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47화
12. 지하철 괴담(13)
연주는 오진규 경감이 지원을 요청하며 도경이 납치당한 것 같다는 보고를 듣자마자 총알처럼 차를 몰아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비교적 현장에서 가까운 병원에 있던 관우가 앞차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보인다. 연주는 차 문도 닫지 못하고 달려가며 외쳤다.
“관우야!”
관우가 뒤를 돌아본다. 지원 요청을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 상세한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진입할 수는 없기에 다른 지원 팀이 올 때까지 대기하고 있던 관우가 다급하게 물었다.
“과장님 상태는 전혀 몰라?”
연주가 숨을 헐떡이며 허리를 숙인다.
“헉, 헉. 어, 아직 몰라. 오진규 경감님이 과장님이 누굴 미행하는 걸 보고 도우려고 따라붙었다가 납치된 것 같다고 지원 요청하셨다고 들었어.”
“젠장! 내가 같이 있어야 했는데!”
관우는 잘못이 없다. 그는 도경의 지시대로 병원에 잠복하고 있었기에 함께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우는 무척 죄스러운 얼굴이 되어 있다.
연주가 달동네를 노려보며 말했다.
“상대는 장기밀매 업자들이야. 이 새끼들 이미 사망한 시신에 대한 불법 장기적출을 하던 놈들이 아니라, 사람을 죽여서 적출한 놈들이라고. 살인에 불법 장기적출에 판매까지. 걸리면 무조건 종신형이라 이판사판으로 덤빌 텐데 어쩌자고 혼자 들어가신 거야, 정말!”
관우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런데 지원 요청하신 분은 왜 안 보이지?”
그러고 보니 오진규가 보이지 않는다. 지원을 요청했으면 인근 어디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합류하는 것이 보통인데 아무도 없다.
바로 그때, 멀리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열 대가 넘는 순찰차들이 올라오는 것을 지켜보던 연주는 차가 멈추기도 전에 달려가 운전석 유리창을 두들긴다.
“열어봐요!”
신분증을 보여주자 창문을 내리는 순경. 연주가 급히 물었다.
“어느 건물입니까?”
이 동네가 관할인 순경이 30미터 앞에 있는 건물을 가리킨다.
“저기입니다. 납치 예상 지역은 저 건물 지하고요.”
순경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연주의 몸이 사라진다. 멀리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관우는 연주보다 더 빨리 건물로 뛰어들었다.
정면에 보이는 지하로 가는 계단 앞에서 핏자국을 발견한 관우가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계단 아래로 몸을 날린다.
“이 개새끼들! 우리 과장님 어디 다쳤으면 다 죽었어!”
연주도 달려오며 핏자국을 보고는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마구 소리를 지르며 뛴다.
“이이이이!!! 개애애애애!!!!!!!”
계단을 다섯 개씩 뛰어내린 두 사람이 긴 복도 형식으로 된 지하실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른다.
“과장님! 과장님! 어디 계십니까!”
“과장님! 대답 좀 해봐요! 제발!”
잠겨 있는 문들. 관우가 문고리를 붙잡고 흔들다 발로 차기도 하고, 연주는 총을 거꾸로 잡고 문고리를 부수고 있다.
바로 그때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쨍그랑하고 들려온다. 순간 움직임을 멈춘 두 사람.
둘이 잡고 있던 문 쪽이 아닌, 가장 안쪽에 있는 문에서 울린 소리다. 그리고 연이어 비명들이 터져 나온다.
“커억!”
“으억!!!”
“컥!!!”
“으아아!!!”
관우와 연주가 서로를 마주 본 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뛰기 시작한다. 가장 안쪽에 있는 더럽고 낡은 문. 관우가 문고리를 붙잡고 마구 돌린다.
“제기랄, 잠겼어! 양쪽에 다 잠금장치가 있는 문이다! 아무거나 도구 좀 가져와!”
“어!”
연주가 복도를 둘러보며 둔기가 될 만한 것을 찾는다. 그와 동시에 계단에서 뛰어내려 오는 형사들.
건물 외측 경비는 순경들에게 맡겨두고 뛰어들어 온 동대문경찰서 형사들이다. 다섯 명의 형사들이 바람처럼 내려와 연주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우리 차장님 어디 계십니까!”
연주가 그를 보지도 않고 외쳤다.
“저기 맨 끝 문이요! 잠겼어요, 근처에서 빨리 문 부술 만한 것 좀 찾아줘요!”
눈치 빠른 형사들은 추가 설명을 듣지 않고 계단 바로 옆에 놓인 소화기를 들고 뛰어온다.
덩치 좋은 형사가 소화기를 들고 뛰는 걸 본 관우가 문에서 떨어지자, 달려오는 힘을 이용해 문고리를 한 방에 박살 내버리는 형사.
