 얼굴로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들 덕에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는 것이다.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핸드폰 화면을 내밀었다.
“이 글 맞습니까?”
유재영이 화면을 확인하며 말했다.
“어, 이 글은 누가 살을 좀 더 붙인 것 같은데. 그래도 맥락은 맞습니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몇 시에 일어난 일입니까?”
“음, 그게…… 양정역에서 11시 40분쯤 탄 지하철에서 생긴 일입니다.”
“양정역이요?”
“예, 직장이 여기라서.”
“몇 호선입니까?”
“중앙선입니다.”
거짓말을 아주 제대로 준비했구나. 하긴 거짓말이란 것이 들통나서 국민적인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 밤새 계획을 짰겠지. 나는 수첩을 꺼내 메모를 하며 말했다.
“양정역에서 밤 11시 40분. 날짜는?”
“7월 19일이요. 제가 그 사건 겪고 너무 소름이 돋아서 하루 종일 생각하다가 다음 날 글 올렸거든요.”
“글 올린 날짜가 7월 20일입니까?”
“네.”
“의사라는 사람이 억지로 내리게 했다고 하던데.”
“네, 맞아요.”
“어디서 내리셨습니까?”
“망우역이요.”
음, 하필 내려도 망우역이냐. 공동묘지 있는 동네 아닌가?
“그때는 몇 시였습니까?”
“열두 시 좀 넘었을 겁니다.”
“세 사람은 그대로 열차를 타고 갔고요?”
“예.”
“어디서 내렸는지 모르시는 겁니까?”
“예.”
“그럼 그 의사는 누구였습니까?”
“의사요?”
“예, 이름이나 직장 같은 거.”
“모릅니다, 너무 소름 돋아서 아무 말도 못 했거든요.”
하, 이 새끼가 나랑 지금 장난치나. 나는 유재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유재영 씨.”
“예?”
“요즘은 일반인들도 아는 상식이라고 해서 여쭈는 겁니다만 혹시 CCTV 보관일이 언제까지인지 아십니까?”
“아, 그거 알아요. 30일이라고 하던데.”
나는 핸드폰 달력을 보여주며 말했다.
“오늘이 9월 3일. 사건이 발생했다고 주장하신 날짜는 7월 19일. 이미 CCTV가 지워진 날짜군요.”
유재영이 인상을 쓴다.
“그러니까요, 좀 더 빨리 움직였으면 단서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망할 새끼야. 빨리 움직이게 하고 싶었으면 경찰에 신고를 했어야지. 인터넷에 끄적거린다고 경찰이 움직이겠냐? 나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사건의 목격자는 둘. 글을 올린 당신과 당신이 말한 의사가 유일한 목격자인데 정체도 이름도 직장도 모르신다?”
“…….”
“CCTV는 없고, 목격자가 있긴 한데 누구인지는 모르고. 친구의 친구가 한 괴담이랑 뭐가 다릅니까?”
“저기, 안 믿겨지는 건 이해가 되는데요, 우리 회사 직원들도 다 안 믿었으니까. 근데 저 진짜 사실만 말한 겁니다.”
유재영의 표정. 억울함이 깃든 표정이다. 저게 연기인지 실제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사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이 말이 모두 진실이라고 해도 유재영이 목 잘린 여자를 본 것도 아니고 술에 취했을지도 모르는 여자가 멍하게 초점 없이 한 곳만 바라보던 걸 목격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진짜 시신인지도 모른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의사가 그렇다고 말한 것뿐이다.
유재영이 답답한 얼굴로 인상을 쓴다.
“그게 제 잘못입니까? 경찰이 빨리 움직였으면!”
더 들어주지 못하겠다. 나는 테이블을 내려치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수사를 원했으면 경찰에 신고를 했어야 당신 말처럼 경찰이 빨리 움직이지!”
갑자기 으르렁거리는 날 보고 찔끔하는 유재영. 나는 그런 유재영을 노려보았다. 서슬 퍼런 기세에 짓눌린 유재영이 시선을 피하는 것이 보인다.
이런 자식 때문에 수사하는 시늉을 하는 연극을 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노래진다. 이 새끼를 죽여 살려? 확 입을 찢어줄까, 키보드 두들긴 손가락을 부러뜨려 줄까?
바로 그때, 유재영을 노려보는 내 시선이 흑백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을 느낀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뭐야, 갑자기 왜 기억 속으로 들어가? 이 타이밍에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