관우는 대기하고 있다 문고리가 부서지자마자 총을 들고 문을 발로 차며 뛰어든다.
“과장님!”
뒤쪽에 있던 연주가 달려간다.
“과장니이이이임!!!!”
관우는 문을 발로 차자마자 총을 겨누려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에게 날아오는 흉기를 보고 급히 고개를 숙인다.
쾅!!
관우가 고개를 들자, 자신이 열고 들어온 문 바로 옆에 도끼가 박혀 있는 것이 보인다. 조금만 늦게 피했다면 저걸 맞고 머리가 쪼개졌을 것이다.
뒤를 돌아보고 있느라 쫓아온 연주를 본 관우. 그런데 연주 표정이 이상하다. 조금 전까지 경악한 얼굴로 다급하게 뛰어들어 왔는데 어쩐지 황당한 얼굴이 되어 있는 연주.
연주 얼굴을 보다 현 상황을 깨달은 관우가 얼른 안쪽 상황을 보려 고개를 돌렸다가 눈이 휘둥그레진다.
맨 먼저 보이는 놈.
티셔츠가 뒤집어져 얼굴에 덮어쓰고 자빠져 있다. 얼굴 부근에 씌워진 티셔츠에서 꾸역꾸역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 놈은 거울에 얼굴을 박았는지 바닥에 누워 얼굴에 박힌 거울 조각을 덜덜 떠는 손으로 빼내고 있다.
테이블 위에 팔이 완전히 뒤틀려 부러진 채 덜렁거리는 놈이 꿈틀거리고 있고, 얼굴을 해머로 맞았는지 이가 다 부러져 기절한 채 널려 있는 놈도 보인다.
“이게 무슨…….”
총을 쥐고는 있지만 어디를 겨누고 있지 않은 오진규 경감이 두 사람을 보고는 실소를 짓는다.
“저기, 저 사람 좀 살려줘야 될 것 같은데.”
연주와 관우의 고개가 오진규 경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동시에 돌아간다.
뻐억!! 퍼억!! 뻐어어억!!!
도경이 파마머리를 한 놈의 멱살을 잡고 얼굴에 주먹을 연달아 내리꽂고 있다. 이미 다리에 힘이 풀려 축 늘어져 있는 놈은 전혀 반항하지 못하고 기절한 상태이다.
너무 황당한 상황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두 사람. 총을 집어넣은 오진규 경감이 관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빨리 안 말리면 진짜 사람 죽습니다?”
퍼뜩 정신을 차린 관우가 달려든다. 도경의 뒤에서 몸을 꽉 붙든 관우가 소리를 지른다.
“과장님!”
휘리릭! 콰당!!!
격투 중이라 그런지 관우가 왔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도경이 뒤를 잡히자마자 업어치기로 관우를 날려 버린다.
“컥!!!!!!!”
연주가 달려들며 외쳤다.
“과장님! 관우예요, 관우!”
관우를 날려 버린 후에 비로소 상대가 같은 편이란 걸 알아챈 도경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언제 왔어?”
“으…… 으어……. 어깨 빠진 거 같…….”
“미안, 갑자기 뒤에서 누가 잡길래.”
“으어어…….”
연주는 쓰러진 관우는 궁금하지 않은 모양인지 도경의 얼굴부터 살폈다. 여기저기 터져 있는 도경의 얼굴을 본 연주가 인상을 쓰며 외친다.
“지원부터 불렀어야죠!”
도경이 머리를 긁으며 파마머리의 멱살을 슬며시 놓는다.
“부르려고 하는 참에 당한 거라.”
“아오!! 진짜!”
방의 문 앞에서 안의 상황을 보며 어이없어하던 동대문경찰서 형사들이 문으로 나오는 오진규를 보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오진규 경감이 형사들을 보며 실소를 짓는다. 다시 방 안에 있는 도경을 눈짓한 오진규가 말했다.
“나 아무것도 안 했어. 저 양반이 혼자 다 했지. 괴물이네, 괴물이야.”
형사들이 눈이 다시 도경에게 돌아간다. 연주에게 혼이 나며 머리를 긁고 있는 남자가 이 지옥도를 펼쳐놓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눈치이다.
“과장님! 진짜 이럴 거예요!!!”
바닥에 쓰러진 관우는 연신 팔을 붙잡고 나 좀 봐달라는 듯 흔든다.
“저기…… 나 어깨 빠진 것 같다니까…….”
* * *
잠시 후, 형사들에 의해 수갑을 찬 상태로 응급처치를 받고 있는 범인들. 나는 그 옆에서 관우와 나란히 앉아 119구급대원들의 치료를 받고 있다.
나는 슬금슬금 관우 눈치를 보았다.
“괜찮냐?”
“…….”
“미안하다.”
관우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직장 내 폭력인가? 나 지금 상사한테 폭행당한 거 맞죠?”
“…….”
미안하다, 인마. 그렇다고 무슨 직장 내 폭행까지. 연주가 관우의 뒤통수를 때리며 말했다.
“조용히 해, 인마! 형사라는 놈이 미리 설명하고 말렸어야지, 싸우고 있는 사람 뒤에서 갑자기 낚아채면 나라도 날려 버리지. 업어치기 한 방에 팔 빠진 게 뭐 자랑이라고 나불거려.”
“아! 나 환자라고, 환자!”
“닥쳐!”
동대문경찰서 형사들 중 한 명이 눈치를 보며 다가와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저기 과장님.”
아무래도 갈비뼈 쪽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다. 숨 쉴 때마다 아프네. 고통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형사를 바라보자 그가 움찔 놀란다.
“예.”
형사가 우물쭈물하다 말했다.
“……범인들 전부 수갑 채워놨습니다. 국가수사본부로 보낼까요?”
“아,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저기 잠깐만요.”
나는 치료 중인 119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의자에 주르륵 앉혀 있는 수갑 찬 놈들을 바라보았다. 뒤에서 연주가 중얼거린다.
“파마머리 건드리지 마요, 진짜. 더 패면 죽는다고요.”
“…….”
또 때리려고 가는 거 아니다. 사람을 그렇게 못 믿어서 어째. 관우가 팔에 붕대를 차며 구급대원에게 물었다.
“누나, 파마머리 안 죽었죠? 안 죽었다고 말해줘요.”
구급대원이 헛웃음을 터뜨린다.
음, 좀 부끄러운데? 하지만 일단 볼일은 봐야 된다. 나는 걸레가 되어 반쯤 기절해 있는 다섯 놈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일단 내가 따라온 놈은 여기 있다. 톱을 휘두르길래 팔을 부러뜨리며 어깨까지 뽑아놔서 숟가락 다시 들려면 육 개월은 요양해야 될 거다.
내가 하나씩 눈을 맞출 때마다 몸을 덜덜 떨며 눈을 피하는 놈들. 파마머리 녀석이 제일 심하다. 오줌을 싼 모양인지 지린내가 진동한다.
“으허…… 어어어어…… 자, 자, 자못…… 자못해더여!”
뭐라고 하는 거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 턱이 빠진 모양이다. 나는 다섯 놈을 가만히 바라보다 인상을 찡그렸다.
‘한 놈이 없다.’
기억 속에서 본 두 놈 중 체포한 건 한 놈이다. 얼굴이 하얗고 눈이 쭉 찢어진 날렵하게 생긴 놈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파마머리의 멱살을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야.”
“으어어어!! 사, 사라사여!”
연주가 언제든 뜯어말릴 준비를 하며 말했다.
“과장님, 때리지 말라고요.”
안 때린다니까 이놈들아. 나는 파마머리 멱살을 잡고 말했다.
“너희 조직 몇 놈이야?”
파마머리는 손짓까지 해가며 말했다.
“다, 다어며…….”
“다섯?”
파마머리가 마구 고개를 끄덕인다. 이 새끼가 거짓말을 하네? 나는 멱살을 잡은 채로 다른 주먹을 들어 보였다.
“아직 덜 맞았지?”
“으! 으어어!! 으어어!!”
파마머리가 마구 고개를 돌린다.
“지, 지짜! 진짜 다어며!! 지짜! 지짜!”
누가 보면 진짜인 줄 알겠다. 하지만 나는 안다. 분명히 한 놈이 더 있다. 하얀 얼굴에 눈 찢어진 놈. 순간 나는 이 파마머리가 아까 날 때리기 전에 전화로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 이 새끼 깼는데. 소매치기 따라왔다는데? 모르지, 씨X. 승진이 새끼가 좀 양아치처럼 생기긴 했잖냐, 킬킬. 어, 바로 따? 장기는? 어, 박사 아직 안 왔는데? 아니 병신아. 박사가 와야 장기를 꺼내지. 내가 꺼내면 걸레 될 텐데. 그래, 30분 안에 오라고 해라. 뭐? 한 시간 반? 씨X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젠장, 알았다.’
나는 급히 시간을 보았다. 모든 소지품을 빼앗겨 놈들에게 붙잡힌 시간을 모르는 나는 급히 연주에게 물었다.
“오진규 경감님이 지원 요청한 거 몇 시야?”
연주가 시간을 확인 후 말했다.
“지원 요청 13분 후에 도착했으니까…… 지금부터 40분 전이요.”
박사가 도착하기로 한 시간은 40분 전을 기준으로 한 시간 반 뒤. 아직 시간이 남았다.
나는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
“이 새끼들 전부 수사국으로 보내고, 순찰차 전부 빼. 시간 없다, 빨리!”
연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증거품 안 가져가요?”
나는 파마머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직 한 놈 남았다. 그 새끼까지 잡아야 돼.”